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상황이 아닌 예방 위한 조치
금융권의 조선업계 불신도 한 몫

부산의 중견 조선기자재업체인 오리엔탈정공이 지난달 29일 채권금융기관협의회 결정에 따라 3개월 간의 채권은행 관리절차에 들어가게 됐다. 부산지역 최대 기자재업체이자 신조시장에 진출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벌여온 오리엔탈정공이기에, 워크아웃 소식에 업계에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채권단은 오리엔탈정공에 대한 실사를 바탕으로 조만간 협의를 거쳐 지원방안과 구조조정안을 확정할 방침이다.

지난 1980년 설립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작년 11월 ‘2억불 수출탑’을 수상할 정도로 ‘잘 나갔던’ 오리엔탈정공이 워크아웃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은 극심한 수주난과 이에 따른 자금사정 악화 때문이었다.

주력사업인 데크하우스(Deck House) 및 선박용 구명설비 등 기자재부문에서는 여전히 높은 세계시장 점유율을 보이며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지만, 지난 2003년 중국 대련 현지법인인 OMI를 통해 뛰어든 신조사업에서 손실을 보면서 자금사정이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말 필리핀선사로부터 수주한 1841억원 규모의 탱커 15척이 선사의 자금조달 문제로 계약해지된 것을 비롯해, 지난 1월 279억원 규모의 카훼리선 3척에 대한 인도 연기 등 신조부문 계약 해지ㆍ연기가 자금사정 악화를 불러온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필리핀선사와 체결한 계약은 금액이 작년 매출 기준으로 56.8%에 달하는 대형 계약이었다. 오리엔탈정공에 따르면, 선사 측은 자금조달이 되는대로 재발주에 나설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리엔탈정공 관계자는 “신조부문 진출은 2000년대 초중반 호황기 상황에서 경기침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사업다각화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진행된 것으로, 데크하우스 제작 노하우를 바탕으로 안정적으로 추진했다”면서도 “극심한 수주불황과 계약해지 등으로 간접비용이 높아진 것이 자금사정 악화를 불러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오리엔탈정공은 워크아웃 신청이 최악의 상황에 따른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불황 장기화를 염두에 둔 예방차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자금사정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자본잠식이나 채무상환 불능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생산ㆍ건조 활동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고, 협력업체에 대한 자금결제도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워크아웃 신청은 수주불황이 계속되고 있어 최악의 상황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밝혔다. 수주난과 계약해지로 자금사정이 안 좋아진 상황에서 워크아웃을 통한 채무유예로 급한 불을 끄고 기업정상화를 모색하겠다는 설명이다. 오리엔탈정공은 5일 부산세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46회 납세자의 날’ 기념식에서 모범납세기업으로 선정돼 관세청장 표창을 수상해, 기업활동에 문제가 없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산업은행을 주채권은행으로 하는 채권금융기관협의회에서도 오리엔탈정공의 워크아웃 신청에 대해 압도적인 비율로 찬성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져, 세간의 우려가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이 오리엔탈정공 측의 설명이다.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 조선사 측에서도 오리엔탈정공 정상화를 위해 선수금을 미리 지급하는 등 지원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업계에서는 금융권의 조선ㆍ조선기자재 업계에 대한 불신이 오리엔탈정공의 워크아웃을 야기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일부 은행이 대출금 회수에 나서면서 수주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업계를 더욱 옥죄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이 RG발급 중단에서 더 나아가 여신 회수로 몸 사리기에 나선 결과가 오리엔탈정공의 워크아웃 신청이라는 설명이다. 오리엔탈정공 상황은 일시적인 자금 악화에 따른 것이지만,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선ㆍ조선기자재업체에게는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부산조선해양기자재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오리엔탈정공 워크아웃으로 “은행들이 이번 상황을 확대 해석해 자금 상환을 요구하거나 신규 대출을 중단해 업계 자금난을 악화시킬 것이란 점이 가장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연매출 3000억~4000억원대에 이르고, 협력업체 포함 관련 종사자가 2200여 명에 달하는 오리엔탈정공이 워크아웃으로 어떤 구조조정을 겪을지 미지수이다. 그러나 부산지역 조선기자재업계에서는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정부와 지자체 뿐 아니라 금융권의 적극적인 지원이 마련돼야 한다는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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