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대학원 양창호 교수

▲ 양창호 인천대 교수
해운업은 공급사슬이 중요한 인프라이기 때문에 한 국가 입장에서 해상운송산업의 안정적인 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국민경제에게 커다란 리스크가 아닐 수 없다. 단순히 해운업이 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산업이고 GDP에서 차지하는 산업의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정도의 시각으로는 우리 경제의 미래가 달린 바다를 통한 원활한 물자수송 인프라 구축이라는 차원에서 해운산업을 볼 수가 없다.

선진국 등 많은 국가들이 자국의 해운산업을 톤세제, 투자세액공제 등 세제지원, 정부 지급보증, 금융당국의 자금지원 등을 통해 특별히 지원하고 육성하는 이유도 해운업이 국제물류, 항만, 조선, 철강, 기계, 선박금융, 무역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직간접적인 고용효과도 큰 중요 수송인프라이기 때문이다. 이미 일본은 해운업체들에게 연 1%의 저리로 10년 만기 회사채를 발행하도록 하였고, 중국은 260억 달러의 재원을 마련해 조선, 해운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덴마크도 세계 1위 컨테이너선사인 자국의 머스크에 62억 달러를 지급보증하며 경쟁력을 키우고 있고, 프랑스 정부도 세계 3위의 CMA CGM의 유동성 위기에 대해 10억 달러 이상의 정부기금을 지원한 바 있다.

특히 해운업은 글로벌 서비스 산업이기 때문에 전 세계적인 브랜드 가치가 매우 중요하다. 한번 무너지면 재건에 많은 시간과 투자가 소요되기 때문이다. ‘대한해운(Korea Line)’과 ‘STX팬오션(STX Pan Ocean)’이라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벌크선대 운영 브랜드 선사가 침몰한 것은 우리나라 해운업의 글로벌 인지도를 잃고 있다는 면에서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런 회사의 핵심역량은 브랜드 이외에도 수십년 간 쌓여온 전 세계 고객과 영업 노하우이다. 그런 핵심역량을 갖고 글로벌 전문물류기업으로 성장하기를 바란 것은 특정 민간기업의 성장이기 이전에 우리나라 해운업의 글로벌화를 이끌어 가고 있던 기업들이었기 때문이다. 벌써 STX 팬오션이 2012년에 계약한 5조원에 달하는 우드펄프 장기운송계약이 취소될 위기에 놓여 있다.

대한해운, STX 팬오션과 같은 해운업체가 세계적인 전문 물류기업으로 육성하지 못하고 자금난으로 도산하고 있는 사이, 자금이 풍부한 화주기업과 재벌계열 물류회사가 그 빈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화학기업인 티케이케미칼은 2150억원에 대한해운을 인수했다. 티케이케미컬의 SM그룹은 화학, 건설 중심이었지만 해운업으로 사업구조를 다각화하기 위해 대한해운을 인수했다고 한다. 또한 현대글로비스는 이미 상당수의 STX 팬오션 영업 핵심인력을 스카우트하면서 국내 최대 벌크선 운영선사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2020년까지 자동차선은 50척에서 100척으로, 벌크선은 20척에서 400척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불황이 길어지면서 유동성 위기를 맞고 있는 곳은 컨테이너선 해운회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 대표 컨테이너선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도 정부와 금융기관의 유동성 지원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 영구채(perpetual bond)가 국제회계기준위원회에서 자본으로 인정되면서 부채비율이 높은 해운업계에게는 유력한 자본조달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9월 말 한진해운 회장이 직접 나서 우리금융지주 등 시중은행에게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4억 달러 규모의 영구채 발행에 지급보증을 부탁했다고 한다. 시중은행들은 이러한 한진해운의 영구채 발행에 대해 '지급보증 불가' 방침을 고수하다가, 금감원이 나서 한진해운 영구채 관련 해결 방안을 모색하자, 시중은행들이 차선책으로 한진해운 영구채에 대해 은행별 채권비율로 보증하자는 분위기로 돌아선 듯하다.

현대상선도 4000억원 규모의 영구채 발행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책금융공사는 현대상선이 보유한 현대증권, 국민은행, 신한은행 주식을 담보로 발행 보증이 가능하다는 입장이고 산업은행은 좀 더 신중한 입장이어서 리스크 분산 차원에서 최소한 2~3곳 시중은행의 분담 보증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해운업체 3위의 STX 팬오션이 부도난 이후 해운업계 1위, 2위 업체에까지 문제가 생기면 국가 경제에 큰 악영향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한진해운이나 현대상선 선박이 해외에서 현금지불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세계 주요 항만에서 이들 선박들이 압류를 당하게 될 텐데, 그때 가서야 국가신인도를 들먹이며 무역대국의 해운업이 이지경이 되도록 왜 정책적 대응을 미리 하지 못했는가 하면서 법석을 떨게 분명하다.

세계 컨테이너선 업계는 지금 큰 전쟁을 치루는 중이다. 이 전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우리 국적선사는 유럽항로에서 퇴출당하고, 유럽선사들에게 수출입화물을 모두 수송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게 될 수 있다. 머스크라인의 1만 8000teu 초대형선 대량 투입과 세계 1~3위의 선사인 유럽 3개사의 P3 네트워크 얼라이언스 등장으로 우리 선사들은 초대형선에 대한 신규투자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원가경쟁력에서 이 공룡같은 얼라이언스에게 뒤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시장상황도 좋지 않다. 10월 첫 주 상하이-로테르담 운임은 20피트 컨테이너 당 675달러까지 하락했다. 이는 같은 노선의 유류할증료 20피트 컨테이너 당 525달러와 비슷한 금액에 불과한 수준이다. 머스크라인은 11월에 운임을 인상하겠다고 하지만 이는 반복되는 운임인상 시도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많다. 임시변통의 방법이 아닌 근본적인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2009년 같이 대형 컨테이너선의 계선을 늘리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먼저 나서서 초대형선을 계선시키려 하는 해운사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Drewry사는 컨테이너 수급 불균형이 2015년까지도 이어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우리나라 국적 선사들은 해운경기 불황이 길어지면서 유동성 부족사태를 맞으면서도,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초대형, 연료절감형 신조선 건조에 투자를 해야 하는 부담에, 그리고 앞으로도 시황 개선에 1~2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3중고(trilemma)에 빠져 있다. 유동성 위기 속에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신조선 발주를 한 척도 못하고 있는 선사들이 대부분이다. 해운업에 대한 실질적인 유동성 지원 대책을 촉구한다. 해운보증기금, 선박금융공사, 회사채시장 정상화 방안 등은 실효성 부족하거나 추진이 지연되어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사후 약방문이 되지 않도록 정부와 금융당국, 그리고 국회는 해운업 유동성 위기사태의 심각성을 올바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해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