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민현 고문(경영학박사)

▲ 윤민현 박사
1. 서언

“해운업을 하기 위해 전문지식이나 이론이 필요합니까? 그렇지 않은 회사가 배도 사고 돈도 잘벌고 있는데….”

얼마 전 어느 학생이 강의도중에 제기했던 질문이다. 몇해전 작고한 모 연구기관의 책임자도 똑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정답은? 하고 생각해보았지만 이것도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를지 모른다.

해운불황이 이제 6년차에 접어들었다. 전망이 엇갈리고 있지만 2014년 하반기부터 좋아질 것이라고 하지만 시장의 현상을 볼 때 그렇게 설득력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여러 분야에서 구조조정이 급속히 진전될 것이라는 당초 예측과 달리 사실상 이렇다 할 가시적인 진전이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성급한 낙관론, 은행 측의 미온적인 대응 등으로 미루어 왔던 개혁이 이제는 거의 한계에 다다른 것이 아닌가 싶다. 시장에는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은행지원을 기대할 수 있는 회사와 탈출구를 못 찾고 있는 회사, 신규로 선박을 발주하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보유 선박도 처분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회사도 있다.

이처럼 시장이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는 배경에는 전 세계 경제상황, 국가의 해운정책, 하주기업과 금융권의 정서가 주요 변수가 되겠으나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해운기업을 이끌어가는 리더들의 경륜과 노하우, 즉 지배구조의 컬러와 외부 기업환경 또는 정서라고 하겠다.

역사적으로 해운계는 항상 스스로 발등을 찍고 스스로 독을 깨는 일들이 있어왔다. 최근 해운불황이 1~2년 안에 개선될 것이라는 낙관론이 대두되고 있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무언가 긍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될 즈음 악재가 나타나 찬물을 끼얹고는 했다.

가장 우려할만한 악재는 낙관론에 편승한 발주 러시로 이미 그러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러한 불상사는 선주 자신들에 의해서 행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남지 않은 어두운 터널의 끝에 도달할 때까지, 태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때까지 얼마나 신중하고 노련한 선장이 핸들을 잡느냐다.

지난 5년의 시련을 겪는 과정에서도 이를 헤쳐 나가는 선장의 자세와 지배구조는 기업문화 탓인지 시장의 정서 탓인지 모르지만 지역별, 소유형태별로 현저한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해운기업의 지배구조는 곧 위기에 처해있는 해운시장의 장래를 좌우하는 중대 변수가 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그동안 질곡을 넘나들며 지난 10년의 Boom & Bust를 겪는 과정에서 나타났던 주요 해운국과 선두 해운기업들의 지배구조와 명암을 간단히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해운기업의 자본구조를 기준으로 보면 국영‧국유선사(Cosco, NOL등)와 일본의 대형 3사 등 상장선사(Public company) 그리고 Maersk, MSC, CMA CGM, EMC, OOCL, 그리스 선사 등 가족 중심의 민간회사(Family company)로 분류할 수 있으며 각각 위치해 있는 국가의 기업문화와 지배구조 성격에 따라 기업문화와 경영 컬러에도 차이가 있다. 특히 해운시장의 등락이 거듭될수록 위기와 기회를 관리하는 전략 혹은 리스크 매니지먼트 스타일이 다르고 그 결과에서도 우열이 드러나고 있다.

2. 그리스 해운

(1) 해운의 역사가 그 저력이다
2013년 기준 전세계 선복량의 15%를 점하고 있는 세계 제1의 해운국인 그리스 해운의 기초는 18세기부터 지중해에서 영국, 프랑스와 경쟁을 하면서 기초를 닦아왔으므로 20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다.

1825년에 이미 그리스 선박이 테임즈강까지 진출했고 1870년에는 2500여척의 범선을 소유, 흑해에서 서유럽까지 곡물을 주로 운송했다. 산업혁명과 함께 범선에서 강선으로 전환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이미 800여척의 대선단을 보유하고 전쟁 중에는 중립국의 지위를 바탕으로 엄청난 해운수익을 취했다. 종전직후 경제침체기를 맞은 영국으로부터 선령 10~15년의 중고선을 헐값에 대량매입하면서 세계 제1의 해운대국으로 부상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 세계 해운시장의 시스템을 주도하고 있다
1차 대전후 막강한 선대를 발판으로 당시 런던에 위치해 있던 Baltic Exchange, Lloyd’s 등 그리스 선주들이 대량 진출했다. 영국은 해운산업의 발전과 해운관련 법제를 검토하면서 그리스 선주들의 견해를 경청했고 그후 양국 선주단체의 공조체제는 국제해운산업의 발전과 해사관련법의 개발에 크게 기여했다.

2차 대전이 종료되자 많은 그리스 선주들이 선박금융이 용이한 뉴욕으로 대거 이주했으나 1960년대 케네디 대통령이 선주들에게 불리한 세법을 도입하자 뉴욕에 거주하던 그리스 선주들이 대거 런던으로 옮겨갔다.

당시 영국 상선대는 이미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기 때문에 런던의 해운관련 기반구조를 지탱하는데 그리스 선주들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60~70년대에 걸쳐 IMO 등의 핵심요직에 진출한 그리스 선주들은 전세계 해운산업에 주도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대부분의 선사들이 본부를 그리스가 아닌 런던, 뉴욕에 두고 국제적 비즈니스 위주로 운영하고(의존도 98%) 운임과 용선료는 뉴욕에서 달러화로 결제되며 대출은행들도 주로 해외은행들이기 때문에 최근 그리스 사태로 인한 Country risk는 거의 없다.

(3) 지원도 사양하고 간섭도 사양한다
그리스 선주들이 해외치적을 선호한 이유에 대해 전 그리스 선주협회 회장이 “not for tax reasons as is often referred, but to gain freedom”이라고 했듯이 그리스 선주들은 규제가 없고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해운업이 영위되기를 바란 나머지 그리스 치적보다는 해외에 기반을 둔 선사가 압도적이다.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기 보다는 최근 경제위기에 처한 모국을 지원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4) 실용적인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행한다
2차 대전 발발 직전 그리스는 영국, 노르웨이에 이어 유럽 제3위 해운국이었으나 전쟁도중 선단의 약 2/3가 유실됐다. 다행히 타국과 달리 모든 선박이 보험에 가입돼 있어 전후 거액의 보험금을 수령한 그리스 선주들은 전표선(war time built)을 대량 매입해 해운강국으로 재 부상했다.

전세계 선단의 90% 이상을 취급하고 있는 국제그룹 P&I 클럽의 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선주들이 대부분 그리스 선주들이며 지금도 세계 대형 P&I 클럽들이 매년 그리스에서 그리스 선주들을 상대로 시장 현안들에 대해 토의하는 자리를 갖고 있다.

(5) 그리스 선주의 성향과 지배구조의 특색
그리스 해운은 선대의 규모와 인력이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철저한 가족경영 체제를 바탕으로 일관성을 유지하며 운영되고 있다. 그리스 선주들은 장래를 예측하는 안목과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통해 해운시장의 침체기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으며 선행적 조치의 결과로 2008년 금융위기 시에도 거액의 유동성을 비축할 수 있었다.

리먼사태 이후 35억 달러 이상의 신규 유동성을 확보한 한선주(Navious의 Angeliki Frangou)는 ‘호황기에 대부분 선주들이 운항원가에 대해 무관심하기 쉽지만 우리는 꾸준히 원가를 개선해 왔다. 현재도 전체 선사 평균치보다 자사의 원가가 30% 정도는 낮을 것’이라고 말할 만큼 상시 원가관리에 충실했다. 해운을 통한 그리스 선주들의 재테크 특색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장기용선을 묶어서 선박을 매입한 후 최소의 비용을 들여 효과적으로 운항한다.
② 최신형 중고선을 신조선보다 훨씬 싸게 사서 잘 보수 유지해 해체시까지 운영한다.
③ 이런 과정에서 적절한 수준의 부채는 감수한다.

실제 2012년 그리스 선주들은 신조와 중고선 매입에 90억 달러를 투입, 중고선 238척 매입했다. 신조선은 대부분 건조중인 선박을 Resale 매입하거나 긴급매물로 확보했다. 대부분 선사들이 침체시장에서 허덕이는 동안 Danaos나 Costamare 등은 중고선을 Buy & charter-back 방삭으로 연간 12~16%에 달하는 수익률을 올릴 만큼 그들의 재테크는 남달랐다.

세계 최대 해운국이면서 선단은 벌커와 탱커 위주로 자체 대형 컨테이너 선사가 없다는 점은 정기선 시장에 대한 그들의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선가가 바닥에 이르자 신조 혹은 중고 컨테이너선을 매입해 장기로 용선해주고 있다. 그 배경을 두고 한선주는 대부분의 용선자들이 자체 선단을 보유하고 세계적인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어 용선시장에서 우려되는 Counterparty risk가 타 부문에 비해 훨씬 낮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3. 유럽 선주들

선복량 기준으로 그리스가 제1의 해운국이라면 개별 선사 단위로는 Cosco를 제외한 상위권 선사가 모두 유럽계다. 제1위의 머스크라인은 인구 550만으로 영토는 한반도 크기의 1/5정도 밖에 안되는 덴마크 선사이며 그 다음 역시 같은 크기의 국토에 인구 760만의 육지로 둘러 쌓여있는(landlocked)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MSC다.

(1) 머스크 어떤 회사인가?
1920년대 Arnold Peter Moller가 창업해 아들 Maersk Mc-Kinney Moller가 승계해 경영하다가 2012년 4월 16일 98세로 타계한 후 지금은 전문경영진을 앞세워 그의 딸이 승계해 경영하고 있는 그룹회사다. 그룹내 항공회사, 대형은행이 있고 대형 Retailer의 대주주다.

비교적 대형 기업이 많지 않은 덴마크에서 머스크는 고용창출 및 막대한 세금을 부담하고 있는 간판회사로 A.P Moller그룹의 매출은 2011년 기준, 602억 달러로 덴마크 GDP(금년 3170억 달러 예상)의 19%를 점하고 있다. H. Clarkson에 따르면 선단은 20112년 기준 830척으로 선령 15년 이상이 전체의 13%, 25년 이상은 단 한척뿐일 정도로 상대적으로 젊은 선대를 보유하고 있다. 그 동안 해운경영과 관련 대외적으로 표방된 머스크의 입장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① 해운계 재편은 시장논리에 따라야 하고 정책지원은 시장 회복을 지연시킨다.
② 시장에는 정부보조 없이도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선사들이 있다.
③ 3대 간선항로에서 25개 선사가 동일한 상품을 팔고 있다는 것은 비정상적인 현상이다.
④ 현시장에서 통합을 향한 동기는 충분하며 문제는 언제 어떻게 하느냐일 뿐이다.
⑤ 구조조정이 지체되면 투기자본과 금융권이 되돌아오고 신조발주로 이어질 수 있다.
⑥ 선사가 Market share 게임을 한다면 이는 Zero-sum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⑦ 시장의 리더, 체력이 강한 자, 원가가 낮은 자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순리다.

미국의 Sea-Land(1999년 인수가 8억 달러), P&O Nedlloyd(2005년 인수가 29억 달러) 등을 포함해 M&A를 가장 많이 한 회사다. 대부분 해운기업들이 시장안정 등의 이유로 진입장벽은 두껍게, 해운의 특수성 등을 이유로 카르텔을 정당화하며 안주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반해 머스크라인은 동맹 폐기론을 지지하고, 탄소배출규제 강화, 독금법 폐지 등에 대해서도 수용적 자세를 견지하는 등 실용적이면서도 자신감과 함께 공격적인 경영을 해왔다.

그들은 원가경쟁이 갈수록 심화될 것으로 전망하며 원가경쟁력이 취약한 선사들에 대해 공공연하게 신규투자에 좀 더 신중하라고 권고를 하는가 하면 시장점유율이 낮은 선사들이 ULCS 발주 대열에 나서는데 대해 의아해 하고 있다. 과다한 부채를 감수하며 발주한 선사, 특히 시장의 고점에서 고가로 발주한 선사들이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다.

(2) MSC(Mediterranean Shipping Co.)
1970년대 이태리 태생의 Mr. Aponte(70대 초반)가 창업한 회사다. 2011년 한때 컨테이너분야에서 머스크의 시장점유율을 잠식해가며 선복량 기준으로 머스크를 앞지를 정도로 선대 확장에 나섰으나 머스크의 Triple-E급 컨테이너선 인수와 함께 2위 선사로 물러섰다.

업계에서 15년 이상의 선박이 가장 많고 노후선, 싼배를 주로 찾는 선사로 알려져 있고 그런 연유인지 충돌, 화재 등의 대형사고가 많았다. 경쟁사인 CMA가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정부보조를 요청했을 때 머스크와 함께 반대 입장을 취할 정도로 선사에 대한 정부 지원에 반대하고 있다.

2012년 이후로 세계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컨테이너선이나 Cruise 선박 발주를 자제하겠다고 공언하며 공급과잉 개선에 동참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자신들은 확장할 만큼 다 하고나서 공급과잉문제를 이유로 발주 자제를 요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자세라는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는 건실한 재무구조를 유지하며 창업 2세가 경영에 참여해 대외업무를 주도하고 있다.

(3) CMA CGM
레바논 출신으로 현재 70대 중반의 Mr. Saade가 1978년 창업한 회사다. MSC의 Mr. Aponte씨가 내향적이고 과묵한데 Mr. Saade는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으로 2세가 경영일선에 이미 참여했지만 아직도 경영을 주도하고 있다. 2009년 금융위기 직후 구조조정에 앞서 은행측 요청으로 한때 물러났다가 Turkish Group인 Yildirim에게 일부 자산을 양도하며 5억 달러 상당의 투자를 유치한 후 CEO로 복귀했다. 철저한 가족경영 중심 체제이며 재정적 안정도면에서는 머스크나 MSC보다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으나 꾸준하게 대형화를 추진하고 있고 최근에는 경영실적이 호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4) 시장 영향력
Mc-Kinney Family가 경영하는 머스크를 포함해 이들 3개 선사의 공통점은 가족경영체제(Family-run company)로 오너와 자체에서 성장한 전문경영인들이 주도하는 경영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2세들이 초기에 해운업에 참여하면서 전문경영진들의 가이드로 일정기간 경영수업을 거친 후 경영중심에 세우고 있으며 가족들이 직접 참여해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고 있다. 2014년 2/4분기부터 개시될 초대형 얼라이언스 P3 역시 전문경영인(머스크)과 2세대 경영인(창업자의 아들)들간의 협상을 통해 이루어졌다.

머스크가 미래에 대한 전망과 현실을 예리하게 분석해 정공법으로 돌파하는 정석파 선사라면 MSC와 CMA CGM은 신축적(?)이며 비교적 실리에 주력하는 선사들이라 할 수 있다. 총선박 255척에 260만teu의 선복량으로 전세계 컨테이너 선복량의 33%를 점하는 P3에 대해 EU, 중국, 미국 경쟁당국과 하주측, 해운계 모두가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당사자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합병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어 향후 시장에 미칠 파장에 따라 2014년이 심각한 체력전의 3라운드가 될지도 모른다.

4. 일본 기업문화와 지배구조

주지하듯이 일본의 주력 3사를 이끌고 있는 리더들은 모두 해운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해운인들로 그들 산하에는 차세대를 이끌어 갈 주역들이 핵심 참모로서 경영의 축을 이루고 있다. 철저하게 전문경영인을 중심으로 경영의 대를 이어가고 있는 일본 주력 선사들의 현 리더들이 시장흐름과 대응전략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에 관해 미흡하지만 NYK(Yasumi Kudo 사장), MOL(Muto 사장), K-line(Jiro Asakura) 등 일본 3사의 연초 신년사(2013년 1월 4일)를 통해 살펴본다.

각사의 사업구조와 재정상태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현 시황에 대한 진단과 처방에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었다.

① China risk(조선 포함)와 공급과잉의 심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
② 시황 회복에 대한 보수적인 전망
③ 저속항해의 극대화와 Ballast 항해의 최소화
④ 잉여선박, Uncommitted 선박의 처분 추진
⑤ Free tonnage 줄이기 위해 비즈니스 파트너와 협력 강조
⑥ 해체, 매각, 조기반선, 인수 연기 등을 통한 Downsizing 추진
⑦ 마켓 리스크에 대한 선행적 관리

불황에 대처하는 전략은 과거의 실패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에서 시작하고 있으며 각사가 당면하고 있는 실상을 진솔하게 지적하고 실천방안에 대해서도 구체적이다. 이들의 반성문 어디에도 자금문제나 금융문제 등의 이유로 외부의 지원을 요청하는 소리는 없다. 일본 기업문화와 선주들의 사고를 유추할 수 있는 몇가지 사례를 살펴본다.

(1) ULCS에 대한 유보자세
머스크, UASC, China Shipping, MSC 등 다수가 1만 8000teu급을 발주했지만 일본 선주들은 발주를 서두를 이유가 없으며 필요하면 남의 선박을 빌려 쓰겠다고 말한다. NYK는 최근 5년 동안 신조선 발주 대신 용선을 택했으며 현재 OOCL에서 용선한 1만 3000teu급 4척에 대해서도 선주가 회수해가지 않는 한 계속 운항하기를 희망하고 있다.(2013년 10월, Kudo 사장)

MOL의 Muto사장은 ULCS 발주가 단지 항로에 남아있기 위해서라면 중형선사들에게는 너무 부담스러운 투자라고 말했다. MOL은 NOL로부터 1만 3000teu급 5척을 용선해서 투입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1만 8000teu급이 9000teu급보다 Port time이 2배 소요되며 11척을 77일 단위로 왕복 항해할 경우 그만큼 증속해야해 연료비가 증가하고 현시장에서 화물만 있으면 선박확보는 전혀 문제가 없으나 선박은 있는데 화물이 없으면 큰일이라고 지적했다. 서두르지 않고 안정위주의 신중하고 평범한 논리를 들어 정석에 충실한 자세라 할 수 있다.

(2) 시장을 보는 시각
현 공급과잉의 원인은 선사들의 판단착오와 주기에 역행하는(countercyclical) 발주 탓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시장이 약간 회복조짐을 보이자 다시 발주에 나서면서 2011년부터 침체로 돌아섰고 현재의 공급과잉을 초래한 것이다. 이제는 저선가, Ecoship에 다시 매달리며 침체를 장기화시키고 있다. 해운 시장은 항상 만성적인 공급과잉이었고 지금의 침체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2013년 10월 NYK 128년 기념사에서). 현재 수요는 2008년 수준을 초과하고 있고 미주, 유럽, 아시아의 비즈니스 환경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회복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3) 일본의 기업문화와 정서(공생과 협력)
90년대 말까지 거의 30년간 조선대국이었던 일본은 최근 한국과 중국에 밀려 3위가 됐지만 조선대국의 위상에는 별 영향이 없을 것 같다. 2008년 이후 원화:엔화 환률이 10:1에서 한때 15:1로 벌어지면서 가격면에서 거의 30%의 차이가 벌어질 만큼 엔고가 일본 조선업계의 핸디캡이었으나 아베 정권이후에 다시 엔저 정책이 시행되면서 조선업계의 대외경쟁력이 크게 개선되고 있다.

일본이 과거 두 차례의 조선불황을 겪는 과정에서 2회에 걸쳐 자율적으로 설비감축을 시행했는가 하면 호황기에도 설비확장 없이 생산성 향상에 주력해왔기 때문에 해운업계와 마찬가지로 공급과잉 정도는 주변국가에 비해 덜하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물가가 비싼 나라로 빈번한 지진사태와 과거 엔고 등으로 인한 부담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여전히 아시아 지역의 Business Hub로 남아있을 수 있는 것은 이른바 ‘Keiretsu(系列)’ 혹은 ‘Japan Incorporate(日本株式會社)’의 문화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일본 조선업계가 어려울 때 철강회사들이 강재값 인상을 자제했고 일본의 대형 하주들은 국적선을 우선적으로 이용했다. 전세계 해운계가 신조선 발주에 나섰을 때 대부분의 선주들이 선가를 이유로 중국 조선소를 찾아갔지만 일본 대형 선주들은 일본 조선소를 찾았고 일본 정책 금융도 이를 적극 뒷받침했다.

해운호황기에 모두가 다투어 신조선 발주에 나섰지만 일본 조선ㆍ해운업계는 신중 모드를 취했으며 그 결과 금융위기가 전 세계 특히 한국, 중국 등의 해운, 금융, 조선업계를 강타했지만 일본 업계들은 비교적 차분했다.

일본은 인간관계와 유대관계를 중시한다고 알려져 있다. 해운불황기에도 해운, 조선, 금융업계가 Pool을 결성하면서 일본 해운업계를 지탱하는 기둥 역할을 하고 있으며 소탐대실하지 않는 공존의 정신이 있기 때문에 일본의 전략물자, 대형화물이 일본 국적선사에게 우선 배정되는 것이다. 이는 선하주간 협력을 강조하는 외침이 없더라도 믿음과 질(quality)을 중시하는 일본 기업가들의 경영철학이 바탕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4) 구조조정과 M&A
일본 특유의 기업문화에도 불구하고 자력생존이 어려운 기업들간에는 M&A가 추진돼 왔다. 일본 M&A의 특징이라면 상황이 심각해지기 이전에 착수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실용위주의 다이어 로그가 유지된다, 배후에서 금융권이 가이드 하고 대형하주·주주들이 지원한다는 점이다.

일본산업의 통폐합은 Steel-oil 분야에서 먼저 시작했다. 합병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지만 합병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인식 때문에 난관을 거쳐 합병을 실천해왔다. 4년여에 걸친 협상을 거쳐 IHI United Marine과 Universal Shipbuilding이 합병했고 MHI와 Imabari 조선소가 컨선 건조분야에서 협력하는 등 기술측면에서 손을 잡았다.

해운산업의 경우 벌크는 철강업계 주도로 Shinwa Kaiun과 Nippon Steel Shipping이 NS United Shipping으로, 탱커는 석유업계 주도로 Nissho Shipping과 Yuyo Steamship이 JX Shipping으로 통합되는 것처럼 일본 해운의 M&A 이면에는 Sumitomo, Kawasaki, Mitsubishi 등의 기업집단이 있었다.

Liner부문은 아직까지 가시적인 움직임은 없다. 2011년말 MOL 사장이 주력 3사의 컨테이너 부문을 통합할 수 있다는 발언을 했고 NYK 사장은 3사간에 그런 이야기를 아직 협의해본적은 없지만 생각해 볼 수 있는 대안이라고 화답했다. 홍길동 회사 사장이 구조조정차원에서 박문수 회사의 어느 부문과 통합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합의없이 서울에서 했더라면 그 여파가 어떠했을까?

호황기에도 이들은 ULCS 발주보다는 관련 3사, 조선업계가 공동으로 에너지 효율 선박의 설계에 투자하는 등 R&D를 통한 기술적 제휴를 중시했다. 같은 맥락에서 해사기술분야의 R&D 개발은 NK의 주도로 정부, 선사, 대형 조선소들이 참여해 2013년초 결성한 Mijac(Maritime Innovation Japan Corp) 등이 그 좋은 실례다. 선박 건조는 여러 조선소에서 하더라도 R&D와 설계 창구는 단일화해 개발의 질과 효과를 높이겠다는 것이 설립 취지다.

엔저 정책을 기반으로 정관산업계가 동참한 R&D 활성화, M&A를 통한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으며 해운과 조선업계가 상생의 협력을 이루어 내고 있다. 흔히 하는 말로 고기를 잡아다 주는 것보다 고기 잡는 법을 지원하겠다는 접근방식으로 고기를 잡아달라는 사람과 잡는 법을 배우고자하는 사람 간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5) 과감한 중고선 처분
일본 선주들은 2011년초부터 선가가 하락하는 와중에도 비경제선과 노후선 교체,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중고선을 대량 처분했다. 주목할 점은 일본 선주들의 매각 성향을 보면 최고가 아닌 최적가격과 타이밍을 중시, Cash buyer를 선호, 가능하면 중고선보다는 해체선으로 매각한다 는 점이다.

1972년 당시 해운계의 관심을 모았던 YS라인의 와카쓰루(若鶴) 마루호(16만톤급, 15년산 OBO)를 비롯해 2012년 MOL의 Double hull VLCC 4척의 해체 결정이 좋은 예다. 중고선 가격이 해체가격보다 더 높은데도 불구하고 해체 매각을 택한 이유에 대해 MOL은 ‘지금과 같은 침체시황에서 귀하의 노후선을 타경쟁사에 팔아 귀사의 선박과 경쟁하도록 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해체해 선복을 감축하는 것이 시황 회복에 기여하는 것이니 당연한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막연하게 고선가를 고집하기보다는 타이밍과 시장을 조망하는 일본 선주들의 안목, 처분의 당위성을 찾으면 금융조건 등 다른 장애요인에 구애받지 않고 처분할 수 있는 기업환경 등이 좋와 보인다. 타국의 선사들은 수급개선과 유동성 확보차원에서 노후선, 비경제선을 적정선에서 매각 우선으로 처분하고 있는데 유동성이 이미 고갈됐음에도 아직도 비경제선의 해외매각이 국부유출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지…

5. 중화권 선사들

(1) 중국의 정책과 해운산업
중국의 해운산업은 곧 국가가 경영하는 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0년대 초반 중국은 해운산업 육성을 위해 자국화 자국선주의, 하주의 해운업 진출 억제, 선하주간 전략적 제휴 등의 보호대책을 내놓았었다. 주지하듯이 중국 대형 선사들은 국영이며 대부분이 정부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이른바 Controlled carrier들이기 때문에 중국 자체 수요를 중국선박과 연계시키려 하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중국 선주협회(CSA)가 중국의 하주 특히 국영 하주기업들이 해운에 진출하는 것을 강력히 반대하면서 내세우고 있는 명분은 ⓐ 전통해운회사들은 하주에 비해 해운산업의 주기성에 더 익숙해 있기 때문에 필요시 공급을 조절할 능력이 있고 ⓑ 하주들이 자회사를 통해 해운사업을 운영한다는 것이 용이치 않을 뿐만 아니라 ⓒ 자회사들이 모회사의 기본 물량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경영을 도모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렇다고 해서 시장의 공급과잉으로 인한 부담으로부터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CSA의 주장한 ⓐ, ⓑ, ⓒ 모두가 해운인들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어딘가 설득력이 약하고 어설퍼 보이는 주장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실제 중국이 아닌 타국의 경우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전통 해운회사들에게 커다란 위협이 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대부분 대형 하주들은 적정 규모의 자체 선단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도 제철산업은 해운계가 우려할 정도의 대형 Industrial carrier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때 중국 교통부도 하주들에게 해운업 진출을 자제해 줄 것과 필요하다면 가급적 해운회사와 합작 형태를 취하돼 소주주로 남고 전통 해운회사의 경영권을 존중해 줄 것을 요구한 바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대외무역량, 특히 원자재 수입량이 급증하고 자국내 조선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우선 순위에서 상당한 변화가 나타난다. 더구나 중국 교통부의 보호정책이 권고 수준이었기 때문에 하주들에게 구속력도 없어 이를 실천하려는 의지보다는 방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된다.

방치하는 이유는 국익차원에서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무역, 조선산업, 해운산업의 3분야를 대상으로 생산성, 고용창출 등을 포함한 국익차원에서 보면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중국은 각종 원자재와 석유제품의 대형 수입국가이므로 운송비 절감은 곧 국익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으며 선박의 수출과 고용창출이라는 측면에서 조선과 해운산업의 우선순위를 짐작할 수 있다.

2008년 기준으로 중국의 원자재 수입 물량은 8억톤으로 당시 하락된 운임으로 운송비를 절감한 규모가 연간 200억 달러에 달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장기 해운불황으로 인해 중국의 국영선사들도 적자운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2008년 이후 물량증가와 타 무역량을 합산해보면 바닥운임으로 인한 정부차원의 연간 운송비 절감규모를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중국의 정책은 해운보다 조선에 더 비중을, 운임하락보다 수송비 절감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2012년 한국수출입은행이 발표한 16조원의 선박금융과 2013년 6월 발표한 조선산업 추가 지원 내용은 해운계의 눈으로 볼 때 압도적으로 조선산업을 위한 편중된 지원정책이라 할 수 있겠지만 제3의 시각에서 보면 중국의 정책과 그렇게 거리가 멀어 보이지 않는 것은 착시현상인가?

(2) OOCL
1947년 CY Tung이 설립한 회사다. 1969년 Container 정기해운 사업에 진출했지만 1986년 한때 부채가 27억 달러에 이를 정도로 위기에 처하자 HSBC에서 5억 달러를 조달하고 홍콩 투자가 Henry Fok에게 주식 35%를 양도해 1억 2000만 달러를 유치하는 등 극약처방을 하기에 이른다.

이후 은행과 합의해 10년여에 걸친 구조조정후 재기에 성공, 1991년부터 양도했던 주식을 다시 사들이기 시작했다. 창업주 CY Tung에서 CH Tung→Andy Tung으로 이어지는 세습경영체제를 통해 Keep debt to a minimum, Cash is king, Stick to the trades you know를 경영 원칙으로 삼을 만큼 보수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OOCL은 장기해운불황에도 불구하고 2012년 하반기부터 흑자로 전환했고 바닥선가를 기회로 선대개편과 확장에 나서고 있다. OOCL의 투자에 대해 ‘절약하는 소박한 투자(Frugal investment)’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상시 가동하는 시스템을 통해 지속적으로 원가를 관리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경영철학을 실천한 구체적 사례들을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선가 하락을 기다리며 간선항로 선사 가운데 맨 마지막으로 1만teu 선박을 발주했다.
② 정책적으로 용선 비율을 선단의 35%로 유지한다.
③ 신조를 자제하면서도 평균 선령이 6년에 불과한 젊은 선단을 보유하고 있다.
④ 대체선(신조선)은 모두 연료 절감형이다.
⑤ 선가 하락으로 인한 자산가치 하락율이 업계 최소다.

OOCL은 선가를 기준으로 발주시기를 선택해 ULCS를 건조하고 대형선에 대한 리스크 분산 차원에서 얼라이언스 파트너들에게 빌려주되 항로여건에 따라 신축적으로 회수할 수 있도록 장기보다는 중기간(medium term) 용선을 선호한다.

OOCL은 한마디로 ‘Cautious, Well managed and clear-thinking player’이자 ‘Disciplined operating performance and tight management costs’를 무기로 하고 있는 회사로 정평이 나있다. 신중함과 원칙이 있는 경영시스템은 단시일내 구축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3) EMC(Ever Green)
1960년대 해기사 출신 장영발 회장이 설립한 가족경영회사로 한때 세계 제1의 컨테이너 선사로 부상했을 만큼 단기간에 급성장한 회사다. 80세 후반인 노해운인 장회장은 아직도 회사의 주요 정책을 모니터링할 정도의 열정을 갖고 있다.

독자 노선을 선호하며 최근에는 경쟁선사들과 낮은 수위의 선복교환 협정을 유지하고 있다. ULCS에 대해서는 호황기에는 바람직할지 모르나 불황기에는 회사에 재앙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이야기 할 만큼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으며 삼성에서 건조한 8800 teu급 20척, 대만 CSBC에 건조한 10척에서 보듯이 모두가 1만teu급 이하들이다.

오너의 이런 시각 때문에 그의 최측근조차 감히 발주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다가 2세와 측근 참모들 사이에 더 이상 미루다가는 불원 1만 3000teu급이 주력이 될 간선항로(Trunk line)에서 2류 선사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노해운인을 설득해 고육지계로 찾아낸 방안이 타선주로 하여금 ULCS를 발주토록하고 EMC가 용선하는 방안이었다.

결과적으로 남들이 한창 1만 3000teu급을 발주하던 시기와 비교할 때 선질이나 가격면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했지만 과연 ULCS 전환을 이루어낸 2세대의 전략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고집불통이란 소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ULCS 발주를 비켜가려고 한 노해운인의 고집이 맞는 것인지는 아직 속단하기에는 이른 것 같다.

EMC가 장기 T/C 예정으로 2012년에 현대중공업에 발주된 1만 3800teu급 10척의 선가는 척당 1억 1500만 달러였으나 2008년 국내 모선사가 발주한 1만 3100teu급 선가는 1억 7000만 달러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실이라면 단순 비교로 EMC가 용선료를 통해 부담해야 할 선가는 상대선사의 64% 수준에 불과하다. 순간의 오판이 10년 이상의 부담으로 남아 있게 된 것이다.

7. 시장 현황과 전망

현 시장은 아래와 같은 양극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① 고점에서 발주된 5년 전후의 고원가 선박 vs 고효율 저원가 신조선
② 거대 얼라이언스 vs 비얼라이언스의 하위선사
③ 원가 경쟁력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선사 vs 돌파구를 못찾고 끌려가는 선사
④ 용선선주(Chartered owner-해운 투기자본) vs 운항 선주
⑤ 낮은 선가를 활용, 재테크 차원에서 선박 투자에 나선 선사 vs 무능력한 선사

2013년 시장은 대체적으로 2012년도와 대동소이했다. 공급과잉 해소를 위한 구조조정이 필요했지만 은행들의 소극적 자세, 조선업계의 Eco marketing, 재테크 차원에서 신조에 나선 선박투자자들로 인해 공급과잉 상태는 개선되지 않았고 중고선 매입은 예상대로 그리스 선주들이 주도했다. IMF에 의하면 미국이 조금씩 회복조짐을 보이고 EU도 독일을 중심으로 저성장하고 있으며 중국도 완만하지만 아직도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어 바닥을 탈출하고 있다고 한다.

시장 흐름으로 유추할 때 현재 시장은 주기의 후반에 위치해 있다고는 하지만 공급과잉에서 고전하던 조선시장이 해운에 앞서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이상 현상 때문에 주기가 역류할 조짐을 보인다는 점이 문제다.

2012년말 670수준이었던 BDI가 2200대를 유지하는 등 부정기 부문이 다소 개선 조짐을 보이고 있으나 구형선박이 시장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만성적인 공급과잉으로 Spot 시장을 주물럭거리며 낮은 운임을 만끽해왔던 용선자들이 공급과잉의 단맛을 접고 신형 Ecoship만을 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기선업계는 이미 P3, G6, CYKH의 3그룹의 대결로 압축됐고 획기적인 개선이 없는 한 원가와 질 경쟁으로 Big company는 소규모 취약선사를 밀어내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의 재편이 진행될 것이다. 유럽권 선주들을 중심으로 상위선사들의 실적이 다소 개선됐지만 중국을 위시한 일부 아시아권 선사들의 상황은 이제 주변에서 우려해야할 정도로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는 자산의 규모, 선박의 척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를 관리하느냐가 관건으로 2014년을 무사히 넘기는 선사가 생존할 것이고 승자로 남게 될 것이다.

8. 이제는 달라져야!

역사적으로 선가 떨어지고 해운시장 주기가 반등할 것 같으면 발주가 급증했다. 70년대, 80년대 두 차례 해운 대불황을 겪으면서 ‘Too Big too fail’이란 해운시장에는 더 이상 해당되지 않는다 것이 검증됐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밥그릇을 깨는 짓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고 있다.

최근의 발주 실태를 보면 케이프사이즈는 2012년 32척 대비 2013년 11월까지 166척으로 거의 700% 증가했고 컨테이너는 2015년까지 7000teu급 이상이 거의 40% 증가할 전망이다. 미국의 세일가스 프로젝트붐으로 미국발 수출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자 MR탱커 발주가 러시를 이루면서 올해 9개월 동안 1200만톤이 발주됐다. 2012년 60여척에 410만톤과 비교하면 전년대비 3배가 발주됐으며 향후 2년에 걸쳐 25%정도 더 증가할 전망이다. 이런 신조붐으로 인해 2011년 5~6%였던 투자수익률이 현재 거의 Zero 수준으로 추락했다(H.Clarkson-2013년 11월 11일).

정부차원에서 볼 때 해운의 위상이 원자재, 무역상품의 원가 절감을 희생해야 할 만큼 그렇게 비중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정부의 개입을 통해 선하주 협력을 밀어붙이려 하는 것이 큰 효과가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중국과 같은 통제사회에서도 해운의 보호보다 운송단가를 줄이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데 결국 국익차원에서 해운불황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아닌가? ‘하주는 절대 해운업을 하면 안된다. 그리고 화물은 애국심 차원에서 우리에게!’라고 하기보다는 경영권이 보장되는 범위에서 상생의 길은 없는가를 모색해야한다.

9. 결언

지금 해운시장은 50년 이래 가장 젊은 신예 선대로 구성돼 있다. 평균선령이 벌커 9년, 탱커와 컨테이너선이 각각 8년인데도 불구하고 해체없이 Ecoship, ULCS 발주가 계속되고 있고 정기선업계는 2008년 해운동맹이 폐기된 이래 무려 34번의 GRI를 시도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최근에는 EU 경쟁당국이 운임 담합을 이유로 14개 선사를 상대로 칼을 뻬어 들었고 초대형 얼라이언스에 대해 하주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면 생존전략이 무엇인가? 무슨 오묘한 진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고차원의 경영이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수급균형 회복이외에는 대안이 없다. 시황 회복은 외적인 팽창이 아닌 내적 축소로부터 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과거 시장은 다수의 선박이 계선되고 해체되고 조선소들이 문을 닫아야만 비로소 회복의 길로 돌아섰다. 그러나 지금은 역류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선주들의 초대형 얼라이언스에 대해 EU, FMC, 중국 등 규제당국으로부터 청신호를 받게 될 경우 분명한 것은 일차적으로는 수익률 제고에 우선을 둘 것이나 불가피하다면 시장점유율 확보차원에서 체력전도 불사할 수 있다. 그들은 체력적으로 그럴 능력이 충분히 있으며 우선은 시장의 자율적인 단합을 강조하면서도 불연일 경우 운임전쟁으로 시장을 이끌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정기선 분야는 특단의 묘책이 없어 불황이 2015년 너머까지 갈지도 모른다. 꿈은 황홀한 것이 좋겠지만 기업의 생존전략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상해야 한다.

택시를 보자. 앞자리에 위치한 기사야 말로 주변 교통상황이나 지리에 밝고 숙련된 운전기술을 바탕으로 영업을 한다. 정체구역을 피할 줄도 알고 시간대로 손님이 많은 구역을 찾아 다니며 피곤하면 쉬고 차량에 문제가 있으면 정비를 한다. 이러한 노하우들이 바로 택시의 경영이라 할 수 있다. 만일 뒷자리에 앉은 누군가가 이런 일들과 관련해 그럴만한 전문성도 없으면서 기사에게 이런 저런 지시를 한다면(흔히 Backseat Driver라 한다) 명절이나 특수가 아닌한 그 택시의 영업이 제대로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의 해운불황은 범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전세계 해운기업 모두가 다 곤란을 겪고 있는 것 같지가 않고 국내 100여개 선사들 가운데도 선방을 하고 있는 선사들이 있다. 돌이켜 보면 우연인지 모르나 5대 선사들은 거의 예외없이 30년을 넘기지 못하고 주인이 바뀌었는가 하면 불황이 되면 앞자리 Driver는 2~3년 단위로, 임원들도 최측근이 아닌 한 매년 상당수가 물러났다. 왜 이런 현상이 반복되는가? 인사체증 해소나 세대교체를 위함인가?

거친 파도가 유능한 사공을 만들어 낸다고 했다.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가고 나면 시련기의 아팠던 경험을 교훈삼아 다음 파도를 대비하는 것이 회사를 위해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책차원에서 교체돼야 한다면 결국 시황의 주기가 곧 전문경영진의 수명이 되는 것 아닌가? 물론 경영진은 경영성과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책임의 주체가 돼야 할 사람들 가운데 예외가 있다면 그만한 설득력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해운역사를 살펴보면 해운을 주력으로 하지 않거나 남의 돈(Other Person's Money ; OPM)으로 사업을 계속하려 했던 회사들의 대부분이 불황기에 매우 취약했고 OPM에 의해 운명이 좌우됐다. 이른바 그룹에 속하는 해운회사들의 경우 주력기업이 아니면 호황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시장의 주기에 따라 그 해운회사도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구조조정을 미루다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허겁지겁 사람, 재산, 비용을 줄인다. 전략차원이 아니라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성의(?)를 보이기 위해서 구조조정이란 것을 한다. 대상은 조직과 인력으로 군살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유능한 인적자원들이 회사를 떠나면서 오히려 자신의 체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문제다.

(1) 오너경영 vs 전문경영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2011년 특별판은 ‘대내외 여건이 어려운 시기엔 오너가 경영하는 기업의 성과가 더 좋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하버드대학 벨렌 빌리 롱가 교수는 경제위기였던 2006~2009년 사이 세계 4000여개 기업의 성과를 비교검토 해본 결과 오너경영이 전문경영체제에 비해 매출신장세 2%, 시가총액도 6% 더 높았다고 발표했다.

국가별, 산업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이는 ‘위기에 강하고 위기때 과감한 투자, 조직의 응집력 강화, 오너가 암묵적으로 회사에 대해 무한책임을 부담한다’는 오너 경영의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반론도 있다. 2012년 2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아시아 모국가의 경제를 어둡게 보는 가장 큰 이유를 오너리스크라고 했다. 자본주의 역사가 길고 주식시장이 발달한 미국과 유럽 국가들에서 전문경영의 비중이 높다. 영국 전체기업의 95%, 미국 S&P 500대 기업의 65%가 전문경영체제이고 2008년 포춘지 선정 글로벌 100대 기업의 전문경영 비율은 64%라고 할 만큼 전문경영체제가 다수다.

전문경영체제는 경영인이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고 조직내부에서 민주적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투명성 높은 주주 중시 경영이 강점이다. 반면 주주의 이익에 어긋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하거나 자신의 사익을 추구하는 현상이 생길 수 있는 단점도 있다.

회사 경영실적은 나빠도 엄청난 보너스를 챙기거나 책임회피를 위해 기업위기때 신속하고 과감한 투자를 주저할 가능성도 있다. 즉 전문경영의 단점이 오너경영의 강점이 될 수 있다.

(2) 해운기업의 지배구조는?
최근의 해운시장은 오너 주도로 전문경영인이 전략을 수립하고 위기에 대처하더라도 해운의 국제성, 해운외적 요인들로 인해 난관을 돌파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여기에 발주시기 오판, 투자의 실패 등으로 인한 구조적 취약점까지 지니고 있을 경우에는 생존전략 자체가 불투명할 수 있는 경쟁환경이다.

해운기업은 두가지 시스템 중 어느 것이 정답이라 할 수 없으며 양자 모두 언젠가는 단점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글로벌 해운기업들의 지배구조를 살펴보았듯이 시장의 변화에 잘 적응하고 있는 유럽선주, OOCL, EMC 등은 강력한 가족경영체제에 가깝고 상생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문화를 갖고 있는 일본은 전문경영체제가 정착돼 있다. 국영기업은 정부의 보호막이 있는 만큼 논외로 한다.

국영은 아니지만 OPM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해운기업에는 어떤 구조가 적합할까? 일본과 같은 상생의 기업풍토도 아니고 유럽선주들과 같은 태생적으로 강력한 체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닌 만큼 중장기적 차원에서 한국에서 해운기업을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의 지배구조가 바람직한지에 대해 오너들 스스로가 진지하게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하나 분명한 것은 오너가 Backseat Driver가 되기보다는 적기에 앞좌석에서 앉아서 직접 핸들을 잡는 것이 더 위기관리에 효과적일지 모른다. 특히 작금의 해운위기를 감내하기 위해 바람직한 지배구조라면 강력한 오너의 리더십과 이를 보좌하는 참모진으로 구성된 좌청룡 우백호형 배열의 팀웍이라야 하며 시간이 경과하면서 정제되고 단련된 나름의 팀 스피릿(team spirit)이 구축되도록 해야 한다.

효과적인 인적자원 관리(Human resource management)차원에서 태풍을 돌파할 때 마다 사공을 바꾸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작금의 해운시장은 한번도 노(oar)를 잡아본 적도 없고 태풍을 경험한 적도 없는 사공이 항해를 주도해도 될 만큼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자본주의의 특색을 이야기할 때 미국은 주주자본주의, 일본은 법인 자본주의, 유럽은 조합(Association) 혹은 회사(corporation) 중심 자본주의라고 한다. 한국은 이중 어디에 해당하며 한국의 해운기업은 어느 쪽인가?

-윤민현 고문(Penb4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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