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연극이다

▲ 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젊을 때 주말이면 명동, 동숭동, 장충동을 돌아가며 연극을 즐겨봤다.
연극은 BC 5세기경부터 그리스 원형극장에서 상연되었다고 한다.
하여, 인생과 연극은 2,500년을 공존한 셈이다.
인생은 연극을 만들고, 연극은 인생의 진수(眞髓)를 보여준다.

각본에 따라 분장된 배우가 무대에서 말과 몸짓으로 연기를 한다.
연극은 각본과 배우, 무대와 관객으로 이루어진 무대예술이다.
복제예술인 영화와 달리 연극은 장기공연을 하더라도 똑 같을 순 없다.
그래서 연극을 일회성(一回性)이라 한다.
인생도 단 한 번이다.

배우는 누구나 주연을 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된다.
조연도 아역도 단역도 악역도 있으니까,
배역은 연출자의 몫이다.
연극을 기획할 때부터 배역이 결정되듯 인생도 태어나면서부터 운명이 결정된 것은 아닐까?
누군가 운명과 숙명이 다르다 했다.
운명은 앞에서 날아오는 돌멩이라 피할 수 있어 본인의 의지에 따라 운명이 바꾸어진다고 했다.
하더라도, 나무 양판이 쇠 양판 되랴.
숙명은 뒤 꼭지에서 날아와 피할 수 없다고 했다.
어느 누가 엄마, 아빠를 선택해서 태어났나!
행, 불행도 모르고 그저 태어났을 뿐이다. 숙명적으로…

새로 단장해 개관한 명동예술극장에서 극작가 오영진의 <맹진사댁 경사>가 공연됐다.
전통혼례의 모순을 익살스럽게 풍자했다.
맹 진사는 무남독녀의 신랑감을 보지도 않은 채, 돈 많고 지체 높은 김 대감댁과 사돈을 맺기로 약조했다.
신랑이 절름발이란 소문이 들려왔다. 청천벽력이다.
딸의 몸종을 신부로 바꿔치기하는 휼계(譎計)를 꾸몄다.
혼인날에 나타난 신랑은 멀쩡했다.
후회막급이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난처해 어쩔 줄 모르는 몸종에게 신랑은 “마음씨 고운 여인을 신부로 마지하려고 거짓소문을 퍼뜨렸소.”라 말하고 몸종을 신부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욕심과 허영이 지나치고 치졸한 맹진사역을 원로 배우 신구가 코믹하고 멋들어지게 열연을 해 관중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자연인 신구의 인격과 극중 신구의 역할은 같을 수 없다.
인생무대에서도 주어진 배역이 악역이라 세인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그것이 운명이고 숙명이라서.

얼마 전, 국민이 직접 추천한 국민훈장 수상자들이 발표됐다.
그중, 13살 때 지뢰사고로 두 손을 잃은 수상자가 있다.
그는 손이 없는 두 팔로 염전(鹽田)에서 막노동을 했다.
소금을 팔아 조금씩 모은 돈으로 1996년부터 양식과 옷가지를 사서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집 앞에 몰래 갔다 두었다.
그는 “이렇게 손을 잃은 것도 하늘의 뜻이고, 먹고 살만하여 이웃을 돕는 것도 하늘의 뜻이다”라 했다.
스스로가 인생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하늘의 섭리에 의해 태어났고, 행동했을 뿐이란 뜻이다.
쓰레기덤에서 피어난 한 송이 장미꽃이 너무나 아름답다.
그것이 인생이 아닌가?
소금장수인 주연과 조연인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이 인생무대에서의 연기가 국민을 감동시켰다.

주연배우가 열연을 하면 드넓은 무대도 좁게 보인다.
막이 내리면 관중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낸다. 지독한 악역에게도…
관객의 환호에 답례하기 위해 몇 번이고 무대로 나온다.
주연배우는 관중의 광란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광란하던 관중은 모두 객석을 떠난다.
텅 빈 객석을 바라보며 무대를 떠나는 주연배우의 뒷모습이 쓸쓸하다.

영웅도 인생무대의 막이 내리면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진다.
해서, 나는 인생은 연극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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