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김인현 고려대 교수
편의치적선(Flag of Convenience)은 선적을 부여하는 국가가 그 선박과 진정한 연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선적을 부여하는 경우에 그 국가에 등록된 선박을 말한다. 편의치적은 국제경쟁에 놓여있는 선주들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의 일환에서 비롯됐다. 예컨대 일본선적이 되면 일본법에 의해 일본 선원을 모두 승선시켜야한다. 일본선원들의 임금은 높기 때문에 파나마에 치적한다. 파나마에는 이러한 제약이 없기 때문에 임금이 싼 국가의 선원을 승선시켜 경쟁력을 가지게 된다.

유엔해양법 제91조는 선박과 선적과의 사이에는 진정한 연계(genuine link)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진정한 연계가 없는 선박은 유엔해양법 위반이다. 편의치적국가의 해사안전행정이 미비된 상태이기 때문에 선박의 사고 등에 많은 문제점이 노출됐었다. 또한 선원들의 싼 임금을 활용하기 때문에 유럽선원들의 일자리 확보가 문제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선박편의치적선 퇴치운동이 한창 일어날 때도 있었지만 현재 세계 상선대의 50% 이상이 편의치적될 정도여서 IMO도 편의치적 자체를 부인하기 보다는 안전 등의 규정과 집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해 편의치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국내 선주가 선박을 외국에 편의치적 시킨 다음 운항중 손해배상사건 등에 연루되게 돼 선박소유자가 책임을 부담하게 되는 경우 책임의 주체는 실체가 없는 종이에 지나지 않게 되면 법원은 배후에 있는 국내 선사에게 책임을 부가시키려고 한다. 판례로 인정되는 법인격 부인론이다. 보통 나용선된 경우에는 나용선자가 책임의 주체가 되기 때문에 이런 일은 잘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등록 선박소유자가 책임 주체로 돼있는 유류오염손해배상(CLC)의 경우나 난파물제거등의 경우에는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재산이 없는 편의치적된 법인으로 책임을 한정하게 되면 채권자 보호에 미흡하게 된다. 각국의 법원은 이러한 경우 배후에 있는 실질 소유자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방안을 찾아내고 있다.

법인격 부인론에 따르면 편의치적했다고 편의치적된 선박회사가 모든 책임을 부담하고 실제적인 선주는 책임이 없다고 하는 것은 인정되지 않는다. 물론 법인격 부인론이라는 것은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 예외적으로 인정된다. 선박소유자들은 편의치적으로서 이익을 누리면서도 손해배상 등 책임의 문제에서는 법인격부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선박을 소유하고 운항해야 한다.

전통적인 편의치적 목적인 해사안전행정, 선원, 세금에서 이익을 누리기 위한 편의치적선과 금융의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편의치적은 결과가 위와 다를 것인가? 최근 선박금융이 중요하게 되면서 특수목적법인(SPC)을 해외에 새워서 금융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선박건조를 위해 은행들은 자금을 대여하면서 선박소유자에게 해외에 SPC를 만들 것을 종용하게 된다. 해외에서 그 선박에 대한 담보취득과 실행이 국내보다 유리하기 때문이다. 금융제공자, 실질선박소유자 및 SPC 사이에서 이러한 치적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금융제공자가 SPC가 소유하고 있는 선박에 대한 임의경매를 편의치적국법에 의해 하는 경우에 SPC가 이것이 편의치적이기 때문에 무효라고 주장할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SPC의 법률관계는 유효하다.

그러나 SPC는 해상법의 관점에서 보면 편의치적선이다. 선적을 부여하는 국가와 선박과는 진정한 연계가 없기 때문이다. SPC는 편의치적이기 때문에 이 선박의 등록국을 중심으로 한 법률관계는 위 전통적인 경우와 다르지 않다.

SPC가 선박소유자로서 책임을 부담해야하는 경우 유류오염손해 및 난파물제거와 같은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이러한 경우 법원은 법인격을 부인해 실제 선박소유자로서 나용선자 등에게 책임을 부과할 것이다. 선박투자회사법 제52조의 선박등록의 특례에 의해 SPC가 외국에 치적을 하고 한국에 등록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이러한 등록위반 사항에 대한 것이지 이러한 규정이 민사책임의 문제까지 해결해 법리를 변경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선박회사들이 금융의 목적으로 SPC를 활용해 선박을 보유하고 영업에 이익이 되는 것은 그대로 하더라도, 민사의 책임문제에서는 여전히 SPC자체로서 모든 법적 책임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대비책을 가지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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