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정호 일도해운 사장
2. 용선계약 하에서의 프러스트레이션

1) 의의

용선계약 하에서의 프러스트레이션이란 용선선박의 멸실․행방불명 등 예측할 수 없는 사유가 발생하여 용선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 그 용선계약은 소멸되며, 계약당사자는 계약이행의 채무를 면하는 것을 의미한다. 용선계약과 관련된 프러스트레이션의 문제는 주로 1차 세계대전시 정부에 의한 선박징발,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전쟁으로 인하여 1956-1967년에 발생한 수에즈운하의 폐쇄 및 1980년에 발생한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에 따른 Basrah에서의 선박억류 등과 관련하여 제기되었다.1)

정기용선계약 하에서의 프러스트레이션에 대하여 뉴욕프로듀스서식(1946) 제16조와 뉴욕프로듀스서식(1993) 제20조는 “용선선박이 멸실되면 선급하고서 그리고 반대급부를 받지 못한 금액 (멸실일 또는 마지막 소식을 들은 날로부터 계산한다.)을 바로 정기용선자에게 반환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볼타임서식(2001) 제16조는 “용선선박이 멸실되었거나 행방불명이 된 경우에 그 멸실의 날로부터 용선료의 지급을 중지한다. 멸실의 날이 확인되지 아니한 경우에 용선선박의 마지막 통신이 있은 날로부터 목적항 도착예정일까지 용선료의 반액을 지급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선급 용선료가 있으면 이에 따라서 정산하여야 한다. 이 약관에서 말하는 용선선박의 멸실은 계약당사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경우뿐만 아니라, 계약당사자의 행위와 관계없이 생긴 경우도 포함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본다.2)

이와 같이 정기용선자가 지급한 용선료를 반환받는 경우에 선박이 멸실되어 프러스트레이션이 성립하는 경우 외에도 지급정지(off-hire)가 있다.

(2) 성립요건

용선계약 하에서의 프러스트레이션은 당사자 사이의 계약위반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용선계약이 체결된 후, 다음의 성립요건을 갖추면 성립한다.

1) 계약당사자가 계약체결 시 프러스트레이션 사유의 발생을 예측할 수 없어야 한다 

계약체결 시 당사자가 프러스트레이션의 원인이 된 사건을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었던 경우에 프러스트레이션의 성립이 배제된다. 이는 그러한 경우에 사고를 미리 대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위험을 인수한 결과로 해석되는데 기인한다. 여기서 계약당사자 사이에 분쟁발생의 예측가능성에 대한 판단기준은 계약서상 명시적 규정의 유무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분쟁발생 시의 제반 주위사정의 모든 증거물에 의하여 판단되게 된다.3) 계약체결 시 예측가능성에 대하여는 유류가격의 급등으로 인한 용선계약 하에서의 프러스트레이션을 검토할 때 자세히 살펴본다.

2) 프러스트레이션이 후발적으로 발생하여야 한다

계약이 체결되기 전에 이미 프러스트레이션의 상태에 있다면 이는 프러스트레이션이 아니라 원시적 불능에 해당하는 것이다.
 
3) 용선계약에 프러스트레이션에 관한 규정이 없어야 한다

계약체결 시 명시적으로 프러스트레이션 법리를 적용하지 않거나, 또는 그 적용을 한정한다는 특약은 강행규정이나 사회질서에 반하지 않는 한 유효하다. 용선계약서 조항에 명시적으로 프러스트레이션이 적용되지 않도록 규정된 사건은 프러스트레이션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발생한 사건의 정도가 조항에 규정되어 있는 정도보다 지나치게 과다한 경우에 프러스트레이션의 적용을 한정하는 범위를 초과하므로 프러스트레이션을 형성한다.4) 그러나 후발적 불법성을 프러스트레이션의 원인으로 인정하지 아니한다는 뜻의 특약은 당연히 무효이다. 예컨대 전쟁이 발생하여도 계약당사자 일방이 적국인과 거래를 한다는 계약은 영국법에서는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그러한 특약을 인정하지 아니한다.5) 후발적 사건의 발생에도 불구하고 계약의 명시적인 약정이 당사자의 이행을 구속하고 있다면 계약은 소멸하지 않고 이행되어야 한다. 또한 명시적인 약정은 없더라고 모든 사정을 고려하여 법원은 이런 의무가 묵시적으로 부담하게 되어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 프러스트레이션이 되면 손해배상의 문제가 제기되게 된다. 실제로 매매계약에서 계약당사자들은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사건으로 인하여 이행이 방해되는 경우에 책임을 면하기 위하여 계약서에 명시적 규정을 설정하고 있다. 프러스트레이션 법리의 적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당사자가 위험을 인수했는가 하는 것이다. 당사자는 법에 의하여 부과되는 위험 뿐 아니라 자의에 의하여 그 이상의 위험도 인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가 위험을 인수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물론 계약내용을 중심으로 하게 되나, 법원은 모든 사정을 고려하여 일방당사자가 위험을 인수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6)

프러스트레이션이 되려면 명시적으로나 관습상 선박소유자와 정기용선자 사이에 위험이 배분되어 있지 않아야 한다. Kinaros V호 사건에서7) Reefer사와 GWF사는 1990년 12월 7일에 2년 동안 Kinaros V호에 대한 정기용선계약을 체결하였고, 1991년 10월 4일에 2년 동안 추가로 연장하는 정기용선계약을 체결하였다. 정기용선기간 중 선박의 감항성이 결여된 것으로 판단되어 정기용선자는 1993년 1월 8일에 정기용선계약을 종료한다고 선박소유자에게 통보하였다. 1993년 2월 16일에 선박소유자는 정기용선자가 부당하게 정기용선계약을 종료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선박의 조기반선으로 발생된 손해에 대하여 소를 제기하였다. 1심 지방법원 Kram판사는 “정기용선자 GWF사는 선박의 감항성이 결여되었다는 선급보고서에 근거하여 정기용선계약을 종료하지 않았으므로, 정기용선자가 정기용선계약을 종료하고 선박을 조기반선한 데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선박소유자에게 승소판결을 하였다. 용선계약에는 선박이 불감항상태가 되면 용선자가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감항성약관이 기재되어 있었고, 계약체결 후 12개월 내에 선박이나 기관이 고장나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지급정지약관과 기관고장약관이 기재되어 있었다. 이 같은 약관이 기재되어 있다는 것은 선박소유자와 용선자가 예상치 못한 위험에 대한 위험을 배분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프러스트레이션의 항변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8)
 
4) 용선계약의 이행이 불가능하거나 상업적으로 실행불가능하여야 한다

용선계약의 이행이 불가능하거나 상업적으로 실행불가능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와 인정되지 않는 경우를 구분하여 판례를 유형화하여 살펴본다.

가. 프러스트레이션이 인정되는 경우

(가) 행정조치에 의한 이행의 금지

행정조치에 의한 이행의 금지에 대하여 Quito호 사건, Florida호 사건과 F.A.Tamplin호 사건을 검토하면서 연구한다.

Quito호 사건에서9) 선박소유자 Bank Line사와 정기용선자 Arthar Capel사는 1915년 2월 16일에 12개월 동안 Quito호에 대한 정기용선계약을 체결하였다. 선박은 1915년 4월 30일과 5월 11일 사이에 인도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정부의 징발로 9월에 인도되었다. 정기용선자는 선박소유자가 인도기일을 위반하면 정기용선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었으나, 선택권을 행사하지 않고 선박을 인도받았다. 정기용선자는 인도의 지연으로 발생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고 선박소유자는 정부의 징발로 계약은 프러스트레이션이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1심 법원 Rowlatt 판사는 “정부의 징발로 정기용선계약은 프러스트레이션이 되었다.”라고 판시하였다. 항소법원에서 다수의 판사(Pickford판사와 Warrington판사는 찬성, Scrutton판사는 반대)는 원고 정기용선자에게 승소판결을 내렸다. 귀족원(Finlay경, Haldame경, Shaw경, Summer경과 Wrenbury경)은 “프러스트레이션이 계약조건에 의해 배제되지 않았다. 실제로 계약내용은 1915년 4월에서 1916년 4월까지의 정기용선이었는데 정부가 선박을 징발하여 억류하였기 때문에 당사자를 1915년 9월에서 1916년 9월까지 구속하는 것은 약속한 의무와는 상당히 다른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기용선계약은 프러스트레이션이 되었다.”라고 1심 법원 Rowlatt판사의 판결을 확인․지지하였다.

Florida호 사건에서10) 선박소유자 Valdo S.A.사와 항해용선자 Select Commodities사는 2003년 1월 30일에 2003년 3월 14일과 29일을 정박개시일과 해제일로 하여 Dumai항과/또는 Kuala Tanjun항에서 식물성 유지를 선적하여 나이지리아의 라고르항에서 양하하는 Florida호에 대한 항해용선계약을 체결하였다. 항해용선자는 2003년 3월 21일과 27일 두 번에 걸쳐 “나이지리아 정부가 2003년 3월 1일자로 식물성 유지의 수입을 금지하였으므로 항해용선계약은 취소할 수 밖에 없다.”라고 선박소유자에게 통지하였다. 항해용선자가 항해용선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것을 인정하고 선박을 다른 용선자와 계약을 체결하여 손해를 입은 선박소유자는 항해용선자의 계약위반을 이유로 중재를 신청하였다. 중재인(Mr. Michael Baker-Harber)은 “불가항력인 사유로 선박소유자의 책임을 완화시키는 내용의 항해용선계약서 제29조 (a)항이 없다면 나이지리아 정부의 수입금지조치로 항해용선계약은 프러스트레이션이 되나, 제29조 (a)항에 의하여 항해용선계약은 프러스트레이션이 아니므로, 항해용선자는 선박소유자의 손해배상을 하여야 한다.”라고 판정하였다. 1심 법원 Tomlinson판사는 “제29조 (a)항의 규정과는 상관없이 나이지리아 정부의 수입금지조치로 항해용선계약은 프러스트레이션이 되었으므로 항해용선자는 선박소유자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라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F.A. Tamplin호 사건에서11) F. A. Tamplin호는 1912년 12월 4일부터 1917년 12월 4일까지 5년 동안 정기용선되었다. 그러나 1915년 2월에 정부는 군대수송선으로 사용하기 위해 F.A. Tamplin호를 징발했고 이 목적을 위해 선박의 구조를 변경했다. 정기용선자는 용선계약서상에 합의한 용선료를 계속 지급할 의사가 있었으나 선박소유자는 왕으로부터 많은 보상을 받기를 희망했기 때문에 계약은 프러스트레이션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중재인(David Calder Leck, K.C.)은 “용선계약은 선박이 정부에 의해 징발된 1915년 2월 15일부터 종료되었다.”라고 판정하였다. 1심 법원 Atkin판사와 항소법원(Cozens-Hardy판사, Bankes판사와 Warrington판사)은 “단지 선박이 징발되었다고 용선계약이 종료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하였다. 귀족원(Buckmaster경, Loreburn경, Haldane경, Atkinson경과 Parker of Waddington경)은 “방해는 당사자가 계속해서 이행하려는 것을 비합리적으로 만들 만큼 충분한 기간이 아니었다. 5년의 기간이 만료 전에 상업적 목적을 위해 이용이 가능한 많은 기간이 있었으므로 계약은 여전히 유용하다.”라고 판시했다.

(나) 후발적 불법성(supervening illegality)
계약체결 뒤에 발생한 사정의 변경 때문에 불법적인 것이 된 경우이다. 즉, 계약체결 시 당사자는 합법적으로 의무를 이행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결과적으로 그렇지 않다면 당사자는 이행의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된다.12) 법령의 변경은 당사자 가운데 1개 당사자가 속하여 있는 국가의 법령이 변경되면 프러스트레이션이 된다.13) 전쟁으로 인하여 화물의 운송이 불법이 된 경우가14) 후발적 불법성에 해당한다. 이 경우에 계약의 주 목적의 이행이 계약당사자의 의사에 관계없이 불법일 것을 요건으로 한다. 그러나 계약의 부차적인 채무의 이행이 불법인 경우에는 계약 소멸의 효과가 발생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채무자는 불법이 된 부분만 그 이행의무를 면한다.15)

주---
1) Baughen Simon, Shipping Law, 4th ed.,(London : Cavendish Publishing Limited, 2009), p.272.
2) 박용섭, 앞의 책, 153쪽.
3) 정영석․우보연, 앞의 논문, 319쪽.
4) Cooke Julian, Kimball John D., Young Timothy, Martowski David, Taylor Andrew & Lambert LeRoy, Voyage Charters, 3rd ed.,(London : Informa, 2007), p.647.
5) 김진권, 앞의 논문, 237쪽.
6) 정영석․우보연, 앞의 논문, 318-319쪽.
7) Reefer and General Shipping Co., Inc. v. Great White Fleet Ltd., 1996 A.M.C. 1254 (S.D.N.Y. 1995), aff'd w/o opinion 107 F.3d 4 (2d Cir. 1996).
8) 송상현·김현, '해상법원론', (서울 : 박영사, 2008), 465쪽.
9) Bank Line Ltd. v. Capel(A) & Co. [1919] A.C. 435.
10) Select Commodities Ltd. v. Valdo S.A. - The Florida [2007] 1 Lloyd's Rep. 1.
11) F. A. Tamplin Steamship Co., Ltd. v. Anglo-mexican Patroleum Product Co., Ltd. [1916] 2 A.C. 397.
12) Wilson John F, Carriage of Goods by Sea, 6th ed.,(Edinburgh : Pearson Education Limited, 2008), p.38-39.
13) Ralli v Compania Naviera Sota y Aznar [1902] 2 K.B. 287; Societe Co-operative Suisse v. La Plata [1947] 80 LlLR 530.
14) Atkinson v. Ritchie [1809] 10 East 530; Fibrosa Spolka Akcyina v. Fairbaim, Lawson Combe, Barbour Ltd. [1943] A.C. 332.
15) 박용섭, 앞의 책, 156쪽.

저작권자 © 한국해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