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대학원 양창호 교수

▲ 양창호 인천대 교수
작년 10월 25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의 한 기사(Why world trade growth has lost its mojo)에서 세계 무역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의 2배라는 공식이 깨지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1980∼2011년 세계 무역증가율은 연간 평균 7%, 세계 경제성장률은 3.4% 성장해 무역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의 두 배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2011년에는 그 비율이 1.5배로 줄어들다가, 2012년 세계 무역 증가율은 2%로 세계 GDP 성장률 3.1%를 크게 하회했다. 문제는 이와 같은 무역증가세 둔화 현상이 2013년과 2014년에도 이어져 3년 연속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정말 뭔가 구조적인 변화가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는 점이다. 2013년 교역증가율 2.5%에 불과해 세계 GDP 성장률 2.9%보다도 낮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2014년에도 세계 경제성장률을 3.1~3.6%, 무역증가율을 4~5% 정도로 예측하고 있다.  

이렇게 무역환경이 변화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2012년 유로존의 경기둔화, 그리고 2013년의 BRICs 국가들의 경기 위축에 의해 세계 교역이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2009년 금융위기와 함께 선진국은 물론, 개발도상국까지 무역침체가 야기되면서 세계 무역규모의 감소로 이어진 것이다. 유럽의 재정위기, 미국, 일본 경기침체 등의 상황이 반영되어 선진국 시장에서의 수입수요가 부진해 지면서, 신흥국들의 수출이 주춤해진 것이다.

작년 9월에 발표된 유엔무역개발기구(UNCTAD)가 발간한 연례 보고서에서도 당분간은 2:1의 성장비율, 즉 경제성장률의 두 배에 이르는 교역증가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전망하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이유로 신흥국들의 수출주도 성장모형이 한계에 봉착한 것을 들고 있다. 중국을 포함한 수출주도 성장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개도국들의 경제성장 모델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한 것이다. 실제로 선진국 경제의 수입수요 회복이 더딘 가운데 신흥국들은 수출보다는 자국 내 수요를 진작해야 할 필요성까지 대두되고 있다. 브라질, 인도, 중국 등 신흥시장은 작년부터 성장세가 두드러지게 둔화됐고, 중국은 이런 가운데 시진핑 체제 출범 이후 수출주도 모델에서 내수를 통한 성장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2002~2007년 개도국 수출 물량은 연평균 11.3% 증가했으나, 2011~2012년 중 연간 증가율은 3%대로 하락했다.

이 같은 현상이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세계 경제의 구조적 변화에 따른 것인지에 대해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이미 다국적 기업들이 전 세계에 퍼져 있어 글로벌리제이션에 의해 국제 무역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고, 최근 나타난 2년간의 세계 무역 둔화는 유로존 불황의 영향이 컸으며 세계 경제가 정상화되면 무역도 되살아날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영국의 경제학자 개빈 데이비스는 최근 수십 년간 세계 경제성장의 주요 원동력이었던 세계 무역 증가세가 힘을 잃은 것 같다고 평가하면서 구조적인 변화가 아닌가 지적하고 있다. 이에 비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프린스턴 대 폴 크루그먼 교수는 지난 30년간 세계화를 이끈 많은 요인처럼 경제 성장률과 무역 증가율의 관계도 바뀌고 있으나, 무역과 GDP의 관계는 자연법칙이 아니고 몇 세대에 걸친 정책과 기술에 따른 우연한 결과라고 주장하며,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기도 한다.

한편 무역증가에 대한 컨테이너 물동량 증가 비율을 살펴보면, 1970년대 컨테이너 교역 증가율은 무역증가율의 3배에 이를 정도로 크게 신장했다. 그러나 1980년대에는 이 비율이 2배로 떨어진 후, 1990년대에는 1.5배, 그리고 2000년대 들어서는 1.2배 까지 하락했었다. 이는 과거의 컨테이너 교역 증가가 물동량 증가와 함께, 일반화물의 컨테이너화에 기인되었다면, 1980년대 이후 컨테이너화(containerization)의 포화를 그 원인으로 들고 있다. 실제로 WTO의 2011년과 2012년에 무역증가율은 각각 5.9%와 2.8%인데 비해 컨테이너물동량은 클락슨 자료에 따르면 7.1%와 3.3%씩 증가해 이 비율이 1.2까지 하락했다. 그러나 2013년 세계 컨테이너 물동량은 3.7% 증가해 2013년 무역증가율 2.5%의 1.5배로 다시 증가했다.

또한 중국의 수입수요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벌크화물의 경우도 세계 교역증가율 대비 세계 5대 건화물 물동량 증가율 비율이 2011년에 0.88이었으나, 2012년과 2013년에는 1.36과 1.42로 각각 높아졌다. 즉 세계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기대하는 교역증가는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지만, 교역 중에서 컨테이너나 벌크화물 교역 비중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거리이다.

그러나 최근의 무역증가율이 곤두박질을 치게 된 원인이 일시적인 것이든 구조적인 것이든 지난 30년간의 무역신장세에 비추어 볼 때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에 직면한 것임에는 분명하다. 개도국의 수출증가는 선진국 시장이 받아줄 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선진국들이 리먼 사태 이후 5년간 침체를 겪으면서 수요가 감퇴하고,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보호무역주의를 확산하고 있기 때문에 개도국의 수출증가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조지 매그너스 UBS 선임 경제고문은 2008년 금융위기의 후유증으로 ′탈세계화′가 진행됐다며 각국이 보호무역주의 조치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다고 지적했다. 또한 상기 파이낸셜타임즈 기사에서 사이먼 에브넷 교수는 G20 국가들이 2008년 10월 이후에 보호무역주의적인 정책을 무려 1527건이나 도입했다고 지적했다. 즉 세계 교역량의 증가세가 둔화는 선진국의 유효수요 부족과 보호무역주의 정책 증가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항구적인 선진국의 수요 감퇴가 나타났을 경우에는 앞으로 상당기간 수요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세계 교역량이 경제성장 보다 높지 않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교역규모 감소가 다시 세계 경제 성장을 하락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악순환이 이어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물론 국가 간 협상 등을 통해 보호무역주의의 흐름을 자유무역으로 되돌려 공급을 늘리려는 노력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는 한다. 그러나 여기에 최근 들어 부쩍 거론되고 있는 SCM 리스크 관리를 위한 선진국 자국 혹은 인근 국가 생산(near production)의 증가까지 가세한다면, 향후 교역량 감소의 충격이 매우 크게 나타날 수도 있다.

이제 과거처럼 교역이 크게 증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시사점을 얻게 된다. 해상운송과 이를 처리하는 항만에는 직격탄이 될 수 있는 이와 같은 경제와 무역의 구조적 변화에 업계는 철저한 대응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고, 정기선 서비스의 정규성과 빈도수를 유지하면서도 비용을 절감해야하는 상황에서, 해운회사들은 중장기적인 구조적인 수요 감퇴 문제까지 감안해서 운영을 최적화할 수 있는 솔루션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해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