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 조장 및 통합기능의 강화를 중심으로
김인현(고려대 법대 교수, 해상법연구센터 소장)

▲ 김인현 고려대 교수
해상법은 사법의 일종으로서 선박을 이용한 영리활동을 하는 해상기업과 관련된 법률관계를 다룬다. 여기에는 해상기업이 운송인으로서 화주와 체결하는 운송계약상의 법률관계, 해상기업 상호간 선박을 빌려주는 용선에 관련된 법률관계, 선박과 관련된 담보제도, 공동해손 해난구조, 선박충돌 및 유류오염과 같은 특수한 제도 및 선박건조계약과 선박금융도 다룬다. 해상보험은 연혁적으로 해상법 고유 영역의 하나이다.

2008년 후반부터 찾아온 장기 해운불황을 경험하면서 해상법이 이러한 장기불황에 어떠한 기능도 하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해상법 학자로서 필자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과 같은 거북함을 몇 년간 가져왔다. 해상법학자는 해상기업 관련자의 손해배상의 문제를 공평하게 처리하는 것을 주된 연구의 대상으로 하므로 해상법의 본질상 경영에 활기를 불어넣는 자금의 조달등을 통한 경영의 활성화에 이바지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그러면서, 해상법이 해운기업의 장기적인 불황기에 너무 무기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전통적인 분쟁해결수단으로서 해상법은 사후적인 수단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해운기업의 흥망성쇠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해상법의 기능은 반드시 분쟁 해결 수단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소위 예방법학으로서의 기능도 있다. 분쟁의 발생을 사전에 방지함으로써 비용의 절감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기능은 해상법의 전통적인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좀더 자세히 알아보자.

첫째, 분쟁해결수단으로서 해상법의 기능을 본다. 선박충돌사고가 발생한 경우 선주는 보험금도 받아야하고 압류된 선박도 풀어서 운항을 재개해야 한다. 하루빨리 해방되지 않으면 다음 항차 용선에 나가지 못해 큰 손해가 발생한다. 손해가 있으면 손해배상을 받아야 하고 줄 것이 있으면 주어야 한다.

이러한 기능은 분쟁해결수단으로서 해상법을 바탕으로 하면서 해상변호사나 해상기업의 보험법무팀에서 처리하는 것이다. 고의 면책 혹은 담보위반으로 인한 보험자면책이 돼 해상기업이 보험금을 받지 못하면 큰 낭패를 보게 된다. 1선박 1회사인 경우에는 회사의 흥망이 달려있는 법적 분쟁이 될 것이다. 해상법의 분쟁해결수단으로서의 기능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둘째, 예방법학으로서의 해상법의 기능이다. 해상법은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고를 예방하는 기능을 해야 한다. 해상법은 반드시 분쟁이 일어나기를 기다려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잣대로서 법률규정을 두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명확한 잣대를 제시해 해운산업이나 조선산업에서 법률관계를 맺는 자들 사이의 분쟁을 일어나지 않도록하면서 서로 화해하면서 영업을 순조롭게 하도록 조력하는 사전적인 기능을 한다. 실무에서 재판관할을 영업소가 있는 한국의 법원이 가진다는 약정을 선하증권에 넣는 것이라던지, 중재를 런던에서 하고 준거법은 영국법으로 하기로 약정하고 법은 그 효력을 인정해 준다. 그렇지 않다면 사고 후에 서로 자신에게 유리한 장소에서 소송을 끌고가거나 유리한 법을 적용하려고 할 것이다. 복합운송에서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 해상법을 적용할 것인지 아니면 육상운송법을 적용할 것인지 법률의 규정이 없는 경우 사고가 발생하면 서로 유리한 법의 적용을 주장하게 된다. 해상운송인으로서는 책임제한이 있는 해상법을 적용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화주는 이에 반대하면서 분쟁이 발생할 것이다. 법을 제정 혹은 개정해 이러한 경우에 적용할 법을 상법에 넣어주면 분쟁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당사자들은 이를 미리 알고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러한 것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해상법의 예방법학으로서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예방법학으로서의 해상법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해상기업에게 많은 비용을 절감하게 한다.

예방법학으로서의 해상법은 비단 비용만 절감시켜주는 것이 아니다. 우수한 두뇌들로 하여금 불필요한 분쟁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함으로써 분쟁해결을 위해 사용되는 많은 시간을 절약해 건설적인 일에 투입한다면 경영에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호황의 절정이나 불경기에 해상법은 예방법학으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하였는가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호황의 절정기에 용선체인이 10번도 넘게 일어나면서 과도한 프리미엄이 붙고 있었다. 우리는 즐거워했다. 지나고보니 그것은 곧 파국이었음을 우리는 몰랐다.

자유경제체제하에서 그리고 용선이란 계약자유의 원칙이 지배되는 분야인데 국가가 법이 어떻게 용선의 숫자를 제한할 수 있겠는가? 하는 지극히 원론적인 생각만 했다. 투기적인 목적으로 행해지는 브로커들의 용선계약에의 진입을 막는 방안은 없었을까 생각해본다. 해운법을 통해 가능하지 않았을까? 용선계약상 약정을 통해 그 횟수를 제한할 의무를 선박소유자가 제1용선자에게 부과하고 이를 어기게 되면 불이익이 부과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법은 이를 유효하게 인정하도록 하면 집행이 될 것이다.

위와 같은 전통적인 분쟁해결수단으로서의 법학과 예방법학으로서의 기능에 더해 불황기에는 조장(助長)법학으로서의 해상법의 기능이 새롭게 부각돼야 한다. 이것은 경기회복에 도움이 되는 법제도를 만드는 데에 해상법이 기능을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선박우선특권제도가 있다. 이것은 공시되지 않으면서도 저당권자보다 우선하는 효력을 가진다. 그러므로 저당권자로서 은행은 선박을 담보로 저당을 잡으면서도 선박이 경매될 때에 우선특권자가 먼저 대금을 가져가기 때문에 자신은 선박가액의 일정부분만 담보가치로 인정받는 셈이 된다.

말하자면 선박소유자는 은행으로부터 선박가액의 전액에 대한 대출을 받지 못하게 된다. 전액대출이 가능하도록 선박우선특권의 효력을 축소하고 저당권자를 보호하는 제도를 만든다든지 아니면 보험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우리나라 대형선박회사가 컨테이너 박스를 매도해 운항자금을 마련하였다는 기사를 본다. 이는 질권설정만 가능하였지만 현재는 저당권처럼 선박소유자가 여전히 점유사용하면서 담보제공이 가능하기 때문에 반드시 매도하지 않아도 대금을 마련할 수 있다. 이러한 법제도를 만들어서 선박소유자가 운항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대표적인 조장법학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사후적인 것이 아니라 사전적이고 선제적인 점에서 전통적인 분쟁해결수단으로서의 해상법의 기능과 다르다.

필자가 오랫동안 주장한 것이지만 선박법을 개정해 우리나라에서 건조된 선박에 대해 한국국적을 부여하는 것은 어떨까? 외국 선주들은 선택에 의해 한국국적을 취할 수 있고 자신의 국가의 선적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선박건조지는 국제법상으로 유효한 연결점으로 인정받는다. 이 제도로 인해 한국국적의 선박이 많아지면 무엇보다 선복량 세계 1-2위 등으로 인한 국격의 향상이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선급에 가입하는 선박도 늘어날 것이다.

다음으로 통합하고 조절하는 기능으로서의 해상법의 역할이다. 해상법은 국제성을 갖는 학문이다. 국제성이 있는 선박과 해운산업을 반영해 많은 국제조약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것은 국제적인 통일성과 공조의 필요성 때문에 그러하다. 해상법은 많은 국제조약의 틀 속에서 운용되고 있다. 불황속에서는 이러한 국제적인 공조와 통합기능이 더욱 강조돼야 한다.

장기적인 불황의 끝이 언제인지 모른체 해가 바뀌었다. 장기불황에 대한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수요보다 공급이 많기 때문이다. 운송돼야 할 화물보다 실어나를 수 있는 선박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신문에서는 우리나라 조선소의 작년 신조발주는 아주 좋은 상태라고 한다. 선박건조의 기간이 단축돼 6개월이면 진수돼 나온다고 하는데, 공급이 더 많아지는 한편 선박의 스크랩이 이와 같은 양으로 되지 않는다면 경기는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10년 주기로 겪는 해운불황에 해상법은 어떤 기능을 할 수 있을까? 선박의 건조량을 해운의 물동량과 적절하게 일치시키는 시스템이 필요할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고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각국의 선주들의 발주량을 어떻게 규제할 수 있는가? 더구나 자유경제체제하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한국에서 조절을 한다고 해도 중국에서 조절이 되지 않으면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국제적인 공조제도가 필요할 것이다. 국제적인 조약의 형태가 돼야 할 것인가? 사적인 분야에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는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과거 1970대에 UNCTAD의 주도로 만들어진 해운동맹헌장이 있다. 해운산업에서 대표적인 국제적인 공조라고 할 수 있다. 해운물동량과 선박건조량을 조절하는 국제적인 제도를 만들 필요성이 있고 이는 해상법의 통합적인 기능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국제적인 공조제도를 운영함으로서 불황의 깊이와 기간을 조금이나마 완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해운산업 조선산업의 발전은 눈부신 것이고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산업을 튼튼히 뒷받침하기 위한 법제도도 중요하다. 해상법은 이러한 점에서 해운의 하나의 인프라이다. 해상법이 발달하지 않고서는 우리나라 해운산업과 조선산업은 경쟁력에서 다른 경쟁자들에게 밀리게 되고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거나 퇴보하게 될 것이다. 해상법은 기본적으로 사후적인 분쟁해결의 잣대로서의 기능을 가지고있기 때문에 크게 눈에 띄지 못한다. 해상법은 앞으로 예방법학, 조장법학 그리고 통합조정 법학으로서의 기능을 충실히하고 선제적으로 해운산업과 조선산업의 발전에 이바지 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해운과 조선의 현상을 예의주시하고 미래도 내다보는 적극적인 태도가 해상법 전문가들에게 요구되고, 또 업계도 끊임없이 이러한 기능을 해상법 전문가들에게 요구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대한민국의 해상법은 한국해운과 조선산업과 함께 세계를 제패하게 될 것이다. 새해에는 해상법의 예방기능, 조장기능과 통합기능을 극대화해 우리 해운 및 조선 산업에 활기를 불어넣어보자. 이상은 갑오년 새해 첫날 해상법 학자인 필자가 스스로에게 던진 화두이다. (20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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