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민현 박사
1. 머리말

선박도 기술혁신과 함께 끊임없이 변화하는 제조물이기 때문에 과학의 발달과 그때그때의 주변 환경에 따라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의 대상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선가는 건조원가와 시장에서 창출할 수 있는 수익력의 크기에 따라 좌우되기 마련이다. 통상 신조원가는 철재의 가격, 엔진, 인건비에 의해 결정되지만 계약선가는 조선수요와 공급상태 그리고 해운시황에 의해 정해진다. 해운시황의 침체로 사실상 발주가 고갈되어 버린 지금의 신조선가는 시황의 정점이었던 2005~2007년과 비교할 때 약 40% 정도 하락하였다. 선가가 운항원가의 약 80%를 점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40%의 선가 차이로 인한 원가의 차이는 경영능력만으로 극복하기에는 불가능한 격차다. 심각한 공급과잉과 유동성 고갈로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선주에게 신기술, 저원가로 무장한 신조선박이 출현하게 되면 기존의 선박은 경쟁대열에서 밀리게 되고 결국은 시장에서 철수해야 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무역상품의 90% 이상이 선박을 이용하고 있는 마당에 대략 상품가격의 10% 정도를 점하고 있는 수송비는 국제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막중한 비중을 점하고 있다. 그래서 과거 영국, 유럽제국, 미국, 일본, 한국 그리고 지금은 중국이 그러하듯이 각국은 경쟁력있는 수송선단을 확보 유지하기 위해 정책금융을 제공하며 조선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산업에 과도하게 투자를 하다보면 해운시장의 불황을 장기화시킬 뿐만 아니라 결국은 부메랑이 되어 조선산업의 피폐화로 이어진다.

작년에 대형 컨테이너 선사들이 ULCS를 잇달아 발주한 이후 한동안 조용하던 발주가 최근 머리를 들며 자금사정이 원활한 선주 또는 선박투자자들이 ‘위기는 곧 기회다’라며 선박 건조에 나서는가 하면 ‘지금과 같은 심각한 공급과잉하에서 선박을 추가로 건조하는 것은 불황의 장기화를 초래하는 바보같은 짖’이라고 비판하는 등 이른바 ‘Stupid’논란이 일고 있다.

신규발주를 비판하는 선주들은 당연히 기존 선주들로 기득권을 옹호하려는 차원에서 반대하는 것이지만 이른바 창조적 파괴를 거부하는 것도 경기순환이론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최근에 나타난 시장환경과 기회론자(발주파), 위기론자(자제파)들의 주장을 살펴보고 최근 화의를 신청한 일본 Sanko Kisen 사태를 분석해본다.

2. 시장환경

정기, 부정기, 탱커 등 해운의 3개 부문이 동시에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작금의 해운 불황은 단순한 경기 순환적 국면에서 그치지 않고 보다 뿌리 깊은 이른바 구조적 제반 요인과 복합돼 있다는 점에서 보다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취항하고 있는 선복만으로도 과잉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신조선의 인도는 적어도 향후 2년 동안은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운항비 보전이 어려운 시황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금년도 세계 경제성장률이 3.3%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고 보니 선주들의 어려움은 연말이 되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적으로 공급과잉으로 인한 위기감이 팽배한 나머지 전반적으로 발주는 대폭 감소했다. 2010년까지만 해도 세계 신조선 발주를 주도해 왔던 그리스 해운계의 2011년 발주량은 전년대비 28.5% 감소해 전 세계 감소비율 7%와는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선가가 크게 하락함에 따라 자금사정이 원활한 선주들은 헐값에 10년 이하의 중고선을 활발히 매입하며 선대개편과 함께 저변확대에 나서고 있다.

사실상 세계 제1의 조선설비를 운영하고 있는 중국조선업계는 절반정도가 도산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 가운데 이미 Bargain sale에 들어갔다. Bulker나 Tanker 등 저부가가치 선박의 경우 선가의 투매는 물론 선가의 30%만 내면 나머지(금융)는 조선소에서 다 알아서 처리해준다. 저부가 가치선의 경우 한국과 일본 등과 비교해 선질면에서 차이가 없기 때문에 자금사정이 원활한 선주의 경우 선대보강 내지는 개편차원에서 중국조선소의 유혹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환경오염과 관련된 국제적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선박에서 배출되는 환경오염과 관련해 미국, 유럽 등에서 일부 국지적으로 시행중인 규제가 2015년이 되면 본격화될 예정이다. 이는 결국 고유가 현상과 함께 운항원가의 상승으로 이어져 해운불황의 장기화를 초래할 수 밖에 없다. 이와 같은 환경변화에 맞추어 조선업계는 신기술의 도입 및 첨단기법을 동원한 설계를 통해 보다 친환경적이고 친에너지형 저원가 신세대 선박의 개발에 성공했다. 최근에 발주된 Mega containership을 통해서 알려진 것처럼 신세대 선박은 불과 2~3년 전에 건조된 선박에 비해 효율면에서 적어도 20~25%는 더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 정설이고 보면 조선시장의 불황으로 첨단기술로 설계된 선박을 싼 가격에 건조할 수 있다면 관심을 갖지 않을 선주가 있겠는가?

군거본능(herd instinct)이라고 하였던가? 호황기라고 알려졌던 2003~2008년 사이 해운계는 쉽고 저렴한 선박금융 덕택에 선가에 크게 개의치 않고 공급과잉에 대한 경고 등도 무시한 채 너나 할 것 없이 대량발주에 나섰고 그 후유증으로 기존의 선박투자가나 선주 모두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취항하고 있는 글로벌 선대의 평균 선령은 역사상 가장 젊은 선박으로 구성돼 있다. 선박의 수명을 20년으로 기준할 때 현재 취항중인 대부분의 기존선박은 수명이 다하기 이전에 앞당겨 해체하지 않는 한 운항 원가면에서 구조적인 열세를 감수하며 상당기간 신예선박들과 경쟁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대다수의 선주들도 선대개편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으면서도 금융 등 자금동원상의 어려움 때문에 주저하고 있는 반면 충분한 자금을 확보하고 있는 선주는 지금이야 말로 신기술로 건조된 선박을 저가에 확보할 수 있는 적기로 보고 수주에 목말라하고 있는 조선업계를 향해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3. 발주파 "지금이 기회다"

현재 케이프사이즈를 주축으로 한 벌크선과 VLCC 등 총 29척의 선대를 운항하며 케이프 4척과 파나막스 2척을 건조하고 대만의 벌크 전문회사인 U-Ming Marine Transport는 최근 중국조선소(Shanghai Waigaoqiao)에 18만 6000dwt급 케이프사이즈 벌크선 10척(4980만 달러/척)을 추가 발주했다. 지금과 같은 침체시기에 운항선단을 경쟁력있는 신기술 선박으로 개편하기 위한 것으로 2014년부터 2015년에 걸쳐 전량을 인수할 예정이다.

U-Ming Marine Transport는 현재 수급관계가 가장 불안정한 케이프를 대량 발주한 배경에 대해 발주는 거의 동결상태이고 해체가 급증하고 있고 선가까지 바닥이기 때문에 지금이 발주의 최적기이며 중국이 12차 5개년 계획에 의거한 도시화 정책이 건설수요를 주도하게 될 것인 바 내수 진작 정책의 추진, 철광석, 석탄 등 원자재 수입을 촉진할 것이며, 원전에 대한 공포로 인해 연료탄의 수입이 증대하게 되면 결국 2014년부터는 시장회복의 모티브가 가시화될 것이라는 판단 하에 발주를 실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세계적인 탱커 선사인 Frontline을 거느리고 있는 John Frederiksen회장도 신형엔진을 장착한 저연료형 VLCC를 지금과 같은 낮은 선가로 건조할 경우 연료비만 일일 1만 달러씩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원가 절감 및 에너지 효율 선박을 확보하기 위해 신형 MR Product Tanker 10척과 VLCC 여러 척을 발주해 신규 회사를 설립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Frontline의 CEO는 VLCC 시장이 회생하려면 적어도 VLCC 100척은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6개월 사이에 해체가 아닌 추가 발주로 입장이 바뀌었다.

그리스 선주(Evangelos Pistiolis)는 MR tanker 수척을 발주하면서 신형엔진, 신설계와 낮은 선가로 건조하게 되면 연료비만 하루 5천 달러씩 절감될 뿐만 아니라 유지비(M&R)까지 절약할 수 있어 기존선박에 비해 2배 이상의 실질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경쟁력 우위를 강조했다. BW Group 역시 지금이 노후선대를 교체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라는 판단아래 발주에 동참, 최근 29만 7000dwt급 VLOC를 인수했고 38만 8000dwt급 4척도 불원 인수할 예정이다.

4. 자제파 "위기다"

“지금은 25년이래 최악의 시장이다. VLCC 하루 수입이 1만 달러에 불과한 현시장하에서 VLCC를 발주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며 지금 Tanker를 추가 발주하는 것은 상처에 불을 데는 것과 마찬가지다.”(싱가포르 선주 Andreas Sohmen Pao).

“전 해운업계가 적자운항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명분없는(unjustified) 신규 발주는 자제해야 하며 현 위기를 벗어날 때까지 발주를 유예해야 한다.”(ICS 회장 Spyros Polemis)

“조선업계는 현재 2013~2014년의 도크를 채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설비과잉으로 허덕이고 있는 조선업계의 실정으로 볼 때 신조선가는 더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서두를 필요 없다. 조금 기다려보자. 지금 수주에 목마른 조선업계에 일감을 주면 그만큼 시장의 회복은 늦어진다.”(Safe Bulkers)

5. 성공사례(순환주기에 역행하는 발주)

시장이 불황의 늪에 빠져 있을 때 선박을 발주하는 투자자는 시황이 회복할 때까지 그 기간이 장기화되더라도 위험부담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Martin Stopford저 「Maritime Economics」에 의하면 대규모의 역-싸이클 발주 사례는 1905~1906년과 1980년대의 해운 대공황 시에 두 차례 있었다.

(1) 조선소의 성공사례
1901년 초부터 해운시장은 급격히 하락해 요율은 1900년 대비 50% 수준으로 추락한 후 1909년까지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조선산업단지라 할 수 있는 선더랜드(Sunderland)를 중심으로 발주가 시작되더니 해운시장의 침체가 최악이었던 1905~1906년 사이에는 신조가 절정에 이르렀다.

당시 다수의 선주들은 1900년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던 호황에 힘입어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고 수주에 목말라하던 조선업계는 생존전략의 하나로 저가수주를 통해 순환주기에 역행하는 신조선 건조의 바람을 일으키는데 성공했다. 중요한 것은 침체된 시황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선주들이 대량 발주에 나선 것은 당장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장래의 시황에 대한 낙관론과 자금조달이 가능하였기 때문이다.

(2) 발주 성공사례
1999년 하반기 해운시장의 불황이 한참일 때 파나막스 벌크선을 척당 1800만~2000만 달러에 대량 발주해 시장이 아직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2001년부터 인수했다. 그 후 2003년부터 시장이 회복하기 시작했고 2006년 용선시장이 활황이었을 시 선가는 척당 4500만~5000만 달러까지 치솟았고 2007~2008년에는 7000만~8000만 달러까지 상승했다. 한마디로 저원가 선박으로 호황을 만끽했고 매각을 통해 약 4배의 선가를 확보했으니 문자 그대로 대박이요, 성공적인 선박투자라 아니할 수 없다.

6. Sanko의 교훈

(1) 1차 위기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던 해운불황으로 인해 1984~1985년 2년 사이에 그리스 대형선사인 Hellenic Lines 도산, 스웨덴의 최대선사인 Salem Investment 도산, 85년 일본 Sanko Line의 도산 등 80년대는 전 세계 해운계가 도산의 공포에 휩싸였던 시기였다. 1976년 당시 77개 선사가 1983년에 115개사로 늘어나는 등 양적 팽창을 거듭하던 한국 해운계도 세계적인 해운업계 불황의 여파로 1983년에 이르러 국내 선사들의 부도사태가 속출하자 정부는 ‘해운산업육성대책’을 수립하고 이에 의거해 1984년에는 당시 63개 선사를 항로별로 나누어 17개 그룹으로 집약하는 해운산업합리화 조치를 취하였던 시기다.

70년 중반 당시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을 계기로 유조선 시황은 바닥에 머물러 있고 전 세계가 탈 석유, 에너지 절약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던 시기에 일본의 Sanko는 해운업계의 우려와 달리 74년부터 3년에 걸쳐 56척의 중형탱커를 집중 건조하면서 투기색이 강한 경영을 본격화 하였다.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판단하에 리스크를 감수하며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투자를 시행한 것이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해운불황이 장기화되고 1977년부터 시작된 유조선 불황 등에 따른 누적적자로 인해 재무상태가 어려워지게 되자 1983년에 이르러 이번에는 좀 더 적극적이고 과감한 선대개편작업을 추진한다. 즉 선대의 주력인 탱커를 축소하는 대신 Handy형 Bulker 위주의 선대 확충계획을 수립한다.

구체적으로는 VLCC를 주축으로 하는 탱커를 매각 또는 용선을 해지(반선)하고 그 대신 3~4만dwt급 벌크선 125척의 건조를 추진한다. 이중 자사선은 29척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Sumitomo, Marubeni, Nissoiwai 등이 건조해 리스회사를 경유, Sanko에게 리스형태로 빌려주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지속되는 경기침체와 실적악화로 인해 1984년에 이른 바 재건 3개년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당시 재건계획의 핵심은 크게 4가지로 구성돼 있었다.

① 매각, 반선을 통해 비경제선 800만dwt을 감축하고 그 대신 핸디사이즈 벌크선 125척을 건조한다.
② 유가증권, 부동산 처분 등을 통한 경비절감
③ VLCC 부문의 수익개선을 위해 자회사를 설립하고 16척(430만 중량톤)을 부채와 함께 이관한 후 재용선하며 자회사의 부채에 대해서는 금리삭감과 유예를 요청한다.
④ 차입금 상환유예 및 금리인하 신청 등 금융지원을 확보한다.

Sanko는 이와 같은 재건계획이 예정대로 실현되면 1986년에 회사가 정상화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해운의 재건에는 그 대전제가 시황의 회복이다. 기대와 달리 탱커 시황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운수성 측의 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야심차게 추진했던 125척의 핸디사이즈 벌크선 건조 역시 선가하락, 부정기 시황의 침체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대부분의 벌크선들은 장기계약이나 COA 등도 확보하지 못했다.

재건계획과 달리 시황부진이 지속되면서 부채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VLCC를 조기반선하기 위해 Sanko는 해약에 따른 엄청난 페널티를 부담하는 등 이중고를 겪게 되었고 결국 금융권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주력은행들마져 융자 중단을 통고하며 등을 돌리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연료공급업체와 항만 하역회사들이 범세계적으로 Sanko 선박에 대한 서비스 제공을 집단으로 거부하고 나서자 백척간두에 서게 된 Sanko는 항만협력업체의 집단 보이콧 선언 일주일 후 재건계획 발표 1년 만에 1985년 회사 갱생법을 신청하며 사실상 도산에 이르게 된다.

2차 대전 후 일본 최대 규모의 도산인 것이다. Sanko의 창업자이자 당시 나카소네 일본내각의 각료였던 Toshio Komoto씨(1970년까지 사장으로 재직)는 회사의 사태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각료직에서 물러났다.

Sanko는 우여곡절 끝에 1989년 회생절차에 대한 인가를 득하였고 법원이 허가한 재건기간은 2007년까지로 되어 있었으나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이어진 Handy시장의 호황에 힘입어 Sanko는 부채를 조기상환하며 1998년에 조기 정상화를 이루었지만 일본 상위선사로의 회복은 더 이상 불가능 해졌다. 아이러니한 것은 회사를 도산으로 빠트린 주범이 Handy였고 조기 정상화를 가능하게 한 것도 Handy였다는 사실이다.

일차 파동의 가장 큰 후유증은 일본경제계에서 흔히 ‘주식회사 일본(Japan Inc.)’으로 불리는 일본 특유의 기업결합시스템(Keiretsu) 내지는 내셔널리즘에 바탕을 둔 자국선 우대 정서의 수혜 대상에서 밀려나면서 더 이상 일본기업의 특혜를 인정받지 못하는 회사가 되었고 일본의 대형정유사, 철광석 수입회사 등 이른바 블루칩 하주들과의 장기 운송계약 또한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점이다. 실제 NYK, MOL, K-line 등은 해운불황이 장기화되더라도 국내대형하주들과의 COA가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는 것과 비교할 때 일본선사로서의 특혜가 박탈된 것은 Sanko에게 치명적이 아닐 수 없다.

(2) 2차 위기
일본의 대형 비상장사중 하나인 Sanko는 임직원의 급여삭감과 감원, 자산처분 그리고 2011년 이후 최근에 인수한 고가의 선박까지 포함해 19척의 선박을 매각하며 유동성 확보에 안간힘을 쏟았지만 역부족으로 마침내 2012년 3월 9일자로 채권자들에게 ‘정상운항에 필요한 최소한의 유동성(cash balance)를 위해’ 선주, 조선소, 금융기관 등에게 대금 지불 유예를 요청했다.

Sanko는 골드만 삭스를 자문회사로, Mori Hamada & Matsumoto와 Allen & Overy를 국내 및 해외 법률자문으로, 그리고 Pricewaterhouse Coopers를 회사의 재무감사사로 지명하면서 이른바 정지협정(standstill agreement ; 한 기업 또는 개인이 다른 기업과 관련된 특정행위를 일정기간 취하지 않을 것을 내용으로 한 기업간의 협정)을 통한 채무조정을 의미하는 법정외 분쟁조정(ADR-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일명 화의를 채권자들에게 제안했다.

채권자들에게 보낸 3월 9일자 서한에서 동사는 현사태의 근본원인으로 리먼사태를 들었으며 채권자들에게는 상계, 보증의 집행, 선박 등 자산의 압류 조치 등 회사의 재건에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는 일체의 조치를 취하지 말아줄 것을 요구하며 동시에 Sanko에서도 채권자들의 법적권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것임을 확실히 하고 당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난제들을 협상을 통해서 해결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1934년에 설립된 Sanko는 2012년 1월 현재 벌크선 72척, 컨테이너선 29척 등 총 195척의 선단을 운항중이며 그중 자선은 35척으로 80%가 정기용선 선박이며 현재 12척이 발주되어 있다. 문제는 용선선박의 대부분이 2009~2010년에 건조된 선박들로 선가가 최고수위에 있을 때 발주된 선박들이기 때문에 계약된 용선료가 현 시세를 2~3배 상회하는 높은 수준으로 책정돼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시장의 최근 요율 수준은 운항비도 미달해 운항을 하면 할수록 자금사정이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현행법상 비상장사인 Sanko가 회사의 재무상태를 공시할 의무는 없지만 2011년 3월 현재 부채가 13억 달러였고 그 이후 연료비 등 운항원가의 상승, 운임시장의 침체 등의 요인을 감안하면 부채는 작년보다 더 증가했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금융지원마져 여의치 않자 시간을 얻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Sanko는 ADR과 함께 용선선주들에게는 요율 재협상을, 다른 채권자들에게는 대금상환 유예를 요청하기에 이른 것이다.

Sanko가 1차 파동시 회사 재건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특유의 파산보호법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즉 Sanko는 이법을 통해 엄청난 부채를 삭감할 수 있었지만 채권자들은 심한 경우 채권 회수 규모가 실채권액의 2.5% 수준밖에 안되는 등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결국 일차 도산파동으로 고전했던 일본의 주요 금융권들도 Sanko와 거리를 두게 됐고 결국 한때 일본 부정기해운의 간판스타였던 Sanko는 국내지지 기반이 붕괴됨에 따라 현재 이스라엘의 Ofer그룹의 자회사인 Zodiac Maritime Agencies가 대주주(15%)일 만큼 해외자본에 크게 의존하는 회사로 전환됐다. 최근 매각된 19척의 선박들 가운데 상당 부분이 대주주에게 매각된 사실도 우연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ADR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채권자들의 사전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를 위해 Sanko는 국내 선사들과의 일차 협의를 마치고 3월 16일에 일본 사업 재생실무가 협회(Japanese Association of Turnaround Professionals)에 ADR을 신청했다. 채권자 전원의 동의를 득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은 걸릴 것으로 보이나 대체적으로 이제까지 대금지급을 성실히 해왔기 때문에 채권자들의 동의를 구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란 전망이 있는가하면 채무조정 차원에서 Sanko가 요구하는 용선료 인하요구 수준이 선주의 기대와 현저한 거리가 있기 때문에 원만한 타협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실제 Capesize의 3년 정기용선의 경우 계약요율은 일일 4만 5천 달러 전후인데 Sanko가 요구하고 있는 수준은 대략 1만 7천 달러 정도라고 한다면 국내선사의 유사한 사례에서 보았듯이 선주의 용단이 그렇게 쉬울 것으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Sanko의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Sanko의 ADR 대상이 되는 선사들은 약 40%가 MOL 등 일본 국내선사 들이며(60척/391m dwt), 유럽선사들, 독일의 KG Fund, 한국선사들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당시 관행이었던 용대선 체인을 감안할 때 그 파장이 Head Owner에서 끝나지 않고 해운계 전반에 걸쳐 연쇄반응과 함께 도미노 효과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대상 조선소에는 Sasebo, Kawasaki, Hakodate, Usuki, Oshima, Universal, Keihin 등 일본의 주력조선소들이 포함돼 있다.

Sanko는 처음부터 일본해운 특유의 보수적 경영과는 달리 독자, 독보적 경영전략을 펴왔다. 석유파동으로 모든 선주들이 기피하고 있었던 유조선 발주에 적극투자했는가 하면 미국의 오염법(OPA 1990) 발효이후 일본선주들의 기피 대상이었던 ExxonMobil과 장기용선을 체결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을 유지해왔다.

1차 파동때도 시황의 저점에서 공격적이고 투기적인 대량 선박 발주 전략, 시황의 고점에서 자선보다는 과도한 장기용선 확보, 그리고 지속되는 불황과 오픈마켓 요율을 훨씬 상회하는 용선료, 이어지는 고유가, 운항비 상승 등 여러 가지 면에서 1985년의 1차 파동과 최근의 파동은 유사점이 많다. 다른 점이 있다면 주력선대 운영이 자선중심에서 용선중심으로 바뀌었고, 이번에는 사업다각화 측면에서 Offshore Support Vessel 36척이 포함돼 있으며 실제 이번 파동의 단초가 Offshore 부분에서 시작되었다는 지적도 있다.

현 ADR 절차를 주도하고 있는 Takeshi Matsui사장은 1차 파동 시에도 재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십여년에 걸친 회사재건과정의 산 증인이자 그 고통을 몸소 체험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어쩌면 Sanko의 Corporate culture와는 거리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Sanko 1차 파동의 주원인이 시장이 불원 반등할 것이라는 낙관론이었다면 2차 파동은 호황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선주가 선박의 확보를 결심할 때 고려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시황에 대한 전망이다. Sanko의 예에서 보았듯이 예상과 현실이 다를 경우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 그런 측면에서 시황에 대한 전망은 해운경영에 수반되는 다양한 리스크 가운데 가장 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고로 해운회사가 회생하는데는 장기계약, COA 등 영업권의 유지, 우수선박과 인재의 확보, 금융지원이 필수적이지만 그 중에도 최우선 사항이 금융지원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사람이나 기업의 영고성쇠(榮枯盛衰)는 세상사에서 흔히 있는 일이지만 Sanko의 두 차례에 걸친 파동은 사상 최대의 불황에 직면하고 있는 해운업계로서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교훈이다.

7. 맺음말

해운시장의 주기(cycle)가 과거 5~7년이었을 당시에는 시황의 고점에서 저점에 도달하는 과정이 완만하고 일단 전환점에 도달하면 한동안 정체상태를 유지하였으나 최근 5년 동안 시장에서 나타났던 것처럼 주기 자체도 이제는 2~3년으로 단축되었을 뿐 만 아니라 이동 패턴 역시 불규칙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투기자본의 해운진출과 선박의 건조공기 단축도 한 원인이 되고 있다.

현재 시장이 겪고 있는 불황은 작년 하반기부터 심화되기 시작해 최근에는 반환점에 근접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는가 하면 실제 컨테이너 간선항로에서는 이미 운임 인상이 가시화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전망과 달리 간선항로 운임은 당분간 더 지켜봐야 하며 회복으로 보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시각도 있는가하면 벌크선이나 탱커 분야는 적어도 향후 1~1.5년 동안 불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처럼 시장에 대해 서로 다른 전망이 존재하다 보니 신조선의 추가 발주를 보는 시각 또한 위기론과 기회론이 양존하고 있다. 흔한 비유로 1/2정도 물이 담겨 있는 컵을 보고 아직 절반이나 물이 남아있다고 보는 적극적 시각과 절반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보는 소극적 시각이 교차하고 있는 것이다.

위기론을 주창하고 있는 기존 선주의 입장에서는 수급의 불균형이 악화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어떤 사유로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하는 것은 공급과잉의 폐해보다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저원가 신예선박의 출현과 관련해 기존선주가 직면하고 있는 리스크로는 공급의 증가로 인한 선가의 하락뿐 만 아니라 경쟁력 상실로 인한 후유증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신예선박을 확보해 비경제선을 대체, 보강하거나 신규로 해운에 진출하려는 선주의 입장에서는 몇 척의 증가로 인한 전체 선가의 하락 가능성은 무시할 정도이지만(신규 진출의 경우에는 고려 대상도 아니다) 상대적으로 경쟁우위에 있는 선박을 투입했을 때 거둬들일 수 있는 효과는 대단한 것이다.

리스크 관리차원에서 금융권의 관심사는 자산가치의 유지와 원활한 원리금 회수라고 할 수 있다. 설사 불황으로 인해 디폴트 상황이 생기더라도 은행자신이 선주가 되기를 꺼리거나 해운의 비전문가이기 때문에 계약대로 처리(담보권행사)하기보다는 어지간하면 조금 더 두고보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현 시장의 상황이다. 금융권 입장에서는 자신의 채권보전을 위한 담보자산의 가치하락이 가장 우려하는 사항이기 때문에 저원가선이든 경쟁우위선박이든 불문하고 현 담보자산의 가치하락을 부추길 수 있는 선복의 증가는 환영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기존선주들이나 이들을 고객으로 갖고 있는 금융권은 신예선의 발주에 대해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 최근 개최된 런던회의에서 한 선박금융 전문가는 지금 발주하는 선주를 ‘stupid’ 선주라고 비판한바 있다(We need to get rid of stupid shipowners ordering stupid ships we don't need-Eirik Eide, Ship Finance International CFO).

국제무역상품의 핵심 운송수단, 제4군설, 외화획득에 대한 기여, 내셔널리즘에 근거한 해운에 대한 미사여구적 주장은 금융권에게는 별로 와 닿지 않는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최근 해운을 지원하기 위해 추진했던 1000억원대의 선박펀드 재원을 일부 정기노선에서 운임이 일시 반등현상을 보이자 간단히 없던 일로 되돌린 이면에는 금융권의 해운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는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해운은 주기적으로 순환하는 산업인 만큼 멀지 않아 시장이 다시 회복할 것이니 그때까지 발주를 자제하며 조용히 기다리자는 다수의 기득권자들은 “해운산업의 순환성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그 주기는 항상 동일한 패턴으로 순환하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불확실한 장래에 대처하기 위해 기존의 고원가 선박, 경쟁력이 낮은 선박들을 하루 빨리 운항비용이 저렴하고, 사회에 보다 낳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신형선박으로 대체하는 것이 해운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이나 사회에 대한 해운계의 책무이며 구형선박을 신형 에너지 효율선박으로 대체하면서 더 낳은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반론에 대한 답을 찾기가 궁해질 것 같다. 과거사례를 통해서 입증됐듯이 해운산업은 자정기능(self-correcting)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해서는 안된다.

작금의 시황이 위기인지 새로운 경쟁시대를 대비할 수 있는 기회인지에 대해서는 각자 나름대로 자기가 처해있는 여건에 따라 시각이 다를 수는 있지만 흑백논리로 속단할 성격의 것은 아닌 것 같다. 누구나 자기가 옳다고 또는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하면 그대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이 자유시장(free market)의 기본이지만 선택에는 그에 상응하는 리스크가 따르기 마련이다. 선택권을 행사하였으면 그로 인한 리스크 또한 감수해야 하는 것이 순리이며 중요한 것은 자유 시장에서 살다보면 자유시장이기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자의적 판단으로 선택할 때에는 자유시장 논리를 주장하다가 우려했던 리스크로 인해 곤경에 처하게 되면 Sanko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내셔널리즘이라거나, 보호주의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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