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테나대아 라인에서 운항하는 뉴블루오션호에 화물을 선적하고 있다.

여행은 즐겁다. 배를 타고 떠나는 여행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기차나 항공기를 이용한 여행 보다 몇가지 점에서는 뛰어난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배타고 떠나는, 카페리 여행이다. 이런 즐거운 카페리 여행의 기회가 기자에게 찾아왔다. 속초와 블라디보스톡간에 카페리가 취항한지 100일을 맞이하여 한번 타보지 않겠는가 하는 제의가 들어왔고, 기자는 동반자(딸)과 함께 가는 조건으로 이를 수락했다.

기자가 정확히 21년전인 1992년 9월 블라디보스톡을 방문했을 때는, 호텔이라고는 현대그룹이 세운 현대 호텔 하나 뿐이었다. 당시에는 인근의 나호드카항과 컨테이너부두가 있는 보스토치니항이 항만으로서는 더욱 유명했기 때문에 사실 블라디보스톡항은 기자의 관심 밖에 있었다. 하지만 기자가 방문했던 軍港이라는 그곳에서 마리나시설과 함께 많은 요트와 보트들이 정박해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해양이라는 측면에서는 소련이 우리보다 앞서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거리는 어두웠고, 젊은 남녀가 만나는 장소라고는 朝蘇합작음식점인 모란봉 식당 등이 고작이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블라디보스톡은 얼마나 변모했을까. 그 궁금증이 이번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명소 관광보다 힐링 휴양지로 각광 받을 듯

7월 26일 기자와 동행자(딸)는 동서울터미널에서 10시 21분에 출발하는 속초행 금강고속 버스를 탔다. 버스는 휴게소에서 한번을 쉬고 새로 난 길로 해서 거의 2시간 50분이 걸려 속초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속초-블라디보스톡항을 연결하는 스테나대아 라인(Stena Daea Line)의 카페리가 정박해 있는 국제여객터미널까지는 걸어서 10분 남짓 걸리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미팅 약속 시간인 1시 30분까지는 아직 한참 기다려야 하는데, 국제여객터미널에는 미리 온 카페리 승객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카페리에 2시부터 본격적으로 승선을 시작하여 30분만에 승선은 완료되었다.

▲ 속초 국제여객터미널은 블라디보스톡 출국 수속을 기다리는 승객으로 붐볐다.

선내 식사 서비스 너무나 훌륭

기자와 동행자가 안내되어 간 방은 상층부(2층)에 있는 ‘디럭스 룸’이었다. 6명이 함께 사용하는 샤워시설과 화장실이 함께 딸려 있는 방이었는데, 스테나대아 라인의 배려로 기자와 딸 두명이서 룸 전체를 독차지하고 쓸 수 있어서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오후 4시가 되자 스테나대아 라인의 카페리 ‘뉴 블루오션’호가 기적소리를 울리며 출항하기 시작했다. 기자는 연신 속초항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에 노력을 했고 어느새 배는 속초동명항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배정 받은 방에서 딸과 함께 쉬고 있는데, 저녁을 먹으러 오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벌써 저녁 6시가 된 모양이었다. 조금 늦게 일어나 1층 리셉션 옆에 붙어 있는 식당 앞에 줄을 섰다. 이미 식당은 만원 있었기 때문에 한참을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했다. 겨우겨우 차례가 되어 식판에다 밥과 함께 빵, 제육볶음, 오징어 볶음, 육개장과 함께 깍두기, 콩장 등을 담을 수 있었다.

첫날 저녁식사는 정말 훌륭했다. 양도 자기가 조절하여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좋았다. 전반적으로 음식의 간도 적당하고 튀김류나 복음요리도 맛있게 조리가 되어 있었다. 200명이 넘는 인원이 식사를 하는데도 모자라는 반찬이나 음식이 없었고 좌석도 넓어서 편안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기자의 여행기간 중에 이날 뉴 블루오션호에서 먹은 첫 번째 석식이 가장 좋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 식당은 넓고 서비스는 아주 훌륭했다. 첫날 저녁이 가장 맛있었다.

저녁을 먹는 도중에 신기한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다. 뉴불루오션호와 한 20미터쯤 떨어진 바다에 돌고래 떼(20여마리인듯 싶었다)가 무리를 지어서 뉴불루오션호와 경쟁하듯 헤엄쳐 앞으로 나가는 모습을 본 것이다. 식사를 하던 승객들은 유리창 주변으로 몰려들어 탄성을 질러댔다. 생각지도 않은 볼거리에 잠시 흥분을 했던 것이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이번 여행을 주선해 준 바다투어 노덕하 사장 일행과 함께 레스토랑 앞의 휴게실에서 생맥주를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노덕하 사장 일행은 우리나라에서 수시로 크루즈 전세투어를 하는 것으로 유명한 롯데관광 팀장을 비롯하여 이번에 러시아지역 답사에 나선 전문 여행사 관계자들이 대부분인 것 같았다. 휴게실에서 편히 앉아 넓은 유리창 너머로 페리가 지나갈 때 생기는 하얀 포말들을 바라보거나 먼바다의 희번득이는 잔물결들을 응시하면서 생맥주를 마시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휴게실은 배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인듯 싶었다. 석양이 물들어 가는 바다를 내다보며 소리없이 움직이는 호텔에서 마시는 낭만의 생맥주 한잔...

안내원들이 있는 프론트에서 부사무장(사무장은 휴가중이었다)을 만나 스테나대아 라인과 카페리 뉴블루오션호에 대해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 뉴블루오션호의 안내데스크와 텔레비전 시청 휴게실의 모습.

7월 29일로 취항 100일 맞아

뉴블루오션호는 지난 3월 19일 속초-블라디보스톡-속초-자루비노항로에 처음으로 취항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블라디보스톡항을 출발하여 한국으로 돌아오는 7월 29일이면 항로 개설 100일이 되는 셈이고, 기자는 그런 것에 이번 여행의 의미를 두고 있었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뉴블루오션호를 한-러시아항로에 투입한 스테나대라 라인은 북유럽의 최고 여객선사 스테나 라인과 한국 최고의 여객선사 대아고속이 합작하여 만든 회사이다. 기자는 이미 노르웨이-덴마크간 항로에서 스테나 라인의 페리를 타 본 경험이 있어서 그 명성과 서비스 수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역시 대아고속해운 그룹의 인천-진천항로나 부산-대마도항로 페리를 타본 경험이 여러번 있어서 대아고속의 명성과 그 서비스 수준에 대해서도 익히 잘 알고 있는 터였다. 유럽과 동양의 강자들이 이번에 뭉쳐서 회사를 만든만큼 서비스 수준에 대해서는 신뢰를 가져도 좋을 듯 싶었다.

뉴블루오션호는 사실 신형선은 아니었다. 1989년에 신조된 선박이므로 선령은 이미 만 23세를 넘긴 셈이다. 하지만 물 위를 미끌어지듯이 조용히 움직이는 모습이나 나지막하지만 힘차게 들려오는 엔진소리로 볼 때 상태가 매우 좋은 선박으로 보였다. 비록 선박의 외벽이 녹이 슬어 있어서 더 오래된 선박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내부 시설은 훌륭했고 다인실 승객들을 위해 대형 TV를 설치하여 시청하게 하는 등 승객들을 배려한 것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특히 승무원들의 태도나 레스토랑에서의 친절한 서비스는 명성에 걸맞게 서비스 수준이 아주 우수하다고 할만 했다.

이 뉴블루오션호는 톤수 1만 6485톤(grt)으로 여객은 750명까지 태울 수 있는 중소형의 카페리선박이다. 승무원은 모두 45명으로 운항부의 선원이 25명, 객실, 혹은 식당에서 서비스하는 영업부 승무원이 20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업부 승무원들은 대부분이 필리핀인이어서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있었다.

7월 26일 속초 동명항에서 뉴블루오션호에 승선한 인원은 모두 308명이었다. 이중에 한국인은 230명이었고 나머지 78명은 러시아인을 중심으로 하는 외국인들이었다. 750명 정원에 308명이 승선했으므로 승선율은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아직 속초-블라디보스톡항로가 활성화 되지 못하고 있는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화물의 경우는 컨테이너 카고, 승용차 등의 차량과 중장비 등을 많이 실은 것으로 보였으나 정확한 숫자는 기밀에 속하는 것이어서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 뉴블루오션호의 선장 정희섭씨는 선장 경험 13년의 베테랑이었다.
저녁 8시쯤 되어서는 정희선 선장님의 안내로 브릿지에 올라가 선박을 운항하는 광경을 직접 견학할 수가 있었다. 올해 57세인 정희섭 선장은 특이하게도 해군 출신 선장이다. 올해로 선장 13년 경력을 가지고 있는 그는 군산-석도항로의 카페리선 선장으로 5년 근무하는 등 연근해 카페리 운항 경험이 풍부한 편이다. 브릿지의 여기저기를 안내하던 정희섭 선장은 기자를 별도로 휴게실로 초청하여 뉴블루오션호와 이 항로의 장래에 대해서 기자와 많은 얘기를 나눴다.

승객이 많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정선장은 러시아의 경우 통관이 너무 느린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통관이 느리고 엄격한 검사를 하다보니 소위 보따리상이라고 불리는 소상공인들의 숫자가 늘어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문제는 속초-자루비노항에서 더욱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승객이 적은 경우는 겨우 20-30명만을 싣고 출항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자루비노항의 경우 자루비노항에서 통관한 다음에 러시아 국경 세관을 거쳐 다시 중국의 훈춘 세관을 거쳐야지만 중국으로 화물이 들어갈 수가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비자를 받는데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것도 자루비노-훈춘-백두산 관광루트에 여행객이 몰리지 않는 이유로 알려졌다. 과거에 동춘항운이 서비스했을 때보다도 더 문제가 많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지역에서 통관이 어려운 문제는 최근 블라디보스톡항에서 조금 나아지기는 했다. 블라디보스톡항도 여객선이 정박하는 여객선 터미널의 경우 통관이 느릴 뿐만 아니라 하역요금이 비싸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스테나대아라인은 최근 화물 양하 터미널을 기존의 ‘커머셜 부두’에서 ‘피셔리부두’로 옮겼다. 피셔리부두로 옮김에 따라 통관과 하역이 빠를 뿐만 아니라 비용도 크게 절감할 수 있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었다.

정희섭 선장은 겨울철에 동해 바다가 거칠어는데 대한 걱정도 많이 했다. 겨울철이 되면 바다가 거칠어져서 날씨가 좋지 않을 경우, 선원들도 멀미를 할 정도가 된다고 한다. 때문에 여객선의 안전과 승객들의 편안한 여행을 생각할 때 여객선의 평형을 유지해주는 장치의 설치가 급선무라고 정희섭 선장은 지적했다.

▲ 뉴블로우션호의 갑판에서 포즈를 취한 기자(이철원국장)와 딸.

파리시내 같은 ‘아르바트 거리’

뉴불루오션호는 7월 27일 토요일 오후 4시에 정확히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했다. 블라디보스톡 시간이 한국보다 2시간이 빠르므로 속초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항해하는데만 걸린 시간이 22시간이었다. 22시간이 지루할 것 같았지만, 기자가 묵은 딜럭스룸에는 텔레비전이 설치되어 있어 MBC, YTN, OCN 등의 방송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심심하지는 않았다. 자고, 먹고, 보고, 다시 먹고 자고 하니까 금방 하루가 가버린 것이다.

블라디보스톡항에서의 입국수속은 무리없이 빨리 끝났다. 물론 선상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1시간 이상 걸렸지만 소문과는 달리 여권 검사 정도로 쉽게 터미널을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물론 72시간짜리 임시 비자를 배에서 미리 받아두었던 덕분인 것 같았다.

기다리고 있던 투어 버스에 일행이 탑승하고 가이드가 앞에 나와 마이크를 잡으면서 블라디보스톡 관광이 시작되었다. 나중에서야 안 일이지만 한국인 관광객 가운데서도 같은 버스에 탔던 30여명의 인원이 ‘투어러시아’라는 여행사를 통해 블라디보스톡에 온 여행객들이었다. 여행객은 여자들이 좀 많았고 처녀들끼리 온 그룹, 부부간에 온 사람, 나처럼 딸과 온사람, 여행상품 개발 때문에 일부러 찾은 여행사 관계자 등등 매우 다양했다.

▲ 명품숍이 즐비한 아라바트 거리는 천지개벽한 듯 했다.

우리 일행이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아르바트 거리’리는 곳이었다. 이것은 말 그대로 ‘천지개벽’이었다. 거리 양옆으로 명품 숍이 즐비한 이 거리에는 차량이 다니지 않고 러시아 사람들과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거리 중간 중간에 벤치를 놓아서 쉴 수 있게 되어 있었고 그 벤치에는 어김없이 러시아 여인들이 앉아 있었다. 우리 관광객 일행은 명품 솝이 즐비한 이 아르바트 거리를 거닐며 기념 사진을 촬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과거에 저녁이면 전기가 없어서 어두컴컴하고 무섭기만 하던 그 블라디보스톡이 아니었다. 옷과 가방의 명품 숍이 즐비하고 현대적인 분위기의 상점이 늘어서 있는 아르바트 거리는 마치 프랑스 파리시내의 어느 한곳을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아름다운 러시아 미인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그러고 보니 블라디보스톡 시내 여기저기 공사중인 건물들이 많다는 것도 알 수가 있었다. 지난해 APEC정상회담 이후에 블라디보스톡에도 발전가도로 가는 함마소리가 크게 울려퍼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 위에서 내려다 본 해양공원의 전경. 해변의 모래사장의 넓이가 너무 짧았다.

아르바트 거리가 다 끝난 곳에 있는 해변이 바로 해양공원이었다. 나중에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이지만, 이 해양공원은 밤에는 술이나 먹거리를 파는 가게들로 불야성을 이루고 젊은 남녀들이 넘쳐나는 데이트 장소였다. 우리가 해변가로 갔을 때 어린아이들이 바닷물로 뛰어들어 물놀이를 하는 광경과 짧게 조성되어 있는 모래사장에서 수영복만 입은채 엎드려 등을 태우는 러시아인들이 많이 볼 수가 있었다. 여기가 과연 크레믈린으로 상징되던 구소련, 현재의 러시아가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 잠수함 박물관의 내부 전경. 2차대전에 활동한 잠수함을 그대로 옮겨놓았다고 한다.

관광객 일행과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개선문과 잠수함 박물관이었다. 이중에 흥미를 끄는 것은 잠수함 박물관이었다. 과거 2차대전에 쓰던 소련 잠수함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인데, 일부 내장 설비와 승조원들의 내무반 생활 모습을 옛날 그대로 복원시켜놓고 있었다. 관람객들은 선미쪽으로 들어가서 선수쪽으로 나오도록 동선을 설계해 놓았다.

첫날 시내 관광을 마친 관광객 일행은 호텔로 들어갔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별세개의 블라디보스톡 호텔이었다. 해양공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 중턱에 지은 호텔로, 바로 뒷편에 대형 호텔이 짓다가 만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것이 눈의 띄었다. 그 짓다만 호텔은 엄청난 규모이기는 했지만 공사를 하다가 오래 방치했던 탓인지 여기저기서 물이 줄줄 새서 흉물스럽다는 느낌을 주었다. 기자에게 배정된 방은 3층에 있었는데 창문 너머로 그 흉물스런 페허된 호텔만 보여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하지만 룸 자체는 생각했던 것 보다는 훨씬 좋았다. 다행인지 선풍기도 잘 작동이 되고 텔레비전도 제대로 나왔다. 모기나 바퀴벌레도 전혀 없어서 문을 열어놓고 잘 수가 있었다.

항일유적지 우스리스크 방문

7월 28일 일요일에는 먼저 블라디보스톡역을 방문했다. 항일 독립운동 유적지가 있는 우스리스크 지역으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블라디보스톡역에서 기차를 타고 한 1시간 정도를 가서 우골나야라는 역에서 우리 일행은 내렸다. 강변을 따라 달리는 철도에서 군데군데 러시아인들의 별장 시설과 휴양지를 볼 수가 있었다. 우골나야는 블라디보스톡에서 오는 철도와 나호드카에서 오는 철도가 합쳐지는 교차점으로 매우 중요한 교통의 요충지이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우골나야를 거쳐 수도 모스코바까지의 거리가 9288km,라는 것을 가이드는 몇 번이고 강조했다.

▲ 우스리스크 야시장의 모습.

우골나야부터 우스리스크까지는 버스로 갔다. 중간 중간 도로공사를 하는 구간이 있어서 비포장도로를 달리느라 매우 힘든 여행이었다. 우스리스크에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야시장이었다. 우스리스크야시장은 옷가지와 패션용품, CD나 카세트, 화장품, 피혁제품 등을 팔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과일 채소, 화초는 물론이고 애완견, 고양이, 오리와 같은 애완동물들도 팔고 있었다. 기자는 흥겨운 러시아 가요가 들어있는 CD 몇 장을 샀다. 아내에게 선물할 서양 모자도 하나 싼값에 샀다.

▲ 최재형 선생의 집터. 가운데 태극기를 붙여놓은 것이 보인다.

야시장 구경이 끝난 다음에는 우수리스크에 있는 최재형 선생의 집터를 찾아갔다. 최재형 선생은 러시아 연해주의 한인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조국이 일본에 일방적으로 합방되자 의병조직을 만들어 항일운동을 했으며 1920년 일제에 의해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우리가 찾아간 최재형 선생의 생가 터는 체포되기 직전까지 살았던 집으로 현재는 한 러시아인이 살고 있는데, 우리 정부 등에서 독립운동 유적지로 지정하려고 주인에게 팔 것을 권유해도 팔지를 않고 있다고 가이드가 설명해 주었다. 독립운동 유적지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밖에서 볼 수 있게 건물외벽에 붙여놓은 조그만 태극기가 전부였다.

최쟁형 선생 집터에서 가까운 곳에서 러시아 꼬치요리 샤실릭과 러시아 빵 등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고려인 문화센터를 찾아갔다. 러시아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이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한국말과 한국 음식, 노래 춤 등을 가르치는 곳이었다. 여기서 러시아 한인들이 여기저기 쫓기어 다니던 역사를 다큐멘터리로 만든 비디오를 감상했다.

▲ 고려인 문화센터의 입구 전경.

다음은 우스리스크에 외곽에 있는 이상설 선생의 기념비를 방문했으나 강물이 범람하여 기념비로 가는 진입로가 완전히 물바다 된 관계로 먼발치에서만 바라만 보다가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상설 선생은 이준 열사와 함께 헤이그 특사로 파견되었고, 러시아지역의 한인들을 모아서 광복군을 지원하기 위한 권업회를 조직하고 초대회장이 되는 등 조국의 독립운동에 매진하신 분이다. 그는 또한 최초의 해외 망명정부라고 할 수 있는 대한광복군정부를 조직하는 등 일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분이다.

우스리스코 독립운동 유적지를 둘러본 우리는 곧바로 다시 블라디보스톡으로 예의 그 비포장도로를 지나 돌아왔다. 블라디보스톡에 돌아와서는 일정을 조금 앞당겨 블라디보스톡 전망대를 방문하였다. 블라디보스톡항이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곳에 기념품가게가 있었고 일행들은 그 가게에서 러시아 전통 목각인형 (마또로쉬까)과 모자 등의 간단한 기념품들을 샀다. 비가 조금씩 내리는 가운데 전망대에서 다시 내려 올 때 우산을 펴서 쓰려고 했으나 바람이 세차가 불어대서 우산을 쓸 수가 없었다. 폭우는 아니었기 때문에 모두들 고스란히 비를 맞으면서 관광버스로 내려왔다.

7월 28일 저녁에는 한식집에서 해물찌개, 잡채, 빈대떡 등으로 식사를 한 다음에, 푸쉬킨 극장을 방문하여 전통 러시아 공연을 관람했다. 러시아 전통의 노래와 춤, 그리고 아코디언 연주가 어우려진 공연이었으며, 무대에서의 공연 다음에는 출연진들이 모두 극장 복도로 나와서 관람객들과 어울려 포크 댄스를 추었다. 나름대로 즐거운 한 때가 아니었나 싶다.

해군의 날 불꽃 축제 구경

이날 밤 기자와 동행자는 해군의 날 축제가 열린다는 해양공원으로 나가 보았다. 8시 정도가 되니까 정말 불꽃놀이가 시작이 되었다. 밤하늘을 수놓는 현란한 불꽃놀이에 해양공원에 나와 있는 젊은이들은 소리를 질러댔다. 한쪽에서는 밤인데도 불구하고 대형 비누거품이 있는 통안에서 젊은 남녀들이 비누거품을 뭍혀 밖으로 나와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보령 머드 축제에서 진흙으로 목욕을 하듯 비누거품으로 목욕을 한 남녀들이 괴성을 지르며 거리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모습은 매우 우수꽝스러웠다. 여하튼 이날 해군의 날 축제는 블라디보스톡이 군사도시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 블라디보스톡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블라디보스톡항의 전경.

기자는 불꽃축제가 끝날 무렵 해양공원에서 벗어나 블라디보스톡 중심가로 나왔다. 밤까지 문을 연 수퍼마켓을 일부러 찾아서 생수와 필요한 것들을 조금 사고 바로 옆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다행히 식당에서는 보드카를 잔술로 팔고 있었고 통닭구이와 비프스테이크 같은 안주감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이 식당에서 동반자(딸)와 함께 사온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며 블라디보스톡의 마지막 아쉬운 밤을 달랬다.

7월 29일 월요일에는 벌써 블라디보스톡을 떠나야 하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서두르지 않으면 안됐다. 계획대로라면 10시반까지는 블라디보스톡 터미널에 가야 하는데, 아직까지 선물을 사기 위해 들른 백화점이나 선물가게가 없었기 때문에 조금은 초조해 졌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가이드를 졸라서 보드카와 목각인형, 모자등의 러시아 선물을 파는 선물가게를 먼저 들렀다. 기자도 값이 비교적 저렴한 보드카를 2병 샀다. 목각인형은 이미 20수년전에 샀던 것이 그대로 있기 때문에 다시 사지는 않았다.

기자는 선물을 사야한다는 생각에 먼저 백화점을 들르기를 바랬다. 하지만 우리의 성실한 가이드는 ‘한번 가본적이 있는 블라디보스톡의 중앙역으로 다시 우리를 안내했고, 굳이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가 9288km‘라고 써놓은 그 표지판을 확인시켜주었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단체행동을 해야 하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일행은 다음에 러시아의 한인들이 새롭게 터를 잡아 살던 신한촌이 있던 자리에 가 보았다. 이곳 역시 독립운동 유적지 중의 하나였다. 이상설 선생에 의해 세워진 권업회 등 항일운동을 하던 한인 단체들이 이곳에 터를 잡았다는 것이고 그 위치를 잘 모르다가 ’서울거리 2번지‘라는 주소표지판이 발견되어 신한촌이 있던 위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1999년 8월에 대한민국의 민간단체에 의해 기념탑이 세워졌는데, 기념탑 주위에 철제 담장을 둘러쳐놓고 평소에는 자물쇠로 잠가놓은 등 관리를 하고 있었다. 한국인 관광객이 올 때만 철문을 열어준다는 얘기였다. 기념탑은 남한, 북한, 연해주를 상징하는 대형 대리석 3개와 신한촌으로 이전하기 전에 한인들이 모여살던 동네(개척리)의 8개마을을 상징하는 작은 돌탑 8개가 놓여있다. 우리 일행은 여기에 헌화를 하고 항일 순국선열들에 대한 묵념을 했다.

다음은 행선지로 블라디보스톡의 국영백화점인 ‘굼’ 백화점과 현대화된 백화점 한곳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시간을 각각 15분정도 밖에 주지 않아서 물건을 고르고 어쩌고 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기자는 하나도 살 수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 딸은 재빨리 화장품등 몇가지 선물을 사가지고 오는 순발력을 발휘했다.

▲ TSR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블라디보스톡역에 전시된 오래된 기차.

체험관광, 힐링 관광의 필요성

뉴불루오션호는 정확히 12시 정각에 블라디보스톡을 출항했다. 기자와 동반자가 다시 배정받은 방은 러시아로 올 때 사용했던 6인실 딜럭스 룸 그대로였다. 샤워실에 있는 사용했던 비누가 그대로 인 것만 봐도 이 선박이 블라디보스톡에 그대로 정박하면서 속초로 돌아가는 관광객들을 기다렸음을 알수가 있었다.

앞에서 약간은 소개가 되었지만 뉴불루오션호는 속초-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속초-러시아 자루비노-속초항로를 위클리 베이스로 운항하는 카페리선이다. 속초에서 금요일 오후 4시에 블라디보스톡항으로 출항하여 다음날 오후 4시에 불라디보스톡에 도착하고 블라디보스톡항세 토요일과 일요일 정박한 다음에 월요일 12시에 출항하여 속초 동명항에는 화요일 오전 8시에 도착하게 된다. 그 다음 일정은 화요일 속초항을 떠나 자루비노에 수요일 도착하면 다시 자루비노항을 모요일 오후에 출항하여 속초항에는 금요일 11시경에 입항하게 된다.

7월 29일 뉴블루오션호에 탑승한 블라디보스톡항을 출발하여 속초로 가는 여행객들은 모두 287명이었다. 블라디보스톡으로 올때 탑승객 중 한국인이 230명이었으므로 이날 뉴블루오션호를 탄 러시아인 승객은 약 50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저녁 7시경 저녁 안내 방송에 따라 식사를 마치고 투어러시아를 통해 블라디보스톡의 2박3일 일정을 함께한 승객들에게 이번 여행에 대해서 그 소감을 물어보았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한결같이 상당히 재미있는 여행이었다고 말했다. 기자와 동반한 기자의 젊은 여식은 친구들과 빠른 시일내에 다시 찾아오겠다며 아주 좋은 여행이었다고 평했다. 우리가 묶었던 블라디보스톡 호텔의 시설과 주변 경관에 대해서 엄청난 불만을 얘기하던 일부 승객들도 이 때쯤 다시 여행 소감을 묻자 “생각 보다는 좋았다”고 말했다.

기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도 이번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여행은 20여년전의 그때와는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로 편안하고 즐거운 여행이었다. 물론 1992년 당시에는 러시아가 페레스트로이카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고 韓蘇간에 수교가 되어있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비교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을 것이다. 당시에는 혹시 뭐가 잘못되어 공산주의 국가에 억류되는 것은 아닌지, 혹시 잘못 마피아 같은 친구들에게 걸려들어 돈을 몽땅 털리는 것은 아닌지 불안불안한 상황에서 여행을 했었다. 일류호텔이라는 곳에 욕조에 물받이용 고무마개가 없어서 비닐을 뭉쳐서 욕조 구멍을 막기도 했고, 공항에서 세관공무원이 자기에게 담배를 주지 않는다고 “요주의 인물” 표시를 하는 바람에 기자는 20여분 탑승하지 못하고 붙잡혀 있기도 했었다.

▲ 블라디보스톡 시내 중심가의 모습. 유명 백화점이 근처에 있었다.

그 때와 비교할 때 블라디보스톡은 너무나 변해 있었다. 아직 특급 호텔은 없지만, 호텔도 묶을만 했고 식사도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다. 다만 흠이 있다면 물가가 전반적으로 비싸다는 점과 기념이 될만한 선물을 살 게 별게 없다는 점이었다.

기자는 속초항에 7월 30일 화요일 오전 8시에 도착하여 10시 20분에 속초 시외버스 터미널을 출발하여 동서울로 오는 예의 금강고속 버스에 몸을 실었다. 4박 5일간의 짧은 블라디보스톡 여행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몇가지 정도는 스테나대아 라인에 나름대로 조언해야헸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승객을 늘리기 위해서는 블라디보스톡을 여행하는 승객들이 즐기고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할 것 같았다. 현재와 같은 항일 유적지 관광 정도로는 금방 식상할 것이 뻔하고 한번 가본 사람은 다시는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블라디보스톡은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관광보다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 올 수 있는 여행객이 많다고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관광 쪽 보다는 체험관광 예컨대 러시아식 사우나 체험이나 순록 사냥과 같은 획기적인 체험 관광의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싶다. 블라디보스톡 앞바다에는 가자미와 도다리 광어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고 한다. 따라서 낚시 관광객을 유치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최고 여객선사 스테나대아 기대

이러한 얘기는 카페리선사 뿐만 아니라 일반 관광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이기도 하다. 러시아를 갈 경우 특별이 무엇을 관광하기 보다는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보고 스스로 러시아를 체험해 보거나 좋은 자연환경 속에서 힐링을 할 수 있는 휴식의 시간을 갖기를 권장해 본다.

사실 한국과 러시아간의 카페리항로는 그동안 여러사람들이 시도를 했다가 모두 실패하고만 항로라고 할 수 있다. 스테나대아라인 보다도 먼저 검토하를 하거나 먼저 취항했던 회사들이 엄청난 적자를 보면서 망해간 항로이다. 또한 현재 블라디보스톡항로에는 스테나대아라인 보다도 먼저 취항한 DBS크루즈사의 카페리도 취항하고 있다. 한국-러시아간 항로에서 심각한 경쟁 양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스테나대아라인은 블라디보스톡항로의 경우 승객과 화물이 어느 정도는 뒷받침 되지만 자루비노항로는 러시아 비자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어서 어려움이 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어려운 점이 많지만 기자는 이번 블라디보스톡항 방문을 계기로 상당히 밝은 전망을 할 수가 있었다. 블라디보스톡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 관광지, 더 좋은 휴식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자루비노항의 문제도 비자 문제등만 해결해 낼 수 있다면 훈춘을 통한 백두산 관광의 붐을 다시 한번 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우리가 마음 든든하게 생각하는 것은 세계 최고의 서비스를 자랑하는 전통의 유럽 페리선사 스테나라인과 우리나라 최고의 여객선사 대아고속이 손을 잡고 시작한 첫 사업이 속초-블라디보스톡항로 사업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성공시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관계자들이 확신을 갖고 좀 더 좋은 서비스 개발을 위해 노력해 해주기기를 바란다.

이번 러시아 카페리 여행은 기자의 ‘배타고 떠나는 여행’의 여행기 중에도 특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여년만에 다시 블라디보스톡을 볼 수 있었다는 점과 하나뿐인 딸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좋은 경험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준 스테나대아라인의 허만철 사장님 이하 관계자 여러분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저작권자 © 한국해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