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만남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며 신앙적인 성찰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부족했습니다.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저에겐 인간적 성찰이 필요했습니다.

조상과 부모형제의 행적이 집안의 뿌리입니다. 저는 그 뿌리에서 태어난 곁가지에 불과합니다. 뿌리와 곁가지와의 관계를 통해 인간적 성찰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습니다. 그 관계를 형상화하는 데는 문학적인 소양과 기법이 필요해 문예창작을 공부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창작수필로부터 ‘등단 작품상에 응모한 귀하의 작품이 당선되어 축하합니다.’란 통지를 받았습니다. 등단의 기쁨보다 저 자신을 인간적으로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했습니다.

▲ 耕海 김종길
맞은편에서 한 여인이 걸어오고 있다. 옷깃을 스치는 순간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저~ 혹시 S씨?"하고 물었다. 그녀도 동시에 뒤돌아보며 나와 똑같이 말했다. 난생 처음으로 그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론 그의 손등을 가볍게 다독거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반세기만의 만남이었는데도 스치는 순간 서로를 알아봤다. 그 반세기 동안 역사의 강엔 격랑이 밀려왔다 밀려갔고, 또 다른 격랑들이 굽이치며 흘러갔다. 4∙19와 5∙16, 산업화와 민주항쟁, 군정종식과 문민정부, 보수와 진보의 정권교체 등 역사의 수레바퀴는 숨 가쁘게 달려갔다. 서구(西歐)에서 수세기 걸렸던 과정을 우리는 반세기만에 다 겪었다.

단발머리와 까까머리였던 우리는 그 격랑에 떠밀려 고희를 훌쩍 넘겼다. 발랄했던 젊음은 우리 곁을 훌훌히 떠나갔다. 눈결, 살결, 머릿결, 소릿결, 그리고 숨결마저도 윤기를 잃고, 마치 마법사의 요술에 걸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된 듯.

그럼에도 우리는 첫 눈에 서로를 알아봤다. 오랜 단절에도 두 영혼은 심연에서 서로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을까! 감정을 절제하며 몇 마디 안부와 전화번호를 나누고는 각자 오던 길로 걸어갔다. 나는 "거~참! 거~참!"하고 탄성을 연발했다. 그 탄성은 어이없을 때 내뱉는 내 습관이다.

그녀와 나는 명동의 한 카페에 마주앉았다. 감격의 순간이다. 와인 향기를 마시며 50년 전을 회상했다. 까마득하게 잊혀 진 젊은 날들이 하나씩 하나씩 다가왔다.

어느 봄날, 진홍빛 진달래가 현란하게 불타는 무등산 자락에서 우리가 바라봤던 하늘이 어쩌면 그렇게도 푸르렀던지! 여름방학 땐 고향에서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는 '인간은 즐겁고 화려할 때보다 고통과 역경 속에서 인생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라고 나이에 비해 성숙된 내용을 또박또박 적어 보내왔다. 나 역시 썼다가 지웠다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며 그런 류의 답장을 보냈다.

늦가을, 우리는 교회에서 예배를 보고는 교외로 나가 호젓한 길을 걸었다. 가로수 낙엽이 휘날려 그녀의 단발머리에 내려앉았다. 몹시 추운 겨울날, 그녀는 하교 길에 나에게로 왔다. 6∙25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3년이 지났건만 전쟁의 상흔은 아물지 않아 모두가 가난했다. 온돌방에 온기를 담아두려고 헤진 군인담요를 깔아두었다. 그녀는 시린 손을 호호 불며 담요 밑으로 손발을 밀어 넣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머리를 맞대고 참고서를 한 장 한 장 넘겼다. 어려운 문제에 부닥치면 그녀는 수재(秀才)답게 매듭을 풀었다.

지금, 우리는 마주보며 젊은 날을 회상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이 쑥스러웠고, 연애란 단어를 속되게 여겼던 청순함을, 에로스가 어떻고 아가페가 어떻고 했던 설익은 대화를, 정작 했어야할 말은 못했던 아쉬움을.-

이러한 회상들로, 50년 전으로 돌아간 우리를 한 동안 동화 속을 거닐게 했다. 환하게 웃었다가도 콧등이 찡하여 눈가에 이슬이 맺히고, 그 감동은 삼매경에 이르렀다.

우리 둘은 모두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그의 세례명은 그라시아, 나는 안드레아. 카페에서 일어서면서 그의 손에 묵주를 지어주었다. 그 묵주는 내가 나환자를 도우려고 인도 마드라스에 갔을 때 성토마스 순교기념관에서 사서 소중하게 간직해온 것이다.

우리는 명동대성당에 나란히 앉았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앞에서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숙연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하성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람들은 숨소리마저 죽이고서 고해성사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 틈에 끼어 앉았다.

예나 지금이나 한 발자국도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만남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남녀 사랑이 정신만으로 완성될까? 아니다. 영육이 일치될 때 사랑은 완성되어 행복이 절정에 이른다. 그 행복이 순간 순간 파도처럼 밀려오며 사랑은 성숙해간다. 그러면서 새 생명을 탄생하고 희열과 고뇌가 반복되며 끝없는 미로를 걸어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며, 명동성당 경내의 산책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만남이 끝났다. 다시 만날 기약없이 우리는 헤어졌다. 각각 홀로 돌아서는 뒷모습이 허허로웠다. 아쉬운 만남이었기에.

-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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