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모를 들꽃은 스러지고

▲ 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거 누구시오?"
대답이 없다. '내가 꿈을 꾸었나!' 중얼거리며 잠을 청하는데, '찰싹 찰싹' 봉창을 두드렸다. 할머니는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영철이올시다."
숨죽여 말했다.
"아니, 네가 이 밤중에!"
"이것 좀 맡아 주십시오.'
"무언데?"
"폭탄입니다."
"웬 폭탄을?"
"경찰서에 갇힌 동지들을 구하려다 경비가 삼엄해서"라 말하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순식간이다.

일제가 지방마다 경찰서와 헌병대를 설치했다. 징용과 공출을 거부하는 조선인들을 감금하고 고문했다. 영철은 할머니 친정 머슴 이 서방의 아들이다. 이 서방은 천주교 박해를 피해 지리산을 떠돌다 가을걷이를 하는데서 서성거렸다. 부자(父子)가 행색은 초라했으나 예절이 밝아 친정아버지가 집으로 데려다 거두었다.

친정아버지는 총명한 영철이를 곁에 두고 잔심부름을 시키며 글을 가르쳤다. 이 서방의 “천한 것이 글을 배워 무어합니까?”란 말을 “아닐세. 글을 모르면 마소와 다를 바 없네”라고 잘랐다. 할머니는 영철이가 심부름을 오면 혈육처럼 먹을 것을 챙겨주고 옷을 지어 입혔다. 영철이가 장성하여 집을 떠나 부산에서 부두노동을 하면서 일제의 약탈에 분노했다.

1918년 음력 정초에 집이 텅 비었다. 맹순이도 민속구경을 하려 세 살배기 첫째누나를 업고 나가고 할머니와 어머니뿐이었다. 난데없이 폭음과 함께 집이 요동쳤다. 작은 방에서 바느질을 하던 어머니는 옆문으로 튕겨나갔다. 집은 잔해만 남았다. 대밭 넘어에 있는 경찰서 순사들이 달려왔다.

큰방 방구들에 파묻힌 할머니는 만신창이였다. 순사들은 항일분자의 소행으로 단정했다. 어머니를 추달했으나 아는 것이 없었다. 할머니는 진주도립병원으로 이송됐다. 두 손목이 잘렸다. 마취에서 깨어나 “내 손은!”하고는 기절했다.

형사가 중환자를 잔인하게 신문했다.

“내가 밭엘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소. 코앞에 보자기에 싸인 것이 있었소. 누가 떨어트렸겠지 하고는 그냥 지나갔소. 되돌아올 때 그대로 있어서 주어왔소. 손녀 노리개 만들어 주려고 주무르다 그만…. 그 후론 아무 것도 모르오."

순사는 “그걸 말이라고 하시오” 매섭게 몰아쳤지만 더 이상 문초가 불가능했다. 사건현장을 조사하고 병원출입자의 동태를 감시했으나 혐의를 찾지 못했다.

3년간 입원치료 끝에 집으로 돌아왔다. 죽을 줄 알았던 할머니가 돌아온다는 소문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두 팔이 잘린 데다 피골이 상접했다. 왼쪽 눈은 실명되고 왼쪽 귀는 고막이 파열됐다. 머리와 팔에는 붕대가 감겨져 처참했다. 아이들은 무서워 울고, 어른들은 참혹해 눈물을 흘렸다.

할머니는 ‘폴 없는 할매’로 불러졌다. 극진한 간병으로 살이 오르고 기운을 차리자 부축을 받으며 걸음마 연습을 했다. 친정동생이 몽당팔을 어루만졌다. 할머니가 “영철이 소식은?” “영철이는 왜요?” “그냥, 그저” 잠깐 침묵하다가 “영철이 애비는?” “누님 사고 후에 고향 간다며 떠났습니다.” 의아한 표정으로 할머니를 쳐다봤다.

몇 번 음독자살하려 했으나 응급조치로 연명됐다. 할머니는 어쩔 수 없이 우리 6남매에 낙을 붙였다. 막내손자인 나에게 각별했다. 나는 할머니 무릎에서 옹알이를 했고 품속에서 잠잤다. 할머니 젖가슴을 만지작거리며 자랐다. 손이 없어 내 콧물을 입으로 빨아내고, 배탈이 나면 뒤가 헌다고 혀로 핥았다. 우리 할머니 같은 분이 세상에 또 있을까!

나는 고사리 손으로 담뱃대에 담배를 꽁꽁 눌려 넣고 할머니 입에 물려드렸다. 그리고는 성냥을 당겼다. 할머니가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허공으로 사라지는 담배연기를 보며 긴 한숨을 내쉬셨다. 사라져버린 인생을 한탄하듯.

장터에서 얻어먹는 거지가 애기를 낳으면 쌀과 간장을 맹순에게 들리곤 가게에서 미역을 사서 움막집으로 갔다. “내게 애기를 좀 안겨주게”하곤 몽당팔로 애기 얼굴을 쓰다듬으며 “잘 키우시게”라 당부했다.

한의 세월 스물아홉 해를 사시다 해방된 다음 해에 돌아가셨다.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 하지만 할머니는 빈손으로 왔다 손 없이 가셨다. 그리고는 한 달쯤 지나, 세파에 시달린 노신사가 할머니를 찾아왔다. 어머니가 “세상 떠나셨습니다.” 그는 “알고 왔습니다. 명복을 빌어드리려고요”라 했다. 영전에 재배하며 “마님! 죽을죄를 짓고 이제 왔습니다. 나라 찾겠다고 만주와 시베리아에서 풍찬노숙하며 전전했습니다”라며 어깨가 떨렸다.

 “아버님 오시면 만나고 가시지요”란 어머니 말에, 갈 길이 바쁘다며 쫓기듯 떠났다. 할머니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던 30년 비밀이 돌아가신 후에 이렇게 들어났다. 망국의 한을 품은 채, 무서리에 스러져간 이름 모를 들꽃이 ‘폴업는 할매’뿐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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