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정호 일도해운 사장
 3. 정기용선자의 선장지휘권

  (1) 의의

정기용선계약에서 정기용선자는 용선기간 동안 약정한 범위 내에서 당해 선박을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선박의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하여 정기용선자가 선장에게 지시나 명령을 할 수 있는 것이 정기용선자의 선장지휘권이다. 사용약관에 있어서 정기용선자에게 인정되고 있는 지시․명령권의 범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지시․명령권의 범위를 무제한적인 것이 아닌 제한된 범위의 것, 즉 정기용선자가 용선을 한 상업적인 목적 달성에 필요한 범위 내의 지시·명령권만을 가질 뿐이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사용약관에서 사용하고 있는 사용의 의미도 선박의 사용을 의미하는 것이지 사람의 사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나아가 선박의 사용은 선박에 의해 이행하도록 지시된 업무를 말하는 것이고 지시를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항해상의 사항은 포함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화물의 선적 또는 양하를 위하여 어느 항구로의 이동지시나 어느 항구에의 정박지시, 특정 화물의 선적지시 등은 모두 정기용선자의 상업적인 목적달성에 필요한 지시이다. 그러나 선박의 운항 및 관리는 전적으로 선박소유자의 고유한 책임범위에 속하는 것으로 정기용선자의 지시․명령권에는 포함되지 않는다.1) 또한 화물이나 선박에 즉각적으로 물리적인 손상의 위험이 없더라도 전쟁상태인 경우와 같이 특수한 경우, 선장은 정기용선자의 지시가 합법적인지를 검토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2)

이와 같이 정기용선자는 선장지휘권을 갖는 반면에 선박의 사용으로 인하여 선박소유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 보상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정기용선자의 지시로 선장 등이 서명한 선하증권 기타의 서류로 인해 발생한 모든 결과와 책임에 대하여 정기용선자는 선박소유자에게 보상책임을 진다.

  (2) 정기용선계약서상 규정

  정기용선자의 지시․명령권에 대하여 볼타임서식(2001) 제9조는 “선장은 취항, 대리점 또는 기타의 준비와 관련하여 정기용선자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정기용선자는 선장, 항해사 또는 대리점이 선하증권 또는 기타의 서류에 서명함으로써 혹은 그 명령을 지켰기 때문에 생긴 모든 결과 또는 책임에 대하여, 선박의 서류가 부정확하였거나, 혹은 운송물의 초과운송으로 생긴 모든 결과 및 책임과 마찬가지로 선박소유자에게 보상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뉴욕프로듀스서식(1993) 제8조는 “선장은 (비록 선박소유자가 선임하였다고 하더라도) 취항과 대리 업무에 관하여 정기용선자의 명령과 지시에 따라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3) 영국판례의 검토

  영국법상 정기용선자의 선장지휘권에 관하여 연구하기 위하여 영국판례를 중심으로 검토하기로 한다.

  (가) Anastassia호 사건3)
  선박소유자 Midwest Shipping사와 정기용선자 D.I. Henry사는 1968년 9월 23일에 Anastassia호에 대한 정기용선계약을 체결하였다. 선박은 Chalna항에서 황마(jute)를 선적하였다. 선장은 선박이 유럽으로 항해해야 한다고 알고 있었지만, 정기용선자는 “선박이 Singapore로 항해한다고 항만당국에게 통지하라.”라고 선장에게 지시하면서 절대로 사실대로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선박이 화물을 선적한 후에 이미 Chalna항을 출항한 상태에서 정기용선자는 “추가 선적할 화물이 있으니 Chalna항으로 되돌아오라.”라고 1968년 10월 10일에 선장에게 지시하였다. 선장은 선박이 이미 500마일이나  항해하였고, 10월 20일까지 선적이 가능한 흘수를 맞출 수 없고, 또한 이미 선박의 항해일지에 목적지로 항해하고 있다고 기재하였고 그리고 기상상태가 나쁜 점 등을 언급하면서 Chalna항으로 되돌아오라는 정기용선자의 지시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정기용선자는 선장에게 Chalna항으로 되돌아오라고 다시 지시하였다. 결국, 선박은 정기용선자의 지시에 따라 10월 19일에 Chalna항에 도착하였다.

  정기용선자는 “선장이 정기용선자의 지시를 위반하여 지체된 5일 동안은 지급정지를 이유로 용선료를 지급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였다. 선박소유자는 정기용선계약의 위반을 부인하면서 정기용선자가 지체된 5일 동안의 용선료 전액을 지급할 것을 주장하였다. 중재인은 선박소유자에게 승소판정을 하였다. 또한 1심법원 Donaldson판사는 “정기용선자의 지시를 받은 후에 선장은 즉시 그 지시에 따라야 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선장이 정기용선자의 지시를 따르기 전에 상당히 숙고를 해야하는 경우가 있다. 본 사건의 경우에는 선장이 선박을 Chalna로 되돌려 항해하라는 정기용선자의 지시에 따르기 전에 그 지시가 합리적으로 타당한지 여부를 검토하는데 시간이 소요되었으므로 지체된 5일 동안의 기간에 대하여 정기용선자는 용선료를 지급해야 한다.”라고 판시하면서 중재인의 판정을 확인․지지하였다.

  (나) Aquacharm호 사건4)
  선박소유자 Actis사와 정기용선자 Sanko사는 Baltimore에서 석탄을 선적하여 동경에서 양하하는 항차에 사용하고자 1974년에 Aquacharm호에 대한 정기용선계약을 체결하였다. 정기용선계약서는 “정기용선자는 선장의 감독 하에 화물을 선적하고 양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정기용선자는 선장에게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흘수까지만 화물을 선적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러나 선장은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기준을 초과하여 화물을 선적하였기 때문에, 선박이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636톤의 석탄이 양하되었고 선박이 파나마 운하를 통과한 후에 다시 선적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미화71,470.-불의 환적비용과 지체된 8일 23시간 45분 동안의 용선료에 해당하는 미화86,345.-불의 지급정지가 발생하였다.

  선박소유자는 “정기용선계약서상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조항에 의하여 환적비용 미화71,470.-불을 정기용선자가 보상해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정기용선자는 “선장이 화물을 선적할 때 정기용선자의 지시를 따르지 않아서 선박이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없었다. 따라서 지체된 8일 23시간 45분 동안의 용선료에 해당하는 미화86,345.-불은 지급정지를 이유로 선박소유자에게 지급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였다. 1심법원 Lloyd판사는 “선박은 환적작업을 하는 동안에 아무런 문제없이 가동할 수 있는 상태였으므로 지체된 8일 23시간 45분은 정기용선계약서상의 지급정지가 아니다. 또한 환적비용은 선적할 때 정기용선자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선박소유자 또는 선박소유자의 고용인의 과실로 인하여 발생하였으므로 선박소유자는 환적비용을 보상받을 수 없다.”라고 판시하였다. 이에 대하여 항소심(Denning M.R.판사, Show판사와 Grifliths판사)은 1심법원 Lloyd판사의 판결을 확인·지지하였다.

  (다) Houda호 사건5)
  선박소유자 I & D사와 Kuwait Petroleum사는 1990년 8월 2일에 Houda호에 대한 정기용선계약을 체결하였다. 그 당시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였기 때문에 정기용선자는 사무실을 런던으로 이전하였다. 선박은 Mina Al Ahmadi항에서 원유를 선적하였다. 정기용선자는 선박소유자와 선장에게 8월 8일에 양하항 Ain Sukhna으로 항해할 것과 8월 13일에 본선에 선적된 화물을 검사하기 위하여 검사인(surveyor)의 탑승을 허락할 것을 각기 요청하였다. 또한 선하증권이 전쟁 중에 소실되었으므로, 정기용선자는 선하증권없이 화물을 양하할 것을 선장에게 지시하였다.

  정기용선자는 “선박소유자가 정기용선자의 합법적인 지시를 위반했기 때문에 지체된 36일 동안은 지급정지이다. 따라서 선박소유자는 정기용선계약의 위반으로 정기용선자에게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선박소유자는 “지체된 기간은 선박소유자가 정기용선자의 지시가 합법적인지 여부를 검토하기 위하여 소요되었다. 따라서 선박소유자는 지체된 기간에 대하여 책임이 없다.”라고 주장하였다. 1심법원 Phillips판사는 “선박소유자/선장이 정기용선자의 지시를 거부하여 지체된 36일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따라서 지체된 36일은 정기용선계약서상의 지급정지에 해당하므로 정기용선자는 용선료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판시하면서 정기용선자에게 승소판정을 하였다. 그러나 항소심(Neill판사, Leggatt판사와 Millett판사)은 “일반적인 경우에 선장은 정기용선자의 지시를 즉시 따라야 하지만, 정기용선자의 지시가 보통 분별력이 있는 선장의 견지에서 판단할 때 명확하지 않고 모호할 경우에는 그 지시가 법률적으로 합법적인가를 검토할 수 있다”라고 판시하면서 항소를 인정하였다.

  (라) Hill Harmony호 사건6)
  선박소유자 Whistler사와 Kawasaki사는 최소 7개월/최대 9개월 동안 Hill Harmony호에 대한 정기용선계약을 체결하였다. 정기용선자 Kawasaki사는 약 30/35일 동안 Tokai사에게 1994년 3월 10일에 재정기용선하여 주었다. 선박은 1994년 3월 17일에 Vancouver에서 인도되었고 1994년 5월 16일에 Shiogana에서 양하완료 후 반선되었다. 재정기용선된 기간 중에 Kawasaki사와 Tokai사는 선장이 기상정보전문기관인 오션루트(Ocean route)의 권고에 따라 선박을 대권항로(Great Circle Route)에 따라 항해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러나 선장은 럼브라인(rhumb line)에 따라 항해하였다. 결과적으로 Kawasaki사와 Tokai사는 지체된 기간에 해당하는 용선료를 공제하고 추가 사용된 유류대금(미화89,000.-불)에 대하여 Whistler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정기용선자는 “선장이 선박의 사용에 있어서 항로선정에 대한 정기용선자의 명령과 지시를 따르지 않아서 손해가 발생하였으므로 선박소유자는 정기용선자에게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선박소유자는 “항로선정은 정기용선자가 선장에 지시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 선장이 독자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사항이다. 또한 정기용선계약서에서 준용하기로 되어있는 헤이그-비스비 규칙 제4조 제2항(a)호에 의하여 선박소유자는 항해과실에 대하여 면책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중재인은 “선장은 최대한 신속하게 항해를 완성해야 하고 선박의 취항에 관하여 정기용선자의 명령과 지시에 따라야 하는 의무를 위반하였으므로 선박소유자는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 정기용선자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판정하였다. 그러나 1심법원 Clarke판사는 선박소유자에게 승소판결을 하였다. 또한 항소법원(Nourse판사, Thorpe판사 및 Potter판사)은 “선장이 신의에 의하여 선박의 안전을 위하여 항로를 선정하였으므로 선박소유자는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 정기용선자에게 책임을 지지 않는다.”라고 판시하였다. 이에 대하여 귀족원은 “항로의 결정은 상사사항에 해당되므로 선장은 항로를 결정하는데 정기용선자의 명령과 지시를 따라야 한다. 따라서 선장이 항로선정에 관한 정기용선자의 명령과 지시를 위반하였으므로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 정기용선자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중재인의 판정을 확인·지지하였다.

  (마) 검토
  Anastassia호 사건에서 추가로 화물을 선적하기 위하여 선적항으로 되돌아 오라는 정기용선자의 지시는 상사사항에 속하므로 선장은 그 지시에 따라야 한다. 따라서 “선장이 정기용선자의 지시가 합리적으로 타당한지 여부를 검토하는데 소요된 기간에 대하여 선박소유자는 책임이 없다.”라는 1심법원의 판결과 필자는 의견을 달리 한다. Aquacharm호 사건에서 “선장이 정기용선자의 상사적 지시를 위반하여 파나마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선박의 흘수를 초과하여 선적하였기 때문에 발생한 환적비용에 대하여 선박소유자가 책임을 진다.”라는 1심법원과 항소심의 판결은 타당하다고 본다. 또한 Houda호 사건에서 선장은 정기용선자의 지시가 합법적인지 여부를 검토할 수 있다. 따라서 “정기용선자의 지시가 모호할 경우에 선장은 그 지시가 법률적으로 합법적인가를 검토할 수 있다.”라는 항소심의 판결에 필자는 동의한다. 그리고 Hill Harmony호 사건에서 상사사항에 해당하는 항로의 결정에 대하여 선장은 정기용선자의 지시를 위반하였으므로 선박소유자는 정기용선자에게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한다는 귀족원의 판시는 타당하다고 본다.

  정기용선자의 선장지휘권에 관한 영국판례를 검토하면서 Anastassia호 사건과 Houda호 사건에서 정기용선자의 지시가 명확하지 않고 모호한 경우에 선장이 그 지시가 합법적인가의 여부를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또한 Aquacharm호 사건에서 선박소유자 또는 선박소유자의 고용인의 과실로 정기용선자의 지시를 따르지 않아서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 선박소유자가 책임을 진다는 것을 검토하였다. 그리고 Hill Harmony호 사건에서 항로의 결정은 상사사항에 속하므로 선장은 정기용선자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는 것을 검토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주---

1) 우리나라 법원은 정기용선된 선박의 선장이 항해상의 과실로 충돌사고를 일으켜 제3자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에 손해배상책임의 귀속주체에 대하여 “정기용선계약에 있어서 선박의 점유, 선장 및 선원에 대한 임면권, 그리고 선박에 대한 전반적인 지배관리권은 모두 선박소유자에게 있고, 특히 화물의 선적, 보관 및 양하 등에 관련된 상사적인 사항과 달리 선박의 항행 및 관리에 관련된 해기적인 사항에 관한 한 선장 및 선원들에 대한 객관적인 지휘․감독권은 달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오로지 선박소유자에게 있다고 할 것이므로, 정기용선된 선박의 선장이 항행 상의 과실로 충돌사고를 일으켜 제3자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용선자가 아니라 선박소유자가 선장의 사용자로서 상법 제878조 또는 제879조에 의한 배상책임을 부담한다.”라고 판시하였다. 대법원 2003. 8. 22. 선고 2001다65977 판결.
2) Coghlin Terence, W.Baker Andrew, Kenny Julian, Kimball John D., Time Charters, 6th ed.,(London: Informa, 2008), p.335.
3) Midwest Shipping Co. Inc. v. D.I. Henry (Jute) Ltd. [1971] 1 Lloyd's Rep. 375 (Q.B.).
4) Actis Co. Ltd. v. The Sanko Steamship Co. Ltd. - The Aquacharm [1982] 1 Lloyd's Rep. 7; [1982] 1 W.L.R. 119; [1982] 1 All E.R. 390 (C.A.); aff'g [1980] 2 Lloyd's Rep. 237 (Q.B.).
5) Kuwait Petroleum Corporation v. I & D Oil Carriers Ltd. - The Houda [1994] 2 Lloyd's Rep. 541 (C.A.); rev'g [1993] 1 Lloyd's Rep. 333 (Q.B.).
6) Whistler International v. Kawasaki Kisen Kaisha - The Hill Harmony [2001] 1 Lloyd's Rep. 147.

저작권자 © 한국해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