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 Power

▲ 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내가 대학 1학년 때 Sea Power를 처음 들었다. 그때가 1957년이니 꼭 57년 전이다.

영국 에든버러 대학을 졸업하고 외무장관과 국무총리를 역임했던 분이 우리 대학에서 특강을 했다. 학장의 안내를 받아 강단에 섰다. 멋졌다. 매료됐다. 훤칠한 체격에 단정한 매무새, 안경너머의 얼굴에는 카리스마가 넘쳤다. ‘저런 스타일을 영국신사라 하는가보다’라고 나 혼자 중얼거렸다.

영국 일간지『더 타임스』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더미에서 장미꽃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라고 한국을 폄훼했다. 6‧25전쟁으로 한국이 쓰레기더미처럼 폐허됐던 그때 그분의 특강은 나에게 복음이었다.

‘바다를 제패한 자, 세계를 제패한다’로 Sea Power 강연이 시작됐다. 그분의 허스키 보이스가 인상적이어서 지금도 잊히질 않는다.

30년 장미전쟁에서 승리한 헨리7세가 튜더왕조를 열었다. 왕위를 승계한 헨리8세가 종교와 귀족과 시민을 장악하고 절대군주로 군림했다. 부국강병을 국정목표로 해군을 창설하고 조선창(造船廠)을 설치해 상선과 군함을 대량 건조했다.

앞서가는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의 눈치를 보느라 머뭇거렸던 영국이 대양항해(大洋航海)로 닻을 올렸다.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를 탐험하고 개척했다. 엘리자베스1세 여왕이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5대양을 제패했다. 6대주에 유니언잭이 휘날렸다. 로이드보험과 로이드선급에 의해 국제금융시장과 국제해운시장의 심장부가 된 런던이 세계의 부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1588년으로부터 324년이 지난 1912년에 타이타닉호가 북대서양에서 빙산과 충돌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침몰하지 않는다던 불침선(不沈船)이 처녀항해에서 무참하게 침몰됐다. 5대양을 호령하던 영국은 치욕이었다.

허나 에드워드 존 스미스 선장은 771명을 구조하고 나머지 1530명과 선박과 함께 생(生)을 마감했다. 위대한 Sea Power 정신이다.

영국은 국제적 공조를 통해 1914년 ‘해상인명안전에 관한 국제협약’의 시안을 만들었다. 그것이 SOLAS(Safety of Life at Sea)협약의 원조다. 수밀격벽의 설치, 구명설비의 증설, 통신수칙의 강화 등을 협약에 담았다. 그뿐 아니다. 선박과 화물에 관한 보험위주의 선급검사에서 인명안전검사를 분리해 정부소관으로 했다. 생명존중을 위한 획기적인 조치였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지 102년을 지나 한국 연안에서 대참사가 벌어졌다. 수학여행을 떠난 미래의 희망 250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바다는 분노하고 하늘은 탄식했다. 최후의 순간까지 인명을 구조해야할 선장은 ‘살려달라’는 학생들의 비명을 못들은 척 재빨리 선박을 탈출했다. 타이타닉호 선장의 Sea Power 정신을 세월호 선장한테서는 왜 찾아볼 수 없었느냐고 국민들이 아우성쳤다.

종교지도자로 자처하던 선주는 신앙 양심은 커녕 혼자 살겠다고 도망쳐 꽁꽁 숨어버렸다. 노숙자의 변사체로 변모되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생명경시에 대한 하늘의 진노일까! 그 선장, 그 선주, 그 선박이 마치 한국 해운의 간판스타인양 한국해운은 오물을 뒤집어 썼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라 더니… 70년간 황무지를 개척하느라 선원을 포함 해운종사자들이 눈물 짖고, 피땀 흘리고, 생명 바쳤다. 그 결과 세계 5위의 해운국가가 돼 가슴 설렜던 보람이 산산이 무너졌다.

한국이 세계경제 10위권, 수출입 1조억 달러의 기적을 이뤘다. 이의 일등공신인 한국해운은 만신창이가 됐다. 정치ㆍ경제ㆍ사회 모든 분야가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대한민국이 세월호 블랙홀로 빨려들었다. 사회전반에 쌓이고 쌓인 부정비리와 생명경시가 핵폭탄이 되어 되돌아온 재앙이다. 사필귀정이다.

『더 타임스』가 전쟁의 폐허만 바라보고 ‘쓰레기더미에서 민주주의 장미꽃이 필 수 없다’고 한국을 폄훼했을까? 아니다. 취재 중, 남다른 통찰력으로 한국 사회를 속속들이 들여다봤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영국의 50대 귀족계급 중 25%가 전사했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생 1/3이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 때, 즉위전의 엘리자베스2세 여왕은 야전병원에서 활약했다. 영국 지도층의 솔선수범과 자기희생을 대한민국과 비교하지 않았을까?

대한민국도 지도층으로부터 솔선수범과 자기희생, 생명존중의 시대정신이 살아난다면 세월호의 영혼들이 민주주의 장미꽃으로 환생하여 우리 곁으로 다가올 것이다. 또한 Sea Power정신도 되살아나 사해(四海)로 약진하는 세계1위 해운국가로 도약할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해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