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법학박사), 싱가폴국립대학 법과대학 방문교수

▲ 김인현 고려대 교수
자유경제체제의 대원칙은 계약자유의 원칙(사적 자치<(私的 自治> 원칙이라고도 한다)를 허용하는 것이다. 계약을 체결함에 있어서 당사자들이 원하는 것은 법이 개입하지 않고 당사자들의 뜻대로 효력을 인정하여 준다.

이러한 원칙은 운송계약에서도 지켜진다. 강행규정에 위반하지 않는 한 당사자의 약정은 그대로 효력을 국가가 인정한다. 당사자들이 그 규정과 다른 약정을 체결하면 국가는 그 다른 약정을 인정하지 않게되는 바로 그 규정을 강행규정이라고 한다. 강행규정은 경제적인 약자인 소비자를 보호하거나 공서양속을 지키기 위하여 필요하다.

운송인이나 선박소유자가 선박에 대하여 감항능력을 갖추어야할 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강행규정에 속하는 것으로 선박소유자가 약정으로 이를 면할 수 없다. 계약자유의 원칙에 놓여있는 대표적인 업종이 용선계약이다. 용선계약의 당사자인 선박소유자와 용선자는 모두 전문해운회사와 전문화주들(혹은 선박회사)이기 때문에 법이 개입하지 않고 당사자들이 약정한 대로 효력을 인정한다.

최근 해운 조선산업에서 이러한 계약자유의 원칙이 산업전체와 국가적으로 보아서 오히려 해악을 낳는 결과가 나타나 기존의 원칙에 대한 조정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여러 차례 하게 되었다.

첫째, 2-3년 전에 문제가 된 긴 용선체인의 문제이다. 선박소유자에서 최종 화주에 이르기까지 용선계약이 10여 차례에까지 체결되어 용선료가 거품을 형성하였다가 세계경제의 급락에 완전히 붕괴된 아픈 경험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선박소유자가 제1 정기용선자에게 용선료를 받고 용선을 하여 준다. 제1용선자는 다시 제2용선자에게 조금 더 비싼 용선료를 주고 선박을 정기용선하여 준다. 제2용선자는 다시 제3용선자에게 웃돈을 붙여서 선박을 재재용선하여 준다. 이렇게 하면서 최종단계에서의 용선료는 처음 용선료보다 몇 배가 더 비싸게 되었다. 세계경기의 폭락으로 최종단계의 운송계약이 체결되지 않던가 운임이 내려가게 되면 용선료가 지불되지 않는다. 결국 선박소유자는 용선료를 받지 못하면서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용선료차액을 노리면서 여러 차례 용선계약이 체결된 것이 문제였다. 이러한 긴 용선계약의 체결을 계약자유의 영역으로 그대로 둘 것인가? 최근에는 선박소유자가 정기용선을 주면서 하방의 용선계약을 3회 이상 맺지 말 것이라는 등의 약정을 체결하는 경우가 있다.

1980년대 초 용선계약을 주영업으로 하였던 소위 3S해운회사들이 도산되면서 우리 해운업계는 해운산업합리화조치를 당한 아픈 기억이 있었다. 비슷한 상황을 해운업계가 또 다시 경험하면서 현재의 어려움하게 놓이게 된 것이다.

언젠가는 해운호황이 또 찾아올 것이다. 우리 업계는 10년 뒤에 또 이와 같은 쓰라린 경험을 또 반복할 것인가? 용선체인이 지나치게 길어지지 않도록 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야 하지 않는가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둘째, 최근에 우리나라 대량화주가 일본의 선박회사에게 장기운송권을 주었다고 비난여론이 거세다. 그런데 필자는 그 대량화주를 비난하기에 앞서 왜 또 같은 일이 반복되는가하는 의구심이 먼저 든다. 이는 이미 수년전에도 있었던 일이고 작년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선화주 공생발전을 위한 토론회가 국회에서 개최된 바도 있다.

장기운송계약은 기본적으로 항해용선계약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계약자유의 원칙에 따라서 경쟁법의 문제가 없는 한 우리나라 대량화주는 자유롭게 공개입찰을 통하여 자신이 제시한 조건에 맞는 자와 장기운송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외국선박회사와 운송계약을 체결하여서는 안된다는 법도 없고 해운의 국제성 때문에 외국 선박회사를 입찰자체에서 배제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국적해운회사들이 중국, 브라질 등의 대량화주와 장기운송계약을 체결하여 외국의 대량화주의 화물을 운송하는데, 우리 화물은 외국의 선사들이 운송하면 안된다고 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해운산업이 어려운 현재 상황에서 10년간의 장기운송계약을 체결하게 되면 얼마나 안정적인 경영이 될 것인가? 결과적으로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모든 계약이 체결된 다음 우리는 그 대량 화주를 비난하고 있을 것인가? 왜 동일한 일이 반복되는가? 계약자유의 원칙의 영역에 일임하여서는 국익에 지대한 악영향이 있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법적인 영역까지 가기 어렵다면 선주단체와 대량화주단체들이 양해각서를 체결하여 서로 윈윈하는 내용을 약정하면서 서로를 구속하는 방법은 없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셋째, 해운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누구나 짧은 호황에 긴 불황이 반복되는 것이 해운산업의 특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물동량에 맞추어 선복이 쉽게 조절되지 않는 것도 그 이유의 하나일 것이다. 이미 10년전, 5년전 우리나라 남해안과 서해안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지고 늘어나는 중소 조선소에 전문가들은 많은 우려를 표시한 바 있다. 그리고 선복이 2~3년내에 과잉되어 큰 문제가 된다고 하여도 선주들의 신조발주는 계속하여 늘어나는 것을 보아왔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의 불황이다.

5년 뒤에 해운불황기가 온다는 것이 명확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왜 신조발주를 계속하게 되는가? 적절한 수급을 위하여 신조발주를 억제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장려하는 그런 제도적인 장치를 가질 수는 없는가? 국제조약의 형태로 조절이 불가하다면, 은행이 선주들에게 건조자금을 제공할 때 수급을 조절하는 형태의 국제적인 규모의 협정을 체결할 수 없는가?

선박의 수급을 완전한 사적 자치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현재 제도의 결과는 해운 조선산업의 불안정성을 배가하고 있다. 경쟁력이 없는 해운기업이나 조선소가 도산되고 선박이 해체되면서 수급을 맞추어가는 현재의 자유방임 체제는 너무나 힘든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법제도는 경제생활을 하는 우리 인간들에게 예측가능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많은 규정을 만든다. 법률관계의 효과나 결과가 예측가능하다면 인간은 더 영리하게 미래에 대비하면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해운 조선산업은 불황이 온다는 것을 예측하면서도 왜 그 불황을 피하지 못하는가? 해운조선산업이 다른 경제와 밀접히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불황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불황을 피하거나 이겨낼 수 있는 법적 제도적인 장치를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해운산업과 조선산업은 국제무역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국가적인 문제이면서도 동시에 전 지구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해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국제적인 규모의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어 안정적인 해운업을 위하여 노력하여왔다. 이러한 제도적인 장치는 국제조약의 형태로, 혹은 양해각서의 형태도 있다. 바다에서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국제해상충돌예방규칙(COLREG), 선주의 손해배상책임을 경감하여 주기 위한 선주책임제한제도(LLMC), 공동해손정산을 위한 요크안티워프규칙, NYPE 표준정기용선계약, 안정적인 정기선운항을 위한 해운동맹 그리고 선박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의 항만국통제를 위한 도쿄 양해각서(MOU) 등과 같은 것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법적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함에 있어서 우리나라 혼자서 혹은 해운산업 조선산업만으로는 처리할 수 없다고 스스로 포기하여서는 아니된다. 지금 우리 조선산업은 세계1위이고 해운은 선박보유량으로 세계 6위라고 우리가 자랑하고 있지 않은가? 국제무대에 나가면 다른 국가들은 한국의 입장이 무엇인지 항상 궁금해한다. 그 만큼 우리나라 산업이 세계적인 지위에 있기 때문에 다른 국가들이 우리가 어떠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간 이룩한 위대한 업적을 자랑하는 것은 잠시 접어두고 빠진 것은 없는지 주위를 둘러보면서 성찰을 하고 도약을 위한 조치를 취하여야 하는 시점에 와있다. 외형적인 하드웨어(해운 조선산업의 외형)에 걸맞게 모든 소프트웨어(법적 제도적인 장치 포함)가 갖추어져야 그 외형적인 하드웨어도 유지되는 것이다. 그 소프트웨어는 해운기업에게 장기운송 계약권을 확보하게 하여 안정적인 영업활동을 가능하게 할 것이며 대량화주들에게도 낮은 운임등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이다. 또한 지나친 용선경쟁 및 신조투자를 억제하여 해운기업과 조선기업의 도산을 방지하게 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안정된 경영이 되게 할 것이다.
위에서 예시한 세가지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풀기위하여는 관련자들의 진지한 대화를 통하여 도출된 법적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위 세가지 영역에서 사적자치의 원칙은 최적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제한하는 법적 제도적인 장치를 찾아야만 한다. 그 장치는 양해각서일 수도 있고, 세제상의 혜택부여도 될 수 있고, 국제조약의 형태도 있을 것이다.

현재까지 우리 해운 조선산업은 정말 잘 하여왔다. 우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였다. 그런데, 몸은 커서 대학생이 되었는데 아직도 중학생의 교복을 입고 있어서는 아니 된다. 우리는 우리가 이룩한 해운산업 세계 6위, 조선산업 1위라는 외형을 뒷받침 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가 이룩한 이 해운조선산업을 그대로 지켜나갈 수 있고 세계를 향하여 더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20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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