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둥이 서러움

▲ 캐롤몬시뇰과 이경재(우)신부 동상앞에서 성라자로돕기회 회원들.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이 그리워 필 닐니리
인간사(人間事) 그리워 필 닐니리⋯

시인 한하운은 문둥이의 서러움을 피맺히게 토해낸다. 오그라진 손, 비뚤어진 입, 코 빠진 문둥이들의 가면극에서 ‘병신 된 이 몸이 양반인들 무엇 하며, 재산인들 무엇 하랴’란 사설(辭說)이 서럽다.

애 간을 먹으면 문둥병이 낫다는 구전(口傳)이 문둥이를 증오케 했다. 애들은 문둥이에게 돌팔매질을 했다. 어른들은 밥 얻어먹으러 온 문둥이를 침 뱄고 소금 뿌리고 부지깽이로 내쫓았다.

어릴 때, 문둥이가 날 잡으러왔다. 도망치려해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붙잡혔다. 무서워 벌벌 떨며 ‘살려줘!’라고 외친 내 고함소리에 내가 놀라 눈을 떴다. 꿈이었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돼 있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의 행적을 알게 됐다. 여수에 있는 나병시설 애양원에서 목사님은 “세상에서 버림받고 모든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그래도 저는 저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며 문둥이의 피고름을 입으로 빨았다. 살아있는 예수님이었다.

목사님은 일제 때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옥고를 치렀다. 여수‧순천 반란 때 좌익이 두 아들을 총살했다. 그 살인범을 용서하고 양자로 삼았다. 6‧25전쟁 때 인민군이 이 성자(聖者)를 사살했다.

가톨릭은 이 성자를 왜 성인(聖人)으로 서품하지 않을까? 가톨릭 성직자가 아니기 때문에? catholic이란 보편성(普遍性)은 어찌하고! 많은 과오가 있었음에도 교황은 무류(無謬)라 했다. 2천년을 이어온 가톨릭의 독선을 요한바오로2세 교황께서 무너뜨렸다.

소록도에서 눈, 코, 팔다리가 뭉그러진 나환자들을 봤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저렇게 처참할까! 며칠을 먹는 것도, 잠자는 것도 힘들었다. 나도 문둥이가 되지 않을까 하고 두려웠다.

성라자로마을을 찾아가 미사를 드렸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그들은 병이 치유되어도 흉하게 일그러진 몰골로 가정과 사회로 돌아갈 수 없다. 문둥이가 집안의 수치라고 사망신고를 해 호적에서 제적됐다.

이경재 원장 신부님의 환우들에 대한 사랑과 열정에 감동된 나는 성라자로돕기회 회원이 됐다. 성라자로마을에서 황대주 요나(세례명)를 만났다. 그는 1919년에 태어나 어렸을 때 소록도로 보내졌다. 엄마 보고파, 고향 그리워 많이 울었단다. 일본인이 나환자들을 채찍질하며 강제노역을 시켰다. 해방이 되자 나환자들이 일제의 상징인 신사(神社)를 부숴버리고 수백명이 소록도를 탈출했다. 요나도 탈출하여 그리던 고향을 찾아갔으나 고향은 그를 반겨주지 않았다.

올데갈데없어 유리걸식하던 나환자들이 메리놀 외방전교회 캐롤 몬시뇰님께 집단부락을 설립해 줄 것을 간청했다. 다행이 사회부장관으로부터 요양소 설립인가를 받았다. 미군 트럭에 짐을 싣고 요양소로 들어가려는데 주민들이 막아섰다. 차가 못 들어오게 곡괭이와 삽으로 길을 파버렸다. 요양소가 들어오면 동네가 망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서장이 무장경찰관들을 인솔하고 출동하여 빨갱이들의 소행으로 간주하고 잡아넣겠다는 극양처방을 해 간신이 들어갔다.

그러나 주민들은 샘물을 못 먹게 하고 시장에서 생필품도 못 사게 했다. 캐롤 몬시뇰님은 이 딱한 사정을 알고는, 의왕시 모락산 기슭에 8만 2천 평을 사주었다. 그 땅이 지금의 성라자로마을이다.

초대원장으로 부임한 이경재 신부님은 신학생 때 다미앙 신부님의 전기를 읽고 감동했다. 다미앙 신부님은 하와이군도 몰로카이 섬에서 나환자들의 치료와 간병, 시신매장과 집수리 등 온갖 궂은일을 도맡았다. 문둥이를 17년간 섬기다 끝내 문둥이가 됐다. 다미앙은 나환자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

▲ 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이경재 새내기 신부님은 거칠기만 한 나환자들을 감당할 수 없어 제대에 엎드려 울기도 했다. 그러다 신부님은 도중하차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17년 후, 신부님은 성라자로마을로 돌아왔다. 움막과 판자촌에서 헐벗고 굶주리는 상황은 17년 전과 다를 바 없었다. 신부님은 국제거지란 별명을 이마에 붙이고서 미국, 유럽, 일본을 찾아 도움을 청했다. 황량했던 성라자로마을은 기적처럼 ‘축복의 땅’으로 변모됐다. 요나는 성라자로마을의 역사와 자신의 인생을 남의 이야기하듯 말하다 끝내 어깨가 파도쳤다.

신부님은 ‘그대 있음에’란 자선음악회를 개최했다. 거기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후진국 나환자를 돌봤다. 선진국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후진국에 되갚기 위함이었다. 월남 중국 네팔 인도의 나환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처참했다. 신부님은 산불에 탄 나뭇등걸처럼 새까맣게 병든 손발을 어루만졌다. 나도 따라 할 수밖에 없었다.

문둥이의 서러움을 어루만져주는 사랑의 행렬은 세상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하여, 세상이 아무리 험악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 세상은 아름답다.

저작권자 © 한국해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