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詩

▲ 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아내가 손바닥만 한 쪽지에 무언가를 적어두었다가 읽으며 날더러 들어보란다. 한 두 번도 아니고 간간히 그렇게 한다. 귀찮아 그만 두라고 퇴박했다간 토라지면 득 될 것 없어 그저 듣는다. 가만히 들어보면 순간순간 생각난 것을 낙서한 것들이다. 글이 짧고 제법 운율이 있는 것으로 봐 산문은 아니고 시다. ‘이 여자가 갑자기 시인이 되려고 이러나!’ 싶어 어안이 벙벙하다. 그것들 중 하나가 ‘외로움’이다.

바람이 유리창을 두드려
안으로 들어오라 했다
햇살도 함께 들어왔다

할머니! 혼자 외로워?
바람과 햇살이 묻기에
인생은 원래 그런 거지 라 했다

이 사람 저 사람이 주는 친절은
마음에 저금해 두었다가
외로울 때 꺼내 쓰지

너희도
그렇게 저금해봐
연금보다 나을 터이니

내가 시에 문외한이라 잘잘못을 말할 수 없지만, 아내가 몹시 쓸쓸한가 보다. 내가 옆에 있는데도. 나 역시 고독하고 우울할 때가 많다. 부부가 일심동체라 하는데도, 한 이불 덮고 자식 낳아 기르며 웃고 운 세월이 반백년이 가까워 온다. 부모와 자식과 함께 산 세월이 그렇게 오래일까?

좋았던 순간 순간들은 다 잊고 상처받고 아팠던 기억들만 남아서인가? 다른 부부들도 다 그럴까? 문을 조금만 삐쭉 열어놓고 마음을 주고받으면 맺혔던 응어리가 눈 녹듯 살아질 텐데, 그걸 못한다. 남에게는 한 없이 너그러우면서도 배우자에겐 인색하다. 부부관계가 무촌(無寸)이라서 그럴까? 한 없이 가까우면서도 빗나가면 한 없이 멀고도 멀어지는 것이 무촌.

詩, 우리말과 글을 알면 누구나 우리시를 쓸 수 있다. 우리시가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의 전유물은 아닐 터이니, 시상이 떠오르면 헤진 종이쪽지에 몽당연필로 기록하면 시가 된다. 물론, 좋은 시를 쓰려면 소양을 쌓고 기법을 배우고, 각고의 수련을 해야겠지만.

우리말을 얼마나 오래토록, 얼마나 힘들게 배웠던가? 첫돌이 되어서야 겨우 ‘엄마’란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엄마’란 낱말 하나에 엄마와 온 가족이 얼마나 감동했든가? 얼마나 신비스러웠던가? 엄마 뱃속에서 수 천 번 ‘엄마’란 말을 들었다. 세상에 나와 엄마 품에서 수 만 번 듣고 또 들었다. 그러고는 흉내 내어 ‘엄마’란 말이 꽃잎 같은 애기 입술사이에서 옹알거리듯 흘러나온다.

엄마 그늘에서, 우리말 수백, 수천 개를 반복하며 배운다. 엄마를 떠나 초중고에서, 대학에서 수많은 국어시간에도 우리말과 글을 배운다. 그리고 시도 소설도 수 없이 읽는다. 우리문학이 뼛속까지 스며든다. 비록 문학적 체계를 못 세웠다 하더라도.

우리 모두가 시를 사랑하고 마음을 시로 표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도시를 떠도는 서민도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선원도, 그리고 모두들, 배부른 소리한다고 하겠지만 배불렀던 시인이 얼마나 있었을까?
너와 내가, 그리고 온 백성이 시를 쓰고 시를 읊는 세상! 눈 머니가 시를 읽고, 벙어리가 시를 낭송하고, 귀머거리가 시낭송을 듣고, 절름발이가 사슴처럼 뛰놀며 시노래를 부르고, 거리에서 카페에서 바닷가에서, 어디에서나 시를 짓고 시를 낭송해 정서와 사색이 들꽃처럼 바다안개처럼 피어나는 세상, 땅에는 옹달샘이 분수처럼 솟아 메마른 땅에 시냇물이 흐른다. 하늘에는 종달새 울음소리에 장단 맞추어 구름이 넘실거린다.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일까?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부부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해주면 시를 쓰는 것보다 훨씬 쉽게도 가정이 아름답게 될 수 있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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