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이메일을 읽고서

▲ 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미국에서 철학교수를 하는 아들이 영국에서 학위과정을 하던 1999년 3월 22일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아버지께
아버지! 이제 공직생활을 마감하시게 되셨군요.
다시 한 번 ‘아버지~’하고 불러보고 싶습니다.
제 고등학교 땐 없어졌지만, 옛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었던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고 숱한 세월이 흐른 후, ‘사랑하는 아들아! 너로 인해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는지 모른다’란 편지를 발견하고서야 아버지를 애태웠던 일을 슬퍼하는 아들-

그땐 몰랐는데 지금은 아버지께서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이해가 됩니다.

결혼식 날 제 옆에 서계셨던 아버지가 정말 든든했습니다.
장가가는 날이지만 왠지 순간 어리광을 부려보고 싶었습니다. ‘아빠~ ’하고 부르면서.

아버지! 존경합니다.
지난 35년, 공직자로서 애국심과 가장으로서 가정에 대한 사랑으로 사셨습니다. 저는 인정합니다.
저도 어느덧 서른이 넘었습니다.
지금의 제 나이 때 아버지께서 저를 아들로 맞아주셨습니다. 이제 장가도 갔습니다. 철도 들기 시작했습니다.
철이 들면서 아버지가 정말로 크신 분이라고 깨달았습니다.

아버지는 가정에 대한 책임이 강하신 분입니다.
저는 무엇이 아버지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압니다.
저에 대한 애정과 투자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십니다.
아버지의 바통을 이어받아 제가 저 월출봉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이제 저에게 맡기시고 편히 쉬십시오.

아버지께서 훌륭한 가정을 일구셨습니다.
저의 결혼식 날 아버지와 어머니, 매형과 누나, 저와 신부 상은, 그리고 조카 혜인이와 함께 가족사진을 촬영할 때 우리 가정에 대한 행복감에 저져들었습니다.
이 가정의 행복을 아버지의 손자, 손녀들에게 제가 물려주겠습니다.
먼 훗날 제 아들딸로부터 이와 똑 같은 글을 받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공직생활을 마감하시는 날, 저 아들 한결이가 소주 한 잔 올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대신 글로 인사를 드립니다.
아들 한결 올림』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이메일이 저를 기쁘게 했습니다. 아들이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있어 더욱 기뻤습니다.
더욱이, 독특한 개성들을 가진 손녀 다섯이 예쁘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어 저를 기쁘게 합니다.
이런 기쁨이 있기에 ‘내 인생이 결코 실패는 아니다’라고 자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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