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정동국제 서동희 대표변호사

곽윤직 교수는 상계제도의 주된 기능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두 당사자 가운데 어느 한쪽의 자력(資力)이 나빠진 경우, 특히 파산(破産)한 경우에, 다른 쪽 당사자가 자기의 채무(債務)는 전액을 변제하면서, 자기의 채권(債權)의 실현은 곤란하게 된다면, 결코 공평하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불공평을 제거하자는 데에 상계제도(相計制度)의 또 하나의 목적이 있다.

예컨대, 위의 예에서 갑(甲)이 파산(破産)했다고 가정한다면, 상계(相計)의 제도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는, 을(乙)은 자기의 채무(債務) 100만원은 전액을 청구당하게 되나, 자기의 채권은 파산채권(破産債權)으로서 배당(配當)에 참가할 수 있을 뿐이다(파산채권의 배당은 보통 2.3할에 지나지 않음을 생각하라).

그런데, 원래 당사자 쌍방이 같은 종류의 채권을 가지는 경우에는, 당사자는 그 대등액(對等額)에서 이미 채무관계(債務關係)를 정리해서 끝낸 것으로 서로 믿고 있는 것이므로, 이러한 경우에 위와 같은 결과를 인정하는 것은 공평에 반한다.

그런데 상계는, 당사자 쌍방이 서로 같은 종류의 채권을 가지고 있는 때에는, 당사자의 자력과는 관계없이, 액수가 같은 채권은 같은 효력이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므로, 이 제도에 의하여 위와 같은 불공평을 제거하고, 당사자 사이의 신뢰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본래 채권의 가치는 일반적으로 채무자의 자력에 의하여 정하여지는 것이지만, 당사자 사이에서는 그러한 당사자의 자력과는 관계없이 액수가 같은 채권은 같은 효력이 있다고 하는 것이 공평하다는 데에 상계제도의 기초가 있는 것이다.(채권총론, 박영사, 제6판, 2002, 278 면).

일반적인 경우(파산의 경우를 포함해) 채권자와 채무자가 서로 동종의 채권·채무를 가지고 있을 때, 대등액에서 소멸하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회생절차에서는 이와 같은 일반적인 법 원칙을 적용하는 것 못지 않게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회사를 회생시키기 위한 목적이 우선시되므로 채권자의 상계권 행사에 일정한 제한이 가해지게 된다. 이번 회에는 이에 대해 살펴 보고자 한다.

통상 민법에서 ‘상계적상’이라는 말을 쓰는데 ‘상계적상’이 되려면 첫째 채권이 대립하고 있을 것, 둘째 두 채권이 동종의 목적을 가질 것, 셋째 두 채권이 변제기에 있을 것1), 넷째 채권의 성질이 상계가 허용될 것의 네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채무자회생법 제144조 제1항은 "회생채권자 또는 회생담보권자가 회생절차개시 당시 채무자에 대하여 채무를 부담하는 경우 채권과 채무의 쌍방이 신고기간만료 전에 상계할 수 있게 된 때에는 회생채권자 또는 회생담보권자는 그 기간 안에 한하여 회생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상계할 수 있다. 채무가 기한부인 때에도 같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하게 살펴봐야할 점은 회생절차개시 당시 어떤 요건을 갖추고 있어야 채권자가 회생절차에 들어 간 채무자에 대해 상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 여부다.

위에서 본 것처럼 ‘상계적상’이 되려면 채권자의 변제기가 이미 도래해 있어야 하는데, 채무자회생법 제144조 제1항 아래에서 채권자가 회생절차에 들어간 채무자에 대해 상계권을 행사함에 있어서는 그러한 ‘상계적상’이 있을 것이 요구되지 않는다.

단지 회생절차개시 당시 자동채권이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며, 그 변제기가 아직 미도래한 것이라도 무방하다. 다만 채권 신고기간만료 전에 ‘상계할 수 있게 된 때’에 해당돼야 하는데, 여기에서 ‘상계할 수 있게 된 때’가 바로 ‘상계적상’과 같은 의미다. 즉, 신고기간만료 전에 채권자의 자동채권의 변제기가 도래해야 한다.

예를 들면 회생절차에 들어 간 어떤 해운회사 B에 대해 채권자 A가 회생절차가 개시되기 이전 시점에서 20억원의 자금을 대여해 주었는데 B는 2013년 5월 1일 회생절차 개시됐고 대여금 채권의 변제기는 2013년 6월 1일로 돼 있으며 B는 A에 대해 A의 용선계약위반으로 최근 런던 중재를 한 결과 15억원의 손해배상채권이 있다는 승소의 판정을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 서동희 변호사
이러한 경우 채권자 A는 채무자 B에 대해 변제기가 신고기간만료 전에 오는 것인가 여부에 따라 상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신고기간만료일자가 2013년 6월 5일이라고 한다면 A는 15억원 범위에서 신고기간만료 전에 서면 또는 구두로 B의 관리인에 대해 의사표시를 하여 상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며 상계되지 않고 남은 5억원만을 회생채권 또는 회생담보권으로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반면 신고기간만료 일자가 2013년 5월 25일이라고 한다면 A는 상계권 행사를 전혀 할 수 없고 전액을 회생절차를 통해 변제받게 되며 B로부터는 15억원 전액을 청구 당하게 된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상대방 채무자가 회생절차로 들어 갈 때, 혹시 상계를 할 수 있는지를 면밀히 검토해 가능하면 최대한도로 상계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1) 채권자가 채무자에 대해(사실은 반대의 입장에서는 채권자·채무자의 지위가 바뀌게 되지만, 여기에서는 회생절차에 들어 간 당사자를 채무자라고 하겠음) 가지는 채권을 자동채권이라고 말하고, 채무자가 채권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채권을 수동채권이라고 말하는데, 상계적상이 되기 위해 자동채권의 변제기가 도래하였으면 충분하고, 수동채권의 변제기가 도래할 것은 필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채권자가 아직 자신의 채무(즉, 수동채권)의 변제기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지만 미리 포기하는 것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한국해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