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 세계문화유산으로

▲ 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친구들 다섯이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충남 예산군 신암면으로 갔다. 조선후기 대표적 실학자이며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를 뵙기 위해서다.

추사의 생가다. 추사의 증조부 김한신이 건립한 53칸의 사대부 대갓집은 불탔고 그 일부가 지방문화재로 복원됐다. 솟을대문을 지나 ㄱ자 사랑채를 돌아가면 ㄷ자 본채가 있다. 아담하고 소박한 건물에 추사체의 현판들이 여기저기 걸려있다. 인자한 추사의 영정도 모셔져있어 추사의 향취를 느낀다. 해시계로 쓰였다는 돌기둥에 쓰인 유일한 추사체의 진품 ‘石年’이 눈에 뜨인다.

생가 바로 옆, 느른 잔디밭에 추사의 묘가 있고 그 뒤에 소나무 숲이 있다. 묘와 잔디가 정갈스럽게 손질됐다. 추사 묘 앞에 친구들 다섯이 나란히 섰다. 날씨가 무더워 잔디밭에서 지열이 올라와 무릎을 꿀 수 없다. 선채로 고개 숙여 ‘선생님! 흠모합니다’라며 참배했다. 대단한 일이나 한 듯 흐뭇하다.

잔디밭 건너 추사기념관으로 갔다. 문인화의 최고정수, 국보 180호의 세한도(歲寒圖)가 눈에 들어왔다. 진본은 아니지만 숙연한 마음으로 쳐다봤다.

추운 겨울, 볼품없는 집 한 채에 소나무 한 그루와 잣나무 세 그루가 적막하다. 구름처럼 허공에 떠있는 노송(老松)의 가냘픈 곁가지가 귀양살이 고독이 연상된다. 어쩌면 저렇게 감정을 절제할 수 있을까. 추사의 혼이 담겨있는 듯 신비롭다.

그림 옆에 발문(跋文)이 있다. 혹한에도 시들지 않는 소나무와 잣나무는 절개를 상징한다. 제자 이상적(李尙迪)이 고적한 추사에게 변함없이 의리를 지켜준 고마움을 비유한 글이다.

제주 귀양살이 8년에 추사체(秋史體)가 완결될 무렵, 1844년 세한도를 이상적에게 그려줬다. 역관인 이상적이 세한도를 북경으로 모셔가 청나라 명사 16명의 찬시(讚詩)가 세한도에 첨부됐다. 이는, 아버지 김녹경이 동지사로 청나라에 갈 때 추사가 수행했다. 25세의 약관 추사가 78세의 노학자 옹방강과 필담을 나누어 추사의 재능이 청나라에 널리 알려졌었기 때문이다.

세한도가 조선으로 돌아와 조선의 당대 명사 오세창, 이시영, 정인보의 발문도 첨부됐다. 한국과 중국의 서화(書畵)와 역사와 철학이 담겨있다. 작품이 만들진 70년 후인 1914년에 두루마리로 표구됐다. 그 길이가 무려 14미터에 이른다.

경성제대 후지즈카 교수가 1944년 세한도를 모시고 일본으로 귀국했다. 서도의 대가 소전 손재형이 세한도를 돌려받았다. 그 일화를 들은 지 20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기억이 생생하다.

“자네가 어떻게 일본에 왔는가?”란 후지즈카의 물음에 “선생님께 문안인사를 드리려 왔습니다”라고 소전이 답했다.  계속해 매일 아침문안을 갔다. 1주일이 되는 날에 “자네가 세한도 때문에 온 것으로 짐작되는데, 그건 안 되네” “예”라고만 대답하고는 소전은 문안인사를 계속했다.

2주되는 날 “내 생명처럼 소중하게 애장하는 걸 어찌 자네에게 줄 수 있겠는가” “예”라고 답하고 세한도는 입 밖에도 내지 않았다. 3주가 되는 날 “내 생전엔 애장하다가 내가 죽은 후에 아들에게 돌려주라고 유언함세” “예”라 답하고 문안은 계속됐다. 4주가 되는 날, 소전의 고집을 감당할 수 없었음인지에 “가져가게”라며 돌려줘 소전이 받들어 모시고 귀국했다.

하늘과 땅이 환호하며 춤추었으리라. 민족유산 보존이란 대의명분으로 소전의 바위 같은 불굴의 의지가 후지즈카의 철석같은 집념을 꺾었다. 후지즈카가 일본으로 모셔가지 않았다면 세한도가 어떻게 되었을까? 해방직후 혼란기와 6‧25전쟁에 살아남았을까? 천만다행이고 감사할 뿐이다.

제주에서 서울로, 서울서 북경으로, 북경에서 서울로, 서울서 동경으로, 다시 동경에서 서울로 돌고 돌아왔다. 세한도는 한국만의 국보가 아니다. 한중일의 예술혼이 숨 쉬는 동양 3국의 국보다. 손창근이 진본을 소장하고 있단다.

친구들과 헤어져 홀로 집으로 돌아오면서『존경하는 손창근 선생님!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때까지 세한도를 성심을 다해 간수해 주십시오. 세한도가 인류문화유산의 반열에 올라 세세영원토록 보존되게 말입니다』라고 내 마음에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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