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손녀의 Email

▲ 장손녀 다슬이
아들 식구들이 미국으로 떠났다. 그들 모두가 보고 싶었다. 그중 나의 보물인 장손녀 다슬이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했다. 손자가 없어 다슬이를 장손으로 생각하고 끔찍이 아꼈다. 다슬이도 나를 잘 따랐다. 식전기도를 하기에 "무슨 기도했어?"하면 "하느님! 우리 할아버지 땅속에 들어가지 말고 오래 오래 살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단다.

먼 비행기길이 버거워 3년을 참다가 큰마음 먹고 떠났다. 다슬이, 동생 다해와 함께 노는 재미에 흠뻑 빠져 시간가는 줄 몰랐다. 2주쯤 지나 다슬이가 다니는 Penn Valley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초인종을 눌렸더니 작업복을 입은 분이 나왔다. 수위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Mitchell 교장선생님이셨다. 여름방학 기간에 학교시설을 보수하는데 교장선생님이 당직 겸 공사감독을 하고 계셨다. 존경스러웠다. 학교 안내를 해주시고는 마지막으로 컴퓨터실에 들렸다. 전교생이 컴퓨터를 할 수 있도록 대폭 수리 중이었다.

교장선생님께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두 번 맞이했는데 모두가 한국인들입니다"라며 한국인의 교육열을 높이 평가하셨다. 그리고는 다슬이에게 "할아버지가 한국에 가기 전에 너에게 컴퓨터를 사줄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다. 교육상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여 망설였는데, 교장선생님 말씀 한마디에 당장 애플컴퓨터를 사주고는 한 집에서 이메일을 시작했다.

-다슬아! 할아버지는 네가 보고파 필라델피아까지 먼 길을 왔다. 미국에서 학교생활에 잘 적응해 주어 너무 고맙다.
-I'm glad you think so. I'm very proud of myself. I love you!!!
-너의 학교 평균성적이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톱이고, 너의 성적도 우수하다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는 너무 자랑스럽다.
-I always get A's. I'm very happy that you came over my school and saw my principle.

 이렇게 짤막 짤막한 메일을 주고받다가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다슬이는 초등학교를 겨우 4개월 다니다 미국으로 건너가 한글은 거의 잊었다. 우리말은 집에서 하기 때문에 그런대로 잘했다. 그러나 영어가 더 자연스러워졌다.

“너는 영어로, 나는 한글로 이메일을 하자”고 약속했다. 이메일을 하면서 한글을 익히면 우리 문화와 전통에도 자연스레 접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였다. “우리말과 글을 모르면 허깨비 한국인이 된다.”라고 타일렀다. 교포 1.5세와 2세가 고등학교까지 멋모르고 지내다 대학생이 되고서야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들을 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때가 늦는다.

내가 귀국하자 다슬이는 할아버지가 보고파 울며 자기 곁으로 빨리 돌아오라고 애절하게 이메일을 매일 보내왔다. 나는 이메일을 볼 때 마다 마음이 저렸다. 자주 가던 아이스크림 가게,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빵을 먹던 불란서빵집, 야구시합을 구경하던 운동장, 휴양지에서 낚시를 하다가 손을 꼭 잡고 거닐던 오솔길 등등, 한 달 동안 공유했던 시간과 공간이 그리워 마음 아파하는 것이 육친의 정인가!

-동해바다 수평선 위로 가물가물 떠오르는 너의 얼굴을 바라보고 나는 소리쳐 “다슬아!”하고 불렀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나를 처다 보더라. 할아버지가 얼마나 너를 그리워하였으면 네 얼굴이 수평선 위로 떠올랐을까!
-How so much you must have missed me that you called my name even I wasn't there! Yesterday, that happened to me. I said "Grandpa! Let's go walking around!" But you weren't here. So I started crying. I'm going to wait until you come back to America. So come back quick. I'm crying now!

열 살 난 애가 할아버지를 절절하게 그리워하는 마음이 애잔했다. 처음엔 엄마 도움을 받아 할아버지 이메일을 읽었는데, 지금은 혼자서 잘 읽는다고 했다. 나의 몫인 손녀에 대한 한국어 교육이 성공적이다.

이렇게 주고받은 이메일을 프린트하여 둔 파일북이 세 권이다. 나는 영어공부에 손을 뗀지 오래되어 많은 단어를 잊었고 특이 스펠링은 엉망이 됐다. 손녀의 이메일을 읽고 또 읽고, 그리고 베껴 쓰면서 영어가 친숙해진다.

-너는 나의 영어 선생님이고, 나는 너의 한국어 선생님이다. 그렇지?”
-Really? Oh yes! I'm sure your saying. I miss you grandpa very much!

손녀의 자존심을 높여주며 주고받은 수많은 이메일이 할아버지와 손녀 간에 애틋한 사랑이 영글어간다.

-耕海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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