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희 법무법인 정동국제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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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에서 본 두 가지 종류의 준거법 약관(1)이 우리나라에서 그 효력이 인정되고 있는데, 그 근거가 무엇인지를 보기로 한다. 우선 선박보험증권상의 준거법 약관에 대하여 보기로 하자.

국제사법 제25조 제1항 본문(2)에 의거하여 보험자와 보험계약자 사이에 현행 영국법 준거법 약관을 제정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는 없으며, 그에 따라 영국법 준거법 약관은 우리나라에서 유효한 것으로 인정된다.

이는 보험자와 보험계약자가 모두 우리나라 회사들이고, 보험계약의 체결장소가 우리나라이며, 해당 선박이 우리나라 선적의 선박으로서, 도대체 영국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경우에도 유효한 것으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물론 국제사법에 예외가 있기는 하다. 즉, 제25조 제4항은 “모든 요소가 오로지 한 국가와 관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사자가 그 외의 다른 국가의 법을 선택한 경우에 관련된 국가의 강행규정은 그 적용이 배제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관련된 국가의 강행규정”이 곧 “우리나라의 강행규정”이 될 것이며, 따라서 우리나라 보험법의 강행 규정(3)이나 예컨대 약관규제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약관의 설명의무 등에 관한 규정 등의 적용이 배제되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이와 같이 선박보험의 준거법을 영국법으로 하겠다는 당사자 사의 준거법에 관한 합의가 유효한 것으로 받아 들여지는데, 그 근거가 무엇일까? 그것은 국제사법의 대원칙 중의 하나인 “당사자자치의 원칙”이다. 채권에 관한 법률관계에 대하여 적용될 법은 당사자가 스스로 합의에 의하여 정할 수 있다는 원칙이다.

나아가 보다 실무적으로 말한다면, 대법원 1991. 5. 14. 선고 90다카25314 판결에서 대법원이 그 이유로 설시한 바대로 “오랜 기간 동안에 걸쳐 해상보험업계의 중심이 되어 온 영국의 법률과 관습에 따라 당사자간의 거래관계를 명확하게 하려는 것으로서 우리나라의 공익규정 또는 공서양속에 반하는 것이라거나 보험계약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유효하[다]”라는 것이다.

이 영국법 준거법약관에 대한 법적 성질에 관하여 학자들 사이에 논의가 있는데, 그에 대하여 저촉법적 지정설과 실질법적 지정설이 있다. 저촉법적 지정설이란 국제사법 제25조 제1항에서 말하는 채권계약의 준거법을 당사자 사이의 합의에 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국법이 보험계약의 준거법이 된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실질법적 지정설은 영국법 준거법약관은 영국법이 준거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영국법이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될 뿐이라고 본다. 대부분의 보험법학자들은 전자의 견해를 취하는 것으로 보이며, 석광현 교수 및 정호영 판사는 후자의 견해를 취한다.(4) 이론적인 문제이기는 하나, 필자는 저촉법적 지정설에 찬동한다. 그 이유는 보험자와 보험계약자 사이에 해당 ‘보험계약’ 아래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하여 영국법으로 처리하기로 합의를 하였고, 이는 국제사법 제25조 제1항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명시적으로 선택된 법’이기 때문이다.(5)

요컨대, 선박보험에 관한 한 대법원 1996. 3. 8. 선고 95다28779 판결(6)및 대법원 2005. 11. 25. 선고 2002다59528,59535 판결(7)에서 영국법 준거법약관의 효력은 계속하여 인정되고 있어서, 법리상으로 그 효력에 대하여 논란을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하여 선박보험에 관하여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정확한 처리를 위하여는 영국 법률사무소 또는 변호사의 법률의견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다. 그로 인하여 우리는 외화를 지급하고 그 법률의견을 구입하여야 하는 상황이 되며, 영국의 입장으로서는 법률서비스를 수출하게 되는 입장이 된다.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필자는 개선책을 모색하여 보자고 제안한 적이 있으며(8), 그러한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구체적으로는 영국 해상보험법의 내용을 최대한 반영한 우리나라 고유의 해상보험법을 제정하고, 선박보험약관에서 영국법 준거법 약관을 삭제하는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런던 로이즈의 재보험자들이 대부분의 선박보험의 재보험을 인수하는 상황에서 그 재보험자들이 영국법 준거법 약관을 고집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므로, 이러한 제안이 무리한 점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는 선박보험증권에는 “This insurance is subject to English jurisdiction”(이 보험계약에 발생되는 분쟁은 영국법원에서 해결된다)라는 영국법원 관할 약관이 없다(9).

따라서 우리나라 보험자들은 관할약관에 관한 한 이미 자유로워진 것이라고 본다. 만일 이것 마저 강요된다면 ITCH 나 IVCH 등 협회약관 아래에서의 보험금 분쟁은 모두 우리나라 법원이 아닌 영국법원에서 처리되어야 한다는 결과가 된다. 이와 같이 영국법원 관할 약관이 제외된 것과 마찬가지로 재보험자들에게 우리나라 보험법이 영국의 법과 동일한 내용이라는 점 그리고 그 해석도 영국법 및 판례를 참고하여 해석한다는 점을 설명하면 이에 대한 실무를 변경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10) 영국법 및 판례를 참고로 한다는 것과 ‘법’ 그 자체를 적용하는 것에는 예컨대 기존 판례가 부당한 것으로 비판을 받는 대목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다음 회에는 적하보험약관의 효력 및 내용에 대하여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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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박보험증권에 사용되는“This insurance is subject to English Law and practice.”과 적하보험증권에 사용되는 “Notwithstanding anything contained herein or attached hereto to the contrary, this insurance is understood and agreed to be subject to English law and practice only as to liability for and settlement of any and all claims.”
(2) “계약은 당사자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선택한 법에 의한다.”
(3) 이와 관련하여는 실제 적용의 문제로 들어가면 어느 조항이 “강행규정”인가에관하여 많은 논란이 야기될 것으로 보인다.
(4) 석광현, 국제사법과 국제소송 제3권, 박영사, 195면 내지 197면
(5) 이에 대하여 석광현 교수는 ‘법’이 준거법이 되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관습, 관례 또는 실무’는 준거법이 될 수 없다며, 반대 견해를 취하고 있다.
(6) 유풍 제101호 사건
(7) 제510 동영호 사건
(8) 졸고, “한국해상보험법에서의 영국법 문제에 대한 처리”, 판례연구 제15집(상), 서울지방변호사회(2001) 75면
(9) 런던 보험업자들이 사용하는 증권의 표지에는 본래 이 규정이 있다.
(10) 참고로 필자가 알기로는 일본도 우리나라나 마찬가지로 선박보험에 대하여는 영국법 준거법약관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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