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곤 한국항만물류협회 회장
"광양항에 가보면 크레인들이 하늘을 보고 일제히 만세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항만의 현실입니다. 공급과잉상태에서 일부 하역사들은 혼자 살아보겠다고 원가 이하의 하역료로 덤핑을 하고 있는 데 이것은 다 같이 죽자는 방법입니다. 다 같이 사는 길이 항만통합 외에는 없습니다."

지난달 25일 한국항만물류협회에서 정기총회에서 제14대 회장으로 추대된 동방그룹 김진곤 부회장은 지난 3월 16일 기자회견을 열어 항만물류업계가 작금의 위기를 풀어내기 위한 키워드로 통합을 강조했다.

지난해 항만물류업계는 공급과잉에 따른 과당경쟁으로 최악의 적자경영과 항만물류협회장 구속이라는 치명적인 명예 실추를 동시에 경험했다. 한국수출입의 첨병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그동안 묵묵히 일해 왔던 항만물류업계는 서로 싸우다가 졸지에 돈도 잃고 명예도 잃는 최악의 한해를 보낸 것이다.

김진곤 회장은 이렇게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항만물류업계가 명예도 회복하고 다시 살길을 찾기 위해서는 통합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작금의 항만물류업계 위기가 정치논리로 과도한 부두가 지어진 것이 주요한 원인이지만 여기에 편승하고자 했던 항만물류업계에도 일말의 책임이 있음을 통감하면서 이제는 통합을 통해 새로운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 회장은 통합방식에 대해서는 현재 정부차원에서 진행중인 부산 감만부두, 광양항 1단계부두의 운영사 통합을 비롯해 다양한 방식으로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항만물류업계가 더 이상의 무분별한 경쟁은 무의미하며 머리를 맞대고 공생을 위한 대책을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또 협회가 그동안 PSA, 허치슨, DP월드 등 국내에 진출한 GTO(Global Terminal Operator)들과 공생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데 인색했다며 앞으로 시장질서 회복차원에서라도 GTO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이렇게 항만물류업계가 통합을 통한 공생을 모색해 나가기 위해서는 협회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김 회장은 강조했다.

“항만물류업의 특성상 그동안 협회의 활동이 다소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항만물류업계가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협회가 보다 역동적으로 움직여야만 합니다. 앞으로 우리협회의 5년 이후 장기 발전전략을 새롭게 마련해 교육사업을 비롯한 회원사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되고 협회 위상도 끌어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음은 김 회장과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풀어본 것이다.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항만물류업계는 지난해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물동량이 큰 폭으로 줄어 매출액이 감소해 인건비, 임대료 등 고정비용 지출을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놓였습니다. 여기에다 신규부두가 계속해서 개장하면서 하역사간 과당경쟁으로 하역요율 덤핑이 만연해지면서 점점 경영이 피폐해지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위기의 상황에서 항만물류업계를 대표하는 한국항만물류협회장에 취임하게 돼 막중한 책임과 의무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 30여년간 항만물류업계에서 쌓아온 경험을 보태 회원사 공동의 번영 발전과 유대강화, 권익향상, 항만물류산업의 거래 질서 확립 등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요율덤핑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와 대책은?

=하역사간 요율덤핑은 항만시설이 과잉투자된 것이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항만시설이 남아도니 하역사들이 과당경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정부에 하역요율을 신고하도록 돼 있지만 실제로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부산 컨테이너 터미널의 경우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부산신항이 본격적으로 가동에 들어가면서 북항과 신항간 대립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북항과 신항간 대립이 극에 달하면서 부산항의 컨테이너 하역요율은 현재 teu당 40~5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일부에서는 40달러 선까지 무너졌다는 말도 들립니다. 일본의 하역료가 teu당 180~200달러, 중국은 80~100달러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부산항의 컨테이너 하역료 수준이 얼마나 낮은 지 가늠이 되실 것입니다.

사실 teu당 40달러를 받아서는 운영사들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거의 적자운영을 하고 있다고 봐야합니다. 이쯤되면 너죽고 나죽자는 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하역료 제값받기 운동을 벌여야합니다. 협회 차원에서 터미널간 과당경쟁에 따른 요율 덤핑을 방지하기 위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항만하역 거래질서 확립 방안 수립을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요율덤핑 방지를 위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없습니까?

=항만시설이 과잉된 것은 지자체들이 항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물류적인 측면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정치논리로 부두를 건설했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투포트 시스템이 바로 이러한 대표적인 지역정치논리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광양항에 가보면 크레인들이 하늘을 보고 일제히 만세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항만의 현실입니다.

과거 우리나라 주요 수출품이었던 섬유나 신발 등은 부피가 크기 때문에 물동량이 굉장히 많았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수출화물들이 소형 다품화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만큼 국내 컨테이너 터미널에서 처리할 수 있는 화물이 줄어들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컨테이너 터미널을 새로 지어왔습니다. 수출입화물 등 로컬화물은 줄어들었지만 북중국과 서일본의 환적화물을 유치해야한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부두를 너무 잘 지어놨고 일본도 수퍼중추항만정책을 추진하면서 과거처럼 북중국과 서일본의 환적화물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 항만시설의 과잉공급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리협회를 중심으로 선주협회, 하주협회 등 관련협회들과 정부가 모여서 실제적인 대책마련에 나서야합니다. 우리협회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 문제를 풀 수가 없습니다. 공급과잉을 해소하려면 부두를 없애야하는 일도 발생할 수 있는 데 이렇게 되면 해당지자체의 큰 반발을 불러 올 수 있고 정치적으로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국회의원도 만나 설득을 해야하고 자자체도 찾아가야할 것입니다. 우리협회와 정부, 관련협회단체들이 힘을 모아서 항만공급과잉 문제를 풀어나간다면 어렵겠지만 가능은 하리라 봅니다.

지금 정부에서 광양항과 감만부두의 운영사 통합을 추진중인데 이런 방식으로 부두통합을 통해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질적으로 우리 항만물류업계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통합을 통해 같이 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국내 진출한 외국하역사들과는 어떻게 상생할 수 있습니까?

=현재 국내에 허치슨, PSA, DP월드 등 해외 터미널 운영사들은 진출해 있습니다. 이들 GTO들은 전세계 네트워크와 엄청난 자본을 무기로 하역료 인하를 주도함으로써 국내 항만하역시장의 질서를 어지럽힌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전세계적인 물동량 감소로 이들 GTO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적어도 국내에서는 GTO들도 우리 항만물류업체들과 상생할 수 있도록 끌어안을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그들이 GTO라는 이유로 우리회원사로 맞아들이려는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반성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협회는 시장질서 회복차원에서 우리항만물류기업들은 물론 GTO들과도 협력을 강화해 나갈 것입니다.

-GTO와 경쟁할 수 있는 대형 항만물류기업을 육성해야하는데…

=이미 참여정부시절 PSA, 허치슨, DP월드와 같은 글로벌 물류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대형 물류기업을 육성하자는 취지에서 종합물류기업 인증제가 도입이 됐습니다. 종합물류기업 인증제는 업계의 자율적인 M&A를 유도해 대형 물류기업을 탄생시키자는 취지로 법인세 감면과 같은 매력적인 인센티브들을 많이 제시가 됐지만 결국 정치적인 논리에 휘말리면서 실질적인 지원책이 없는, 그야말로 있으나 마나한 제도가 돼버렸습니다.

이미 포화상태가 돼버린 국내항만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동남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 새로운 물류시장을 개척하는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러한 전략은 우리 항만물류업계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종합물류업 인증제가 좀 더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을 대폭 늘려 대형 종합물류기업을 육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합니다.

-노무상용화 때문에 하역사들이 더 어려워진 것 같은데…

=항만물류업은 인건비, 장비 감가상각비 등 고정비 비율이 대단히 높은 사업입니다. 2년전 부산항, 인천항, 평택항 등 일부 항만에 노무 상용화를 도입하면서 항만물류업계는 인건비 부담이 더욱 높아져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세계 경제 위축에 따른 물동량 급감은 항만물류기업들의 경영환경을 극도로 악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항만노무공급 상용화는 도입된지 2년이 됐고 국토해양부와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서도 상용화의 실효성에 대한 연구용역을 추진중에 있습니다만 정착이 되려면 좀더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항만물류업 자체가 파동성이 높은 산업이기 때문에 항운노조를 상용화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실제로 인천과 평택의 경우 상용화이후 인력이 부족해 일용직을 채용하는 시스템을 도입했고 여기에 참여한 일용직 근로자들이 또다시 노조를 결성하면서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어찌보면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데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문제를 바라 보는 정부 관련 부처인 국토해양부와 노동부의 시각조차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하튼 상용화된 노조원들이 해당기업에 완전히 귀속이 돼 운용될때까지는 노무 상용화가 정착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협회의 기능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옳은 지적입니다. 협회 기능강화를 위해 향후 5년간 협회의 장기마스터플랜을 다시 짤 계획입니다. 그동안 우리 협회는 기금관리, 항운노조 관계 등 일상적인 업무를 처리하는데 그쳤습니다만  앞으로 5년이후 장기 비전과 목표를 새롭게 제시함으로써 협회 위상을 제고하고 새로운 사업도 발굴해 수익을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우리협회를 특수법인화로 전환하는 문제도 국토해양부아 협의를 통해 검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들을 신규로 진행할 것인 가에 대해서는 장기마스터플랜을 짜면서 충분히 논의가 되겠지만 가장 필요한 것이 교육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항만물류기업들은 은 직원들의 실무교육이나 안전교육 등 전문적인 교육을 많이 필요로 하는데 우리 협회가 이런 것을 교육사업으로 직접 진행한다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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