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대학원 양창호 교수

▲ 양창호 인천대 교수
컨테이너 정기선 업계가 지금 곤경에 빠진 큰 원인은 선복과잉이지만, 비용구조의 균일화에 따른 ‘파멸적 경쟁(destructive competition)’도 한 원인이다. 컨테이너선의 경우 비용구조나 비용수준의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에 선박의 화물적재에 여유 공간이 있다면 화물선적 취급비용인 한계비용 수준의 운임으로도 운송하려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한계비용 수준의 운임 경쟁이 일상으로 일어난다면 운임이 단기 한계비용까지 하락하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자본비가 회수되지 않아 선박대체를 할 수 없어, 정기선 해운서비스는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없게 된다.

파멸적 경쟁 이론은 궁극적으로 산업의 파멸을 가져온다는 것으로, 많은 학자들이 경제학의 핵심이론(the Theory of the Core)으로 이 정기선 산업의 파멸적 경쟁을 설명하고 있다. 즉 세계 정기선 해운산업의 핵심(core)이 없다는(empty) 연구들의 결과이다. 정기선 사업이 핵심에 기초한 경우 해운시장에서의 경쟁을 설명할 수 있으나, 정기선 사업의 핵심이 비어 있다는 얘기는 정기선사업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유지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핵심능력이 없이 체력승부만 펼친다는 얘기이다. 체력승부의 전쟁은 초대형선 건조와 얼라이언스의 대형화 두 가지로 살펴 볼 수 있다. 영국의 클락슨 사에 의하면, 2014년에 준공될 1만 teu 이상 초대형선은 55척 73만 teu, 2015년에는 52척 79만 teu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고, 이것이 선박량을 증가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또한 각 선사들이 이와 같은 초대형선 건조에 투입자원이 고갈되자 G6나 P3 네트워크, CKYH와 에버그린의 제휴 같은 얼라이언스의 확장을 꾀하고 있다. 선사 단독으로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운항할 경우 선박 투자에 대한 막대한 자금조달에도 한계가 있고, 서비스 신뢰도와 빈도를 높이기 위해 선박의 화물 적재율이 떨어질 위험이 커지게 된다. 최근의 글로벌 해운 얼라이언스의 현상은 이러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인 셈이다.

여기에 최근 논의되고 있는 양적완화 축소가 해운산업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지난 수년간 이어온 제로금리정책(Zero Interest Rate Policy)에 이은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가 해운시장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경기부양을 위해 대규모의 국채매입을 통한 양적완화로 세계 4대 중앙은행(미국, 유럽, 일본, 영국)의 총자산 규모가 2007년 3조 9천억 달러에서 2013년 9월 말 기준으로 9조 8천억 달러로 확대 되었다. 즉 이 기간 동안 4대 중앙은행이 찍어낸 돈이 6조 달러에 이른다.

문제는 이 막대한 통화를 받은 시중은행들이 가계나 기업에 대출을 하지 않고 주식이나 채권시장에서 자산매입을 해 왔다는 점이다. 이런 초저금리와 양적완화 정책 등의 조치들로 풀린 돈이 목적과 달리 글로벌 금융시장을 부양시키고 있다. 미국 주식시장은 사상최고치를 갱신했고, 채권가격도 사상 유래 없이 높아졌다. 하지만 현 세계경제가 활황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전히 실물부문은 장기적인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실물부문의 회복 없이도 금융시장의 호황이 발생한다. 흔히 주식시장에서 말하는 ‘유동성 장세’이다. 이런 유동성 장세는 실물부문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그 거품은 꺼지고 만다. 지금까지는 미국 중앙은행이 실물부문의 회복이 미약하다는 이유로 양적완화 조치를 계속 취해왔다. 즉 유동성 장세를 지탱해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이제 미국의 경기회복세가 완연해지면서 통화정책을 팽창에서 긴축으로 선화하려는 양적완화 축소정책이 제기되고 있다. 이 경우 시중 은행들도 대출을 줄여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일반기업들과 가계는 디레버리지(deleverage)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전에 사용되던 ‘레버리지’(차입을 통한 자산증식)대신에, ‘디레버리지’(차입축소, 빚 감축)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양적완화 축소가 해운에 미치는 영향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양적완화 축소는 중국 등 신흥국을 포함한 개도국의 경제성장세의 둔화를 야기 할 것이라는 점이다. 세계 4대 중앙은행이나, 그동안 조선소 등에 주로 대출을 많이 해 온 중국은행이 양적완화 축소에 나설 경우, 유동성에 의해 지탱해 온 글로벌 경제 성장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이는 완제품 수송을 하는 컨테이너선과 철광석 등 원자재 수송을 하는 드라이 벌크선 해운산업에 물동량 하락을 가져오는 원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해운, 조선업체는 양적완화 정책에 힘입어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오기도 하고, 선박금융기관으로부터 금융지원을 받기도 했다. 오랫동안 지속된 해운시황 침체로 유동성 부족을 겪고 있는 자국선사들에 대해 주로 신조선 건조나, 선대 보강에 대한 금융을 지원한 것이다. 그러나 주요 해운 및 선박금융기관들에게 디레버리지의 압박이 가해지면서, 그나마 행해졌던, 신조선이나 선대확장에 대한 금융여신이 축소되고, 자본시장의 위축으로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는 새로운 현상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나라 해운 및 조선 산업도 가뜩이나 금융위기 이후 실물 시장의 침체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컨테이너선 해운에서의 파멸적 경쟁상태 가속화, 그리고 양적완화 축소로 인한 해상운송 물동량 감소와 함께, 해운금융환경이 급격이 악화될 수 있는 삼중고(三重苦)에 시달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 세계 정기선 해운산업은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 언제까지 파멸적인 체력경쟁을 계속할 것인가? 정기선 해운서비스가 신뢰성 있고, 빈도가 유지되는 서비스로 지속가능하려면 이와 같은 운임경쟁을 제한하고 장기 평균비용 수준으로 운임이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화주단체와 해운업계가 머리를 맛 대고 정기선 서비스의 유지 발전을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과거 해운동맹의 유지가 그 당위성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이었다.

또한 해운업계에 유동성 지원 대책과 함께, 또 다른 위기를 가져올 수 있는 디레버리지에 대한 대책도 마련되어야 한다. 마침 12월 10일 해양수산부의 주도하에 해운업계, 금융업계, 그리고 연구기관 등이 한 자리에 모이는 ‘해운금융포럼’이 발족하였다. ‘해운금융포럼’이 주축이 되어 해운업계가 직면한 상황을 심도 있게 이해하고, 해운금융의 걸림돌이 무엇이고, 어떻게 활성화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대안이 도출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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