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둘, 마음은 하나

▲ 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눈빛만 보아도 상대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다.
질실한 믿음과 사랑이 있으면, 몸은 둘이지만 마음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그리스도와 베드로는 한 마음이다.
깜깜한 새벽에 유령이 바다위로 걸어와 제자들이 공포에 떤다. “나다. 두려워마라”란 스승의 목소리를 듣고는 베드로가 잽싸게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하십시오”라고 외친다. “그래, 오너라”란 허락을 받고 바다 위를 걸어가다가 물에 빠지자 “주님, 살려 주십시오”라고 애원한다.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고 하자 베드로가 “맙소사, 스승님에게 그런 일은 결단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스승의 불행을 용납지 않겠다는 결연한 사랑의 표현이다. 경비병들이 스승을 잡으려 몰려든다. 베드로가 칼을 뽑아 대사제의 종의 귀를 자른다. 스승을 위해선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죽는 한이 있어도 스승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는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라고 세 번이나 부인한다.

이럼에도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란 베드로의 고백을 듣고는 “내 양들을 돌봐라”며 하늘나라의 열쇠를 맡겼다. 그 열쇠가 베드로 초대 교황부터 시작해 266대 프란시스코1세 새 교황까지 2천년을 계승되어 온다. 그리스도와 베드로와 한 마음은 시공을 초월한다.

낮은 차원에서, 어머니와 나는 한 마음이었다. 퇴락된 집안에서 어머니는 42세 노산으로 나를 낳으셨다. 젖줄마저 말라버려 암죽으로 나를 키웠다.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려 어머니는 안간힘을 쏟으셨다. 허약해 감기, 폐렴, 배탈 등 병을 달고 살았다. 병원으로 달려가고 한약을 다려 먹였다. 끙끙 앓은 내 곁에서 이마에 물수건을 바꾸며 밤을 지새우셨다. 눈을 뜨면 근심스럽게 내려다보며 '내가 너를 대신해 아프면 좋으련만!" 라고 한숨을 쉬셨다.

인고의 세월로 인해 가슴앓이를 하셨다. 통증을 못 견뎌 방 네 귀퉁이를 헤매셨다. 차마 바라볼 수 없어 “하느님! 어머니의 아픔을 제가 대신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통증이 가시면 맥 풀린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고는 “네가 스물 살이 될 때까지 내가 살아야 하는데”하며 눈물을 흘리셨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몇 달동안 내 눈에는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남자가 청승맞다고 할까봐 이불을 둘러쓰고 훌쩍거렸다. 생살을 도려내 듯 마음이 왜 그렇게도 아팠는지. 한 마음을 둘로 잘라서일까!

또 하나는 손녀 다슬이다. 며느리가 영국에서 수태하여 한국에 돌아와 몸을 풀었다. 백일을 지나고서 영국으로 돌아갔다. 궁금해 며느리와 이메일과 전화를 하며 다슬이가 자라는 모습을 꼼꼼히 챙겨봤다. 첫돌에 영국엘 갔다. 방긋방긋 웃고 첫 발자국을 내딛는 다슬이가 어쩌면 그렇게도 예쁘고 신기했던지!

한국으로 돌아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수업이 끝나면 손을 붙잡고 빵집으로 갔다. 창가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네 첫돌에 이태리 여행을 했다. 베드로 광장에서 성인 다섯 분을 시성했다. 너를 유모차를 태우고 시성식에 참가했다. 나는 그때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아”라고 이야기하면 다슬이는 “정말이야?”하며 좋아했다.

다슬이가 미국으로 갔다. 그리움을 참다못해 다슬이를 찾아 나섰다. 천년의 만남인양 얼싸안고 껑충 껑충 뛰었다. 한 달이 눈 깜작할 사이에 날아가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루가 멀다고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할아버지가 보고파 울고 있어. 빨리 미국으로 와.」얼마나 보고 싶으면…
「할아버지가 입원했어. 나는 병원으로 달려갔어. 죽을 것만 같은 할아버지를 껴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꿈이었어. 베개에 눈물이 젖어있어」얼마나 애달팠으면 그런 꿈을 꾸었을까!

중학교에 입학하고 이메일이 왔다.

「학교 사물 벽장문에 할아버지의 사진을 붙여놓았어. 문을 열 때 마다 사진을 보며 할아버지를 생각해. 할아버지! 내가 대학에 갈 때까지 건강해야해. 우린 멀리 있어도 마음은 하나야」하며 할아버지를 애기인양 달랬다.

다슬이를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난다. 나와 어머니의 마음이 하나였듯, 나와 다슬이의 마음도 하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윤회설이 있다. 하느님께서 한 많은 세상을 살다간 어머니를 긍휼히 여겨 내 손녀로 환생시켰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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