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대학원 양창호 교수
세레스 파라곤 터미널은 총면적 550,000㎡, 안벽총연장 615m로 연간 120만 teu를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1999년 10월 세레스 터미널사(Ceres Terminals Incorporated)가 암스텔담 항만공사와 제휴를 통해 착공하였으며, 2003년 개발이 완료되었다. 22열의 컨테이너선에 ZPMC사의 안벽크레인으로 선박 양측면에서 동시 하역작업을 수행함으로써, 시간당 하역 생산성은 300개에 이르도록 설계되었다. 컨테이너의 이송과 적재는 넬콘(Neclon)사의 첨단 스트래들 캐리어를 이용한다.
미국의 세레스(Ceres)그룹이 건설하고 직접 운영까지 한 이 터미널은 기존의 컨테이너 터미널 설계의 원칙을 과감히 탈피하였다. 항만을 도크와 비슷한 굴입식 구조로 건설하여, 도크 안으로 선박을 넣은 뒤 선박 양쪽에서 동시 하역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개념의 항만구조로, 기존 일자형 터미널에서는 안벽크레인(C/C)이 최대 6~7대 밖에 동시작업을 할 수 없으나 이러한 구조의 항만에서는 최소 9대 이상의 안벽크레인이 동시작업을 할 수 있어 항만의 생산성을 크게 향상 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많은 항만 전문가들은 도크방식의 굴입식 부두(indented berth)의 효과성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였다. 터미널이 건설된 위치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북해로부터 강을 따라 몇 시간 동안 이로(deviation) 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약점, 그리고 선박이 도크로 들어갈 때 도크 내 물이 빠지게 하기 위해 안벽수심을 더욱 깊게 건설해야 하는 건설비과다 문제, 또한 무엇보다도 유럽최대의 관문항인 로테르담 항이 인근에 있다는 점 등이 발전에 큰 제약요인으로 꼽았었다.
세레스 파라곤 터미널이 건설될 당시에는 컨테이너 물동량이 계속 크게 증가할 때라, ‘지어 놓으면 배는 들어온다’는 식으로 건설될 수 있었다. 특히 생산성이 높은 방식으로 지어진 터미널의 실패는 건설 당시에는 꿈도 꾸지 못한 일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대부분의 유럽의 컨테이너 터미널 건설은 터미널 하부구조는 항만공사가 투자하고, 크레인이나, 야드장비 등 상부시설은 운영사가 투자하였다. 그러나 세레스 파라곤 터미널은 하부시설은 물론, 상부시설의 2/3정도까지도 암스텔담 항만공사에서 투자하였다.
오늘날의 컨테이너 터미널은 선사의 기항내지 터미널 운영에 대한 강한 확약이 없으면 건설되기 어렵다. 그러나 세레스사와 암스텔담 항은 일반선사의 기항 확약없이 자신들의 터미널을 건설한 것이다. 2002년에 들어서 일본의 NYK사가 일부 지분을 취득하였으나. NYK사도 몇 차례 시범기항을 한 후 이 터미널을 이용하지 않았다. 그 후 수년간 이 터미널은 텅텅 빈 채로 컨테이너 크레인과 38대의 스트래들 캐리어를 놀릴 수밖에 없었다. 마침 필자도 이 무렵 이 터미널을 방문했지만, 사람 지나다니는 곳만 간신히 눈을 치워두고, 안내하는 사람만 몇 명만이 눈이 하얗게 쌓인 터미널을 지키고 있었다.
2006년에 NYK사가 이 터미널의 소유권 100%를 취득한 이후, NYK사가 포함된 그랜드 얼라이언스(Grand Alliance)가 이 항만에 정기적으로 기항하면서 터미널이 정상화되기 시작했다. 2008년에는 425,000 teu 까지 물동량을 처리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 때 암스텔담 항만공사가 2/3를 소유한 상부시설에 대한 매각도 이루어졌다. 2008년 말 이 시설들은 허치슨 포트 홀딩스(HPH)에서 소유하고 있는 로테르담의 ECT사가 취득했다. 세레스 컨테이너터미널의 일부 주식을 ECT가 취득한 것은 NYK사가 로테르담 항의 ECT 터미널의 주식 일부를 취득하는 지분취득 맛 교환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이후 세레스 파라곤 터미널은 ‘암스텔담 컨테이너 터미널(ACT)'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그랜드 얼라이언스가 일부항로를 로테르담으로 기항지를 변경하면서 2009년 처리물동량은 20만 teu까지 하락하였다. 그러나 이후 세계경제가 침체국면에 들어서고, ECT의 유로막스(Euromax)터미널도 새로 개장되면서 ACT는 직격탄을 맞게 되었다. 2010년 그랜드 얼라이언스의 나머지 항로가 로테르담 항으로 기항항만을 변경하면서, ACT는 결국 직원 해고사태를 겪게 되었다.
ECT는 규모를 줄여서라도 ACT를 운영하려 했지만 2012년 8월 말에 ECT의 CEO 웨스터 하우드(Jan Westerhoud)는 ACT를 운영하기에는 수요가 너무 적다는 판단을 내렸다. 남아있던 30여명의 직원들도 고용계약 해지 절차를 밟을 예정이고, 컨테이너 크레인은 스페인 항만에 매각되고, 스트래들 캐리어는 로테르담 항에 재배치 될 예정이라 한다. 아직 암스텔담 항만공사가 ECT에 어떤 패널티를 부과할지는 미지수인 상태이다.
세레스 파라곤 터미널의 폐쇄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명확하다. 컨테이너 터미널은 화주와 선사의 수요가 있는 곳에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항만 개발의 성패는 전략적 위치(strategic location), 항만효율성(port efficiency), 항만비용(port charge), 적절한 항만기반시설(adequate infrastructure), 화물량(cargo size), 연계성(connectivity), 다양한 항만서비스(wide range of port service)등에 달려있다. 세레스 파라곤 터미널은 잘못된 위치에 건설되었고, 잘못된 시점에 개장되었고, 잘못된 화물량 예측을 하였고, 잘못된 항만 배후지와의 연계성으로 화주와 선사에게 외면당한 것이다.
지난 20여 년 간 자동화 컨테이너 터미널과 첨단 컨테이너 터미널 건설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해외 혁신적 아이디어의 터미널의 하나로 벤치마킹했던 터미널이, 그 아이디어를 구현해보지도 못하고, 잘못된 건설기획 때문에 폐쇄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못내 아쉽게 느껴진다. 특히 멀리서 암스텔담 컨테이너 터미널이 문을 닫는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첨단 설계에 의한 장비, 시스템들이 거추장스런 흉물로 변했을 것을 떠올리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