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대학원 양창호 교수

▲ 양창호 인천대 교수
‘사장이 할 일이 없으니 농담이라도 잘해서 분위기를 살려야죠?‘ 지난 주에 해운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몇몇 지인들과 담소 중에 한 분이 작금의 어려운 해운시황을 빗대어 한 말이다. 그러면서 지금은 돈이 돌지 않기 때문에 해운업은 물론 중소기업을 하는 중소 상공인들도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더욱 이들을 어렵게 하는 것은, 이러한 어려운 경제와 해운시황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작년에 세계 정기선 해운업체의 대량 적자의 원인이 되었던 아시아-유럽 노선의 운임이 금년 들어 큰 폭으로 오르면서 금년에는 흑자로 돌아설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하였다. 그러나 유럽경제의 침체로 아시아-유럽향 컨테이너화물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반면, 공급량은 대형 선박의 신규투입으로 증가하고 있어 수급환경이 계속 악화되고 있어, 금년 상반기에 보였던 운임 상승세는 하반기에 들면서 다시 하락세로 바뀌게 되었다.

특히 화물의 급격한 감소로 인해 아시아-유럽향 항로 컨테이너 운임이 10월 12일 기준으로 상하이 발 북유럽 현물운임이 20피트 컨테이너 당 1,113 달러로, 1,000달러 붕괴를 눈앞에 두게 되었다. 이는 아시아-유럽항로에서 지난 5월 이후 동항로 운임이 40%나 하락한 것이다. 유럽 항로에서의 흑자전환 기대에 중대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에 지난주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사인 머스크라인(Maersk Line)이 아시아-유럽항로에서 총 19척의 선박을 감축하기로 결정하였다. 6,500teu급 8척을 운항 중이던 아시아-지중해노선인 AE5 서비스를 11월 9일부터 운항 종료하기로 하였고, 또한 8,000teu급 11척을 운항 중이던 아시아-유럽노선의 AE9 서비스도 12월 초까지 운항을 중단키로 결정하였다. 이로써 금년 들어 머스크사는 2월에 9% 선복감축에 이어, 선복이 총 21%나 줄어들게 되었다. 유럽항로에서 머스크라인의 운항선대 감축조치는 정기선사 그룹 중 3번째이다. 9월에 한진해운이 포함된 CKYH 얼라이언스가 중국-북유럽 노선인 NE4를 잠정 중단했으며, 현대상선 등의 G6도 10월초 같은 지역 노선인 루프3을 중단한 바 있다.

해운컨설팅업체 SeaIntel사는 이러한 조치가 G6, CKYH의 노선축소와 함께 11월 운임인상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러면서도 아시아-유럽항로에서 선박공급과잉을 계속 해소하기 위해선 추가 공급조절이 필요한 실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Drewry사도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혹은 2015년까지 세계 컨테이너선의 운임회복세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선사들이 감속운항, 계선 등을 통해 운항선박량을 조절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머스크 라인 모기업인 AP Moller의 CEO는 머스크사는 물동량이 줄어드는데, 운임을 내리면서 경쟁을 하지는 않겠다고 하였다. 2011년에 발주한 Triple E 컨테이너선 20척은 계획대로 시장에 투입하겠지만, 이밖에 향후 2-3년간은 추가로 선박발주를 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세계 2위 컨테이너 선사인 MSC사도 세계경기 회복 전까지 선박 신조발주를 하지 않겠다고 결정하였다.

운임 회복을 위해 1위, 2위 업체들이 서로 적대적 행위를 중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지난해까지 MSC는 머스크라인과 시장점유율 경쟁을 벌여, 머스크라인과의 격차를 줄이는데 성공한 바 있다. 머스크라인은 1.8만 teu급 선박을 건조중이고, MSC는 곧 1.6만 teu급 선박을 용선받을 예정이다. 아시아-유럽항로의 3대 선사 시장점유율이 2000년의 20%에서 현재는 50%를 상회하고 있다. 또한 선박투자비 증대로 많은 자본이 필요한 산업으로 변하면서 진입장벽이 생겨, 상위 몇 개 선사가 시장을 지배하는 과점적 구조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유럽항로에서 1선단 투자비가 12-15억 달러에 이르고 경쟁력 있는 서비스 제공을 위해서는 적어도 5-6개 선단을 운영해야하기 때문이다.

즉 SeaIntel사나 Drewry사 모두 컨테이너선의 운임회복을 위해서는 유럽항로에 투입될 기 발주된 초대형선박을 포함한 선박량 조절에 모든 항로 참여 선사들의 노력이 선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고, 머스크라인이나 MSC사도 이에 동참하겠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항로 운임을 회복시키자는 공통의 목적에 동참한 것이라고 하기 보다는, 이들 선두업체들의 절박한 상황에 따른 궁여지책일 것이다. 유럽항로에서 이미 시장점유를 확고히 하고 있는 상위 몇 개사의 경우, 그동안 시장점유율 경쟁을 통해 투입한 많은 대형 컨테이너선으로 인해 운임하락시 큰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급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어 시황이 회복될 조짐만 보이면, 막대한 투자를 해 놓은 초대형선의 활용을 높이기 위해 다시 시장점유율 경쟁을 가속화 할 개연성이 높다. 여기에 시장 점유율면에서 뒤지고 있는 우리나라,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계 선사들도 초대형선 선대확충의 기회를 엿볼 수밖에 없다. 즉 과점시장에서 업체의 전략적 투자가 계속될 수 있기 때문에, 게임이론상 균형점(equilibrium)을 찾아내기가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 결과 물동량 증가와 무관하게 해운시황이 언제나 하락할 수 있는 것이고, 운임상승기보다는 하락기가 더 잦고, 긴 ‘장기적 시황침체기’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물론 릭머그룹(Rickmers Group)의 CEO는 세계 컨테이선 업계가 지금은 공급과잉에 시달리지만 현재의 수주잔량이 20%에 불과한 점, 그리고 수주잔량은 점점 더 하락할 것을 감안하면 수년 후에는 오히려 선대부족 사태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고유가시대에 연료소비량을 줄인 신형 에코선박의 경쟁력 있는 운항비에 맞서기 위해서는,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운항비가 많이 소요되는 노후 구형선박은 해체시키고, 연료효율적 연료소비의 새로운 선박 발주가 불가피할 것이다. 즉 수주잔량이 줄어들고, 연료소모가 비효율적인 선박의 해체가 늘어난다면 수급이 크게 개선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AP Moller 그룹은 선복과잉으로 고전을 겪는 컨테이너 해운보다 석유, 항만, 원유시추사업에 집중하기로 하는 전략으로 수정하였고, 일본 최대 정기선사인 NYK사도 최근 연차보고서에서 사선 및 정기용선을 줄여 정기선 비중을 줄이고, 포워딩 등 화주에 대한 직접적인 물류서비스 제공 분야에 더욱 역점을 두기로 발표하였다. 해운경기 회복이 불투명해지면서 선사는 운항선박량을 줄여, 운임상승을 도모하는데 동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 시황침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운항선박보다는 고객관리에 역점을 두어, 화주에 대한 물류서비스를 강화해 나가는 전략이 수익성을 개선시킬 수 있는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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