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동희 법무법인 정동국제 대표변호사
해상운송주선인이 선주책임제한권을 원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 대하여 지난 해사법률 112회에서 필자는 자신 있게 해상운송인은 선주책임제한권을 원용할 수 있는 자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여기에서 운송주선인이라 함은 수출자(혹은 송하인)로부터 화물의 해상운송을 인수한 뒤, 이를 재차 해상운송인에게 운송을 의뢰하는 자로서, 실질적으로는 해상운송인의 역할을 하는 사람을 지칭하며, 단순히 운송주선만을 하는 말 그대로의 운송주선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후자의 운송주선인은 해상운송이나 선박과의 관련성이 적기 때문에 선주책임제한권을 원용할 수 있는 자에 해당되지 아니한다는 것에 대하여 의문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전자의해상운송주선인(실질적으로 해상운송인의 역할을 하는 자)이 과연 선주책임제한권을 원용할 수 있는 가이다.

이에 관하여 더 보기에 앞서서 지난번에 본 바와 같이 선주책임제한제도는 ‘정의’의 원리에서 자동적으로 도출된 것이 아니라, 국가의 해운산업 육성 정책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공공정책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 우리나라가 비록 1976년 선주책임제한조약에 가입하지 않았어도 현행 해상법은 1976년 선주책임제한조약의 내용을 거의 100% 받아 들이고 있다는 점1), 따라서 우리나라 법을 해석함에 있어서 가능한 한 1976년 선주책임제한조약 또는 그 조약을 국내입법화 한 영국의 해석을 참고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국제사법상 선주책임제한권을 원용할 수 있는 자의 범위는 비록 우리나라에서 선주책임제한절차가 진행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선박의 선적국법에 의거하게 되어 있다2).

해상운송주선인(실질적 의미로는 해상운송인)이 선주책임제한권을 원용할 수 있는 자에 해당되는가를 보기 위하여 가상적인 사례를 만들어 보자. 아래에서 보는 사례에서는 해상운송주선인이 하나의 화물에 대하여만 운송주선을 하는 경우를 예로 들었다.

여기에서 만일 선박소유자나 항해용선자가 선주책임제한절차를 개시하지 않고 있는 경우, 해상운송주선인이 선주책임제한권을 원용하고자 한다면 스스로 선주책임제한절차를 개시하여야 할 것이다. 이때 해상운송주선인이 조성하여야 할 책임제한기금은 (보통의 경우처럼) 선박의 총톤수에 의할 것인가, 아니면 보통의 책임제한기금 10억원에 10/100를 곱한 금액인 1억원이라 할 것인가의 문제가 우선 대두된다. 바로 이러한 점은 해상운송주선인이 선주책임제한권을 원용할 수 있는 자에 해당하지 않음을 전제로 입법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본다.

최근 발간된 저서에서 최종현 변호사 및 이균성 교수께서 해상운송주선인이 선주책임제한권을 원용할 수 있는 자에 해당된다라는 견해를 취하고 있다3). 이균성 교수께서는 용선자가 재운송인으로서 운송계약의 상대방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경우, 그 용선자가 총체적 책임제한권이 인정되는 것처럼 해상운송주선인의 경우, 해상운송인과 체결하는 운송계약이 일종의 하수운송계약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자신이 화주와 체결하는 계약이 일종의 원운송계약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주운송•재운송의 경우와 아무런 차이가 없으니 재운송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해상운송주선인이 선주책임제한권을 원용할 수 있다라는 견해를 취하고 있다. 최종현 변호사는 일본의 유력한 견해가 이를 인정하고 있고, 해상운송주선인이 선주책임제한권을 원용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할 아무런 합리적인 이유가 없음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필자는 반대의 견해이다. 위 사례의 경우에서 보면 만일 해상운송주선인이 선주책임제한권을 원용할 수 있다고 하면, 그에 해상화물 운송을 의뢰한 송하인 또는 도착지의 수하인은 자신의 채권이 선주책임제한절차에 의하여 대폭 감축되게 되는 손해를 입을 수 있고, 그 손해배상금의 전보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됨으로써 송하인 또는 수하인에게 발생되는 손해는 결코 적지 않게 된다. 이 문제를 판단함에 있어서 이러한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으며, 따라서 뚜렷하게 그 법적 근거가 없는 현행법의 입장으로서는 해상운송주선인이 선주책임제한권을 원용할 수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다고 본다. 어쨌든 실무계를 위하여 우리 법원이든 영국 법원이든 이 점에 대한 판결례가 조속히 나와야 할 것이다.

주---
1) 단지 입법기술상으로 영국은 조약 전체를 그대로 국내입법화하기 때문에 조약의 내용과 국내법 사이에 아무런 틈새가 없게 되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입법을 그렇게 하지 않고 많은 경우-조약에 가입하였든 아니든- 국내법으로의 변형절차를 거쳐 국내입법하게 되므로 국내입법과 국제조약 사이에 틈새가 생기기 쉬운 점이 있다.
2) 이러한 입법에 문제가 있음은 필자는 여러 대목에서 지적한 바 있다.
3) 최종현, 「해상법상론」, 86면(박영사, 2009), 이균성, 「신해상법대계」, 278면(한국해양수산개발원,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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