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대학원 양창호 교수

▲ 인천대 양창호 교수
2012년 4월 말 싱가포르 해사국(MPA)과 싱가포르 해사협회(SMI)는 공동으로 향후 10년을 내다 본 차세대 컨테이너 항만(Next Generation Container Port)의 아이디어 공모에 나섰다. 세계 1, 2위를 다투는 컨테이너 항만이 차세대 컨테이너 항만으로 변신하기 위해 터미널의 우수성, 생산성 그리고 지속가능한 비약적 도약을 이룰 수 있는 기술개발의 방향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모하고 있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항만개발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인은 인구증가이다. UN의 예측에 따르면 2050년까지 인도의 인구는 12억 명에서 16억 명으로 늘어나 중국의 인구를 능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현재 세계 컨테이너 시장 점유율이 3%에 불과한 동남아시아의 경우, 2050년에 가면 인구가 22억 명으로 증가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가 늘어난다는 것은 소비가 늘어난다는 것이고 이는 곧 항만에서 처리해야 할 컨테이너 물동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새로운 항만건설이 불가피하게 됨을 의미한다. 2011년 세계 컨테이너 항만의 처리 물동량은 약 5억 9천만 teu로 2010년에 비해 7% 증가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매년 5%씩만 증가한다고 해도, 15년 후가 되면 항만처리 물동량은 현재의 두 배까지 늘어나게 된다.

항만개발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인은 초대형 컨테이너선이다. 2년 후면 기념비적인 초대형선인 머스크 라인의 18,000 teu 선박이 시장에 나오게 된다. 그러나 항만들은 이와 같은 선박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 실정이다. 초대형선박의 출현으로 항만이 풀어야 할 숙제가 생긴 셈이다. 초대형선이 입항하면 같은 시간 내에 처리해야 할 물동량이 급격히 늘어나는 피크에 걸릴 것이기 때문에, 선박 하역작업, 야드 장치작업, 항만 배후지로까지의 이송, 연계작업 등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대형 컨테이너선은 크기가 달라져도 조선소에서 2-3년이면 건조되어 팝콘 튀어나오듯 시장에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초대형선에 맞는 컨테이너 항만을 설계하고 건설하는데 많은 기간이 요구되기 때문에, 항만이 매번 새로운 컨테이너선에 맞추어 개발될 수는 없다. 따라서 싱가포르 항만처럼 앞으로 10년의 미래를 예측하고 그에 맞는 항만개발계획을 세우는 것들이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컨테이너 선사들이 초대형선을 발주하여 teu당 수송단가를 줄이는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고 있지만, 이런 추세는 항만 운영자에게는 오히려 시간당 처리량을 늘려나가기 위해 더 많은 장비를 투입해야하는 규모의 비경제를 유발시킨다. 이에 항만은 안벽크레인을 초대형선에 맞도록 크기를 늘려오고 있고, 인양능력도 높여가며, 컴퓨터에 의존하는 자동화 작업으로 대체해 가고 있다. 그러나 항만에게는 항만개발, 장비, 운영면에서 계속 새로운 모습으로 업그레이드되어야 하는 부담이 지워지고 있는 것이다.

미래를 내다보는 항만개발계획은 초대형선이 요구하는 생산성을 예측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요구하는 생산성을 항만개발계획에서 구현해야 한다. 특히 초대형선이 요구하는 생산성은 항만 내 뿐 만 아니라 최종 목적지까지 연계운송 되는 내륙연계, 피더운송연계, 항만배후지 연계와 관련된 생산성을 포함해야 한다.

그리고 이때 필요한 기술개발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컨테이너 항만에서 사용되는 장비, 운영시스템은 40년 전 개발된 기본 개념에서 크게 진보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안벽 크레인의 경우 크레인의 A자형 구조나 스프레더를 사용하는 설계가 1960년대 초에 개발된 개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접안선박의 규모가 평균 네 배 이상 증가했지만 안벽 크레인의 생산성은 지난 20년 동안 큰 진전이 없었다. 또한 1970년대에 확립된 컨테이너 야드장비(RMG, RTG 등)도 기본 원리에서 큰 변화가 없는 실정이다. 비록 네델란드의 ECT나 독일의 CTA 터미널에서 자동이송장비(AGV)등의 운반수단의 혁신을 가져 왔지만, 터미널에 4단적 혹은 5단적으로 쌓는 수직, 수평이동의 기본방식은 변화가 없다.

미래 컨테이너 항만을 설계할 때 항만에서 컨테이너 취급 시스템의 근본적인 기술혁신이 필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과는 다른 항만생산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안트워프 대학의 노테붐(Notteboom) 교수는 자신의 한 논문에서 2015년까지 글로벌 허브 터미널에게 요구되는 생산성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1) 24시간 내에 5,000개의 컨테이너를 지속적으로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2) 안벽크레인의 생산성은 총 작업시간 당 40개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3) 선박의 선석 접안시 작업시간비율이 90%를 넘어야 한다. (4) 모선에 대한 평균 작업 안벽크레인 수가 6개가 되어야 한다. (5) 선석당 년간 처리물동량이 150만 teu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컨테이너 터미널의 크기가 안벽길이 400미터 이상, 그리고 터미널 부지의 폭도 1킬로미터까지 늘어나야 한다.

우리나라 부산항의 경우 크레인 당 총 작업시간 생산성은 25-30개 정도이다. 여기에 선박 당 평균 크레인 수는 3-4개 정도이다. 24시간동안 작업량을 최대로 잡아도 2,800개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위한 허브항만이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현재의 생산성을 두 배 이상 높일 수 있는 근본적인 기술혁신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경우 대부분 트럭운송에 의존하는 항만배후지까지의 연계운송은 과거 방식을 답습하고 있으며, 내륙철도운송이나 연안운송, 그리고 피더운송 역시 기술적으로 큰 진전이 없는 분야이다.

우리보다 새로운 기술적용에 힘써왔던 세계 수위의 싱가포르 항만도 미래를 위한 변신을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항만은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을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와 항만공사, 그리고 터미널 운영사들도 최소한 10년 정도는 내다보는 안목으로 스마트한 새로운 개념의 컨테이너 항만설계 및 컨테이너 시스템과 운영기술, 그리고 내륙 및 피더 연계운송기술을 개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의 패러다임이 시급히 바뀌어야 한다. 항만정책이 선석위주의 양적 개발정책에서 벗어나, 예컨대 선석 당 150만 teu를 처리하는 등의 질적 개발정책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광범위한 기술개발(R&D) 투자에도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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