서동희 법무법인 정동국제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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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보험이든 일반보험이든 그 약관 내용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조항이 허다하다. 따라서 공정한 거래가 되게 하기 위하여 보험계약을 체결할 때에 일반인, 즉 소비자에 대하여 그 보험약관의 내용을 개별적으로 설명하여 주는 것이 바람직함은 두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 보험계약자가 일정한 규모의 조직을 갖춘 기업인 기업보험의 경우에도 보험자가 그 기업에 보험약관의 내용을 일일이 설명하라고 하는 것은 보험거래의 신속성을 저해하고, 비경제적이며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앞서 본 대법원 2001. 7. 27. 선고 99다55533 판결에 의하면 “보험약관의 중요한 내용에 해당하는 사항이라 하더라도 보험계약자나 그 대리인이 그 내용을 충분히 잘 알고 있는 경우에는 당해 약관이 바로 계약 내용이 되어 당사자에 대하여 구속력을 가지므로 보험자로서는 보험계약자 또는 그 대리인에게 약관의 내용을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판시하고 있어서, 일정 부분 보험자의 부담을 덜어 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재판실무에 있어서 보험계약자나 그 대리인이 보험약관의 중요한 내용을 충분히 알고 있었음을 보험자가 증명하는 것은 늘 어려운 과제이다.

위 대법원 판결에서도 대영물산㈜는 운송선박인 “피닉스 35호”의 사실상 선주이어서 해상보험에 대하여 잘 알 수 있었던 입장으로 충분히 추정되고, 나아가 이 사건 보험계약 체결 이전에 수차례에 걸쳐 원고와 이 사건과 같은 선박미확정 해상적하보험계약을 체결하였던 사실이 인정된 것 같은데도, 대법원은 “[그와 같은] 사실만으로 [원심이] 피고가 위 약관의 내용을 알고 있었다고 추인하고 있는바, 이는 피고가 위 약관의 내용을 모른 채 반복하여 보험계약을 체결할 수도 있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논리적 비약이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사실심인 원심으로서는 보험계약자인 피고가 이 사건 협회선급약관상의 계속담보조항의 내용을 알고 있었는지 여부에 관하여 좀 더 심리하여 밝혔어야 할 것이고, 그 입증이 불분명한 경우에는 입증책임에 관한 일반원칙에 따라 입증책임을 부담하는 원고에게 불리하게 판단하였어야 할 것이다”라며 파기 환송을 하였다. 재판실무를 하는 변호사로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환송후 새로운 증거자료를 제출하여 대법원이 입증이 안 되었다고 지적하는 사항에 대한 입증을 하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실무상 그러한 입증에 의한 상황반전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필자가 최근에 모 보험회사를 대리하여 수행한 보험금지급채무부존재 확인소송에서도 법원의 해상보험실무(보다 정확히는 해운실무)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아쉽게 보험자 패소의 판결을 받은 사례가 있었는데, 동 판결에서 보험계약자는 해운이나 선박보험을 잘 아는 사람을 대리인으로 내세웠고, 나아가 수십년 해운업무에 종사하였던 업계의 중견 해운인의 자문을 받아서 보험계약을 체결한 것이 의심되는 사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보험계약자에게 보험증권이 직접 전달되지 않았다느니, 혹은 ITC-Hull (TLO)보험약관의 내용이 보험계약의 일부가 되었다고 볼 증거가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보험자 패소의 판결을 내린바 있는데, 이러한 사정은 바로 보험자가 보험 계약자가 해상보험약관의 내용을 숙지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정들이 해상보험(1) 에 있어서의 약관설명의무의 문제를 매우 어렵게 하는 요소라고 본다. 이러한 점에 대하여 필자는 두가지 사항이 균형 있게 고려되어야 한다고 본다. 하나는 선박보험과 같은 보험은 기업보험의 전형적인 형태이므로, 보험계약자가 그의 부담과 위험으로 그 내용을 이해하고 보험 계약을 체결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적하보험과 같이 일반인도 보험계약자가 될 수 있는 경우에는 해상적하보험약관의 내용을 그 일반인에게 알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일반인이 보험계약을 보험약관의 내용에 대하여 숙지하고 있는 대리인 또는 중개인에 의하여 보험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에는 별도의 문제이다. 따라서 후자의 경우에는 현행법 아래에서 일정한 정도 보호를 하여 줄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현행법 아래에서도 위와 같은 해석은 불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즉,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3조는 국제사법 제25조 제4항 소정의 “강행규정”으로서, 영국법 준거 약관 아래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으며, 그 경우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은 “사업자” 대 “소비자”의 법률관계를 규율하려는 것이므로, 적하보험의 계약자의 일부는 경우에 따라서 이 “소비자”에 해당될 수 있을 것이지만, 선박보험의 계약자인 해운회사는 “소비자”의 범위에서 제외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러한 2분법이 반드시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며, 단지 현행법 아래에서의 하나의 해석으로서 고려하여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위 대법원의 판결의 판시 내용을 활용하여서도 해결수단은 도출될 수 있을 여지가 있다. 즉, 대법원은 “해상보험계약에서 사용하고 있는 약관이라 할지라도 개별적으로 그 내용이 거래상 일반적이고 공통된 것이어서 보험계약자가 별도의 설명 없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사항”일 경우에는 설명의무가 면제된다는 것인 바, 해상보험약관(동 사건에서 문제된 협회선급약관도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약관임)이야 말로 “그 내용이 거래상 일반적이고 공통된 것”이기 때문에, 선박보험이든 적하보험이든 설명의무가 없다고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2) .

필자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의 개정을 통하여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 동 법률 제3조 제1항 단서, 즉 “다만, 다른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행정관청의 인가를 받은 약관으로서 거래의 신속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어 대통령령이 정하는 약관에 대하여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고 있고, 동법 시행령 제2조 제1항 제1호는 “여객운송업”을 약관 명시•교부 의무가 적용되지 않는 사업으로 규정하고 있고, 위 법률 제3조 제2항 단서, 즉 “다만, 계약의 성질상 설명이 현저하게 곤란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고 있는 바, 해상보험업 혹은 해상보험약관이 거래의 전문성, 국제성, 신속성, 상대방이 대체적으로 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위 “여객운송업”에 뒤질 것이 전혀 없으므로, 위 법률 또는 시행령의 개정을 통하여 약관의 명시•교부•설명 의무는 면제되거나, 적어도 상당부분 수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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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반 보험에서도 동일한 문제는 발생하나, 차이가 있다면 해상보험계약에 대하여는 통상적으로 영국법이 준거법으로 적용되게 되고, 그 경우 영국법에는 우리의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3조 제2항에 상응하는 보험자의 약관의 설명의무가 없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우리의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3조 제2항이 적용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여부에 대한 추가적인 문제가 일반보험약관에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상보험에 위 법률 제3조 제2항이 적용되려면 두 가지 단계를 극복하여야 하는데, 일반보험에는 한 가지라는 차이이다.

(2)필자는 위 대법원 판결의 결론에 대하여 반대한다. 즉, 필자가 2심 및 3심 판결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사실관계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나, 대법원 판결만으로 판단할 때 보험계약자는 약관의 내용을 알았다고 인정하는 것이 타당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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