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민현 고문(경영학박사, Penb46@naver.com)
<서 문>
1912년 4월 15일 타이타닉(Titanic)호가 침몰한지 1세기가 지나갔다. 타이타닉호하면 우리는 선수(船首)에서 양팔을 벌리고 있는 로스(케이트 윈슬렛분)와 뒤에서 껴안고 있는 잭(레오나르도 디까프리오분)의 애틋한 러브스토리(제임스 카메룬 감독)를 연상하지만 적어도 해운인들은 1517명의 고귀한 인명을 북대서양에서 희생시킨 비극적인 사건으로 기억하고 뼈아픈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2005년 기준 과거 5년간의 통계에 의하면 해상에서 충돌, 좌초, 침몰, 화재, 폭발 등 이른바 대형사고가 매일 평균 18건이 발생하고 있으며 매일 2척의 선박이 침몰한다고 한다. 이 사고들이 모두 선원들의 해기적 실수로 발생하는 것인가?

우리는 선박이나 조선소에 가면 잘 보이는 곳에 ‘안전제일(Safety First)’이라는 빨간색 표어를 쉽게 볼 수 있고 수사(修辭)적이든 진심이든 모두가 사고가 날 때마다 안전제일을 외쳐왔다. 타이타닉 사고이후 100년 동안 많은 인명 희생을 수반한 사고들을 겪으면서 그때 마다 기술과 안전을 위한 규제강화를 통해 안전대책을 수립해 왔다고는 하지만 지난해 1월에 발생한 호화 여객선 Costa Concordia(콩코르디아)호의 전복사고를 보면 과연 그러한 대책들이 해양안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의문을 들게 한다.

사고 직후 이탈리아 당국은 철저한 사실규명과 원인조사를 약속했지만 2013년 3월말 현재, IMO에서 요구하고 있는 1년 시한을 넘긴 체, 콩코르디아호가 파공된 경위, 그 직전상황, 침수하는 동안, 전복되는 동안 회사 측은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지 못했는지 등에 대해서 아직도 밝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사고의 구체적인 원인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릴 단계는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나타난 것만으로도 여객선의 해묵은 과제들이 아직도 개선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콩코르디아호는 2006년에 건조된 길이 290m에 13층 높이를 가진 11만 4000톤급 호화여객선으로 2012년 1월 13일 여객과 승무원 합계 4229명을 태우고 이탈리아 토스카니(Toscany) 제도를 항해 중 여객들의 즐거움을 위해 인근 질리오(Giglio)섬에 지나치게 근접항해를 하다가 암초와 충돌, 전복되면서 32명이 사망하고 2명 실종, 64명이 부상을 입는 대형 인재(人災)를 초래했다. 현재까지도 선체잔해 제거작업이 진행 중이다. 전체 피해규모는 계속 증가하고 있으나(주로 제거비용) 대략 8억 달러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사실상 섬의 해안에 전복한 사고에서 그 피해가 이 정도인데 만일 유사한 사고나 화재가 원양에서 발생했을 경우 그 피해는 타이타닉호를 능가했을 것이다.

▲ 1912년 북대서양에서 유빙과 충돌해 침몰한 타이타닉호.

(1) 사고 원인과 미확인 ‘설’들
타이타닉호 사고에 관한 기록들을 들여다보면 외견상으로는 견시를 소홀히 한 체 고속으로 항해를 하다가 유빙에 충돌해 본선이 두 동강 난체 침몰한 비운의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 명료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미국과 영국에서 사실관계, 유빙과 충돌한 원인, 구명정 문제(당시 본선에는 20대의 구명정 뿐), 캘리포니아호의 구조 활동, 타이타닉호의 구조신호탄과 조난신호의 수수 문제 등 광범위한 이슈를 두고 54일간에 걸쳐 마라톤 청문회가 개최됐지만, 지금까지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아래’와 같은 여러 의혹들이 여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

① 비운의 Edward Smith 선장이 전방에 유빙이 있다는 정보에도 불구하고 감속없이 전속항해를 감행한 것은 최고속선에 수여하는 Blue Riband의 획득을 위해서가 아니라 뉴욕에 정시 도착해야 한다는 선주로부터의 압력 때문이었다. Blue Riband는 북대서양을 가장 빠른 시간에 주파하는 선박에 대해 수여하는 비공식 트로피로 1838년 Great Western호가 Bristol에서 New York까지 8.5knots로 주파해 최초의 Blue Riband를 획득한 이후 점차 스피드를 갱신해 1907년에 1차 대전시 희생된 Lusitania호의 자매선이자 터빈선인 Mauretania호(3만 1938톤)가 이를 획득, 20년간 유지해오다가 1929년에 이르러 독일선박 Bremen호에게 넘어갔다. 당시 Bremen호의 스피드는 27.9knots였다. 타이타닉호 선주인 White Star Lines는 1870년대에 경쟁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10년에 발간된󰡐101 Things You Thought You Knew About The Titanic’에 의하면 Smith 선장은 NY에 하루 앞당겨서 도착하려했다고 한다.

② 침몰한 배는 원래 자매선 올림픽호였는데 사고 직전 타이타닉호로 의도적으로 개명했으며 침몰 잔해의 선명이 있는 선수부에는 아직도 ‘M’자 와 ‘P’자가 그대로 남아있다. 이배의 침몰로 인해 도산직전에 처해있던 White Star Line사는 보험금 1250만 달러(타이타닉호의 신조가격은 1000만 달러)를 수령, 도산위기를 면했으며 당시 White Star Line이 도산할 경우 그 지역에서의 정치적 입지가 어려워질 것을 우려한 영국 정부의 개입으로 조사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설이 있다. 이 내용은 2013년 3월 17일경 서울 강북지역 Ch 77 케이블 방송 ‘텔레노벨라’에서 충격진실 ‘타이타닉 침몰의 비밀’이란 해외 제작프로를 통해 방영됐다. 이 프로그램에서 영국정부의 개입설 등 여러 가지 의혹과 함께 ‘M’, ‘P’자가 남아있는 선체 잔해가 방영된 바 있다.

③ 전체 승무원 891명 가운데 선장을 포함 679명이 사망(76%)했고 본선을 설계했던 Thomas Andrews씨도 배와 운명을 같이 했는데 선주사인 White Star Lines의 J Bruce Ismay회장은 구명정 에 탑승, 생존한 사실을 지적하며 ‘The man who left the Titanic’의 저자 Patrick Prior씨는 사고의 원인에 대한 의혹과 함께 선주의 부도덕성을 비난하고 있다.

기타 제기된 의혹들을 요약해보면 △모종의 음모설과 함께 다른 여객선 California호가 4마일 밖에서 침몰을 미리 알고 대기상태로 그냥 지켜보고 있었다 △타이타닉호의 Edward Smith 선장은 선장으로 재임기간 중 군함과의 충돌 등 사고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선장으로 채용한 이면에는 모종의 사유가 있다 △선장이 자신의 생명보험금을 수령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빙산과 충돌하게 했다 △많은 인명이 희생된 이면에는 선장이 오랫동안 질병에 시달려온 외상후유증(post-traumatic) 쇼크로 승객의 퇴선문제를 신중하게 판단치 못하고 퇴선의 결정적 시기를 놓친 것 등이다.

이러 저러한 ‘설’들이 검증되지 않은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선주와 설계자의 오만과 독단, 보험처리, 엄청난 인명손해를 초래한 재난에 대해 불투명한 원인조사, 해명되지 못한 음모설 등이 말끔하게 지워지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2) 안전, 무엇이 달라졌나?
타이타닉호 사건은 방화·방수벽의 설치, 인명구조설비와 소화 장비 등의 개선 및 북대서양 유빙 순찰제도 등 해상에서의 안전에 관한 범세계적인 기본프레임을 이끌어 내는 결정적인 단초(但礎)가 됐다. 1913년 11월 SOLAS(Safety of Life at Sea)에 관한 최초 국제회의가 런던에서 개최됐고 1932년에는 해상 인명안전에 관한 국제협약이 채택됐다. 본 협약은 해사안전에 관한 한 가장 중요한 국제협약이며 선박의 설계, 건조, 운항과 배승에 관해 규정한 규제적 근간으로 그 동안 주기적으로 대형 인재를 거치면서 계속 보완돼 왔다.

1987년 벨지움 해안의 천소에서 Ro-Ro 여객선 Herald of Free Enterprise호 전복으로 193명이 사망한 사고를 계기로 ISM Code가 출현했지만 그 이후에도 1991년 이집트에서 Ro-Ro 여객선 Salem Express호 사고로 464명 사망, 5년 후 탄자니아의 빅토리아 호수에서 발생한 Bukoba호 사고로 500여명 사망, 2002년 세네갈 여객선 Le-Joola호가 대서양상에서 전복돼 1800여명 사망, 2006년 2월 지중해 스웨즈운하 입구에서 발생한 Al Salem Boccaccio호 침몰사고로 1000여명 사망 등 그치지 않는 여객선의 대형 사고를 통해 국제 해운계는 과거의 구명정 일변도의 의존에서 탈피해 인명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구비해야 할 핵심 안전요건으로 △선박이 손상되더라도 일정기간 복원력을 유지할 것 △유사시에도 긴급대피 할 수 있는 안전 격실 설치 △질서있는 퇴선과 안전항까지의 항해할 수 있는 능력 확보 등을 들었다.

유의할 것은 이들 핵심 요건들이 모두 선원들이 담당해야 할 해기적 측면보다는 선주나 매니지먼트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사실이다. 본고에서는 해양사고의 예방을 위한 근본대책으로 해기적 과실에 앞서서 기술적(technical) 측면보다, 비 기술적(non-technical) 측면, 특히 매니지먼트의 ‘인식’의 중요성에 초점을 두었다.

1. 선박

▲ 2012년 1월에 이탈리아 질리오섬 인근에 좌초된 코스타크루즈의 11만 4000톤급 크루즈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
자체가 가장 안전한 구명정이 돼야한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에 이르는 동안 크루즈 시장이 60% 이상 급성장함에 따라 최근 대형여객선은 1만명 가까운 인명을 수용할 수 있는 문자 그대로 떠다니는 도시가 됐다. 타이타닉호와 콩코르디아호 사고의 경우 타이타닉호는 침몰할 당시 Even keel 상태로 가라앉았는데 100년후의 콩코르디아호는 왜 전복됐는가? 넓은 갑판에 수면상으로 빌딩만큼 솟아오른 호화 여객선의 선체구조를 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이타닉시대보다 훨씬 더 안정성이 높을 것으로 믿고 있으며 그렇게 믿도록 유도하고 있다. 물론 일부에서는 갑판 상부 구조안에 여객들이 탐승하고 있기 때문에 철광석이나 곡물, 원유 등이 가뜩 적재된 경우와 달리 복원력면에서 우려할 것이 없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콩코르디아호의 경우 선체에 파공이 생기면서 한 구획이 침수되자 곧 옆으로 넘어졌다. 만일 두 구획 이상 침수됐더라면 복원력을 완전 상실했을 것이라는 보고도 있다. 실제 이러한 취약점은 European Gateway호(1983), Herald of Free Enterprise호(1987), Estonia호(1987) 사고 등에서도 지적돼왔다.

여객의 안전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비상시의 구명설비다. 타이타닉호 사고를 통해 탑승인원 전원을 수용할 수 있는 구명정 척수, 이른바 ‘boats for all'의 인식과 함께 과거 SOLAS의 핵심은 인명의 안전, 구명정과 신속한 퇴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선박이 화재나 기타 침몰 위기에 처하게 되면 승객과 선원들은 일단 구명정을 이용해 본선을 떠나 구조를 대기하는 것이 종래의 비상 대피 순서였다. 그러나 최근의 개념은 불가피할 경우에는 마지막으로 그러한 수순을 따르더라도 일단 유사시에도 본선이 지근거리의 항구나 안전지역으로 이동하거나 승객들에게 대피 또는 구조를 기다릴 시간적 여유를 갖도록 하기 위해 본선이 일정기간동안 복원력을 유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콩코르디아호의 기울어진 모습에서 보듯이 좌현측에 거치돼 있는 구명정들(전체의 1/2)은 본선이 우현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면서 이미 물에 잠겨 사실상 무용지물이 돼 버렸으며 만일 유사한 상황이 원양에서 발생했더라면 구명정의 절대 수가 부족했을 것이다.

여객선의 경우 선체에 침수가 발생하더라도 침수가 단시간내 전 선박으로 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구간 구간 방수문을 설치해두고 있으며 항해 중에는 여객들에게 다소 불편하더라도 모든 방수문을 열어둔 채 항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타이타닉호나 콩코르디아호의 경우에도 짧은 시간에 본선이 침몰, 전복된 것은 침수구역을 일정구획으로 제한하지 못한 방수구획의 관리부재가 주 원인이었다.

1983년 11월 Harwich에서 발생한 European Gateway/Speedlink Vanguard 충돌사고 역시 선내 방수문은 어떤 경우에 패쇄되고 개방돼야 하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에 따라 SOLAS 2010년 개정판에서 선박(본선) 자체가 가장 안전한 구명보트라야 한다는 인식하에 이중저(double bottom) 선체를 의무화하고 유사시에도 본선이 복원력을 유지하도록 보완했으며 콩코르디아호 사고는 사고 이후 자력으로 인근항까지 항진할 수 있는 능력과 일정기간 부력유지 능력 등 Back-up 체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재삼 확인하게 해 주었다. 2010년 취항한 Royal Caribbean사의 Oasis of the Seas(22.5만톤)호는 유사시에도 복원력을 유지하기 위해 18개 수밀구획과 720개소의 수밀공간을 갖고 있으며 조타실의 기능을 항해부문과 유사시 비상대응 기능으로 분리해 건조한 것은 안전을 최우선시한 좋은 실천 예라 하겠다.

2. 안전한 퇴선은 선주·선장의 책임이다

대형여객선은 유사시 위험의 정도에 따라 신속하게 선박을 탈출하는 방안, 특히 어떻게 하면 거대하고 복잡한 구조를 가진 여객선 안에서 구명정이 위치해 있는 곳까지의 쉽게 접근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생존을 좌우하는 관건이 되고 있다.

많은 계단과 엘리베이터, 통로 및 출입구 등을 갖고 있는 10여층 건물 크기의 대형여객선내에서, 그것도 처음이거나 생소해 선내 지리도 잘 알지 못하는 여객들이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극심한 공포 속에서도 안내서의 지침에 따라 자기 방으로 돌아가 각자에게 배정된 구명의(life jacket)를 찾아 착용하고 몇 층 위인지 아래인지에 위치해 있는 지정된 곳(boat deck)에 집결해서 순서대로 구명정에 탑승해 퇴선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탁상공론이자 현실과 거리가 먼 기대라 아니할 수 없다.

당황한 여객들은 지침에 따라 어느 한 구역으로 집결하려하기 보다는 오히려 본능적으로 바깥이 보이는 선측이나 최상갑판으로 몰려가기 십상이다. 이러한 절박한 시기에 혼란을 진정시키며 모든 여객을 안전하게 퇴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승객과 선원 모두가 참여한 비상훈련을 출항전 또는 직후 최단 시간내 실시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는 만큼, 여객들이 싫어한다거나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안내서로 대치한다거나 형식적으로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유사시 선상에서 승객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할 책임이 선장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선원들을 통솔해 현장에서 침착하게 지휘, 통제 할 준비가 돼 있는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3. 안전문제는 더 이상 사적(私的)분야가 아니다

안전에 관한 유럽 해운정책의 대부분은 해양사고를 통해 얻은 교훈을 반영해 수립된 것들이다. Torrey Canyon호, Herald of Free Enterprise호 등을 포함해 그 동안 각종 사고시마다 거액의 예산과 전문 인력을 동원해 철저한 사실조사와 원인 규명을 거쳐 재발 방지책을 수립해나가는 영국 정부의 자세는 정부당국이 얼마나 폭 넓은 책임을 부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안전과 관련된 제반 요건을 충족치 못하면 EU 제항에 입항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EU의 안전관리 정책, 흔히 ‘Majic pipe’ 사건으로 칭하는 불법적인 오폐수 관리에 대해서는 혹독한 벌금과 함께 관련자를 형사 처벌하는 미국의 제도 등은 안전과 예방에 관한 규칙을 위반할 경우 엄청난 대가를 치루도록함으로써 안전은 타협의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는 점을 정책을 통해 강조하고 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선박의 안전문제는 선주, 조선소, 보험자, 선원들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고 선박이 가입해 있는 선급, PSC와 당국 역시 선박이 각종 규칙에 맞게 안전한지를 확인해야하는 책임과 의무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정부나 선급이 사고와 관련해 책임을 부담하는 경우는 없었다. 정부는 선급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대행하고 있기 때문에, 선급은 자신들에게 경찰권(police power)이 없기 때문에 설사 선급과 관련해 선박이 안전하지 못하다고 판단되더라고 해당선박의 출항을 금지시킨다거나 할 수 없고 선급을 중지 또는 회수(withdraw)하는 것이 고작이라는 이유 등으로 정부도 선급도 해양사고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2007년 12월 태안의 허베이 스피리트호 오염사고에서 보았듯이 해상사고가 발생할 경우 그 피해의 범위가 이제는 개인간의 손해 배상 차원의 문제를 넘어 불특정 다수의 해운 서비스 이용자는 물론 사회와 공공의 문제로 비화되기 때문에 해양사고의 예방과 안전관리는 더 이상 선박이나 단위 선사에게만 맡겨 둘 사안이 아니다.

해양에서 안전에 관한 한 안전관리를 포함, 사고로 인한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비상대응책을 정부 당국이 수립해두고 있을 것이라고 국민들이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며 사고의 원인이 선박의 구조나 복원력 등과 무관하지 않을 경우 선급 또한 사고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 대형사고의 경우 선급을 상대로 한 거액의 청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선급 또한 항상 책임의 사슬(responsibility chain) 밖에만 위치해 있는 것이 아님을 실증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안전과 관련해 아무리 완벽한 규칙을 마련했더라도 제대로 준수하지 않으면 무의미한 것인 바 준수 여부를 제도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감독하는 것도 당국이 행해 할 책무라는 점이다.

과거에는 선원들이 항해를 잘하고 기관이 잘 돌아가도록 하면서 화물을 잘 관리하며 선주에게 봉사하는 역할이었다고 하면 지금은 해기적 임무 못지않게 제 3자의 재산은 물론 자연환경이나 생태계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공공을 위해 봉사하는 책무도 인식해야 한다. 해운의 공공성, 국제성에 미루어 볼 때 당국의 선행적인 관리 대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는(what if scenario) 것은 리스크 관리의 기본이자 핵심이다. 이를 두고 과민하다거나 소심하다고 폄하하는 것이야 말로 해운의 공공성과 국제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처사다.

<선급, 공적기관인가, 영리기관인가?>
선급은 보험산업 초기에 런던 커피 shop에서 상업보험자가 보험가입을 원하는 선박을 인수하기에 앞서 해당선박의 안전문제를 확인하기 위해 이용했던 Surveyor로서 원래 개입사업으로 시작됐다. 그 후 선박이 국제 무역이나 여객의 핵심 이동수단으로 부상함에 따라 그 안전도를 확인하고 감독해야 할 정부의 임무를 대행하게 되면서 사적 기업에서 공적기구로 전환했고 정부를 대신해 선박이 일정 수준 이상의 안전도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관리 감독해야 할 책무도 지니고 있다.

선박은 선주가 원하는 대로 건조되지만 일정 수준의 선급에 입급하지 않으면 사실상 운항이 불가능 하기 때문에 국제항해에 종사하는 모든 선박은 선급을 가지고 있다. 어느 선급에 입급할 것인지는 선주가 선택하는 것이지만 일단 선택되고나면 선주는 해당 선급의 제반 규칙과 규정을 준수해야 하며 선박이 해당 규칙을 제대로 준수하고 있을 경우 선급은 그 사실을 기록한 증서를 발급한다. 그러나 선급이 발행하는 제 증서는 특정 선박이 검사 당시 선급의 관련 규칙을 준수하고 있다는 증서일 뿐 그 자체가 해당 선박의 상시 안전을 보장하는 보증서는 아니며 선박이 일상적으로 안전수준을 유지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도입된 ISM 심사는 선급 규정 못지않은 핵심 제도로 정착되고 있다.

기술혁신시대에 즈음해 신조선의 설계와 수리작업의 감독, 인명구조설비, 소화설비 등이 정해진 기준을 충족하는지 등을 공정하고도 엄격하게 감독하며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만큼 불연일 경우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의식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처럼 선급은 정부의 역할을 대행하는 공적 기능을 갖고 있지만 최근의 추세는 선급들도 우회적으로 선주들과 비즈니스 관계를 형성하며 해운과 관련된 영리사업에 뛰어들고 있으며 다소 애매한 측면이 있지만 선박 유치활동 등 적어도 매출신장을 위해 노력하며 자력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의 시장구조로 볼 때 그들의 고객은 선주이며 선주에게 선급 선택권이 있는 한 선주의 목소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선급의 공적 기능과 비즈니스 측면이 중첩돼 있는 가운데 유럽의 한 Risk control manager 가 세계 보험연맹(IUMI)회의에서「ISM 코드의 이행 여부를 심사하는 과정에서 선급이 문제점을 발견했는데 그 하자(deficiency)가 선급의 과거 검사기록 또는 발행한 선급증서와 관련되거나 그 내용이 선급의 명성에 부정적 효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을 경우 과연 현장의 선급 검사원이 액면 그대로 보고서에 기재할 수 있을까?」라며 제기한 의문은 선급과 선사의 담당자들이 새겨 들어야 할 말이다.

4. 인명을 담보로 규제의 사각지대를 이용하지 말아야!

화물운송사업과 달리 여객 운송사업은 고도의 안전의식과 위기관리능력을 필요로 한다. 그런 차원에서 대형 여객운송 사업을 영위하는 자는 상당수준의 해운경영 능력과 함께 안전한 선박을 확보 유지할 수 있는 재정 능력도 구비하고 있어야 한다. 만일 해운경력이 일천하거나 수준급의 선박을 확보할 여력이 없이 선진 여객선사들로부터 퇴출 직전에 있는 노후여객선을 헐값에 인수해 여객선 사업에 진출하려 한다면 이는 타인의 재산과 인명을 담보로 한 위험한 발상이다.

<Grandfather clause>
여객선은 일반 화물선과 달리 한층 고도의 안전을 요하는 만큼 선박의 구조, 강도, 설계, 설비 등 모든 면에서 최상의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는 선주의 지상과제이자 당국, 선급의 책임으로 여객선에 관한 제반 규정은 관련당국의 주도하에 계속해서 엎 그레이드 되고 있으며 사고를 통해 들어난 문제점들은 범세계적 차원에서 협약이나 규제 등 국제적 합의를 통해 보강해나가고 있다. 모든 국제협약은 발효 요건을 충족한 날로부터 국제협약으로 효력을 발한다. 여객선에 대해 강화된 안전 설비와 구명시스템을 요구하는 이러한 협약들도 사고를 통해 부각된 취약점과 신종 리스크에 대처하기 위한 것인 바 당시 취항하고 있는 모든 여객선들에게 적용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국제협약을 채택할시 기존 여객선 사업자(선주)들의 강력한 로비로 이른 바 Grandfather clause라는 예외 장치를 설정, 협약의 적용기준을 모든 취항선박을 대상으로 하는 대신 건조 시점을 기준으로 하도록 완화시킨 것이다. 즉 여객의 안전을 위해 기존의 협약을 보완 또는 개정했더라도 협약의 적용은 취항선박이 아니라 장래의 어느 시점 이후에 건조된 선박에 대해서만 적용되도록 한 것이다.

예컨대 타이타닉호는 100년 전에 건조된 선박이지만 이 예외조항만 있으면 업그레이드된 안전관련 규칙이나 협약에 구애받음이 없이 낡은 설비를 그대로 유지한 체 운영할 수 있는 것이다. 노후 선박일수록 더욱 더 설비가 열악하고 리스크가 크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신조선과 대등하거나 그보다 더 엄격한 설비를 갖추어야 마땅하겠지만 Grandfather clause라는 특혜조항 때문에 선주들에게 안전설비 확보 의무를 면제시키는 돌파구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60년대에 건조된 노후선이 아직도 많은 여객을 싣고 떠다닐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노후선에 첨단 안전설비를 장착한다거나 이에 필요한 개조를 요구한다면 선주들에게 엄청난 자금 부담을 초래할 뿐 아니라 노후선의 매각이 사실상 불가능해져 기존 여객선 선주들에게는 큰 부담이 될 수 있겠지만 후발 또는 개발도상국의 인명을 희생시키며 특정 선진국 선주들의 이익을 옹호한다는 것은 비난 받아 마땅할 일이다.

이러한 특혜조항의 존치 여부를 두고 여객선의 이용자인 일반 대중에게 그 찬ㆍ반을 물으면 그 결과는 불문가지일 것이다. 차선책이 되더라도 노후선을 매입할 경우 책임 있는 당국이 나서서 본선의 안전에 관한 정합성(整合性) 점검을 실시하고 예상되는 리스크에 대비해 최소한의 설비를 갖추도록 조치함으로써 싼 선박을 수입해 인명을 희생시키는 불행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섬나라 필리핀에서는 도서를 연결하는 여객선 또는 페리들이 다수 운항되고 있지만 몇천톤급에서 몇 만톤에 이르는 선박의 대부분은 선진 해운국에서 퇴출직전에 있는 노후선들을 헐값에 구입한 것들이다. 지난 십여년 동안 필리핀에서 발생한 몇 건의 대형사고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과적 내지는 방화설비 및 구명 설비의 부족이 주 원인이었다. 콩코르디아호 사건 직후 발생했던 Costa Allegro호(2만8000톤, 1969년 건조)에 이어 자매선 Costa Voyager호가 인도양과 홍해에서 화재가 발생해 탑승해 있던 여객은 물론 전세계인들을 가슴 조리게 했다. 중요한 것은 이 두 척 다 선령이 40년이 넘은 선박으로 당시 매각을 위해 원매자를 찾고 있었던 선박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최근 Bali에서 개최된 IMO, Interferry 등이 참여한 국제회의에서 선진 해운국들로 하여금 노후선을 매각할시 그 안전 적합도 등을 신중히 판단한 후 매각여부를 결정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노르웨이의 해양사고 조사기관인 Skagerrak Foundation이 ISM 코드에 준한 리스크평가와 리스크 관리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한 안전관련 장비나 절차를 면제해주는 Grandfather clause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동 특혜조항의 완전폐기가 어려우면 최소한 일부를 수정해 실질적인 리스크 평가 결과에 따라 안전설비의 보강 여부를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한 점은 당국이나 선주들이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5. 스스로 돌봐야 한다

여객선을 포함, 비상시 선박에서 퇴선할 때는 Women and children first(WCF) 즉 어린이와 노약자, 여자승객, 남자승객 그리고 선원과 승무원 순(順)으로 한다는 것이 ‘바다세계의 불문율(unwritten law of the sea)’로 인식돼 왔다. 여자와 어린이가 대피과정에서 우선순위에 놓여야 한다는 것은 굳이 신사도를 논하지 않더라도 이는 사회 통념상 당연한 수순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사실이 그러 한가? Swedish researchers Mikael Elinder and Oscar Erixon이 3세기에 걸쳐(1852~2011) 159년 동안 발생한 30개 국적의 1만 5000여명을 희생시킨 18건의 대형 인명사고를 조사하고 발표한 보고서(2012년 4월 10일 발행) ‘Every Man for Himself’에 의하면 “남자의 생존율(34.5%)이 여자(17.8%)대비 배에 상당하고”, “선장과 선원의 생존율은 18.7%로 여객들보다 높았다”고 한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참고로 관련된 19세기와 20세기말에 발생한 두건의 사례를 소개해 본다.

(1) SS Atlantic호 : 1873년 4월 1일 북대서양에서 침몰했다. 868명 중 538명이 사망했고 330명이 생존(38%)했는데 여성은 전원 사망, 남성은 55%가 생존했다. 여객 생존율 32.6%에 비해 선원은 91.3%가 생존했다.

(2) MS Estonia호 : 1994년 9월 27일 989명을 태우고 Estonia에서 스톡홀름으로 항해중 악천후로 침몰했다. 852명이 사망하고 137명이 구조됐다(전체 생존률 13.9%). 여성 생존율 5.4%에 비해 남성은 22%로 4배, 여객 생존율 12.3%에 비해 선원은 20.2%로 역시 선원의 생존율이 더 높았다.

본 보고서는 생과 사의 기로에 처하게 되면 바다의 불문율은 기대할 것이 못 된다는 사실과 함께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남기고 있다. 콩코르디아호 사고 직후 선장 Francesco Schettino씨가 여객들보다 먼저 퇴선한 사실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비난을 했다. 죽음의 공포 가운데 과연 여자와 어린이를 우선시하는 예의바른 퇴선과 생과 사의 기로에서 살고자하는 인간의 본능 가운데 어떤 결정을 할지 먼저 자문해보고 이탈리아 선장을 비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WCF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결국 여자든 어린이든 비상 상황하에서 자신을 돌 볼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유사시 극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6. 항해와 조선(操船)에 관한 사항은 육상에서 개입해서는 안된다

‘선장 ○○시에 출항하시오. 다음 항 선석에 ○○시까지 접안해야 합니다.(You have to sail captain, we need the ship on the berth on schedule)’ 이와 유사한 지시를 경험한 선장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고유가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전속 항해를 요구하는 사례가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운항 스케쥴, 선석 관리 등 영업상의 이유로 안전과 타협하려는 육상의 매니지먼트와 이에 동조하는 선장이 있는 것도 현실이다.

1980년대초 국내 모해운사의 1150teu급 컨테이너선이 시애틀을 출항해 아시아로 항해 중 태평양에서 위치, 일시, 원인 모두가 불명인 상태에서 선원, 화물과 함께 침몰했다. 그 후 시애틀의 한 대형 로펌이 복수의 컨테이너 하주들을 대리해 거액의 화물손해 배상청구를 시애틀 법원에 제기했다. 통상적인 침몰사고일 경우 계약조건에 따라 당연히 운송인의 면책이 가능했을 것이지만 “○○일 ○○시까지 ○○항에 도착하지 못하면 선석(berth)을 대기해야 한다”는 운항부서의 전문 한 장 때문에 지루한 협상을 거쳐 청구액의 50%를 지급하고 종결한 사례가 있다. 이 전문이 육상 매니지먼트가 선장의 고유권한에 개입(압력)한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로 채택될 경우 이는 항해상의 과실이 아닌 상사(商事) 과실로 해석돼 경우에 따라 청구액 전액을 배상해야 할 위험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 선장의 고유영역에 대한 개입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7. 선원은 선박회사·관리회사, 어디 소속인가?

1950년대에 도입되기 시작한 편의치적제도 그리고 1980년대부터 시작된 선박의 자동화는 선원의 고용 형태에도 엄청난 변화를 초래했다. 과거 기국(flag state) 선원 30여명이 승선하며 선박의 항해와 하역작업, 정비, 보수 등의 포괄적 임무를 수행하던 시대에서 15명 내외의 다국적 선원으로 승조원 수가 축소되다보니 불가피하게 선원들은 이제 A항구에서 B항구로 선박을 이동시키는 단순한 역할을 수행할 뿐, 과거와 같은 시맨십(seamanship)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또한 시장에서 경쟁이 심화되다보니 선주들은 원가 절감을 이유로 선원의 정원 축소에 더해 인건비가 낮은 국가에서 조달한 선원들을 고용하고 있어 현재는 전세계 선박의 65%가 질(質)과 양(量)적 측면에서 과거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 하에서 다국적 선원에 의해서 운항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설상 가상으로 고용형태도 달라져 이제 대부분의 선원들은 선주에 의해 채용된 자사 소속 선원이라기 보다는 일년 단위 승선기간이 종료하면 관리회사가 배치하는 데로 떠돌아다니는 파견 직원의 형태를 띄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한곳에 정착치 못하는 선원들에 대한 교육과 훈련은 누구의 책임인가? 관리 척수가 상당한 규모에 달하는 국제적 수준의 관리회사라면 다를지 모르지만 10여척 미만의 소수 선박에 수수료 또는 관리비 명목으로 월정액을 받고 선원을 배승시키고 있는 소규모 관리회사가 선원의 교육과 훈련을 위해 투자할 여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동시에 휴가만 끝나면 어디회사로 갈지 모르는 선원을 상대로 교육과 훈련에 투자할 선주가 얼마나 될까? 관리회사를 통해 고용한 선원들은 누구의 직원인가? 그리고 이들에 대한 안전교육과 훈련은 누구의 몫인가? 만일 선원의 교육과 훈련이 사각지대로 방치된다면 그 대가는 누가 치르게 되는가?

8. Minimum crew system의 취지 바로 이해해야

선주의 입장에서는 이 제도가 선원비 절감이라는 측면에서 환영할지 모르나 이는 자동화로 인한 일부 작업량 감소만을 고려한 것일 뿐 상시 선원의 작업량(workload)을 반영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지난 10여년동안 안전 및 환경과 관련된 규제가 대폭 증가함에 따라 선원 고유의 해기적 업무 이외에 각종 보고 등 본선의 행정업무(paper-work)는 증가했는데 선내 인력은 오히려 감소해 선상 업무수행 능력은 현저히 약화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원양과 달리 중단거리 취항 선박은 심할 경우 1주일에 입ㆍ출항만 10회 이상 하는 경우도 있다. 입항하면 CIQ 수속 외에 PSC 검사, 정유사에서 보낸 Vetting team, P&I나 선박보험자로부터 파견된 Surveyor들을 상대로 검사를 필해야 하며 타이트한 일정 속에 항해당직, 입출항, 정박당직을 행하면서 행정업무까지 시간에 맞추어 행해야 한다면 이는 소수의 인력만으로 감당하기에는 벅찰 뿐만 아니라 엄청난 스트레스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제반 업무들을 시간상, 능력상의 이유로 제대로 이행할 수 없다면 최소한도로 적당히 하기 마련이고 그 결과는 곧 안전과 직결되는 것이다. 2003년 국내 모해운사의 한일 정기컨테이너선이 일본 내해에서 앞서 항해하고 있는 선박의 후미를 정면으로 치받은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있었다. 조사결과 당직항해사는 그 시간에 해도실에서 본사에 보고할 서류를 잠시 준비 중에 있었으며 그 이유에 대해서 동 항해사는 입출항이 빈번하기 때문에 정박 중에는 보고서를 작성할 시간이 없었다고 밝혔다.

1999년 8월, 바하마 국적 여객선 Norwegian Dream(50,700톤, 92년 건조)호가 2000여 명의 인원을 태우고 항해 중 영국해협에서 파나마 선적 4211teu급 컨테이너선 Ever Decent호(1997년 건조)와 충돌한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홀로 당직중이었던 항해사는 잠시 행정업무를 하는 중이었다. 이 사고 후 세계 선장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of Ship Masters-Ifsma)은 대형 여객선에서 적정 승조원 문제를 제기하며 여객의 안전을 위해서는 쉬프트(shift) 단위로 2명의 당직항해사, 2명의 견시원, 2명의 기관부직원이 당직에 임하도록 할 것을 권한 바 있다.

선원비 절감과 관련해 축소된 직급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통신사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선내조직에 통신부가 있고 이 부서가 선내 행정관련 업무의 대부분을 전담했다. 물론 통신장비가 발달하고 육해상간의 교신장비가 아무나 어렵지 않게 취급할 수 있게 됨에 따라 굳이 전담 통신사를 둘 필요가 있겠느냐는 주장은 일리가 있지만 비상시 SOS를 발신할 의무는 누구에게 있으며 그 요령을 선원 모두가 주지하고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선원들의 ‘권리장전’이라 칭하는 ILO의 MLC-2006이 올해 8월 20일부로 발효하면 복리후생 등을 포함 선원들의 근로환경이 상당 수준 개선될 것이다. 그 만큼 육상 매니지먼트가 신경을 써야 할 부분도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굳이 MLC를 논하지 않더라도 선원들은 주어진 당직시간이 지나면 다음 근무를 위해 휴식할 수 있어야 한다. 누적된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선원 고유 업무 외에 선주나 용선자로부터 쇄도하는 각종 지시와 문의 처리, 규제강화에 따른 업무량 증가, 신종 리스크에 대응책 등 과중한 업무량으로 선원의 능력을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혹자는 이러한 선원들의 과외 업무 때문에 시간외 수당을 지급한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시간외 수당이 선박의 안전문제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최근의 분석에 의하면 선원의 피로(fatigue)로 인한 대형사고가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선장을 위시한 본선 사관들의 주 임무는 선박운항업무이며 안전관리 업무나 관련 행정업무까지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제 선원은 단순히 선박을 이동시키는 기술자에 불과하며 선박의 질, 보수, 유지에 관한 한 항해 중 발생한 이상사태에 대해 응급조치(first aid treatment)를 하는 역할 이상을 선원으로부터 기대해서는 안된다.

해상직원의 역할은 육상 사무소의 안전관리 업무를 지원하는데 그쳐야 하며 육상 사무소가 해상의 행정업무를 지원하는 것으로 이해돼서는 안된다. ‘최저선원 요건’은 선상의 근로환경이 여러 면에서 수준 이상인 표준선박을 대상으로 한 것인바 노후선, 정기선, 특수화물 운반선, 입출항이 빈번한 근해 취항선박 등 표준보다도 근로비중이 무겁거나 열악한 경우에는 업무량(work-load)의 적정 여부를 선박별로 검토하고 안전과 리스크관리 차원에서 인력 배치를 재검토해야 한다.

차제에 ‘선박운항업무는 해상에서, 안전관리는 육상에서’의 기본 원칙하에 불원 도래할 Green management 시대에 대비해 본선의 인력을 선박운항업무와 분리하고 육상의 안전관리업무와 행정업무를 지원할 가칭 Safety Officer 혹은 Environment Officer 제도를 두는 것도 신중히 검토해야 할 시기다.

육상의 매니지먼트가 변화해가는 근로환경에는 무관심 한 체 획일적으로 최저승조원 규정에만 의존해 선박의 안전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선원이 직면하고 있는 근로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모든 책임을 선원이 부담하게 하고 단지 사고 당시 선상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선원들에게 형사책임까지 묻는 제도라면 이는 너무나 불공평한 처사 아닌가.

< 결언 : 인적 요인(human factor)이 선결돼야 한다>

운송분야에서 사고의 원인은 크게 기술적 부분(technical)과 기술 외적(non-technical)부분으로 양분할 수 있으며 해양사고의 경우 전자가 주로 해기적 측면이라면 후자는 ‘사람’의 문제로 통칭 인적요인을 의미한다. 지금은 전자해도, 위성항법, 최신 통신설비, 자동화 시스템 등 첨단장비를 갖춘 선박이 운항되고 있지만 아직도 주요사고의 80% 이상이 인적과실로부터 비롯되고 있다. 무언가 잘못됐을 때, 즉 인적 에러(human error)가 중도에 차단됨이 없이 확대돼 단계 단계 사슬(chain)로 이어질 때 결국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며 해기적 과실은 그 사슬의 중간단계 일 뿐이다.

충돌이 발생하면 우리는 충돌예방법 위반, 견시 태만, 보수ㆍ정비 불량 등의 해기적 과실을 지적하며 마치 이들이 사고 원인의 전부인 것처럼 처리하고 있지만 이런 과실은 시각을 달리해 보면 2차적 요인이다. 사고의 근본적 원인, 싹을 찾아보면 그 대부분이 비해기적 부분에서 비롯되고 있으며 그 발단은 매니지먼트의 상황에 대한 인식(situation awareness) 또는 상황에 대한 판단이 잘못됐을 때부터 비롯된다. 상황을 바르고 그리고 정확하게 인식해야 할 책임은 해기자가 아니라 매니지먼트의 몫이다. 어떤 사상(event)의 배후에 잠재하는 리스크를 인식하고 찾아내면 통제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리스크에 대한 인식이 없는 상태 하에서 부지불식간에 준비없이 사고를 당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에 대한 심층조사나 분석도 없이 그런 인식부재와 판단착오에서 비롯된 인적 과실이 마치 모두 선원들의 해기적 과실 탓으로 단정해버리면 사고의 근본원인을 찾아내지 못한 결과가 되고 만다. 실제 대형사고의 원인 조사 결과를 보면 외견상으로 시간적으로 기술적, 해기적 과실이 먼저 표면화되지만(충돌, 좌초 등) 그 배후, 수면하에는 인적 요인, 특히 매니지먼트와 관리자(선장을 포함)들의 잘못된 상황인식에서 비롯되고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타이타닉호 사건은 불침의 선박이라는 과신, 안전보다 스케쥴을 더 중시한 매니지먼트의 그릇된 인식, 유빙을 과속으로 항해해도 괜찮을 것이라는 오만 등이 초래한 비극이라고 한다면 콩코르디아호의 사고 역시 해기적 과실에 앞서 안전보다는 여객의 흥미(섬 가까이 항해해)를 중시한 영업적 사고와 선장의 고유영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던 매니지먼트의 잘못된 인식 등 두 사건 공히 리스크에 대한 인식의 결여 즉 인적요인(human factor)이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해운산업은 환경위기(environmental crisis), 보안위기(security crisis), 재정위기(financial crisis) 등 각종위기에 더해 시장은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가 절감에만 지나치게 연연 한다거나 영업상의 이유로 안전을 타협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마크 트웨인(Mark Twain)이 “Man was a creature made at the end of week when God was tired”라고 했던 것처럼 태생부터가 불완전했기에 인적과실을 완전히 근절하기는 불가능 할 것임에 틀림없지만 바다세계에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선원의 해기적 과실보다는 기업환경과 주변여건에 대한 매니지먼트의 냉철한 상황 인식과 판단, 그리고 거기서 도출한 근본대책의 실천이 선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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