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선장/법학박사)

▲ 김인현 고려대 교수
<싱가폴해사중재 한국세미나에서(2012.11.15)>

1. 한국의 해사중재의 상황

한국의 해사법정은 전반적으로 영국등 해외의존도가 너무나 크다. 한국선박회사등 사건의 90% 이상이 영국에서 처리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2011년 11월 28일 한국해법학회와 Korea P&I가 공동으로 한국해사법정활성화를 위한 밤을 개최한 바 있다. 그 이후 1년이 지난 시점에 어느 정도 개선이 되었는지 조사하고 오늘 싱가폴해사중재 세미나가 개최되는 참에 이를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보았다.

우리나라에서 나용선, 정기용선, 항해용선계약의 절대다수가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하고 런던해사중재에서 처리된다는 약정을 하고 있다. 개품운송의 사정은 이보다 낫지만 결과통계를 보면 위와 마찬가지이다. 2011년 어떤 대형 선박회사의 자료를 구하여 보았더니 총 60여건에 한국에서 처리되는 것은 1-2건이 고작이다. 한편, 대한상사중재원에서 처리된 사건수를 보면 2011년 총 323건중에서 19건(약 6%)가 해상사건이었다. 해상보험의 준거법은 절대적으로 영국준거법이다. 그러나 소송자체는 피고인 한국보험자의 주소지인 한국에서 열리는 경우가 많다. 선박건조계약도 압도적으로 영국준거법/런던해사중재에서 사건처리가 된다.

2. 새로운 움직임

이러한 해상법 관련 계약의 준거법을 영국법으로 하고 분쟁처리를 런던중재에서 처리하는 오랜 경향에서 탈피하는 움직임도 있다.

첫째, 선박건조계약 연구회가 결성되어 금년 1년동안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고려대학교 해상법연구센터는 그동안 연구가 소홀하였던 선박건조계약에 대한 연구를 하는 모임을 만들어 5번의 발표회를 가졌다.

둘째, 선박건조보험에서 국내굴지의 해상보험회사는 한국준거법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단순한 해상관련 계약의 경우 계약 당사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우리 법을 준거법으로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 선박보험은 해외보험자와 계약이 가능하지만, 선박건조보험은 보험업법에 의하여 한국에서 건조되는 선박은 한국의 보험자와 보험계약을 체결하여야 하는 금융감독원의 유권해석이 나와서 우리나라 건조선박의 보험자는 모두 우리나라 보험자가 되게 된 점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해상보험에서 선박건조보험이 차지하는 비중은 30%라고 들었다).

넷째, 한국해운조합의 P&I 보험에서 담보특약(warranty) 조항을 개정하여 위반한 담보내용과 보험사고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 경우에만 보험자가 면책이 되도록 한 것도 의미있는 내용이다. 이는 피보험자인 선박회사에 유리한 것으로 우리 법을 준거법으로 하는 해운조합의 보험이 선호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3. 활성화 방안

우리나라 해사중재의 활성화를 위하여 어떠한 조치가 필요할 것인가?

첫째, 체제의 문제이다. 독립된 기구로서 한국해사중재원(Korea Chamber of Maritime Arbitration)을 새로이 창설할 것인지, 아니면 현재 대한상사원의 독립된 하나의 부서로서 운용할 것인지 선택의 문제가 있다. 싱가폴해사중재(SCMA)는 싱가폴중재(SIAC)의 하나의 부서로서 2004년 출발하였다가 몇 년이 지나서 2009년 완전 독립한 사례이다. 그 이유는 런던해사중재와 동일한 중재규칙을 가지고 있지않으면 성공할 수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떠한 경우를 취하던간에 런던해사중재와 싱가폴해사중재와 경쟁할 수있는 매력적인 해사중재가 되어야만 한다. 해사중재 판정문이 법원의 판결과 같이 집행력을 갖는 것은 물론이고 행정비용이 부과되지 않으면서 전문해사중재인이 정당한 보수를 받으면서 신속하게 전문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제도이어야 한다. 대한상사중재원의 하나의 부서로서 존속한다고 하더라도 싱가폴해사중재와 동일한 중재규칙을 제정하여 적용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전문해사중재인(full time maritime arbitrator)의 양산이 시급하다. 수요자들은 해사중재에만 전념하는 전문중재인을 더 신뢰하고 선호한다. 런던이나 싱가폴에는 전문해사중재인을 많이 만날 수있다. 우리나라는 한명도 없는 실정이다.

셋째, 한국법이 무엇인지 외국에 알리는 영어로 된 주석서(commentary) 및 저널의 발간이 필요하다. 영연방 국가들에 가면 각국의 법을 쉽게 알아 볼 수 있게 되어있다. 외국 상대방이 한국법을 준거법으로 하자는 우리 측의 주장에 대하여 한국법이 어떤 것인지 알려달라고 하면 제시할 영어로 된 책자와 판결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해상법 교수 한명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영국의 로이드 리포트, 미국의 AMC 그리고 일본의 해사법연구회지는 자국의 해상법을 알리는 통로로서 큰 역할을 한다. 그리고 영국의 각 해상로펌 및 P&I의 소식지도 영국법정을 신뢰하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

넷째, 한국인 당사자들의 해운조선관련 계약에서는 한국법과 한국해사중재를 사용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한국인끼리의 용선계약, 건조계약에도 굳이 낯선 영국법과 런던해사중재를 선택할 이유가 없다. 특히 선박건조계약은 용선계약과 달리 여러 외국의 당사자가 개입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쉽게 한국법을 준거법으로 택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다섯째, 범국민적 한국해사법정활성화 추진 위원회를 결성하여 대대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활성화작업을 추진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싱가폴해사중재의 경우 정부가 해사재단을 만들어 행정비용을 모두 부담하여주고 싱가폴해사중재 홍보에도 열을 올리고 있는 점은 좋은 귀감이 된다. 오늘 세미나에도 싱가폴 법무차관이 참석하여 홍보를 하고 있는 점은 우리 정부와 크게 대비된다.

4. 싱가폴해사중재의 활용

싱가폴해사중재는 임의적 중재(ad hoc)의 성격을 가지면서 중재기관이 중재절차를 통제하지 않고 중재인과 신청인들이 중재를 함께 이끌어가는 점에서 기관중재와 다르다. 중재인비용도 당사자들이 합의하여 정한다. 행정직원은 사무국장과 여직원 1명 총 2명에 지나지 않는다. 행정비용은 청구하지 않는다. 이러한 비용은 모두 싱가폴해사재단(SMF)에서 나온다. 반드시 이들만이 중재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50여명의 해사중재인이 등록되어있다.

싱가폴해사중재는 런던해사중재에 비하여 우리나라의 관점에서는 (i) 시간차이가 1시간밖에 없기 때문에 일을 하기가 편하다. 그리고 지리적으로도 가깝다. (ii) 비록 영국법 혹은 싱가폴법이 준거법이라고 하여도 사안의 계약이나 행위에 개입된 사람들을 싱가폴 중재인등이 같은 동양권의 문화라서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iii) 한국에 대한 싱가폴의 우호적인 시각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싱가폴해사중재를 우리가 활용하는 방안으로서는, (i) 조직의 구성에서 동 중재가 걸어온 길을 벤치마킹할 수 있을 것이다. 독립된 기구로 성공하기위하여는 그 전제로서 재정적인 뒷받침을 하여주는 싱가폴해사재단과 같은 공익재단이 우선 설립되어야 한다. (ii) 둘째, 싱가폴해사중재에 우리 전문가들이 많이 등재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전문가들이 50여명의 중재인들과 함께 전문중재인으로 등재되면 수요자들로부터 높은 신뢰를 받을 것이고 이들이 싱가폴에 계류되는 한국사건에서 중재인으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한국법을 준거법으로 하고 싱가폴해사중재로 하면 우리법의 해석이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우리나라 전문해사중재인이 싱가폴해사중재에 많이 지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점차 한국해사중재에서 외국사건으로까지 널리 활동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결국 한국해사중재의 발전을 가져오는 것이 된다.

오늘은 작년의 한국해사법정 활성화의 밤을 이은 두 번째의 행사가 되었다. 싱가폴해사중재와 한국해사중재의 동반발전을 기대한다(captainihkim@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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