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불로 세계 일주

▲ 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주(駐)노르웨이 미국대사관에서 영사와 인터뷰했다. 미국 여성의 특유한 발랄함과 남자의 기를 담방이라도 꺾어놓을 듯한 30대의 세련된 미모였다.

“미국엔 왜 갈려고?”란 첫 질문에 “해운과 항만을 둘러보려고”란 답으로 시작됐다. 이어서

-돈은?
=노르웨이 정부에 주는 장학금을 절약해서
-얼만데?
=예금통장 보여줄까?
-필요 없어
=미국에 불법 체류자가 가장 많은 나라가 어느 나라인 줄 알아?
-몰라
-한국과 멕시코다
=그건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이렇게 인터뷰가 끝났다. 시월유신으로 망명자가 많았던 1976년이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미국에 가기 위해 1등국 외교관의 우월감을 묵묵히 감수할 수밖에.

오슬로-서울 항공료는 노르웨이 정부가, 추가 요금은 내가 지불하고 항공권을 손에 쥐니 남은 돈이 310불이었다. 이 돈으로 세계 일주를 하겠다고? 무모했다. 하기야 38년 전, 상점에서 100불권을 내어놓으면 당황할 때였으니 지금의 달러 가치와는 비교가 안됐지만, 그래도…

1976년 2월 26일 오슬로 공항을 이륙했다.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눈을 지그시 감으니 지나간 순간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가슴 설레며 떠난 김포공항. 도쿄를 경유 앵커리지에 기착하여 매료됐던 알라스카의 여름설경. 북극상공을 지나 코펜하겐을 경유하여 아시아 북미 유럽 3개 대륙을 거쳐 23시간 만에 도착한 북구(北歐) 백야(白夜)의 나라 노르웨이. 추분을 지나면서 하루가 다르게 밤이 길어져 대낮에도 거리를 밝혀주던 오슬로의 가로등. 기숙사에서 오밤중이 되도록 책과 씨름하다 문득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 첩첩 산중 스키캠프에서 악성(樂聖) 그리그와 문호(文豪) 입센의 후예들과 어울려 크로스컨트리스키를 즐기던 낭만. 밍크모자와 롱코트에 부츠를 신고서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나를 기다려주던 여인. 겨울방학 때,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세계를 제패한 영국의 고색창연한 유적들에 대한 감동과 부러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도착하니 봄이 기다리고 있었다. 300여 년 전, 표류기(漂流記)를 써 조선을 유럽에 최초로 알렸던 하멜의 나라, 이준 열사가 망국의 한을 품고 자결한 나라. 거대한 암스테르담 화훼매매시장을 방문했다. 수많은 갖가지 꽃들이 유럽과 미국으로 팔려가 내일 아침이면 새 주인을 만난다고 했다.

패전국에서 경제대국으로 도약한 독일을 견인하는 함브르크 항만을 견학했다. 환락가에서 여인들이 남자의 눈길을 끌었다.

파리 오페라하우스 부근 3류 호텔에 투숙했다. 로비에서 자료를 몇 장 골라 방으로 올라가 관광계획을 짰다. 아침 일직 소르본대학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노트르담 성당에서 미사를 하고는 세느강변을 걷다가 루브르박물관에 들려 유서 깊은 불란서 예술을 감상했다. 오후에 장엄한 베르사유 궁전으로 갔다. 베르사유에서 루이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호화찬란한 생활을 하다 불란서혁명으로 단두대 이슬로 사라졌다. 그들의 생명을『자유 평등 박애』와 맞바꿨던가?

프랑코 총통의 사망으로 경계가 삼엄한 마드리드 공항에 기착했다가 한국의 원양수산기지 카나리아군도 라스팔마스에 도착했다. 아프리카인데도 흑인이 없었다. 스페인이 중남미의 잉카와 마야문명을 말살했듯 라스팔마스의 흑인들을 박멸했단다. 유럽에서 묻은 때를 대서양 바닷물에 말끔히 씻었다.

뉴욕 행 콩코드에 올랐다. 콩코드의 비행이 태양의 회전속도보다 더 빨랐다. 런던을 제치고 세계 제일의 정치 경제 문화의 거대도시 뉴욕의 위력에 기가 질렸다. 맨해튼과 불로크린, 저지시티의 광활한 뉴욕항만 시설을 일별했다.

샌프란시스코로 갔다. BART(San Francisco Area Bay Rapid Transit: 샌프란시스코 만(灣) 고속지하철)를 타보고서 국토와 건물 도로 등 모든 것이 거대한 미국이 위대해 보였다. 오클랜드 항만시설과 유명한 알카트라즈 교토소를 관광했다.

도쿄로 왔다. 이웃동네에 온 기분이었다. 사람의 생김새 등 모든 것이 한국과 닮아선지. 무리한 여정에다 시차에 시달린 내가 초췌하게 보였던지 대학동창이 여권과 항공권을 빼앗고 호텔에 투숙시켰다. 휴식과 영양을 보충하고는 요고하마 항만을 시찰하고 도쿄 시내관광을 했다.

서울에 돌아왔다. 호주머니에 20불이 남아있다. 290불의 세계 일주였다. 겁 없이 혼자서 세계를 휘젓고 다녔다. 하기야 그때 내 나이가 지금의 반도 안 되었으니! 나이와 열정은 반비례하는 걸까?

피가 끊어 심장의 고동소리가 들리는 젊음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던가. 청춘의 특권을 향유했던 그때가 아련하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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