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크 장기수송계약 확보선사만 날아남아
선주협회 회원 179개사 추가정리 많을 듯
'부채 얽히기 싫다' 1선박-1사 등록 늘어

海運氷河時代. 최근의 해운업계 상황과 시황을 이렇게 잘 표현해주는 말은 없다는 생각이다. 꽁꽁 얼어붙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상당수의 벌크선사(국적선사)들이 얼음에 박혀 부조상태에 들어갔다. 지난 12월 12일 STX그룹이 STX팬오션을 매각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이러한 빙하기가 심각한 양상으로 번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마지막 징표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으로 원양 5대선사 가운데 이미 2개사는 자기 몸을 자기가 다스릴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 분명해 졌다.

하지만 나머지 3개사들도 해운 전부문으로 번진 불황 여파로 인해 엄청난 부채의 얼음덩어리에 깔려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언제 또 어떤 선사가 ‘기브업’ 사인을 보내올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그룹의 힘이 뒤에서 받침을 해주는 회사는 롱런이 가능하다는 희망 섞인 얘기들도 나오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회사들은 그야말로 최대의 위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5대선사 이외에 선복량 규모로 10대선사에 들어가던 선사들도 모두 이상 현상을 보이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D상선은 국세청 세무조사 후 본사를 문닫는다는 소문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C해운은 이미 은행관리에 들어가 적극적인 영업활동을 할 수 없는 입장에 빠진지 오래다. 한동안 잘 나가는 것으로 알려졌던 D탱커도 상당한 경영압박을 받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빙벽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음을 맞았거나 수렁에 빠져 허우적 대는 선사들을 살펴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외항해운업체들의 단체인 한국선주협회의 회원사 추이를 살펴보면 최근 빙하기의 심각성을 알아챌 수가 있다.

한국선주협회 회원사는 12월 12일 현재 회원사수는 총 193개사이다. 물론 이 가운데는 사실상 폐업 등의 이유로 회원사 탈회 처리해야 할 선사가 14개사정도 있는데, 아직 선주협회가 총회등을 거치지 않은 상태이므로 회원사 명단에는 아직도 버젓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신년 새해 1월 4일 열리는 선주협회 정기총회에서 탈회가 거의 확실시 되는 선사들(연락 두절이나 폐업한 경우)은 디에스해운, 미래해운, 삼호해운, 세림오션쉬핑, 세진마리타임, 송원엔터프라이즈, 씨와이즈라인, 양해해운, 베벤에셀마라타임, 인트란스해운, 조성해운, 진로해운, 월천통상해운 등이다. 이들이 모두 정리가 되면 선주협회의 실질적인 회원사 수는 179개사가 되어 국토해양부에 등록한 전체 외항선사 수와 거의 같아진다.

하지만 한국선주협회 관계자들은 이들 말고도 회비를 장기 연체하여 실제로 제명 대상인 선사도 상당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에 법정관리가 해제되어 파산절차에 들어간 선사, 은행으로부터 청산 대상으로 꼽혀 정리를 종용받고 있는 회사, 이미 페업을 신고하고 정리단계에 들어간 회사 수가 상당수에 이른다는 것이다.

한국선주협회 회원사 수의 변화를 연도별로 살펴보면 해운업 27조 외항화물운송업 등록기준을 크게 완화한 직후인 2000년에는 회원사 수가 33개사 밖에 없었다. 이 숫자는 해운경기가 뜨기 시작한 2004년에는 50개사로 늘어났다가 해운시황이 불붙기 시작한 2005년에 64개사, 2006년에 92개사, 2007년에 129개사로 급격히 증가했다. 호황 끝인 2008년에는 종당에 164개사까지 늘어났다. 그리고 해운시황이 엄청난 불황에 떨어져 3-4년이 지난 2012년말 현재 시점에서도 회원사는 179개사로 오히려 2008년도 보다도 늘어났다고 하니 놀랄만한 일이다. 이처럼 불황기임에도 불구하고 선사 수가 증가한 이유는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선박에 투자하는 방법과 투자 계층이 다양해지면서 선박 단위로 선사가 설립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 점과 한 회사가 망할 때 거기에 딸린 선박은 처분되지 않고 다른 주인이나 다른 상호명으로 시장에 다시 나오게 된 때문이다.

개개 선박별로 국적선사를 설립하여 한국선주협회 회원사로 가입 신청한 경우는 2012년도에도 몇건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인터상선, 인터해운과 관련이 있는 (주)유니티해운과 오리온선박(주)의 경우다. 과거 같으면 당연히 인터해운쪽으로 등재했을 것이지만 선박 한척씩을 독립시켜 법인을 만들고 선주협회에 별도로 회원사 가입까지 신청하여 회원사가 된 것이다. 이것은 선박에 투자한 錢主가 자기가 투자한 선박이 다른선박들과 엮이는 것이 싫기 때문에 독자적인 법인을 설립하기를 원하는 상황일 경우로 해석이 된다. 해운불황이 심화될수록 이러한 단독 선박-단독 법인 케이스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선주협회에 2012년에 신규로 등록한 선사는 (주)유니티해운, 오리온선박(주) 외에 아시타상선, 하모니크루주(주), (주)아이티더블유메가라인, 인성실업(주) 등 모두 6개사이다. 이들까지 모두 합쳤을 때 한국선주협회 회원사는 179개사가 된다는 얘기다.

선주협회 회원사는 내년 상반기에는 몇 개사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선주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시노코탱커(대표 김남덕), 제우마린(대표 김성근), 천해상선(대표 김상현) 등이 회원 가입을 신청중에 있으며 예상대로라면 내년초에는 협회 가입회원사 수가는 3개사 늘어난 182개사가 될 것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선사들이 한국선주협회 회원사로 명단을 유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절반 이상이 문제가 생겼거나 사실상 간판을 내렸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법정관리를 신청했던 선사들은 티피씨코리아, 대한해운, 대우로지스틱스, 세림오션쉬핑 등 많은 수에 달하는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사실은 협회 명단에서 정리를 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최근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폐업절차에 들어간 제이에이치쉬핑 , 월천통상해운 등은 선주협회 회원사명단에서 아직도 정리가 안된 상태이다. 이밖에 최근 세무조사 문제로 위기에 처한 D상선, 은행권으로부터 정리하겠다는 방침이 선 C해운과 S해운, 그리고 협회 회비를 장기 체납하고 있는 C사, I사 아직은 선주협회 회원사 명단에서 이름은 살아 있다. 이렇게 많은 선사들이 사실은 실질적으로 회원사 자격이 있는지 심사 대상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말이다.

이런 것들을 전체적으로 놓고 볼 때 벌크선사들은 대부분 혹한에 추위에 움직이지 못하고 얼어붙은 안타까운 상황이다. 따라서 어려움에 처한 선사들의 숫자를 헤아리기  보다 차라리 이 빙하기에도 빙벽 터널을 통과하여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벌크선사의 수를 세는 쪽이 더 빠를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벌크선사 가운데 제대로 살아남은 케이스로 대형하주들과 장기수송계약(COA)을 체결하고 있는 선사인 폴라리스쉬핑과 장금상선을 꼽는다. 이 두 선사는 VLCC를 VLOC로 개조한 선박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중소형 선사 가운데는 비교적 해운호황기에 무리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 삼목해운 정도가 영업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소형벌크선사들 가운데 일부는 아직 영업을 하고 있지만 해운불황과 카고 부족으로 정말 힘든 겨울 견디고 있는 것이다.

벌크선사들이 제대로 살아남은 경우는 역시 荷主의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결국 혹독한 불황기에는 선주든 하주든 서로 손을 잡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어렵게 된다는 점을 실증을 해주고 있는 셈이다. 사실 부정기선사들간에 선사끼리 손을 잡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몇몇 회사가 전세계 선대의 몇 %를 만들어서 독과점하여 시장을 좌우해보자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컨테이너선사의 경우는 상황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이번의 불황기에도 한일항로 선사들이 모두 다 살아남았다는 점은 선사들간에 손을 잡고 불황을 헤쳐나간 것이라는 점에서 유념해 볼만 하다.

전체적인 사정으로 볼 때 해운빙하기라고 해도 컨테이너 부문이 벌크 부문 보다는 좀 나은 편으로 보인다. 물론 대형 컨테이너선사들은 너무나 과중한 채무 때문에, 그리고 선대 경쟁력 열위 때문에 문제가 좀 있기는 하지만, 근해항로라고 할 수 있는 한일항로, 한중항로 컨테이너선사들은 비교적 좋은 실적을 올리고 있다. 장금상선의 경우는 부정기부분에서도 수익을 내고 있지만 근해 컨테이너부문에서도 상당한 영업이익을 올리고 있다. 고려해운, 흥아해운 등이 모두 좋은 결과를 내놓고 있으며 나머지 선사들도 부진하다고 해도 회사의 존위가 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처한 회사는 한군데도 없다.

이것은 그만큼 특히 한일항로의 경우 취항선사들끼리 잘 단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일항로 컨테이너선사들은 1980년대 중반에도 일치 단결하여 통폐합 조치에 들어가지 않고도 모두 살아남았고, 이번 해운빙하기에도 굴하지 않고 튼실하게 자리를 잡고 살아남을 것이 확실해 보인다. 물론 신규선사 양해해운이 정착을 하지 못하고 손을 들고 말았지만 이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해운불황이 아니라도 기존의 근해항로를 신규서비스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점을 잘 보여준 사건임에 틀림이 없다.

여하튼 한일항로 취항 컨테이너선사들은 불황의 무풍지대, 설풍을 막아주는 동굴 속에서 안전하게 겨울을 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모두 다 살아남은 한일항로 컨테이너선사들의 생존 비법을 사실 벌크선사를 포함한 모든 국적선사들이 잘 연구하고 받아들여 전승해야 할 필요성이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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