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SOSREP 벤치마킹하자>

▲ 윤민현 박사
 1. 서언

진도앞 바다 여객선 사고는 해운인 모두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재난이었다. 다만 사고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들어난 난맥상들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고귀한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국민 모두로 하여금 안타까움과 함께 현실적이고 실효적인 대응체제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하는 재난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번 사고는 선복량 기준 세계 5위 해운대국인 우리의 수준과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국제적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 통렬한 자성을 해봐야한다. 비록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모양새가 되더라도 다시는 이번과 같은 치명적인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다면 고귀한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는 차선의 몸가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번 사고 대응 과정에서 드러난 몇 가지 취약점을 들어보자. 우선 일사불란한 지휘 체계 부재와 혼선, 그로 인한 신뢰상실, 신뢰 부재로 인한 오해와 불신 등으로 인해 구조 작업의 효율성에 대한 의구심은 물론 위험을 무릅쓰고 구조 활동에 뛰어들었던 다수의 구조요원들의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러한 사례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나라들도 비싼 대가를 치르며 경험을 통해 진일보한 대응시스템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육상사고는 중앙재해대책본부가 지휘 체계가 될 수 있겠지만 해상재난사고에도 동일한 지휘 체제를 가동하면 어떤 문제가 야기되는지 이번 사고를 통해 명확히 드러났다. 해상재난사고는 육상사고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어 육상과 같은 획일적인 지휘 체계를 적용해서는 안된다.

육상사고는 사고 발생과 함께 그 피해 윤곽이 거의 드러나고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 동원할 장비와 규모는 물론 시간적으로도 해상에 비해 다소 여유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해상사고는 인명, 재산, 환경오염 가운데 인명이나 오염손해는 초기대응 여하에 따라 피해 규모와 범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해상사고는 결단과 구난조치 타이밍이 절대적이다. 제한된 시간내 최상의 대응책을 혼선없이 일사불란하게 대처하는 것이 대응의 성패를 결정짓는 절대적 요건이라는 것은 과거 다양한 대형 해상사고를 통해서 터득한 교훈이다.

영국은 해운, 보험, 해사법, 해난사고처리 등 해사 관련 산업에서 오랜 전통과 세계 제1의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다. 금번 여객선 사고의 관리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를 계기로 우리 정부당국도 혁신적인 대응책을 수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는데 해운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영국의 SOSREP제도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2. 영국의 SOSREP 제도

영국 정부는 1993년 셰틀랜드제도(Shetland Isles)에서 좌초돼 원유 8만 5000톤을 유출한 Braer호 사건과 1996년 밀퍼드헤이번(Milford Haven)만에서 최초돼 원유 7만 2000톤이 유출된 Sea Empress호 사건 등 대형재난사고 이후 효과적인 방재와 구난활동을 위한 가이드라인 수립했는데 이것이 바로 SOSREP(Secretary of State's Representative for Maritime Salvage and Intervention)다.

도날드슨(Donaldson)경은 영국정부의 요청으로 기존 사고와 대응과정을 토대로 『Review of Salvage and Intervention-1999』라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26개 사항을 권고하고 있는데 그중 핵심사항은 효율적인 구난작업의 수행을 위해 사고 관련 주요 의사결정권과 함께 구난작업을 독자적으로 지휘 감독할 수 있는 1인 책임자(Single individual)제도다. 영국정부는 이 보고서 권고에 따라 1999년에 SOSREP를 설립했다.

도날드슨경 보고서의 요지는 재난대응이나 구조 활동과 관련된 결정(Operational decision) 과정에 정부부처나 정치권(Minister/politics)이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공익을 최우선하는 최종결정권자가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육해상간 협력체제와 이해당사자들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해당사자는 사고 관련 당사자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그 사건과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선주, 하주, 보험회사 등이 포함된다.

도날슨드경이 SOSREP 핵심요소로 ‘구난과정에 정치권을 포함한 비전문가가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취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SOSREP 역할과 권한>
 
(1) 역할(Role) : 1인이 관련부서들을 대표하며 누구의 간섭·승인 없이 자유재량권(Ultimate voice, decision & control)을 가짐.
 
(2) 책임(Responsibility) : 해상에서 인명에 대한 위협, 심각한 오염과 관련된 Risk를 모니터링하고 Salvage and Recovery plan의 승인, 예방조치·계획(Plan)이 국익에 부합하는지를 확인하고 필요시 개입(사실상 일방적인 지휘권 인수)
 
(3) 권한(Power) : 인명·재산·시설의 안전 확보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함, 선박의 이동·좌초·파괴·잔해제거·침몰에 관한 재량권, 필요시 항만오퍼레이터·선박회사·선장·소유자에 대한 명령권, 수리·양륙·저장·화물의 처분에 관한 결정권, 피난항(Place of refuge) 지정 혹은 제공에 관한 권한, 필요한 조치를 위한 장비, 인력 동원 등
 
(4) 적용 범위 : 인명, 재산 등의 안전과 관련된 사항은 영국 12마일 영해로 하되 해양오염 등의 경우는 200마일 해역까지 확대 적용
 
(5) 법적 근거 : SOSREP 개입권한(Power of Intervention)과 필요한 명령권, 예산확보 등을 위한 법적 근거 마련(The Merchant Shipping Act 1995 와 그 개정, Maritime Security Act 1997, The Dangerous Vessels Act 1985)

3. Mancheplan 협정

국가간 협력체제 구축을 위해 마련한 Bohn Agreement는 EU 역내에서 대형 해난사고(major marine incidents) 발생시 정부간 협조사항을 규정하고 있는데 영국도 이조약에 가입한 10개국 중의 하나다. 이 조약에 근거해 영국과 프랑스는 유사시 자국 역내에서 취할 공동대응사항을 규정한 Mancheplan 이라는 협정을 체결했다.

국가간 공조체제 효과를 향상시키기 위해 실전과 같은 훈련이 필수라는 인식하에 영국, 프랑스, 벨기에 3국은 2007년 3월 5일 도버해협에서 ‘Manchex 2007’이라는 대대적인 훈련을 실시한 바 있다.

이 훈련은 영국 도버(Dover)와 프랑스 덩케르크(Dunkerque)를 운항하는 여객선 Maersk Dover호가 정상적으로 항해하는 도중에 진행됐고 여객 전원에게 훈련 목적과 내용이 담긴 설명서를 사전에 배부했다.

훈련 상황은 충돌사고로 선박이 급격하게 기울어져 선원과 여객들의 신속한 퇴선이 불가피하게 되었고 선적된 트레일러에서 흘러나온 물질 속에 다량의 위험물이 포함돼 해양오염피해가 예상되는 해상재난사태였다.

이 훈련에는 MCA(영국), 프랑스 및 벨기에 수색구조본부(SAR)가 공동으로 주관했고 3국의 해안순시선과 구조용 헬기, 수색기, 구명정, 예인선, 앰블런스, 소방구조본부, 관련 지자체 등이 참여했다.

훈련과정에서 부상여객과 선원들의 구명정으로 하선과 퇴선, 해안에 도착한 이들을 영국과 프랑스의 항만이나 공항으로 이송, 유출유로 인한 연안해역의 오염 조사와 대응책 수립 등 수많은 요청이 쇄도했다.

약식이 아닌 실제 선상 훈련을 통해 확인된 문제점은 해상사고와 육상사고는 이론과 현실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육상 재난에 익숙해있던 소방방재요원들로 하여금 해상사고에 대한 대응을 체험토록 했다는 점은 크게 평가됐다.

4. 우리도 SOSREP 도입해야

SOSREP에 의한 구난작업의 성패와 그 결과에 대해 영국정부(Maritime & Coast guard
Agency-MCA)가 궁극적인 책임을 부담하지만 그렇다고 구난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SOSREP에 의한 구난작업의 내용, 의사결정 등의 과정에 정치권이나 정부당국이 일체 개입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

정부나 정치권은 SOSREP의 결정을 지원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SOSREP를 해임해야 한다(must be backed or sacked). SOSREP 교체에 따른 결과에 대해 책임질 각오가 되어 있으면 해임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SOSREP의 결정을 지원해야 한다.

우리의 지리적 여건을 살펴보면 유럽과 흡사한 면이 많이 있으며 특히 청정해역인 한려수도를 끼고 있는 대한해협이나 서해의 상황을 고려하면 효율적인 지휘체계, 신속한 장비와 인력, 기술의 동원은 물론 유사시 주변국가와의 공조가 적기에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사전 협정을 통한 주변국간 협력체계 확립도 매우 중요하다.

재난에 대처함에 있어 소(小)를 희생시키더라도 대를 위해 필요하다면(공익차원) 실기하지 않고 결단을 해야 할 필요성을 공감하더라도 막상 실행하려면 지역이기주의, Nimby 현상 등으로 실행이 불가능해지거나 실기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고 정도의 차이일 뿐 모든 국가에서 비슷한 현상들이 나타나곤 했다.

2013년 12월 29일 부산항 9마일 해상에서 발생한 자동차 운반선 Gravity Highway호와 케미컬을 적재한 Maritime Maisie호의 충돌사고의 경우도 실기해 해상에서 침몰할 경우 케미컬로 인해 초래할 수 있는 사태를 우려한 홍콩 선주와 국제해운계의 절박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선박이 3개월 이상 대한해협에서 표류하도록 외면했던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가들의 Nimby 현상도 크게 다를 바 없다.

구난행위에는 첨단 장비, 전문 인력과 기술은 물론 이를 통제하는 일사불란한 지휘체계가 필수적이다. 국내에 그러한 하드웨어가 갖추어져 있지 않을 경우 가장 가까운 곳(국가)에 소재하는 곳에서, 필요시에는 전문 인력이나 기술까지도 동원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관련정보의 축적과 재정지원도 필수적이다.

SOSREP은 유사시 개입권과 함께 사고처리에 관한 관리감독 등 전 과정을 지휘할 수 있는 총괄적 권한을 보유하고 있으며 필요시 선주, 용선자, 항만오퍼레이터를 상대로 명령을 발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 있다.
5. 영국의 SOSREP 운영사례

영국은 SOSREP제도를 도입한 후 주요 사고마다 약 30여 차례 팀(Salvage control units)을 운영하면서 사후관리 업무를 수행했고 필요시 전문 구난회사(Salvage company) 확보, 조선소 수배(사실상 지시) 등 조치를 신속하게 취해 인명손실은 물론 오염손해도 최소화할 수 있었다.

SOSREP 실제 운영사례를 살펴보자. 지난 2007년 한국조선소에서 건조된 컨테이너선 MSC Napoli호가 영불해협에서 선체에 균열이 생겨 침몰 위기에 처한 사건이 발생했다(지면상 사고 개략은 생략). SOSREP는 사태의 위중함을 인식하고 안전과 오염방지 차원에서 독자적 결정으로 곧 바로 본선을 영국 남단의 해안(Lyme Bay)에 임의 좌초시켰다.

아무리 공익이라고 하나 상처투성이 대형 컨테이너선을 받아들여 문이 떨어져 나가고 찌그러진 컨테이너, 위험화물뿐만 아니라 기름과 해수가 범벅이 된 컨테이너들이 너절하게 부두와 해안에 쌓이고 이들을 처리하기 위해 대형장비와 트럭들이 부산스럽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원하는 지자체나 항만 오퍼레이터는 없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 그들의 휴양지인 해변이 기름으로 뒤덮이고 생활 터전인 어장을 망치는 것을 원하는 주민도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고 이들 모두의 동의를 얻어 긴급 피항지를 선정한다는 것은 망건 쓰다가 파장된 꼴이 될 것이 자명하고 파장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태가 더 악화돼 결국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우를 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MSC Napoli호 사고 수습에 참여했던 영국과 프랑스 정부당국, 구조업체, SOSREP, 지자체, 선주, 용선자 등 관련 당사자 모두가 이번 사고의 후속처리는 정치권 개입 없이 협력과 공조를 통해 이룩할 수 있었던 최선의 성공작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본 사고 처리를 통해 SOSREP의 필요성과 그 진가를 다시 한번 재확인했다는 점이다.

6. 결언

영국의 SOSREP 제도는 현재 여러 국가에서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일본은 총리 직속으로 위기관리감이라는 제도가 있고 호주는 호주판 SOSREP(Maritime Emergency Response Commander at the Australian Maritime Safety Authority)가 설치돼 있다.

우리는 도서와 이웃나라를 연결하는 여객선들이 증가하고 있고 한반도 주변은 선박의 통항이 빈번한 해역이다. 청정해역의 보호차원에서 자국선박뿐 아니라 외국 선박이 우리의 주변해역에서 재난에 처했을 경우에도 대비해야 한다.

대형 해상사고를 처리하기 위한 구난작업의 성패는 외적인 모양새와 조직이 아니라 그 기능과 전문성에 달려있다 육상사고와 해상사고를 동일시해서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윤민현(Penb46@naver.com)
‘해운과 Risk Management'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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