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대학원 양창호 교수

▲ 양창호 인천대 교수
지난해 12월 말에 ‘우리나라 물류기술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로 ‘미래물류기술포럼’ 주최 세미나가 열렸다. 토론자로 나온 서호전기의 김승남 부사장은 물류기술발전을 가로막는 애로점에 대해 현장에서 느낀 안타까움을 토로하였다. 항만기술에 대해 정부가 연구개발(R&D)에 투자했지만 그 개발기술들은 사장되어 있는 반면, 크레인 등 관련 장비는 모두 중국에서 수입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중국에 넘겨 줄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보유하고, 개발할 기술은 가지고 가야하지만, 지금의 정부정책은 무엇을 보유하고, 무엇을 개발해야 하는 지, 그리고 어떻게 기술개발을 활성화 시킬지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Cargo Systems 사가 조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중국의 ZPMC사가 전세계 컨테이너 크레인(C/C) 발주 총량 235기 중 68%인 159기를 수주하여 세계 최대 시장점유를 보이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부산신항만(2-3단계)도 총 7기의 C/C를 ZPMC에 발주하였다. 야드크레인(T/C)의 경우도 2010년에 총 634기가 발주되었으나, 이중에서 중국의 ZPMC가 316대를 수주하여 50%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부산신항만 2-2단계 및 2-3단계 터미널도 총 42대의 T/C(RMG)를 중국 ZPMC에 발주하였다.

그러나 같은 기간 우리나라 두산중공업과 현대삼호조선이 각각 11기와 4기의 C/C를 해외로부터 수주 받았다.그러나 같은 기간 우리나라 두산중공업은 총 44기의 T/C(RTG)를 싱가포르 등에서 수주 받아 세계 4위의 점유율을 보였고, 현대삼호조선은 8기를 수주 하였다. 우리나라의 중공업업체들이 과거만큼은 아니더라도 아직 컨테이너크레인과 야드크레인을 수출하고 있는 상태인데, 어째서 우리나라 부산신항만 터미널들은 철저하게 우리나라 컨테이너 크레인과 야드크레인을 외면하고 중국산을 수입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은 중국에서 수입되는 크레인의 경우 수입관세가 없기 때문에 국내업체의 경우 가격경쟁력에서 불리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즉 중국의 크레인 제작업체는 우리나라에 수출을 하게 되면 수입부품에 대한 관세 환급을 받지만, 우리나라 크레인 제작업체는 수출이 아니기 때문에 관세 환급을 받지 못한다. 그 만큼은 가격이 불리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이미 일부 제품은 중국의 기술력이 더 높다는데 있다. ZPMC는 중국 국영기업이기 때문에, 단기적인 투자수익률(ROI)에 구애받지 않고 기술개발이나, 생산공정에 투자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민간기업이 기술개발 투자를 하려면, 단기적인 투자 수익률이 보장되는 경우만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대기업이 정부 R&D자금을 받아 기술개발을 추진할 경우라 해도, 기술개발과제로 선정되어 지원받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기술개발 후 그 지원자금을 기술료로 모두 갚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기술개발을 해도 이를 실물로 제작하는 자금이 없어 절절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중국의 ZPMC는 국영기업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기술개발 투자뿐 아니라 파일로트 제작도 마음껏 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3년 전에 ZPMC는 자동화터미널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실물로 만들어 놓고, 우리나라 컨테이너 터미널 관계자 수십 명을 중국 상해로 초청해 이 자동화 터미널 실물을 보여주는 행사를 한 적도 있다.

부산항 신선대 터미널에는 세계적인 자동화터미널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다. 2000년대 초부터 시작한 과학기술부와 해양수산부의 지원으로 추진된 ‘자동화터미널 설계기술개발’사업의 결과이다. 네델란드의 ECT나 독일의 CTA 터미널이 자동화 터미널이지만 야드가 안벽에 수직으로 배치된 수직배치 터미널이라면, 신선대에는 야드가 기존터미널처럼 수평으로 배치되어 있는 상태에서 자동화를 구현한 세계 최초의 터미널이다. 특히 야드 크레인 주행로 밖에서 작업을 할 수 있는 형태(캔티레버 타입)로는 세계적인 자동화시스템이어서 외국에서도 많이 견학을 오는 곳이다.

부산항의 그 많은 터미널들이 기술적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오랫동안 지적되어 온 문제점이다. 그 중에서 새로운 첨단 기술을 도입하여 투자한 터미널이 신선대 터미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신선대 터미널이 이 기술을 적용한 것은 대단한 모험이었다. 정부의 어떠한 인센티브도 없는 상황에서, 아무도 적용해 보지 않은 신기술 시스템에 투자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호주 등 외국에서는 신기술을 적용할 경우 투자비의 150-200%까지 세제감면을 해주고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신기술 적용 시 세제감면 등의 지원책이 없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정부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 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기술개발을 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설사 기술개발을 했다 해도 이를 국내에서 적용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번 ‘미래물류기술포럼’에서 국내 물류기술의 평균점수가 58점으로 주요 선진국의 70-80점에 비해 크게 낮은 것으로 발표하였다. 이렇게 우리의 물류기술이 낙제점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도 같은 원인에 기인된 것이라 생각된다.

마치 국영기업이 기술개발에 마음껏 투자 하듯 정부는 기업들이 쉽게 기술개발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또한 신기술의 사업화를 위해 신기술을 적용하는 기업에게 세금감면의 인센티브를 주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여 많은 해운항만물류 기업들이 기술을 개발하고, 너도나도 신기술을 물류현장에 적용하려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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