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창호 인천대 교수
개천절은 기원전 2333년 단군이 최초의 민족국가인 단군조선을 건국하였음을 기리는 뜻에서 기념하고 있는 국경일이다. 그러나 나라의 뿌리를 기념하는 개천절만큼 특별한 얘깃거리가 없는 국경일도 드물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행하는 형식적인 기념식행사를 제외하고, 개천절의 의미를 음미하는 행사로는 고작해야 몇몇 단군숭모단체들이 주체가 되어 마니산의 제천단, 태백산의 단군전, 그리고 사직단의 백악전 등에서 올리는 제천의식정도에 그치고 있다.

1960년까지 대통령이 직접 개천절 행사를 주관하였다. 개천절의 민족 건국이념인 “널리 모든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정신을 알리고, 민족과 나라의 뿌리를 튼튼히 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일제가 발행한 조선사를 바탕으로 한 일제강점기 시대의 잘못 알려진 ‘단군신화’ 역사관이 만연하였고, 고고학적 물증이 없다며 공식적으로 단기연호 사용을 포기한 것은 물론, 급기야는 단군상을 우상숭배라며 훼손하는 사건까지 일어나고 있다. 자연히 젊은이들에게는 개천절은 신화 속의 고리타분한 얘기만 늘어놓는 국경일에 불과한 것이다.

과연 단군이 나라를 세웠다는 것은 곰과 호랑이 설화같은 토테미즘 신화에 불과한 것일까? 그러면 왜 일제는 강점기 동안, 단군조선 관련 고사서 51종 20만여권을 불태웠을까? 그리고 단군을 설화로 표현한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의 역사서만 남겨둔 이유가 무엇일까?

뜬금없이 단군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얼마 전에 읽은 고조선에 관한 몇 권의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점을 강조하기 싶어서이다. 우리 단군조선으로부터 이어오는 고조선의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한반도 중심이 아니라, 대륙, 해양을 무대로 펼쳐왔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한 사료에 의하면 현재 산둥반도는 요임금 때부터 조선의 땅이라고 한다. 즉 요임금시대에 산둥반도는 동이족의 한갈래인 우이의 땅으로 표현하고 있어, 기원전 2,400년경에 이미 고조선이 산둥반도에 존재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삼국유사의 ‘단군의 일은 요임금과 동시의 일이라’ 는 말의 증거로 삼기도 한다. 최근 여러 학자들에 의해 집필되어 발표되는 고조선 관련 서적의 공통된 내용은 중국 사료에 의하더라도 고조선은 기원전 7세기에는 발조선으로 불리며 춘추 전국의 제후국으로 유지되다가 기원전 4세기경에는 보다 독립적인 고대국가를 형성해 연나라와 대치했고, 기원전 3세기말에는 진나라와 화평을 유지하며 국경을 맞대고 있었던, 대륙과 맞선 강국으로 존재했다는 것이다.

기원전 2세기 한나라 초기에 고조선은 한나라와 북쪽의 흉노의 완충지대인 지금의 산둥반도 북부에서부터 신의주에 이르는 해안가와 내륙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영토를 보유하고 있으며, 한과는 중개무역을 통해 이익을 취하고, 흉노와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한다. 기원전 129~119년에 흉노세력이 약화되자 한나라가 고조선을 침공했고, 고조선은 이 침공에 11년간 대치한 후 기원전 108년에 한무제에 의해 무너졌다.

그러나 고조선은 남으로는 고구려와 신라, 북으로는 선비오환으로 부활되고 계승되었다. 2세기경에는 흉노가 남북으로 분열될 때 선비오환은 흉노를 내몽고까지 몰아내며 옛 고조선의 북부인 요서지역에서 후일 징기즈칸만큼 강력한 제국을 형성한다. 고조선 멸망 후 450년경에는 조선왕은 국호를 연이라 하고, 과거 고조선보다 더욱 남하해 북중국 주요부를 대부분 장악하고 중원으로 진출한다. 그러나 중국대륙으로 남하하고 지배하는 과정에서 고조선의 고유성을 상실하게 된다. 결국 고조선의 후예로 고구려, 신라, 백제가 남게 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기원전 2,400년 전 중국 역사상 최초의 나라인 은나라 때부터 고조선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동이족이 산둥반도에 살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후 기원전 7세기부터 4세기까지 천년이상 고조선은 산둥반도 북쪽부터 요하, 현재의 신의주에 이르는 해변가와 이에 인접해 있는 내륙지역을 점유하고 국가로 유지해왔다는 점이다.

우선 우리조상들의 활동무대가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 남한지역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우리의 사고가 남한에 머물고 있으나, 우리 선조들은 광활한 중국대륙의 많은 부분을 호령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기원전 7세기 이후 천년동안 산둥반도에서 신의주까지에 이르는 발해만 바다는 당시 세계 해양의 중심지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당시 이곳을 지배한 즉 세계 해양을 지배한 나라가 고조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9세기 신라시대에 장보고가 동북아 해상무역을 주도한 것도 이러한 뿌리가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많은 나라들이 없는 역사도 만들어 내고, 수치스런 역사는 감추기 바쁘다.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고구려, 발해, 단군조선의 역사는 물론, 아리랑, 농악놀이, 씨름 등 우리민족의 흥과 기를 살리는 전통문화와 영토를 자국의 문화유산이자 역사로 만들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은 학생들 교과서에 위안부 문제를 삭제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왜 잠깐만 뒤져봐도 꾸러미로 나오는 중국 역사에서의 고조선에 대한 기록을 제대로 정사로 만들지 않는 것일까? 더 이상 신화로 만들지 말고 당당히 단군조선, 고조선이라는 고대국가를 발견하는 일에 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일까?

우리 후손에게 자랑스런 역사를 가르친다는 것은 그들이 세계 각지에서 어떠한 일을 하든지 민족에 대한 자부심, 역사에 대한 긍지를 갖게 한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몸에는 징기스칸에 버금가는 대륙을 호령하던 제국을 건설하고, 이미 기원전 2세기에 중개무역을 하고, 그리고 천년이상 고대 세계 해양을 지배한 DNA가 새겨져 있는 것이다. 현시대의 의미로 보면 우리는 많은 다른 나라 국민들보다 일찍 경험한 ‘글로벌리제이션 DNA’를 갖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해운, 항만, 해양, 수산, 조선, 무역, 물류 등 바다를 중심으로 전 세계를 넘나드는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다. 바다를 공부하고 바다를 중심에 두고 비즈니스를 하는 우리의 몸에 고대로부터 이어오는 이러한 글로벌리제이션 DNA가 있기 때문에 무역규모 세계 10위를 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역사를 잘 정리해서 가르치고 후손으로 이어간다면, 글로벌 시대에 더 크고 창의적인 경쟁력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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