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베이發 유감...냉정함으로 해운대국 위상 되찾아야"

서해안 오염사고의 수습작업이 다행히 이제 조금씩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것 같다. 새삼스러운 이야기이지만 이 사고는 대외적으로는 아시아 최대 오염사고이자 국내적으로는 그 피해 규모면에서 6·25 이후 민족 최대의 재난사고가 아닌가 싶다.

아침에 일어나면 컴퓨터를 열어 Lloyds list, Tradewinds, Nihon Kaiji, CNN 등의 외지와 국내 해사관련 전문지를 살펴보는데 최근 이들이 취급하는 기사중 그 빈도면에서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단연 허베이 스피리트호 사건이다.

흔히 사고 관련 기사라면 사고의 원인, 피해규모 그리고 관련 보험보상 정도가 보통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당히 다르다. 최근 한국의 관련당국이 당사자들에 대한 조사를 본격화하자 Hebei Spirit측의 볼멘소리가 연일 해운관련 외지에 실리더니 이제는 공개적으로 자선의 무과실을 주장함과 함께 마치 한국정부 당국이 편파적인 수사를 하고 있는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는 발언을 계속하고 있고 기사의 내용이 무엇인가 편파적이다라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허베이측에서는 자선은 한국의 당국이 지정해준 묘지(anchorage)에 정상적으로 정박, 입항을 대기 중이었으며 당시 사고의 위험성을 인지하였을 때는 유조선의 선원들이 기관을 작동하고 닻(anchor)을 감아올려 충돌을 피하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최선의 조치를 취했으며, 예인선 측의 과실로 본선 좌현에 파공이 생기자 투철한 직업정신과 선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여 오염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선창내의 기름 이송작업을 포함하여 문자 그대로 교과서적인 긴급조치를 취하는 등 훌륭하게 임무(excellent job)를 수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측에서 자선과 자선의 선원들을 불명예스럽고(disgracefully) 부당하게(unfairly) 취급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외지들이 여과없이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보도하고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허베이 측에서는 한국의 이러한 행위가 장기적 안목으로 볼 때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선원구인난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세계 여론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요즈음의 분위기가 해난사고가 발생할 경우 경위나 과실의 내용을 묻지 않고 일단 선원들을 형사 처벌하려는 이른바 Blame culture가 확산되고 있는 한편 해운업계에서는 해운활황과 함께 선원의 공급부족으로 인해 경우에 따라 배를 메달아야 할 정도로 심각한 선원구인난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백보 양보해서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상황이 그들은 'Innocent'했다고 외치며 자신들의 무과실을 주장할 수도 있겠으나 그러한 주장은 법정에서 할 일이지 국제적인 매체를 통해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을 마치 자신들이 희생양(scapegoat)이라도 된 것처럼 반복주장하고 있는 것은 정도를 벗어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쪽의 입장에서 볼 때 아쉬운 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 개략적인 조사는 마쳤을 것이므로 VLCC 측의 과실을 협력동작 부족이라는 추상적인 표현보다는 좀더 구체적으로 적시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특히 위험을 VLCC 측에 통지한 시각과 기관의 종류, 비상조치를 위해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lead time)등 VLCC의 특성을 감안한 본선의 태만사항 등은 조사 결과 발표에 포함되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해운업계에 오래 종사한 사람들 중에도 이번 사고에 대해서 그저 투묘한 상태에서 외항 대기중인 초대형 유조선이 조선능력(Maneuverability)을 상실한 대형 크레인선에 부딛혀 기름을 유출한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즉 정박중인 선박을 다른 선박이 밀려와서 사고를 낸 것이기 때문에 정박중인 선박의 과실이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해 하고있다. 사고직전(?)에 충돌의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VLCC 측에 통보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 시간이 촉박했을 경우 27만톤급의 거선이 일반 자동차 시동걸 듯 단시간내에 기동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 정도는 상식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해운계의 시각이 이런 정도라면 일반 비해운인들의 이해는 그보다 훨씬 못할 것으로 생각된다. 비공식 발표에 의하면 정박중인 선박이라 하더라도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협력동작의무가 있는데 이를 소홀히 했다는 것 같다. 과거의 예를 보아도 항해중인 2척의 선박이 해상에서 충돌하였을 경우 일방과실은 있을 수 없으나 부두에 접안돼 있는 선박과 충돌하였을 시는 일방과실이 성립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는 부두에 접안한 것도 아니고 항해중도 아닌 묘박 상태였기 때문에 상당히 전문적인 접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외지의 논조는 해상사고시 사고의 원인에 관계없이 선의의 선원들을 속죄양으로 형사 처벌함으로써 선원들이 배를 떠나도록 하여 그렇지 않아도 극심한 선원 구인난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으며 이러한 국제적인 분위기에 대해 이를 개별해운회사의 문제로 보지말고 해운업계 전체가 공동 대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유의해야할 것은 한국이야말로 가장 극심한 선원구인난에 직면해 있는 국가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허베이측에서는 선주, 관리선사 관련 클럽 등이 주최한 1월 24일 홍콩 기자회견에서 자신들이 부당하게 취급당하고 있다고 발표한데 이어 2월 2일 런던에서 개최 예정인 해운업계 관련회의(Intermanagers Meeting)에서 또 다시 이 문제를 거론할 예정이라고 한다.

적어도 세계 제8위의 해운대국이라는 한국이 이러한 지적을 받는 것은 사실여하를 떠나서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그러나 이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에도 조금은 아쉬운 점이 있다. 물론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무대응으로 일관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전세계적으로 구독자를 갖고 있는 일간지에 그러한 보도가 계속될 경우 '한국은 그런 곳인가'라는 편견을 갖게 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

그동안 허베이측의 과실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발표를 찾아보려고 노력했으나 쉽지 않았다. 협력동작을 하지 않았다는 정도는 알고 있지만 안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에서 이러 이러한 과실이 있었다는 정도의 발표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물며 서두에서 이야기했듯이 해운계에 오래 종사한 사람들도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할 경우 정박중인 초대형선에 대해 기민한 협력 동작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라면 차제에 좀더 적극적으로 전후관계를 대내외에 밝혀 오해를 불식시키고 적어도 국제적인 여론이 허베이 측의 주장으로 기울어 가고 있는 현실에 대해 해운국가로서의 위상에 걸 맞는 대응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는 몇 년전 스페인 근해에서 발생한 Prestige호 사건에서 보듯이 해난으로 만신창이가 된 선박이 오염피해를 줄이기 위해 피난처 제공을 요청한데 대해 국내사정으로 도움은 커녕 오히려 군함을 동원해 외해(open sea)로 내몰았던 스페인 당국이 그동안 국제적인 비판과 차가운 시선을 감내해야 했던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물론 시기적으로 그런 곳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그러한 주장이 계속되도록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이번 사고의 피해에 대한 보상체계를 보면 일차적으로 허베이 측에서 선보상을 하게 되므로 그의 P&I클럽인 China P&I가 책임한도액(약 1200억원)을 지급한 후 동 클럽의 재보험클럽인 노르웨이의 Skuld를 포함, 국제그룹의 13개 클럽으로부터 재보험금을 회수한다. 그리고 총피해액이 1200억원을 초과할 경우 석유사업자들이 출연한 국제기금에서 초과분을 부담하게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교과서적인 절차이고 실무적으로는 P&I 클럽과 국제기금이 사전협의 하에 단일창구를 통해 확인되는 피해액에 대해 보상을 실시하고 최종보상이 완료되면(약 3200억원 한도) 사전 합의된 공식에 의해 그들간 사후 정산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과정에서 가장 핵심사항은 피해규모의 3200억원 초과여부다. 초과하게 되면 비례보상을 하게되고 그 이하이면 손해가 확인되는데로 지급 하게된다. 따라서 피해규모의 조속한 파악과 비례보상의 경우라도 초기에 높은 비율의 보상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그만큼 피해자들의 고통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대외적으로 오염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허베이 측의 중과실이 없는 한(적어도 현상황하에서는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지루하게 진행될 법정공방은 비례보상의 비율이나 보상시기와는 별로 관계가 없고(어쩌면 피해어민들과는 무관한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 예인선 측에 중과실이 있다고 하더라고 법원에서 확정되기까지는 최소 2~3년 이상이 소요될 가능성이 크다(중과실이 있다면 3200억원을 초과하는 손해가 보상되겠지만)

법정공방과 별개로 현 단계에서 해야할 일은 피해액의 조속한 산정과 그 내역을 보상주체로부터 인정을 받는 일보다 더 중요 한 것이 없다. 과거 외국의 사례를 보면 이러한 과정을 촉진시키기 위해 사고 후 국제기금과 클럽이 현지에 보상사무소(claim office)를 설치하기도 하지만 현지 분위기가 그들이 편안하게 사무소를 설치하고 머무를 수 있도록 조성되어야 한다. 만일 그 반대라면 그로 인한 불이익은 피해자들의 몫이 되기 마련이다. 더구나 신변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열악한 분위기라면 그러한 편의를 기대하기는 더욱더 어려울 것이다. 

개인적 의견이지만 합리적인 피해는 규모여하를 떠나서 궁극적으로 보상이 되어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문제는 그 시간이고 절차다. 이제는 시선을 들어 멀리 보고 조금은 냉정하게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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