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대학원 양창호 교수

▲ 양창호 인천대 교수
문민정부 이후 ‘동북아 물류중심국가’ 건설이 정부 주요정책으로 자리 잡은 후 참여정부까지 이 정책은 항만, 물류정책의 주요한 정책이념으로 이어져 왔다. 중국 일부 인사들은 우리가 ‘물류중심’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에 대해, 중국의 환적물량을 처리하는 항만이 어떻게 ‘중심’인가 하며 이의를 제기 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동북아의 지리적 중심에 놓여 있는 장점을 살려 미래 성장동력의 한 축으로 삼겠다며, 이 정책의지를 고수해 왔다. 물론 아직도 이 이념은 여러 물류, 항만정책에서 암묵적으로 이어져 오고는 있지만, 이번 정부 들면서 이 항만개발 국가비전은 명시적 정책으로는 사라져 버렸다.

우리가 항만정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나라는 항공을 빼면 모든 대외교역활동이 항만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항만의 건설이 물류의 발달을 가져오고 지역경제의 발전을 위한 저비용의 물류를 지지해 주며 도시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또한 항만주변 지역에 대량 생산 및 가공, 유통기업의 클러스터가 형성되어 임항지구에서의 고용창출로 인한 지역경제 활성화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만약 우리 항만에 초대형선 등 선박이 기항하지 않는다면 우리항만 배후지에서 제조, 조립하던 공장들이 다른 나라 항만을 경유해 화물을 받고 보내야 한다. 이 불편 때문에 기업들이 선박이 직접 들어오는 상해항 등 인근 허브항 배후지로 옮겨갈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물류중심화하여 고용을 창출하기는 커녕, 오히려 고용기회를 잃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물류중심화 정책은 중심항, 허브항의 위상을 강화해 나갈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우리나라 컨테이너 허브항 정책은 '전국항만 기본계획’에 의해 구현되는데, 작년에 고시된 향후 제3차 항만기본계획에서는 부산항을 ‘선택과 집중’ 차원에서 경쟁력이 있는 대표 허브항으로 위상을 강화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즉 2020년까지 앞으로 10년간 우리나라의 국제 컨테이너 허브항은 부산항으로 삼겠다는 정책이다.

부산항은 북중국 등 중국의 수출입화물의 동북아 최대 환적중심항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많은 원양 수출입화물이 부산항에서 환적되고 있다. 이에 따라 부산항은 작년 12월 세계에서 5번째로 1,500만 teu를 넘어선 항만이 되었다. 2020년 까지 부산항 물동량은 전국항만기본계획으로 2,500만 teu 까지 늘어나는 것으로 되어있다. 부산항이 향후 10년 동안 1,000만 teu 물동량을 늘려나가야 한다. 부산항 수출입물동량을 지난 8년간 증가율 3.8%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 2010년의 784만 teu에서 2020년에는 1,138만 teu로 354만 teu가 늘어날 수 있다. 결국 나머지 650만 teu는 환적물동량으로 채워져야 한다. 이럴 경우 2020년의 부산항 환적물동량은 총 1,280만 teu 까지 늘어나야 한다.

그러나 부산항 환적물동량을 이같이 계속 늘려 나가기에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해운항만환경이 매우 어둡다. 동북아 지역에 1만 teu급 이상 전 세계 모든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들어오고 있으나 이들 선박들은 환적비용을 줄이기 위해 직기항, 또는 피더운송거리가 가까운 곳에서 환적을 하기위해, 북중국 환적시 부산항 대신 상해항, 혹은 그 보다 더 북쪽의 항만에 기항하려는 경향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 상하이 양산항이 부산항의 강력한 환적 경쟁항으로 부상할 준비를 하고 있다. 중국 재정부(Ministry of Finance), 해관총서(General Administration of Customs), 그리고 국가세무총국(General Administration of Customs)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관세환급에 대한 새로운 항만정책이 8월 1일자로 상하이 항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되고 있다. 현재까지는 중국의 수출화물이 해외항만으로 출발되어야 관세환급을 해주었으나, 이제는 상해 양산항을 환적 목적항으로 하여 출발하여도, 출발지 항만에서 관세환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즉 산동성의 칭다오항이나 허베이성의 우한항에서 수출화물이 양산항으로 떠나면 출발항에서 바로 관세환급을 받을 수 있도록 혜택을 주는 제도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양산항은 중국 수출화물 환적항으로서의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게 되며, 지금까지 중국 수출화물 환적물동량의 80%를 처리하던 부산항의 경우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일본의 경우도 자국화물의 부산항 환적을 되찾아 오고 나아가 부산항에 필적할 만한 환적 중심항을 건설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일본정부가 국제 컨테이너 전략 항만으로 한신항(코베항, 오사카항 등)과 케힌항(도쿄항, 카와사키항, 요코하마항) 등 2개 항만지역을 선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 항만으로는 부산항의 지위를 위협할 수 없다고 보고, 부산항 바로 앞의 북부 큐슈에 하카타 같은 곳에 허브항만을 건설하는 대담한 시책도 논의가 되고 있다. 부산항 화물을 가져오자는 얘기이다.

허브항 항만정책의 핵심은 임항지역 고용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선박기항 특히 초대형 컨테이너선 기항을 유도할 수 있는 행정적 판단을 수시로 내릴 수 있어야 한다. 특정항만에 대한 하드웨어 투자를 집중하는 정책과, 글로벌 화주가 항만 및 배후지에서 활동을 하는데 만족할만한 비용수준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동시에 초대형선을 운항하는 선주에게 재항비용 절감과 항만서비스를 높여 주는 정책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초대형선 기항 패턴 변화로 부산항 이외 항만을 선주 및 화주가 허브항으로 선호하는 변화도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10년 전만해도 중국 장강을 샅샅이 뒤져 우리 항만에서 환적할 수 있는 컨테이너 물동량이 있는지, 그 비즈니스 모델은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홍보하며 항만을 키워왔다. 우리의 항만을 동북아 물류중심항만으로 키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현재의 허브항 정책은 여러가지 가능한 대안과 방법을 고려할 수 없게 만드는 정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예산의 ‘선택과 집중’으로 부산항만 키워보자는 경직된 정책으로는 급변하는 항만물류를 둘러싼 환경변화를 주도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 ‘동북아 물류중심국가 정책’이란 항만개발 국가비전을 다시 세워야 한다. 정책추진의 동력은 국가비전이 굳건하게 세워져 있을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중국 관세환급 조치 변경으로 인한 부산항 환적물동량 둔화에 대한 대비책, 초대형선 기항을 유도할 항만 첨단화 투자 및 항만기술 R&D 정책, 북중국 환적 전용 신항만 개발, 선주, 화주의 만족도 제고를 위한 항만정책들도 지역주의적 사고가 아니라 항만개발 국가비전 속에서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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