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륜(舵輪)과 또 하나

▲ 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남들은 값비싼 골동품이나 보석류, 또는 미술품을 애지중지한다.
허나, 나에겐 남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을 애장품 둘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타륜이다.
타륜은 선교(船橋)에서 선박의 항진방향을 조종하는 장치로 손잡이가 달린 바퀴모양이다.
일명 조타륜(操舵輪 steering wheel)이라 한다.
대한해운공사가 운항하다 민간인에게 매도된 여수호에 장착되었던 직경이 1m쯤 되는 대형 타륜이다.

6‧25전쟁 때, 철도시설과 장비가 파괴되어 여객과 화물 운송을 감당할 수 없었다. 해서, 인도에서 중고 기관차를 도입해야 했다.
당시 항만에 중량기중기가 없어 유일하게 중량하역기(heavy derrick)가 설치된 여수호로 기관차를 실어 날랐다.
철도수송 애로를 타개하는데 일등 공신인 여수호는 우리 해운역사에 기록될 선박이다.

그 여수호가 수명이 다 되어 선박해체신청서가 접수됐다.
훗날 해양박물관에 기증하려고 선박소유자 배순태 인천항도선사에게 타륜을 달라고 했더니 “어림없는 소리…”라 거절했다.
타륜이 실내장식용으론 그저 그만이니 그럴 수밖에.
막역하여 “어려운 조건을 붙여 선박해체신청서를 반려할까요?”라고 농 반, 진 반, 협박 아닌 협박을 해 타륜이 내 손에 들어왔다.

이것을 이곳저곳 이사를 다니면서도 신주단지 모시듯 애장했다.
한국해양대학에 박물관이 개관되어『선명, 선형, 총톤수, 조선소, 진수연월, 기증인』을 새긴 아크릴판을 부착해 그곳으로 보냈다.
꽤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애착이 커서인지 그 타륜이 잊혀 지질 않는다.

-선박은 동산(動産)인데도 토지나 건물처럼 부동산으로 간주되어 법원에 등기를 한다.
또한 인격(人格)에 준한 대우를 받는다. 사람에게 이름이 있듯이 船名이 있고, 출생지인 造船所, 생년월일인 進水年月日, 주소인 船籍港이 선박원부에 등재된다.
선박의 수명이 다 되어 폐선을 하려면 선박해체신고를 해 선박원부에서 삭제된다. 마치 사람의 출생신고와 사망신고와 같이-

또 하나는 볼품없는 헌책이다.
1975년 어느 일요일, 인천해운국에서 당직근무를 했다.
무료해 당직보조자에게 당직을 맡기곤 사무실로 올라가 방치하여 둔 캐비닛을 열었다.
‘노느니 염불한다’고 먼지가 푹석푹석 나르는 서류를 뒤적였다.
훼손된 표지에 붓글씨로 <海事關係法規集>라 쓰여 진 헌책 한 권을 발견했다.
누렇게 바랜 조잡한 지질에다 인쇄판이 아니고 등사판 이었다.
살펴보다 망연자실했다. 일본제국의 법률과 칙령, 조선총독부의 제령(制令)과 부령(府令)을 우리말로 번역한 해사관계법규집이었다.
법령공포일이 단기(檀紀)로 표기되어 있어 처음엔 우리 법령으로 알았다.
명치(明治) 대정(大政) 소화(昭和)의 연호로 쓰긴 민족자존심이 허락되지 않았음인지 년대(年代)를 환산해 단기로 표기됐다.
미 군정청이 조선인의 자유와 권리에 반하지 않는 한 일제법령 효력을 존속시켰다. 또 최초의 우리 헌법 제100조에도 ‘현행법령이 이 헌법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한 효력을 가진다’라고 규정하여 일제의 법령을 인정했다.
이 법령을 소위 의용법령(依用法令)이라 한다.

5․16혁명 최고회의에서 법령을 제정할 때까지 우리 생명과 재산을 수탈했던 일제의 법령으로 우리정부가 15여년을 해사행정을 하다니!
이 해사관계법규집에 뼈저린 식민지 역사가 있다.
일본제국이 패망했어도, 대한민국이 수립되었어도 식민지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역사란 전봇대를 뽑듯, 손톱 밑 가시를 빼듯 단숨에 청산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악법도 법이다란 경구를 실감했다.
아무리 추악한 역사라도 일조일석에 청산되지 않고 그 잔영이 오래 계속됨을 이 헌책에서 배웠다.
이를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는가!
해운관련 글을 쓸 때 <해사관계법규집>을 활용해왔으나 이제 아쉽지만 이 애장품도 한국해양대학 박물관으로 보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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