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대학원 양창호 교수

▲ 양창호 인천대 교수
일본해사신문에 따르면 2013년 세계 신조발주량이 7월 24일 기준으로 1024척으로, 7개월 만에 2012년 연간 실적 약 1000척을 이미 상회했다. 이와 같은 발주 급증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 조선업체에게는 작업물량 확보에 도움이 되는 소식이다. 그러나 신조선 발주 증가로 인해 가까운 미래 해운시황과 신조선 시장의 동반 시황 급락 및 건조계약 취소 등의 위험이 증가하기 때문에 해운은 물론 조선업계에도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지난 수년간 세계 해운산업은 과다한 신조발주의 여파로 공급과잉 상태에 놓여 운임약세의 불황을 겪고 있다. 2008년 이전과 2010년에 대량 발주된 선박의 인도가 거의 끝나가고 신규발주도 낮은 수준을 보임에 따라 2014년부터는 해운시황개선이 예상되고 있던 상황이다. 그러나 2013년 초부터 시작된 선박 신조발주 증가는 이와 같은 시황개선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최근의 해운불황을 감안한다면 최근의 신조발주 증가는 2008년 가을 리먼사태 이전 해운의 슈퍼싸이클 시대를 떠 올리게 하는 신조발주 러시이다. 2013년 상반기 중 발주 된 신조선의 주요 선종별 내역은 드라이 벌크선이 296척, 유조선이 132척, 컨테이너선이 158척으로, 이들 주요 3개 선종이 전체의 약 70%를 차지했다.

드라이 벌크선으로 주목할 만한 것은 케이프사이즈선이 총 70척 이상 발주된 점이다. VLOC(초대형 광석선)도 22척이 발주되어 철강원료 선박은 총 87척에 달한다. 이들 선박의 인도가 집중되는 2015년에 드라이 벌크 시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이 밖에 핸디사이즈, 핸디막스와 수프라막스선의 발주도 크게 늘고 있다.

또한 유조선 신조 발주는 VLCC(초대형 유조선) 9척에 불과하나, 아프라막스선 5척, 대형 석유제품 운반선 31 척, 중형 석유제품운반선 61척 등의 발주가 두드러진다. 또한 컨테이너 선박은 1만 8000teu급 11척, 1만 6000teu급 7척, 1만 4000teu급 21척, 8000~1만teu 선형 64척 등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발주가 컨테이너선 신조발주를 이끌고 있다.

이와 같은 선박발주의 요인은 사상최저 수준인 조선소 건조선가, 그리고 고품질 · 고성능 에코선박 건조로 수익력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지금이 가장 적합한 신조선 타이밍이라 할 수 있다. 로이즈리스트지에 따르면 CSCL, UASC사가 발주한 1만 8400teu 선박의 선가는 1억 3660만 달러로 2년 전에 Maersk사가 발주한 1만 8000teu 선박 선가 1억 8500만 달러에 비해 척당 4800만 달러가 낮았다. 그리고 일본해사신문에 의하면 CMA CGM사의 경우도 1만 6000teu급 선박을 발주하였는데, 이들 선박들은 이전 동급 선박에 비해 척당 약 2000~3000만 달러씩 낮은 선가로 계약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연초부터 증가하고 있는 신조 발주는 선박 자체에 대한 순수한 투자라기보다는, 투기적 발주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황저점에서 낮은 가격으로 선박을 확보 한 후 시황고점에 고선가로 선박을 매각하고자 하는, 이른바 한 경기 싸이클 전체를 내다보고 투자한 것이라면 건전한 투자활동인 셈이다.

그러나 투기적 발주라고 표현하는 것은, 시장 참여자가 군중심리적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해운경기가 불황일 때, 즉 운임수준이 낮을 때 선박을 거의 발주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시에 많은 선주들이 지금 같은 불황에 선박을 발주하는 것은 앞으로 개선 될 것으로 보이는 해운시황에 대비해서, 선박을 투기의 대상으로 보고 신조발주 한다는 얘기이다.

실제로 해운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한 경기순환 전체를 내다보지 못하는 의사결정을 하는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즉 해운경기가 호황이 되면 그때서야 중고선을 확보하고, 그러다가 중고선 매입이 어려워지면 신조선을 대량으로 발주하는 의사결정이 대표적인 것이다. 시장 참여자가 모두 신조발주에 함께 나서기 때문에 어지간한 세계경제 호조로는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신조선 인도량을 감당해 낼 수가 없게 된다. 즉 수요에 비해 공급이 일시에 크게 늘어 공급과잉상태를 가져오는 것이다.

또한 해운시황이 불황국면에 들어 몇 년 지속되면, 해운기업들은 유동성위기를 겪으면서 돈이 되는 선박을 낮은 선가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한 매각처리 하게 된다. 낮은 선가의 중고선이 풍부하고, 조선소에서도 낮은 선가의 신조선을 제안하지만, 유동성위기를 겪고 있는 선사들에게는 현금부족으로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황이 좋을 때 선박을 매각해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가 시황불황 시 낮은 선가의 선박을 매입, 혹은 발주하는 한 경기순환 전체를 내다보는 경영을 강조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의 선박 대량발주는 저선가에 선박을 매입하는 개별기업 차원의 반 순환적(anti-cyclical) 의사결정과는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즉 해운시황이 아직 바닥인데도 너도나도 선박을 발주하는 군중심리적인 투기성을 보이고 있다. 시황호조시의 선박 일시 대량발주는 그 선박들이 인도되는 시점에 이르러 선박수급균형이 깨지면서 운임하락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하지만, 장기불황 끝에 시황개선을 앞두고 있을 때의 선박 일시 대량발주는 현재의 시황이 개선되지도 못한 채 불황국면을 연장시키는 커다란 악재가 될 수 있다.

반 순환적 의사결정이란 군중심리에 따른 의사결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논리이다. 아무리 한 경기순환을 내다보는 훌륭한 생각을 가졌더라도, 그것에 모든 시장 참여자들이 똑 같은 의사결정을 하는 군중심리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면, 그 추세에서 벗어나는 또 다른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즉 개별기업들은 주로 그리스계 등 유럽 선주들이 주도하는 금년 상반기 같은 선박발주 러시에는 참여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전략적인 의사결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해운산업과 조선산업의 불황극복을 위해 노력하는 한국, 중국, 일본의 정책도 재검토되어야 한다. 최근 해운불황으로 선박금융이 어려운 상황에서 신조발주가 늘어나는 것은 조선소 신용금융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빈사상태에 있는 자국 조선산업 지원을 위해 국영조선소에 막대한 자금을 여신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일본의 조선소들도 최근 엔화약세에 힘입어 조선수주물량을 늘려나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일부 저가수주의 논란 속에, 조선소의 건조능력 증강 움직임도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조선산업 위주의 정책은 해운산업의 침체지속을 가져오고, 이는 다시 조선산업의 악재로 작용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한, 중, 일 3개국은 해운경기 회복에 우선적 노력을 기울이고, 이후 조선산업의 성장을 이끌어가는 순차적 산업회복의 정책적 안목을 가져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해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