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대학원 양창호 교수

▲ 양창호 인천대 교수
새해 벽두부터 날아 들어온 두어 가지 뉴스에 소망이나 기원보다 걱정이 앞선다. 우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사인 현대상선, 한진해운이 해운업황 부진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는 소식이 연초까지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 해운업체 3위 팬오션이 부도난 이후 해운업계 1위, 2위 업체까지 문제가 생기면 국가 경제 신인도에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지면을 통해 여러 번 해운업에 대한 실질적인 유동성 지원 대책을 촉구한 바 있지만, 아직 시원스런 해운업 지원 약속하나 나오고 있지 않다. 사후 약방문이 되지 않도록 정부와 금융당국, 그리고 국회는 해운업 유동성 위기사태의 심각성을 올바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또 한 가지 안타까운 뉴스는 정부가 추진 중인 서비스 산업 육성에 물류산업이 포함되지 않은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를 국정과제로 제시한 이후, 창조경제 핵심 분야의 하나로 창조형 서비스산업이 검토돼 왔다. 창조경제는 기존의 기술과 지식을 융·복합해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시장 개척도 가능할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창조형 서비스산업으로 물류, 의료, 교육, 영화, 게임 산업 등이 거론 됐었다. 그러나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5대 중점 서비스 산업으로 보건의료, 교육, 관광, 금융, 소프트웨어만 포함돼 있다. 일자리 창출효과도 크고, 부가가치도 높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기업이 세계시장에 진출했을 때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라는 점에서 물류분야는 당연히 중점 서비스산업 발전 분야에 포함돼야 한다. 앞으로 물류산업이 나서 이를 관철시키는 노력을 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뉴스가 또 있었다. 2014년 예산 중에서 독도 관련 예산이 삭감됐다는 것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독도 영유권 공고화 사업의 올해 예산은 48억 3500만 원으로 확정됐다. 그러나 이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가 증액한 예산을 졸속으로 예산을 통과시키며 20억 원이 다시 삭감된 것이다. 일본이 독도문제 등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비 예산을 2013년도보다 약 19억 3천만 원 증액한 것을 모르고 있는가? 영유권 공고화 사업의 예산은 독도가 우리 고유 영토임을 알리고 역사적 근거를 찾는 데 사용되는 예산이다.

이와 같은 일련의 뉴스를 접하면서 과연 우리나라 해운항만, 해양수산 이슈를 차분히 검토하고, 각계에서 개진되는 중요한 의견을 반영하고 조정하는 시스템이 잘 작동되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더 아쉬운 것은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한마디 할 수 있는 큰 어른이나 기댈 수 있는 정신적 리더의 표상(表象)이 없다는 점이다.

2000년 아사히신문이 “지난 천 년 간 일본의 최고 정치 지도자는 누구인가?”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가 1위였다. 그는 나가사키, 고베 등의 항구도시를 떠돌다가 개화를 위해 해운업에 종사하겠다고 결심하고, 1860년대에 고베 해군훈련소를 설립하고, 고베에 가메야마 조합이라는 해운회사를 설립한다. 해운회사를 통해 해외무역을 시작하기도 했다. 료마는 조선과 만주를 겨냥해 침략의 발판으로 울릉도를 꼽고 울릉도 침략계획을 세우기도 했던 장본인이다. 료마는 우리에게는 침략 야욕을 가진 한 사무라이에 불과하지만, 일본인에게는 근대화의 영웅, 일본 해군의 수호신, 일본 해운의 정신적 모태로 추앙받고 있다.

일본인들이 오늘날 일본을 건설한 저력을 일본의 근대화에 두고 있기 때문에 료마를 일본 역사상 최고의 리더로 꼽은 것이다. 그리고 그가 해운업을 바탕으로 해외무역을 개척한 것도 오늘날의 일본을 세계 수위의 무역 통상국가로 만든 기틀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산코라인의 부도 같은 해운업의 지원이 필요할 때 마다, 언론과 업계에서는 정부에 대해 료마의 진취적 정신을 기억해야 한다고 하며 료마를 해운산업의 수호정신으로 기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수출입의 98% 이상을 바다에 의존하면서, 해방이후 70여년간의 경제성장 기적이 바다를 통한 역동적 성장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선원 해외진출, 원양어업, 해운산업의 외화획득, 무역 1조 달러의 수출입 물류지원이 거의 모두 바다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활동을 한 해운항만, 해양수산인들이 일반국민들로부터 어떠한 인지를 받고 있는가? 일반 국민들은 불모지에서 세계 5위의 해운업을 일구고, 세계 5위의 컨테이너 항만을 만들어 온 기업가나 당국자들을 기억이나 하는가?

지금은 ‘바다의 날’로 흡수된 ‘해운의 날’이 있었다. 1977년 제1회 기념식 때 박정희 대통령은 기념휘호로 ‘사해약진(四海躍進)’을 강조하며, 해운산업이 경제발전과정에서 필요불가결한 전략산업이라 했다. 실제로 우리의 해운산업은 외화운임수입과 자국선 적취율 증강으로 우리 경제에 큰 역할을 담당해왔고, 박대통령의 바램대로 선박량 기준 세계 5위로 전 세계로 약진한 산업이 됐다.

항만에 선박이 기항하고 화물이 입·출항되면서 인천, 부산 등 지역 활성화가 이루어지고, 인근에 수출공단이 들어서고, 화물운송이 활성화 되면서 전국에서 일자리를 찾으려는 젊은이들이 모여든 것을 기억하는가? 과거 일본 고베항 등이 담당했던 동북아 환적물동량을 모두 오늘날 부산항이 처리하고 있는 동북아물류중심기지로 성장시키고, 이를 통해 우리의 성장동력을 크게 키워온 것을 기억하는가? 일본의 항만정책이 지난 10여년 이상 이러한 부산항을 따라가자며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이제 해운업도 무역업과 같이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드는데 기여한 산업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해운, 항만, 물류에서 현대판 장보고 같은 리더의 표상을 만드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사회에 해운항만, 해양수산 분야의 큰 어른이나, 리더로 추앙받는 분이 계시는가? 전직 해양수산부 장관, 해운회사 회장, 각종 업·단체장, 교수, 연구원, 관료 등 우리주변에 많은 리더가 있지만, 이 위기에서 해운산업을 이끌어 갈 정신적 지주가 될 어른은 보이질 않는다. 그나마 우리 해운산업에 영향을 미치고 이끌어 갈 수 있는 리더는 전, 현직 국회의원, 전직 해수부 장관 등이다. 그러다 보니 정치적 이해, 특정 정권과 관련된 분들이 대다수이다. 이분들 중에서 누가 이런 정치적인, 그리고 정권의 딱지를 떼고 위기의 터널에서 해운산업을 들쳐 업고 빠져 나올 수 있을까? 물론 우리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활동하고 계시는 훌륭한 분들이 많이 계신다. 그러나 영웅은 태어나는 게 아니고 우리의 손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해에는 우리 해운업의 글로벌 진출 기상을 떠올리게 하고, 일반 국민이나 정치권을 향해서도 그 정신을 펼쳐 보일 수 있는 자랑스런 큰 어른이나, 그 표상을 찾아 나서는 일을 해야 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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