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니 情

▲ 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다함이가 세 돌을 지나 한국에 처음 왔다. 공항에서 할머니를 처음 만난다. 낯가림하지 않고 할머니 품에 포근히 안긴다. 핏줄이 당겨서일까?

엄마가 몸이 아파 돌봄을 받지 못한데다가 먼 비행기 길에 기가 빠져 파리하다. 엄마는 병원에 입원하고 다함이는 할머니께로 왔다. 할머니는 배 아파 낳은 자식들에게 주지 못한 정(情)을 다함이에게 듬뿍 쏟는다.
불면 꺼질세라 건들면 깨질세라 지극정성이다. 엄마 사랑보다 할머니 情이 더 애틋하다.

미국에서 가족들이 한국어와 영어를 혼용해 언어감각이 혼돈되어선지 말이 어눌하다. 할머니를 ‘하마니!’라 부른다. 혀 짧은 소리가 귀엽다.

처음에는 귀저기를 찼다. 소변을 하려면 ‘피 피’하고 큰일은 ‘파리 파리’한다. 하마니가 덜렁 들어 변기 위에 올려놓는다. 큰일은 손이 뒤에 닿지 않아 “하마니, 도와줘”라고 소리 지른다. 뒤처리를 해 주면 ‘고마워’란다. 하마니는 자기를 위해 세상 무슨 일이나 다 해주는 걸로 안다.

하마니는 눈빛과 표정만으로 다함이의 마음을 읽는다. 배고프지 않게 먹을거리와 목마르지 않게 마실 것을 준비해서 수시로 먹인다. 시간이 갈수록 생기가 넘친다. 귀저기도 차지 않겠단다. 얼굴은 분홍빛으로 피어난다.

두 달이 됐다. 하마니는 다함이의 손을 잡고 둘렛길을 걷는다. ‘하마니, 다리 아파’하면 업는다. 업혀가다가 “아이고 허리야”하면 “알았어”하곤 등에서 내려온다. 하마니 情을 먹고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자란다. 우리말도 떠듬떠듬 제법이다.

자연을 좋아한다. 강아지풀꽃을 앙증맞은 손바닥에 얹어놓고 흔들어 앞으로 다가오면 “이것 좀 봐!”란다. 민들레 꽃대를 꺾어 후후 분다. 바람에 실려 하늘로 날아가는 꽃씨깃털을 쳐다본다. 길고양이에게로 살금살금 다가가 ‘고얀아, 이리와!’라 부르면 숲속으로 달아난다. 고양이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본다.

석 달이 됐다. 카세트테이프로 ‘송아지’노래를 들려준다. 목청을 높여 따라 부르다가 모르는 가사는 콧노래로 흥얼댄다. 노래에 맞추어 하마니와 두 손을 마주잡고 빙글빙글 돈다. 숨이 차 마루에 누어 할딱거린다.
TV 만화채널에서 우리말과 교통법규를 배운다. 손을 높이 들고 길을 걷는다. 차도를 걷는 하마니에게 인도로 오라고 손짓한다. 어른을 가르친다. 영리하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 병원놀이를 하잔다. “하마니, 어디 아파?”라 물으면 “온 몸이 다 아파”란다. “여기 누워”하고는 체온을 잰다. 청진기를 배와 가슴 여기저기에 대다가 젖꼭지를 꼭 눌리고는 깔깔 웃는다. 엉덩이에 주사를 놓곤 약을 바른다. “다 됐어”하고 병력(病歷)차트에 기록하는 시늉을 하고서 “이제 안 아프지?”라 묻는다. “예, 의사선생님! 아프지 않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존댓말로 깍듯이 추겨주면 좋아서 으쓱댄다. 하마니 情에 보답하는 걸까?

넉 달이 됐다. 여름방학에 언니 둘이 아빠와 함께 왔다. 세 자매가 서로 껴안고 뒤엉킨다. 이산가족 상봉의 환희다. 가족이 모두 모였다. 친손녀 셋과 외손녀 둘, 아들 내외, 딸 내외 그리고 하마니, 하바지 이렇게 열한 명이다. 집안이 단방에 왁자지껄해진다.

스마트폰으로 ‘레잇고’를 틀어놓는다. 손녀 다섯이 춤추며 목청이 터지라 노래 부른다. 언니들을 제치고 막내 다함이의 독무대가 된다. 어른들은 흐뭇하게 바라보며 ‘뭐 저런 게 있을까’하곤 ‘다함! 다함! 다함!’하고 손뼉 치면 좋아서 어찌할 줄 모른다. 행복한 순간이다.

다섯 달이 지났다. “언니들이랑 미국 가야지”란 하마니 말에 “안가. 여기 있을 거야.” “누구랑?” “하마니랑” “안 돼. 가야해” “하마니 같이 가자” “하마니 비행기 못 타” “알았어!”라며 서운한 표정을 짓고는 하마니 품에서 잠이 든다. 다함이와 마지막 밤이다.

다음날 아침, 고양이 인형을 껴안고 미국으로 떠난다. 하마니는 다함이가 그리워 가슴앓이를 한다. 둘렛길을 걸으면 다함이가 눈에 밟혀 되돌아온다. 다함이가 하마니 情이 그리워 한국에 가자고 떼를 쓰지는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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