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외부요인 극복 못하면 중국에 따라잡힌다”

한국기업평가 정상훈 수석연구원

“중국 조선산업의 막강한 외부요인 견제해야”

여기저기서 조선산업 불황 극복을 외치며 새로운 전망을 나오는 가운데, 중국에 뒤처지는 선박금융과 정부지원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슬람금융 도입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2010년 이른바 ‘수쿠크법’ 제정이 국회 내에서 논란을 야기하며 실패로 끝나며 이슬람금융 논의가 수면 아래 가라앉은 상황에서 나온 이 주장이 위기에 봉착한 국내 조선산업에게 단비가 될 수 있을까?

조선산업의 수주감소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이슬람금융 도입을 주장한 한국기업평가(한기평) 정상훈 수석연구원을 만나 궁금증을 해소하는 시간을 가졌다. 인터뷰는 8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교보증권빌딩 7층에 위치한 한기평 사무실에서 2시간 가량 이뤄졌다.


▲ “이슬람금융 도입은 중국 견제를 위한 토대 구축이다”

정 연구원이 이슬람금융을 생각한 계기는 중국 조선산업이 가지는 뛰어난 외부적 요인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란 물음에서 출발했다. 중국 조선업계는 환리스크ㆍ선박금융ㆍ정부지원 등에서 한국보다 우월한 환경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도전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한국 조선업계도 동등한 외부적 요인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선박금융을 주도했던 유럽 금융계가 선박금융 축소를 연이어 발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여전히 막대한 외환 보유고를 바탕으로 중앙정부 차원에서 조선업계를 지원하고 있는데, WTO 가입국이 아니라는 것을 활용해 선박금융을 통한 지원뿐 아니라 직접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풍부한 해양개발 수요를 바탕으로 중국 조선업계가 해양플랜트 분야를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생산효율성ㆍ기술력 등 조선사 자체의 경쟁력은 한국이 앞서고 있지만, 외부적 요인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한국 조선산업의 성장은 한계에 봉착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 연구원은 그 해답을 결국 ‘돈’에서 찾았다. 중국 정부의 막강한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조선업계의 도전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재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이 경제위기를 겪고 있고, 중국은 자국 산업을 위해 돈을 푸는 상황에서 한국 조선업계가 기댈 곳은 막대한 오일머니를 가진 이슬람금융이라고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다.

“물론, 이슬람금융만으로 얽히고설킨 불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운업계가 위기 극복을 위해 선복량을 조절하고 선박해체를 늘리고 있다고 하지만, 위기 극복의 길은 여전히 먼 것이 사실입니다.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 중국 조선업계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불황을 겪고 있지만, 우리와 차이가 있는 것은 ‘돈’과 ‘국가지원’입니다. 선박금융 규모를 늘리면서 발주를 활성화시키고 있고, 중앙정부 차원에서 ‘당근과 채찍’으로 조선업계 체질개선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슬람금융 활용은 중국이 가진 장점을 우리도 가져야 대등한 싸움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슬람금융을 통한 선박 발주 활성화가 수급상황을 무시한 인위적인 부양이 되지 않을까란 우려가 생길 수 있다. 정 연구원은 향후 3년간 4~7조원 내외의 재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이는 글로벌 시장규모에 비춰봤을 때 2~3%인 미비한 수준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국내 조선사가 2010~11년 수준의 가동률과 외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향후 3년간 연평균 매출액의 10~20% 정도의 추가 수주가 필요한데, 글로벌 시장규모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 영향력이 미비합니다. 선복량 과잉을 부추긴다, 인위적인 부양이라는 염려보다는 자금이 부족해 발주를 하지 못하는 선사들을 끌어올 수 있다는 장점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 “지금이 가장 큰 위기, 대승적인 관점에서 수용해야”

우려가 해소됐지만, 가장 현실적인 우려가 남아있다. ‘수쿠크법’ 제정과 관련된 논란에서 불거진 종교권 반대ㆍ특혜시비 등이다. 종교적 문제는 민감한 사안이지만, 이슬람금융 도입을 논하는데 있어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정 연구원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조선업계를 살려야 한다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선산업은 그 특성상 장기적인 재원 투자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 조선업계가 위기에 봉착한 이유는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해운불황이 언제 극복될지 감히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조선산업의 침체를 마냥 지켜볼 수 없는 노릇입니다. 국가전략산업으로서 조선산업을 살려야 한다는 대승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슬람금융 도입을 전향적으로 모색해야 하는 이유는 중국이 해양플랜트 분야에서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아직까지는 한국 조선업계가 해양플랜트 분야를 거의 독점하다시피하고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해양플랜트 분야의 우월적 지위도 안정적이지 않은 것이다. 정 연구원도 이 점을 강조했다.

“해양플랜트 분야에서 중국 기술력이 한참 떨어지지만, 중국은 이를 자금력으로 만회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중국 조선업계는 중국 자체의 풍부한 해양개발 수요를 ‘Test Bed’로 활용하면서 건조와 운영능력을 축적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제작사에 그치고 있는 우리 조선업계에게는 위기요인입니다. 이슬람권과 상호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슬람권의 풍부한 자원개발에 뛰어들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슬람금융 도입이 가진 의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슬람금융을 어떻게 끌어들이냐일 것이다. 지금까지 이슬람자금이 선박금융으로 활용된 사례는 많지 않았다. 이슬람권 자금이 대부분 안정적인 미국과 유럽의 국채 매입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 연구원은 계속되는 경제위기가 이슬람금융 도입의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슬람금융의 주된 투자처였던 미국과 유럽이 경제불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진국의 경제불황은 그동안 선진국의 금융자산 중심의 이슬람금융 투자형태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신흥국가로, 실물자산으로 투자형태가 바뀌고 있는 상황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선박금융이 장기적인 투자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입니다. 우리 조선업계가 가진 경쟁력을 이와 잘 결부시킨다면, 이슬람금융을 선박금융으로 활용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열린 사고로 다양하게 생각해야 한다”

정 연구원이 이슬람금융 도입을 주장한 것은 한국 조선산업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불황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데, 중국까지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 한국 조선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이 우려스러웠던 것이다. 주제는 자연스럽게 조선산업에 대한 전망으로 이어졌다.

“작년 한해 중국 조선업계도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위기 속에서 체질 개선을 위한 강력한 구조조정이 중앙정부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불황이긴 하지만, 작년 중국 상황은 구조조정을 위한 일시적인 현상으로 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체질 개선을 위한 구조조정을 마쳤을 때, 중국 조선업계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요? 위안화가 기축통화로 자리 잡고 중국정부의 지원이 계속 이뤄진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중국 위협론’이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고 봅니다.”

그가 바라보는 미래는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중국 조선업계가 정비를 마치고 도약을 준비하는 단계에 온 상황에서 한국 조선업계의 현실은 어떠할까? 정 연구원은 선뜻 답을 내놓지 않았다.

“우리 조선업계는 Big3와 Non Big3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Big3는 종합중공업 기업으로의 변신을 끝낸 상황으로 큰 어려움은 없어 보입니다. 문제는 Non Big3입니다. STX조선해양과 한진중공업의 경우는 자산매각 등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면서 위험에 대비하고 있고, 성동조선해양과 SPP조선은 금융권의 지원을 바라보고 있는 처지입니다. 위기에 대처하는 전략이 무엇인지, 각 상황에 맞게 대처하고 있는가 면밀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해답은 각자에게 달려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조선업계를 바라보는 새롭고 참신한 시각을 유지하는 비결이 궁금했다.

“열린 마음으로 새롭게 보려는 분위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한기평은 신용평가사로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시각을 수용하려고 분위기가 조성돼 있습니다. 다양한 방법론을 놓고 타당성을 검토해 가면서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올 하반기부터는 바닥을 칠 것이란 전망을 내보이고 있다. 이미 시황이 바닥인 것에 대해 정 연구원은 동의하지만, 기계적 반등이 아닌 시황 반등은 여전히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열린 사고와 발상의 전환을 주문했다. 긴 안목을 바탕으로 한 참신한 아이디어가 불황 극복의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를 위한 따뜻하지만 뼈아픈 조언이 어떤 결과를 야기할지 사뭇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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