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대학원 양창호 교수

▲ 양창호 인천대 교수
STX 그룹은 12월 12일 싱가포르와 한국 증권거래소 공시에서 부정기선 자회사 STX 팬오션의 경영권을 포함한 지분매각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선∙해운 사업을 주력 양대 축으로 하고 있는 STX 그룹은 유럽발 금융위기 이후 두 업종 모두 장기불황 국면에 접어들면서 경영상의 어려움에 직면해왔다. 국내 빅3 선사로 국내 최대 벌크선사인 STX 팬오션은 9월 말 기준으로 사선 총 89척과 용선 291척 등 총 380척의 선박을 운영하고 있다. 벌크선 시황이 최악의 상황인 가운데 전체적으로 벌크선 용선비중이 높기 때문에 용선료 상환 부담이 매우 큰 상황이어서 STX 그룹의 재무상태 악화의 원인이 되고 있었다. 특히 해운업계에서는 벌크선, 유조선 시황침체로 용선료 수준이 이미 선박을 운항하면 할수록 적자가 발생하는 계선점 이하로 떨어져, 현금흐름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돌이켜 보면 1990년대초까지 범양상선은 독립적인 해운회사로 세계적인 위상을 스스로 구축해왔었다. 그러나 회장의 투신과 이어진 회사 부도, 그리고 10년에 걸친 노력으로 법정관리를 졸업했지만, 다시 STX에 인수되어 지금의 STX 팬오션으로 이어져 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룹의 재무구조개선이라는 목적아래 결국 8년 만에 다시 매물로 나오게 된 것이다.

STX는 지난 2004년 범양상선을 인수하면서 STX 팬오션의 선박 발주, STX 조선에 의한 선박 수주. 건조, STX 엔진. STX 중공업에 의한 조선 기자재 조달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를 구축했다. 해운시황이 좋을 땐 계열사 간 시너지효과 창출이라는 긍정적인 면이 강하게 작용하여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STX 팬오션은 법정관리를 막 졸업한 범양상선을 2004년에 인수한 이후 2008년까지 건화물선 슈퍼싸이클이 지속되면서 4년 이상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2008년에는 영업이익이 7,450억원에 달하기도 했다. 범양상선은 전 세계 벌크선 선박량의 3.5%를 운영하고 있는 선사로 매출의 80% 정도가 벌크선의 용선, 대선을 활용한 수익모델을 갖고 있다. 즉 STX그룹은 절묘한 시점에 STX팬오션을 인수하여 슈퍼싸이클 시기 동안에 STX조선, STX엔진과의 수직계열화를 통해 가장 큰 수익을 올린 그룹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STX 팬오션은 2009년 리먼사태 이후 2010년을 제외하고 매년 1,200-1,500여억원 규모의 영업적자를 기록하였다. STX 팬오션은 금년 3분기에 8,860만 달러의 영업적자를 기록하여 2011년 3분기 영업적자 3,520만 달러에 비해 두배 이상 늘어났다. 이같은 실적은 원화가치 상승과 건화물선의 현물운임 약세, 그리고 컨테이너선과 유조선부문의 적자에 기인되었다. 단지 자동차운반선과 LNG선만이 유일하게 분기 흑자를 기록하였을 뿐이다.

2004년 STX가 범양상선을 인수할 당시부터 유동성에 대한 우려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당시 일각에서는 STX가 단기적으로 범양상선 인수효과를 거둘 가능성이 있지만, 장기적으로 범양상선을 부실화시킬 가능성도 동시에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용선위주의 범양상선 특성이 무시돼 STX 조선을 위해 무리하게 그동안의 용선영업을 사선화하는 상황도 초래돼 이럴 경우 범양상선의 현금유동성에 문제가 따를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STX 인수 후 신조선이 크게 증가한 것이 사실이다. 사선의 규모가 2004년에 57척이었으나 금년 9월말 기준으로 89척까지 늘어났다. 또한 금년 4분기 중에도 11척의 선박이 인도될 예정이고, 아직 2013-14년중 인도될 29척이 발주 중에 있다.

물론 최근 벌크선 해운경기 침체로 세계 유수의 해운회사가 파산하거나, 막대한 적자를 기록하고 있어 STX 팬오션 만의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BDI로 보면 금년 2월에 26년만의 최저치를 기록하였고, 년간 평균으로 보아도 지난 5년 평균치보다 72%나 하락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는 선박 신조선 과잉 공급에 의한 것으로 2000년 1월 이후 벌크선 선대가 무려 44%나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2008년 리먼사태 이후 삼선로직스를 시작으로 대우로지스틱스, TPC코리아, 세림오션쉬핑, 대한해운, 삼호해운 등 여러 업체가 법정관리를 신청했으며, 30위권 이하 국내 선사들은 사실상 영업을 중단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해외에서도 1934년에 창업해 78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일본의 산코기센도 도산국면에 직면해 우리의 법정관리 같은 회사갱생법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인수 직후부터 시황이 좋아 사선도 많았던 STX 팬오션이 해운경기 한 싸이클을 내다보고 미래 불황에 대비하는 경영을 했다면, 즉 시황고점에서 유동성을 만들고 시황저점에서 선박을 매입하는 해운경기변동과 반대되는 반순환적(Anti-Cyclical) 의사결정을 했다면, 현재의 불황을 충분히 버텨낼 수 있었지 않을까하는 아쉬움이 있다. 건화물선 해운경기의 역사는 시황고점에서 선박과잉 투자가 가져온 선박공급과잉, 그리고 이어 나타나는 급격한 하락국면이라는 해운 싸이클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특히 STX 팬오션의 매각과 일본 산코기센의 부도위기의 공통점은 자금회전에 문제가 생길 때 까지 선대를 확충하다가 시황하락의 여파로 끝내 매각, 혹은 도산이라는 비슷한 궤적을 보인 점도 아쉬운 점이다.

STX 팬오션의 매각에서 이슈가 되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국내 대량화주의 해운업진출보다는 독립선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해외자본에 의한 인수와 이에 따른 국부유출 우려이다.

현행 해운업 24조는 원유ㆍ제철원료 등 국가전략화물을 소유한 화주의 해운업 진출을 사실상 차단하고 있다. 결국 현대차그룹이나 포스코 등의 경우 대량하주의 해운업 진출을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인수여력이 있는 곳은 삼성, 현대 계열사 정도로 알려지고 있어 독립선사 보다는 대기업의 계열선사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선사의 대형화 전문화가 시급한 세계적인 추세에 맞추기 위해서라도 기존선사가 대형화될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해외투자펀드 등에 매각되는 경우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국가 전략물자 수송권을 갖고 있는 STX 팬오션을 해외에 매각하는 일이기 때문에, 초기부터 해외매각 논의 자체를 배제시켜야 할 것이다. 정부와 해운업계는 STX 팬오션의 매각을 민간기업의 개별적인 사안으로 치부하기 보다는, 우리 해운산업의 경쟁력 강화라는 전략적 차원에서 국내 독립 선사가 인수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해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