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 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너 자신을 알라’란 격언이 고대 그리스의 아폴론 신전에 새겨져 있단다. 누구인지 확실치 않으나 아마도 그리스 현자(賢者) 7인의 중 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 격언이 2500여 년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으니 오묘한 진리가 거기에 있는가 보다.

소크라테스는 신(神)의 전지전능에 비해 인간이 무지(無知)하다는 반성에서 이 격언을 그의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다고 한다. 해서, ‘너 자신을 알라’는 한 마디가 인류역사에 위대한 격언이 되었다. 허나, 소크라테스가 환생하여 인류가 발명한 오늘날의 최첨단 과학기술이 신의 경지를 넘나들고 있는 것을 보면 여전히 이 격언을 그의 철학의 출발점이라 할까?

소크라테스 할아버지가 성난 얼굴로 나에게 다가와 ‘너 자신을 알라’라고 일갈해 나는 주눅이 든다. 갑작스러운 질타에 당황해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린다. 어찌 할 바를 몰라 허둥대다가 스스로 ‘나는 누구인가’라고 자문해본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하겠다고 서랍에서 이력서를 꺼내 찬찬히 들여다본다.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고, 어느 학교를 다녔고, 사회적 직위가 무엇이었고, 무슨 상을 받았고, 무슨 책들을 발간했다고 적혀있다. 모두가 하찮게 보인다. 시나리오에 의해 무대에서 말과 몸짓으로 연기를 하는 연극배우에 불과했다. 흡사 상점에서 골라놓은 물품목록 같기도 하고…. 그런데도 70평생 안간힘을 썼던가? 참 허망하다.

인간 도리를 제대로 했는가도 곰곰이 살펴본다. 집안은 비록 퇴락되었지만, 막내로 태어나 조부모 부모 형제자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그래선지 나약하고, 너그럽지 못하고, 사랑은 받는 줄만 알고 줄줄은 몰랐다.

선비의 청빈(淸貧)은 알았지만 사대부의 청부(淸富)를 몰랐다. 땀 흘려 돈 벌어 부모님 모시고, 형제자매의 돌보고, 조카들도 거두어야 했다. 조상숭배도 하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조상들의 묘를 선영으로 모셔야 했다. 그렇게 하질 못했다.

기껏해야 내 새끼 둘 키우고 공부시킨 것밖에 없다. 그들이 올바른 인격을 갖추는지 곰곰이 관찰하지 않고 그저 명문학교에 보냈다는데 도취했다.

구호단체에 얼굴만 내밀고, 몇 군데 기부금을 자동이체하는 것으로 끝냈다. 그런데도 내 할 일 다 했다고 자만했다. 가난하고 병든 이웃과는 몸과 마음으로 아픔을 나누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사랑은 말이 아니고 실천인데도.

나는 섭리에 의해 어머니 모태에서 태어났다. 내 몸을 화학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그 실체를 밝힌다면 세상과 우주의 신비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지구와 우주가 어떻게 생성되었고 생명체가 어떻게 진화해 왔는가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내 몸은 우주와 맞바꿀 만큼 귀중하다.

거기에다 정신과 영혼이 내 몸에 깃들고 있으니 하느님과 같은 존귀한 존재다. 그걸 깨닫지 못하고 살았다. 참 어리석었다. 저승에서 하느님과 조상이 ‘너 무엇 했었느냐’라고 물으면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두렵다.
하여, 지금부터라도 ‘내가 누구인가’를 날마다 곱씹으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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