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대학원 양창호 교수

▲ 인천대 양창호 교수
지난 2월말 한국전력의 발전자회사인 한국동서발전이 일본계 선사와 발전용 석탄 장기운송계약을 체결하였다. 국내 해운사의 경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나라 대형화주가 일본선사와 장기운송계약을 맺은 것이다. 동서발전은 20만톤급 선박 1척과 9만톤급 선박 1척 등 총 3억달러 규모의 장기운송계약을 일본계 선사인 NYK 벌크쉽 코리아와 체결하였다.

이번 동서발전의 입찰 결과로 한전의 5개 발전 자회사가 일본선사와 장기운송계약을 맺은 건수는 총 18척으로 늘어나게 됐다. 이 가운데 동서발전(5척) 중부발전(2척) 서부발전(3척) 등 총 10건이 일본 NYK 선사(이회사의 국내 자회사 포함)와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 그리고 선,화주 상생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며, 최근 국적선사 중심의 입찰이 이뤄지고 있는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이번 일본선사와의 계약으로 한국전력 발전 자회사가 여전히 가격에 치우친 저가입찰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셈이다. 일본선사의 경우, 자국 수입물동량을 확보하고 있는 막강한 선단을 바탕으로 저렴한 가격을 제시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고 있으며, 동시에 선박을 건조하는 데 드는 선박금융 금리가 우리보다 낮아 원가 경쟁력에서 우위에 있다.

한국선주협회에 따르면 일본 선사는 한전 자회사의 석탄 수입량의 18%를 수송해 연간 1억 8,375만 달러(2,114억원), 계약 기간 동안 20억 달러(2조 2,300억원)의 외화를 챙기고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저가원칙만 내세운다면 국가 전체적으로 해운산업 자체를 후퇴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금융위기 이후 수차례에 걸친 선화주 상생을 위한 노력을 해, 해운, 조선 불황속에서 포스코와 일부 한전 자회사의 국내 해운회사 및 조선소가 상생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2009년 6월에 체결된 한국남부발전과 SK해운의 장기수송계약이 선(先)지급 방식을 적용한 선,화주 상생의 좋은 예로 평가받고 있다. 남부발전은 SK해운에 15년간의 운임 1억 달러 중 2천만 달러를 선 지급하는 방식을 먼저 제안했고, SK해운은 이 자금을 선박구매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SK해운측은 선박확보를 위한 금융부담이 줄어들고, 이로 인해 발전사측도 수송원가를 절감할 수 있었다.

또한 2010년 11월 국내 최대 벌크선사인 STX 팬오션이 한국남부발전으로부터 총 3,300억원 규모의 장기운송물량 2건을 확보했는데, 이 역시 2014년부터 15년간 발효되는 계약 건에 한해 이 기간 동안 지급해야하는 예상운임의 20%를 선 지급함으로써 선박확보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선,화주 상생모델을 제시했다.

그러나 한국전력의 또 다른 일부 발전 자회사는 이와 같은 상생모델에 대해서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면서, 원가 절감을 위해 단가 경쟁력을 확보한 일본 선사까지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양이다. 지난 연말부터 금년 연초에 걸쳐 한국전력공사 산하 한국동서발전, 한국중부발전이 케이프사이즈, 파나막스선을 대상으로 하는 15년 이상의 장기운송계약 입찰을 실시하고 있다.

드라이 벌크 시황은 연초부터 침체가 계속되고 있어 최근 주요 항로 평균 운임은 케이프사이즈선이 1일 5,859 달러, 파나막스선이 6,892 달러로 각각 비용을 크게 밑돌고 있다. 또한 신조선 가격도 영국 클락슨에 따르면 2월 현재 케이프사이즈선이 4,750만 달러, 파나막스선이 2,800만 달러로 피크시인 2007년 말에 비해 거의 반값 수준에 머물고 있다. 화주입장에서 보면, 원가 경쟁력이 뛰어난 배를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시점인 셈이다.

선사의 입장에서도 해운시황의 침체, 현물시장과 단기계약의 리스크가 표면화하면서, 철강 및 전력산업의 원자재 장기운송계약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특히 컨테이너선, 탱커부문도 적자를 기록하면서 벌크선 장기운송계약으로 안정적 수익 확보가 시급해졌다. 계약기간이 10-15년으로 현물시장에서 용선운용이나 단기계약 선박에 비해 이익율은 낮지만, 시황 침체 시에도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해주는 안전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공익을 추구해야 할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의 자회사가 국가전체의 이익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버젓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발전용 연료탄만 보더라도 연간 약 1억 톤의 물동량을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지만, 일본 전력회사들은 공공성의 관점에서 100% 일본 해운사와 장기운송계약을 맺어 수송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형 화주들이 단순히 입찰가만 놓고 근시안적 사고방식으로 일본선사와 장기운송계약을 계속해 나간다면,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우리 해운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려, 결국은 전략물자의 수송을 외국선박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내몰릴 수 있는 것이다. 일본 종합상사는 엔화금융으로 약 3% 내외의 금리로 선박금융을 제공해 준다. 그러나 우리는 해외에서 달러를 조달해서 제공하다보니 7%가 넘는 금리로 선박금융을 제공한다. 일본 선사와 4% 정도 금리차가 발생하는 데, 선사로서는 20년 장기계약시 약 1,800만 달러 정도의 추가 비용을 들여야 하는 실정이다.

가뜩이나 세계해운경기의 침체로 많은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유동성 지원에 소홀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터에, 공익을 지켜야 할 기업까지 나서 해운산업 기반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시급히 선박금융을 활성화시켜 우리선박의 경쟁열위의 원인을 개선하고, 일본의 발전 원료탄 수송입찰에 우리선사가 입찰자격 조차 없는 상황이라 하니, 일본과의 상호주의 원칙 준수를 위해서라도 정부의 관련 부처들이 나서 국익을 위한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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