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정호 일도해운 사장
이번 호부터 게재되는 ‘염정호 칼럼’은 ‘용선계약의 프러스트레이션’로 일도해운 대표이사이자 법학박사인 염정호 박사가 지난 2008년 11월에 해사법연구 제20권 제3호에 게재했던 논문을 바탕으로 한국해운신문 독자분들을 위해 새롭게 고쳐 쓴 것입니다.<편집자주>

I.  서론

영국에서는 불가항력에 의한 계약상 채무면책의 모든 것을 포괄하는 상위개념으로서 프러스트레이션(frustration)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따라서 이것은 목적물의 멸실 등 원래가 이행불능인 경우와, 예측하지 않았던 사태발생 등으로 일방의 급부가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무가치해지는 계약목적이 좌절된 경우의 양자를 포함하는 개념이다.1) 이와 유사한 제도로서 미국에서는 이행불능과 프러스트레이션이 있다. 미국의 이행불능에는 계약이 체결된 후에 발생한 사유로 그 이행이 당사자의 주관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불가능하게 된 경우인 후발적 이행불능(supervening impossibility)과 이행은 가능하지만 이행을 하기 위해서는 극단적이고 비합리적인 어려움이나 비용의 증가를 초래하는 경우인 실행불능(impracticability)이 있다. 또한 미국의 프러스트레이션이란 계약의 이행은 가능하지만 어떠한 사유로 인하여 계약의 목적이 전혀 가치가 없거나 거의 가치가 없게 된 경우에 적용되는 사유이다. 영미법상의 프러스트레이션은 이행불능, 계약목적의 달성불능, 계약목적좌절 또는 프러스트레이션이란 단어를 그대로 사용한다.2)

용선계약이 체결된 후에 용선계약의 체결 시 예측하지 못한 사유가 발생하여 당사자가 용선계약을 이행하지 못한 경우에 계약의 불이행사유에 따라서 적법여부가 결정된다. 따라서 신의성실이 중요시되는 해운업계에서 당사자는 용선계약을 성실하게 준수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용선계약의 이행을 거부하였을 경우에 계약의 불이행사유에 대하여 적법성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 한 예로, 최근 유류가격의 급등으로 이전에 이미 연속항해용선계약(consecutive voyage charter)이나3) 장기항해용선계약을 체결한 선박소유자는 화물의 운송비용이 증가되어 많은 손해를 보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유류가격의 급등은 용선계약의 체결 시 당사자가 예측할 수 없었으므로 용선계약은 프러스트레이션이 되어 선박소유자는 용선계약의 이행을 거부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문제가 된다.

II. 영미법상 용선계약 하에서의 프러스트레이션에 관한 일반이론

1. 프러스트레이션

사람의 생활관계는 당사자의 의사에 기해서 규율된다고 하는 의사이론적인 발상은 근대 대륙법계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미의 계약법에서는 당사자 개인의 의사보다는 오히려 당사자 사이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4) 용선계약의 체결 시 준거법과 중재지는 대부분의 경우에 영국이나 미국으로 되어 있으므로 영미법상 프러스트레이션에 대하여 검토한다.

(1) 영국법

계약의 이행불능은 크게 나누어 원시적 불능과 후발적 불능으로 나눈다. 그리고 후발적 불능은 계약당사자의 귀책사유에 의한 불능, 즉 계약위반과 당사자의 귀책사유가 아닌 불능 즉 프러스트레이션으로 구분한다.

영국의 보통법에서 계약상의 채무자는 계약이 당사자 사이의 합의에 의하여 성립한 법률행위이기 때문에 명시적 예외를 인정한 특약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서, 어떠한 경우에도 계약을 이행할 절대적인 의무가 있다고 해석하였다. 이것은 보통법의 엄격주의를 적용하여 Paradine v. Jane 사건의5) 판결에서 확립하였다.

Paradine v. Jane 사건에서 토지의 임대차계약이 성립되었으나 그 후 일정기간 동안 그 토지가 외국군대에 의해 점거되었다. 따라서 임차인은 그 토지로부터 어떤 수익도 얻지 못하였다. 그러나 임대인은 임차인에 대하여 이 기간에 해당하는 미지급된 지대를 청구하였다. 1심 법원은 “계약상 이러한 경우에 관해서 미리 약정을 한 것이 아니므로 특별한 약정이 없는 이상 이러한 불가피한 사고가 발생하여도 면책되지 않는다.”라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보통법상의 엄격주의는 계약당사자의 책임 없는 사유에 대하여 적용하는 것은 계약의 채무자에게 매우 가혹한 것이고, 또한 공평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다. 따라서 19세기에 약인(consideration)의 법리가 그 엄격함을 완화하여 예외를 인정하게 되어, 판례법상 계약당사자의 책임 없는 사유에 대하여서는 점차 그 적용을 배제하게 되었다. 이러한 판례의 흐름에는 서로 상이한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목적물의 멸실 또는 훼손에 의해 해당 계약이 물리적으로 이행불능이 된 경우로 비해상법상의 이행불능이 여기에 속하고, 둘째는 해상법상의 계약목적이 달성불능으로 되어 계약이 소멸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서로 상이한 두 개의 판례의 흐름이 후에 서로 합해져 오늘날의 프러스트레이션 법리가 정착하게 된 것이다.6)

영국판례를 검토해 보면 Taylor v Caldwell 사건에서7) 원고는 연주회장으로 Surrey Garden과 Music Hall을 1861년 6, 7, 8월 중 지정된 네 날에 네 개의 콘서트를 개최할 목적으로 피고로부터 임대하였다. 이 네 날 중 첫 날이 도래하기 전에 Music Hall이 화재로 소실되었다. 원고는 낭비된 광고비용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1심 법원은 “Music Hall의 파괴에 의하여 계약은 프러스트레이션이 되었다.”라고 하는 이유로 낭비된 광고비용의 배상을 요구하는 원고의 청구를 배척하였다.

Krell v Henry 사건에서8) 1902년 6월 26일과 27일에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행렬이 벌어질 예정이었는데, 그 행렬을 보기 위하여 길가에 있는 건물의 방실을 임대하고자 하는 임대차계약이 1902년 6월 20일에 서면으로 체결되었다. 그러나 6월 24일에 국왕의 병세로 인하여 대관식과 행렬이 연기될 것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임차인은 계약체결 시 임료의 일부를 지급하였으나 대관식의 행렬이 연기되자 잔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원고 Paul Krell은 미지급된 잔금에 대하여 소송을 제기하였다. 피고 C.S.Henry는 “예정되었던 대관식의 행렬이 연기되었으므로 약인이 부인되었다.”라고 주장하면서 선급된 임료를 반환해 달라고 청구하였다. 1902년 8월 11일에 1심 법원 Darling판사는 피고에게 승소판결을 하였다. 항소법원(Vaughan Williams판사, Romer판사와 Stirling판사)은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 행렬이 행해지는 것은 계약의 기초적 전제인데 그것이 취소됨으로 인하여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후발적 이행불능의 경우에서와 같이 채무자는 자신의 채무로부터 면책된다.”라고 판시하면서 1심 법원의 판결을 확인?지지하였다.

프러스트레이션이란 계약체결 시 계약의 기초가 되었던 사정을 양당사자가 모두 인지하고 있었으나, 양당사자의 귀책 없는 사유로 인하여 계약의 기초가 되었던 사정이 변경되어 계약 내용에 따른 이행은 가능하나 그에 따른 급부를 이행하더라도 계약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 채무의 이행을 면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9) 프러스트레이션 법리(doctrine of frustration)의 이론적 근거에는 묵시적조건설(theory of the implied term), 계약기초상실설(theory of disappearance of the foundation of the contract), 정당해결설(theory of just solution) 및 채무변경설(theory of the change in the obligation)이 있다.10)

영국법에 있어서 프러스트레이션 법리(doctrine of frustration)의 효력은 계약당사자의 의사표시 또는 작위?부작위와 전혀 관계없이 그 계약의 이행이 불가능할 것을 요건으로 한다. 그러므로 계약의 이행이 단지 어렵다 또는 불편하다는 사유만으로 발생하지 아니한다. 즉 계약당사자의 이행의사와 관계없는 사유로서 후발적으로 이행이 불가능할 것을 요건으로 한다. 이 말은 계약체결 시 예측할 수 없었고, 또한 계약당사자의 귀책사유가 아닌 사건이 발생하여 계약당사자가 계약을 전혀 이행할 수 없는 경우로서 대륙법에 있어서 사정변경에 의하여 후발적 이행불능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유가 법률상의 문제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것은 그 사유가 상관습과 상인의 이해로써 확인할 수 있는 가에 따라서 결정된다. 바꾸어 말하면 프러스트레이션의 원인은 상사적 관점에서 그 기준을 판단하여야 한다. 물론 그 원인은 계약을 체결한 후에 발생하여야 하며, 동시에 계약을 이행하여야 한다는 기본적인 전제, 즉 묵시적 조건을 좌절 또는 파괴시켜야 한다.11)

(2) 미국법

미국법에서 계약위반에 대한 법규범을 지배하는 것은 엄격책임의 원리이다. 그러나 이 원칙의 중대한 예외로서 이행불능과 프러스트레이션의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계약을 체결할 당시에 예측하지 못했던 사건이 발생하여 채무를 이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 것을 이행불능이라고 하며, 계약목적이 좌절된 것을 프러스트레이션이라고 한다.12) 이러한 법리는 미국통일상법전(UCC)에 규정되어 있다.
 
1) 이행불능

이행불능이란 채무의 이행이 불가능하게 된 것을 말한다. 이행채무의 면책사유인 이행불능은 객관적인 것이어야 한다. 이행불능에는 후발적 이행불능과 실행불능이 있다. 후발적 이행불능이란 계약이 체결된 후에 발생한 사유로 그 이행이 당사자의 주관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누구도 이행할 수 없는 객관적으로 불가능하게 된 경우에 적용된다. 실행불능이란 이행은 가능하지만 이행을 하기 위해서는 극단적이고 비합리적인 어려움이나 비용의 증가를 초래하는 경우에 적용되는 사유이다. 미국통일상법전에서는 상업적 실행불능이라고 하여 이에 해당하는 예로 경제봉쇄, 수확량의 현저한 감소, 전쟁, 노동파업 등을 들고 있다.13) 2차계약법 리스테이트먼트(Second Restatement of Contract) 제261조에14) 의하면 이행불능이 면책사유로 되기 위한 요건은 첫째, 채무이행의 실행이 곤란하게 되었어야 한다. 채무이행의 실행이 곤란하게 된다는 것은 채무를 이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채무의 이행에 필요한 특정물에 대한 물리적인 파괴?멸실이 대표적인 것이나, 공용수용, 몰수 등의 공권력행사 등에 의해서 소멸되는 경우를 포함한다. 단순히 이행비용이 증대한 것만으로는 이행의 실행이 곤란하게 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둘째,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계약체결 시 기초적 전제이어야 한다. 기초적 전제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유형을 살펴보면 채무의 이행을 위하여 있어야 할 사람의 사망 또는 능력상실(2차계약법 리스테이트먼트 제262조),15) 정부의 법규나 명령에 의한 금지(2차계약법 리스테이트먼트 제264조),16) 계약성립 후 법률의 변경이나 정부?법원의 명령에 의한 금지, 그리고 채무이행에 필요한 특정물의 파괴 또는 멸실(2차계약법 리스테이트먼트 제263조)17) 등이 계약체결 시의 기초적 전제가 된 사건이다. 마지막으로 채무자의 과실이 없어야 한다.

2) 프러스트레이션

프러스트레이션에 대하여 2차계약법 리스테이트먼트 제265조는18) “계약체결 후 일방당사자의 주된 목적이 어느 사정의 발생으로 인하여 과실 없이 실질적으로 달성될 수 없게 되고, 그 사건의 불발생이 계약체결의 기초적 전제로서 되어 있는 경우에 잔존의 이행의무는 면책된다. 그러나 계약의 문언 또는 정황으로 보아 반대의 취지가 나타나 있는 경우에 그러하지 않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미국통일상법전도 프러스트레이션을 이행불능과 동일하게 다루고 있다(미국통일상법전 제2-615조). 프러스트레이션에 대한 법률효과는 계약관계의 비소급적 소멸이다. 즉, 프러스트레이션이라고 판단되는 사유가 발생하면 계약관계가 장래에 향하여 소멸한다. 그리고 이때의 계약관계의 소멸은 당연소멸로서 계약당사자의 의사표시 또는 법원의 판결을 요하지 않는다. 또한 프러스트레이션으로 인한 계약관계의 소멸의 경우에 손해배상의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19)

주----
1) 鴻常夫 편수, ?영미상사법사전?, (서울 : 대광서림, 2001), 328쪽.
2) 영미법에서 프러스트레이션을 검토할 때 영미법상 프러스트레이션의 의미에 대한 오해를 방지하고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프러스트레이션이란 단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그러나 그밖의 경우에는 경우에 따라서 이행불능이라고 표기한다.
3) 연속항해용선계약(consecutive voyage charter)은 항해용선이 한 항해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두 항해 이상을 반복적 또는 계속적으로 용선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적하이해관계인 측에서 보면 장기의 안전한 선복제공이 기대될 수 있고 선박소유자 측에서도 안전한 경영이 기대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택영편, 엄윤대?박명규 감수, ?해운?물류 용어 대사전?, (서울 : 코리아쉬핑가제트, 2006), 281쪽.
4) 정우용, “Standard Form Contracts의 법적구조에 관한 연구”, 박사학위논문, 성균관대학교, 1994, 18-19쪽.
5) Paradine v. Jane [1647] Aleyn 26.
6) 정영석?우보연, “정기용선계약상의 프러스트레이션 법리에 관한 연구”,「국제거래법연구」, 제16권 제2호, 국제거래법학회, 2007, 315쪽.
7) Taylor v. Caldwell (1863) 3 B & S 826.
8) Krell v. Henry [1903] 2 K.B. 740.
9) 최현숙, “사정변경의 원칙에 관한 연구”, 박사학위논문, 부경대학교, 2006, 47-48쪽.
10) 김진권, “영국법상의 프러스트레이션 법리에 관한 고찰”, ?해사법연구?, 제12권 제2호, 한국해사법학회, 2000, 240-245쪽.
11) 박용섭, ?정기용선계약법?, (부산 : 효성출판사, 1999), 152쪽.
12) 鴻常夫 편수, 앞의 책, 328쪽.
13) 서철원, ?미국 비즈니스 법?, (서울 : 법원사, 2000), 62-63쪽.
14) Second Restatement of Contract Rule(261) Where, after a contract is made, a party's performance is made impracticable without his fault by the occurrence of an event the non-occurrence of which was a basic assumption on which the contract was made, his duty to render that performance is discharged, unless the language or the circumstances indicate the contrary.
15) Second Restatement of Contract Rule(262) If the existence of a particular person is necessary for the performance of a duty, his death or such incapacity as makes performance impracticable is an event the non-occurrence of which was a basic assumption on which the contract was made.
16) Second Restatement of Contract Rule(264) If the performance of a duty is made impracticable by having to comply with a domestic or foreign governmental regulation or order, that regulation or order is an event the non-occurrence of which was a basic assumption on which the contract was made.
17) Second Restatement of Contract Rule(263) If the existence of a specific thing is necessary for the performance of a duty, its failure to come into existence, destruction, or such deterioration as makes performance impracticable is an event the non-occurrence of which was a basic assumption on which the contract was made.
18) Second Restatement of Contract Rule(265) Where, after a contract is made, a party's principal purpose is substantially frustrated without his fault by the occurrence of an event the non-occurrence of which was a basic assumption on which the contract was made, his remaining duties to render performance are discharged, unless the language or the circumstances indicate the contrary.
19) 명순구, 「미국계약법입문」, (파주 : 법문사, 2004), 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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