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대학원 양창호 교수

▲ 양창호 인천대 교수
1999년 네델란드 델프트 공대의 Niko Wiinolst 교수 등은 말라카막스(Malaccamax)라고 명명한 243,000 dwt의 1만 8천 teu 컨테이너선 설계를 발표하였다. 컨테이너선 항로가 운하나 해협의 수심에 의해 제약이 되는 점에 착안하여 말라카해협의 21미터 수심을 제약조건으로 두고 최대선형을 설계한 것이다. 이 선박이 유럽과 극동간에 운항하기 위해서는 수에즈 운하 수심이 21미터가 되어야 하는데 당시에는 2010년까지 준설이 완료될 계획이었다. 따라서 1만 8천 teu 선박이 2010년 이후에 운항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 했다. 실제로 이 예측은 거의 맞아 떨어져, 2011년에 머스크 라인에 의해 20척의 1만 8천 teu 급 선박이 발주되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해운에서 컨테이너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만들어 낸 혁신은 선박이외에도 장비, 항만 터미널, 내륙연계 복합운송 등 여러 분야에서 일어났다. 1950년에 미국의 맥린(Mclean Industries)사가 유조선을 개조한 선박(Ideal X)으로 컨테이너 연안서비스를 최초로 시작하였고, 3년 후에 알라스카 스팀쉽(Alaska Steamship)은 재래화물선으로 첫 번째 컨테이너 수송서비스를 시작하였다. 이어서 1958년에 맷슨(Matson Navigation)사가 하와이까지 컨테이너 운송서비스를 하였고, 시랜드(Sea-Land)사가 1957년에 풀 컨테이너선을 처음으로 건조하고 운영하였다, 이후 10년 후 1966년 5월 3일에 북유럽 로테르담까지 컨테이너 원양서비스가 개시되었다.

컨테이너 선박으로 보면 1968년에 유럽에서 설계, 건조된 하팍로이드(Hapag Lloyd)사의 736teu 선박(Alster Express호)이 제1세대 선박이고, 바로 이어서 오버시즈 컨테이너(Overseas Containers Ltd)사의 1,530teu 선박(Encounter Bay호)이 제2세대로, 그리고 1973년에 인도된 3,430teu 선박(Nedlloyd Dejima호)이 제3세대 선박으로 탄생한다. 몇 년 사이에 컨테이너선 건조에 규모의 경제라는 혁신이 빠르게 일어난 것이다.

맥린(McLean)사가 컨테이너 해상운송을 고안해 내게 된 동기는 장거리 트럭운송에 대한 미국 연방통상위원회(ICC)의 허가, 비용 등 규제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유럽 선주들이 컨테이너 시스템에 뛰어든 것은 다른 동기이었다. 그들은 여러 해 동안 재래 일반화물선에 대한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였지만, 혁신이라는 측면에서 성공하지 못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맥린 사가 컨테이너 시스템을 개발한 최초의 회사로, 그리고 시랜드 사는 스프레더 작동을 자동화 할 수 있도록 하는 트위스트 락을 처음으로 고안했고, 맷슨 사는 1959년에 최초로 A자형 구조의 켄트리 크레인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1968년에는 시랜드 사가 Port Elizabeth에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터미널을 건설하였다. 이와 같이 초기 컨테이너 해운의 혁신은 선박, 장비, 항만터미널, 그리고 내륙 복합운송에서 동시에 일어난 것이다.

오늘날 슈퍼포스트 파나막스라고 불리는 제7세대 1만 4천 teu급의 컨테이너선이 운항중이다. 여기에 머스크라인이 1만 8천 teu 선박을 발주해두고 있어 컨테이너선의 혁신 화두가 아직 대형화에 매여 있는 듯하다. 컨테이너선의 혁신이 수송 단위당 운송비를 절감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효과가 있는, 더 큰 선박을 개발하는 일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이러한 극 초대형 컨테이너선들이 그 많은 화물을 어떻게 확보해야 하는지, 항만 및 배후지물류에 어떠한 투자를 해야 하는지, 화물 적재율을 얼마로 가져가야 하는지, 그리고 기항 항만수를 몇 개로 해야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하고 있다.

1만 teu가 넘는 초대형선박이 6천-8천 teu 선박이 운항하고 있는 방식대로 선단을 운영하고, 기항하던 항만에 전부 입항한다면,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고자 한 초대형선은 오히려 규모의 비경제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모선이 모든 항만에 기항하는 대신 허브항만에만 기항하는 허브 앤 스포크(Hub & Spoke) 방식으로 운항하고 상당량의 화물을 피더운송으로 해야 할 것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1만 teu급 이상 선박이 기항항만 수를 줄이지 않고 기존 항만에 모두 기항하고 있다. 즉 규모의 비경제가 나타날 수 있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괴리는 컨테이너선의 혁신이 극 초대형선을 개발, 건조하는 일에 중점을 두고 있으나, 컨테이너선 해운은 선박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선박이 비교우위 경쟁력을 갖춘다는 것은 물동량과 항만과 배후지 물류와 균형이 맞아야 한다. 따라서 초대형선으로 허브 앤 스포크 운항을 하기가 어렵다면 초대형선보다는 적합선형 개념을 다시 들쳐봐야 할 것이다.

대만의 에버그린사는 지금까지 1만 teu 이상 초대형 컨테이너선에 대해 범용성이 떨어지는 제약성 때문에 초대형선 운영에 부정적인 자세를 취해 왔다. 그러던 에버그린사가 최근 1만 3,800 teu 급 선박 10척을 장기용선을 하기로 하고, 용선주는 이를 바탕으로 선박을 발주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많은 선사들이 원가경쟁력이 우수한 1만 8천teu 선박 대신, 1만 3천-1만 4천 teu 급 선박을 발주하고 있는 것이다. 화물 적재율 하락에 따른 적자 리스크 때문에, 나름대로 초대형선중에서는 집하경쟁력을 갖춘 최대선형이라 판단한 듯하다. 그러나 여전히 1만 4천 teu 급 선박도 투입 항로가 아시아-유럽 항로에 한정되기 때문에 범용성이 높은 선형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수심제약이 있고 크레인 제약이 있는 항만에도 입항이 가능한 선박, 그리고 원양항로를 운항할 수 있고, 연비도 크게 개선할 수 있는 선박이라야 범용성이 높은 선박이 아닐까? 장거리 노선에 투입할 수 있어 화물 적재율을 높일 수 있는 동시에, 여러 항만에 기항이 가능하고 연료효율도 좋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선형이 적합선형의 개념일 것이다. 그리고 이 적합선형은 하주의 공급체인관리(SCM) 상 해상운송 및 연계운송 서비스에서 비용과 시간을 절감시켜, 하주에게도 이익이 될 수 있도록 개발되어야 그 활용도가 높아질 것이다. 이것이 선주에게는 수익성 리스크를 줄여 주고, 하주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 할 수 있는 진정한 컨테이너선 해운의 혁신방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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