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앞서 조선업 발전방향 정립해야”

인터뷰 -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박종식 전문연구원

2016-05-18     한국해운신문

조선업 구조조정이 업계 화두이다. 총선이 끝나기 무섭게 언론지면에 대규모 적자를 낸 조선업계를 구조조정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상실할 것이란 보도가 넘쳐나고 있다. 사회 원로들은 조선업을 포함한 중후장대 산업이 사양산업으로 분류된 구조조정 대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2018년까지 일감을 확보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가 수주부진으로 크레인을 멈춰 세웠다는 거짓보도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국내 조선업계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 방향이 조선업을 포기하는 길로 이끌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경험과 설비가 중요한 업계 특성상, 양적 구조조정은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춘 한국 조선업 자체를 죽이는 방안이 될 것이라는 우려이다.

구조조정 자체는 불가피하다. 양적 성장만을 추구하며 방만한 경영을 해 왔던 결과가 대규모 적자라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다만, 누구를 위한 구조조정이며, 무엇을 얻기 위한 구조조정인지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조선업 전문가이자 조선업 노동문제에 천착해온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박종식 전문연구원은 한국해운신문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비전 없는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이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이유를 갖추기 못하고 있다”며 “조선업에 대한 중장기적인 전망에 근거해 양질의 일자리들을 유지 혹은 확대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구조조정 논리가 버티고 있는 중국과 회복하고 있는 일본에 길을 터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그는 오히려 구조조정이 현재까지 축적된 경험이 사장되지 않도록 하청비중이 높은 조선업계 고용관행을 바꾸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투자를 공유하는 방식이어야지, 몇몇 기업이 사회적 투자에 대한 이익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인력 감축뿐 아니라, 조선소 통ㆍ폐합을 통한 설비감축이 필요하다는 조선업 구조조정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재정상태가 양호한 현대중공업조차 최대 3천명에 달하는 직원을 정리하고, 유휴설비를 폐쇄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이 조선업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 세계경제의 저성장, 전방산업인 해운업의 불황, 거기다 2014년 하반기엔 유가까지 급락하면서 세계 조선업 자체가 불황입니다. 한국 조선업체들도 세계적인 불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대형3사가 엄청난 적자를 기록한 것이죠.

구조조정에 앞서 이와 같은 적자가 발생한 원인을 잘 따져봐야 합니다. 많이 알려졌다시피 대부분의 적자는 해양플랜트 사업부에서 발생했습니다. 대형3사의 조 단위 적자는 일종의 수업료, 좀 혹독한 수업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청난 적자를 보기는 했지만, 이 과정에서 대형3사는 세계 어떤 기업들도 해보지 못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해양사업에서 적자가 나지 않기 위한 경쟁력 강화방안을 찾을 것인지, 아니면 해양부문에서 축적한 경험 자체를 날려버리고 설비 및 인력을 감축할 것인지가 구조조정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즉, 한국 조선업의 전략적 방향과 전망을 검토한 이후에야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구조조정, 특히 설비와 인력(기술직 및 기능직)을 감축하려는 구조조정은 조선업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면 매우 해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업 발전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을 토대로 양질의 일자리를 유지하거나 확대하려는 방안을 찾는 것이 아니라, 구조조정에 대한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근거도 없이 단기적인 손실을 이유로 기존 일자리를 없애는데 급급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1등하고 있는 학생에게 “이제 그만 공부하고 1등자리를 2~3등 학생에게 넘겨주라”는 이상한 논리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 업계에서도 조선소 인력감축 및 설비축소가 중국과 일본에게 이익이 되는 자해행위에 불과하다고 지적합니다.

= 중국과 일본의 조선업종도 위기를 겪고 있지만, 오히려 공격적으로 설비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일본 이마바리조선은 400억엔, 우리 돈으로 4천억 넘게 설비투자를 진행하고 있고, JMU도 작년과 올해 190억엔 가까운 규모의 설비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중국 CSSC는 향후 5년 동안 23억 달러, 2조 5천억 넘게 투자할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조선업체들은 설비를 축소하는 구조조정을 하겠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구조조정 여론이 기술력이나 노하우, 제작경험에서 앞선 선두업체들인 대형3사들에게 시험 대충 보고서 그냥 10등 정도만 하라고 주문하는 것 같습니다.


- 앞서 언급하셨듯이, 대규모 손실은 섣불리 덤벼든 해양 프로젝트 때문입니다. 값비싼 수업료를 치룬 것이지만, 일각에서는 해양플랜트 시장을 포기하고 상선에 주력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해양플랜트 도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제가 공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이 부문은 단언해서 말씀드리기 어려운 주제입니다. 다만, 해양플랜트 시장이 현재는 저유가로 수요가 위축된 상황이지만, 향후 시장이 회복될 경우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흔히 대형3사의 해양프로젝트 실패요인에 대해 엔지니어링 기술이 전무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외국은 우리가 못 가진 엔지니어링 기술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2010년 고유가로 해양플랜트 수주가 크게 늘었지, 그 전에는 거의 일감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세계적 수준에서 엔지니어링 기술과 인력은 어느 정도 있을까요? 오일 메이저들도 해상에너지 채굴에 대한 구상만 있지 실제로 이를 구현해낼 수 있는 엔지니어링 능력은 지금 형성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실례로, 해외 에너지기업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 조선사 관계자를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그들이 대단한 설계도를 가지고 와서 만들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스케치 수준의 아이디어만 얘기하고서는 가능여부를 같이 검토하면서 제작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다만 급하게 부상된 영역이라 한국도 엔지니어가 크게 부족한 건 당연하고, 위(기술자)는 작은데 너무 많이 폭식하다(과잉수주) 보니 배탈이 났고, 크게 손해를 봤다고 봅니다. 큰 손해를 봤지만, 누구도 해 보지 못한 값비싼 경험을 쌓았다고 생각합니다. 손실이 났다고 해서 이 경험을 그냥 사장시켜야 하나요?

결국 지금까지 투입된 비용을 단순한 손실이 아닌 미래를 위한 투자로 봐야합니다. 해양플랜트 시장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면 수업료를 얼마든지 더 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투자로 바라보자고 한다면 이를 꾸준히 축적해 갈 방안을 사회적 차원에서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향후 투자에 성공해서 이익을 보는 경우 그 이익을 몇몇 기업이 독점하지 않도록 방안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사회적 투자에 대한 비용을 기업들이 지불하라고 요구하는 건 당연하고 이를 제도화시킬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 일본 조선업계가 1980~90년대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했고, 중국 조선업계가 정부주도로 대대적인 정비를 거치며 체질을 개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서둘러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일본과 중국의 구조조정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1970년대와 1980년대 일본 정부가 조선산업을 ‘사양산업’으로 규정했다가, 2003년 한국에 추월당한 이후 뒤늦게 ‘필요산업’으로 조선산업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는 점 자체가 스스로 설비와 인력 축소 방식 구조조정의 실패를 스스로 인정한 것입니다.

최근 일본 조선업이 부활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일본 조선업의 패러다임이 바뀐 맥락을 이해해야 합니다. 과거 조선분야 대기업들은 철수하거나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현재 거론되는 일본 조선사들은 이마바리, 쯔네이시 등 2000년대 이후 새롭게 부상한 중견업체들입니다. 구조조정을 통한 체질개선 효과는 전혀 없었습니다.

중국은 조선업체들이 2000년대 이후 너무 난립했습니다. 난립한 조선소 정리를 위해 중국 정부가 직접 나서고 있는데, 소위 화이트리스트에 포함된 조선업체들만 지원해 주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화이트리스트에 포함된 조선소 수가 처음에 50개였다가, 작년에는 71개까지 늘었습니다. 난립한 조선소 일부를 솎아내는 것인데, 10여개 조선소만이 운영되는 한국 상황과 비교하기엔 조선소 규모 자체가 다릅니다.

한 마디 덧보태자면, 중국 조선소들은 중국 정부의 지원이 없다면 거의 90% 이상이 한국-일본과의 시장경쟁에서 망할 업체들입니다.


- 조선을 비롯해 중후장대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 목소리가 높은 것은 그 기저에 굴뚝산업 한계론, 즉, 중국과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공중증이 깔려있는 것 같습니다. 조선업을 사양산업, 혹은 경쟁력을 상실했다고 보는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저는 소위 ‘굴뚝산업 한계론’이 제시하는 구체적인 근거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독일은 왜 여전히 자동차산업 최강국인가요? 독일 조선산업이 크게 줄어든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상선의 최고봉이라고 하는 크루즈선 3대 강국입니다. 독일은 ‘industry 4.0’이라는 제조업 융합발전 전략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도 최근 셰일가스 생산 확대를 발판으로 2010년대 이후 자국 제조업 부활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이러한 추세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융산업의 버블에 대한 인식과 제조업이 자국경제에 가지는 높은 기여도를 새롭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서비스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데 서비스산업은 일부 고소득 인력과 압도적 다수의 저임금 노동력 활용이 특징입니다. 조선업종은 하청업체에서 일하더라도 평균적으로 임금수준이 높은 양질의 일자리입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이 조선업의 업그레이드를 고민해야 할 때이지 사양산업으로 접을 궁리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다고 얘기하는데, 중국 조선산업이 혁신의 가능성을 전혀 찾을 수 없는 한심한 수준이라는 점을 확인한다면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릴 것이라는 얘기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 조선산업에 대해 매우 과대평가하고 있습니다.


- 구조조정에 대한 여러 논란과 별개로, 대규모 실직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실직 문제를 조선업 구조조정의 원인으로 봐야하는지, 아니면 조선업계에 만연한 하청문제가 낳은 문제로 봐야하는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작년부터 지금까지 조선해양산업 하청이 1만명 가량 줄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앞으로 2~3년 동안 조선해양산업 하청 고용이 2~3만 가량 더 줄어들 것이란 점입니다.

기본적으로 조선업계는 물량 축소에 대해 하청 고용형태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즉, 정규직의 고용보호장치(소위 ‘버퍼’)로 사내하청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하청노동 활용은 인건비 절감, 고용유연화라는 장점이 있지만, 조선소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특수적 숙련 형성에 지장을 줍니다. 이는 불량률, 재검율이 높아지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앞으로 한국 조선업을 고기술-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생산현장에서 하청을 중심 인력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 구조조정이 가진 위험성을 강조하셨는데, 결국 관건은 현재의 수주부진을 이겨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 업계에서는 오히려 금융권의 전향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수출입은행을 비롯한 ECA가 구조조정 정국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한다고 보십니까?

= 중국의 정부 차원에서 조선업 퍼주기, 특히 선박금융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은 유명합니다. 국수국조는 물론이고, 해외 선주사들에 대해서도 따라오기 힘든 파격적인 금융 지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과 일본은 OECD 회원국으로 선박금융의 규제(신조선가의 80%까지 ECA가 대출) 적용을 받으나 중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 조선업은 선박금융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노력도 이에 뒤처지지 않습니다. 한국의 수출입은행 격이라고 할 수 있는 JBIC(일본국제협력은행)은 2000년대 후반부터 ‘two-step loan’ 이라는 새로운 선박금융상품을 개발했습니다. 간략히 설명하자면 JBIC가 선주사에 80%만 지원할 수 있는데,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선주사 국가의 은행에 초저리로 대출을 해주고는 그 대출에 약간의 수수료를 붙여 선주사에 대출하게 해 주는 방식입니다. 한마디로 현란한 선박금융 상품입니다.

거기다 중국 수출입은행이나 일본 JBIC는 특수목적은행이라는 이유로 BIS 규제 적용을 받지 않아서, 대출한도를 크게 늘릴 수 있습니다. 반면 한국 수출입은행은 일반은행과 마찬가지로 BIS규제 적용을 받아 현재의 자본금 규모로 대출한도가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자율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 금융기관들이 선주사들에 0~1%대 금리로 대출을 해주는 반면, 한국은 금리가 대형3사의 경우 2~3%, 중소조선소의 경우 4% 이상에 달합니다. 예컨대 1천억원을 10년간 빌리는 조건일 경우 한국 조선소에는 이자비용만으로 2~300억원 비싸게 발주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악조건에도 선전한 한국 조선업체들이 대단한 것이죠.

대형3사는 자생적으로 버틸 수 있지만, 중소조선사들은 중-일과 경쟁에서 선박금융으로 크게 밀리고 있습니다. 당장 중소조선사들이 수주에서 중-일에 밀리지 않도록 특수목적은행인 수출입은행의 BIS 적용을 제외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조선사 대출로 인한 수출입은행 부실을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높기도 합니다. 역으로 질문해 봅시다. 조선업체들 다 망하고 나서 수출입은행의 건전성을 유지해서 뭐하나요? 수출입은행의 존재목적이 무엇입니까? 수출입은행 부실 운운은 조직의 관료적 운영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목적전치’(goal-displacement) 폐해를 방치하자는 주장에 불과합니다.


- 구조조정에 앞서 조선업계가 가야할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먼저라는 말씀을 해 주셨는데, 어느 길로 가야할까요?

= 조선업계가 걸어야할 길은 노ㆍ사ㆍ정이 함께 모색해야 합니다. 지금과 같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저는 조선업계가 산업생태계를 구성해 ‘따로 또 같이’, 즉 상생하는 발전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형조선사-중소조선사-기자재업체가 함께 성장하는 모습이 우리 조선업계가 가야할 길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많이 사라진 중소조선소들을 육성할 필요가 있고, 앞서 언급했듯이 ECA들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야 합니다. 하청 중심의 생산시스템 재검토도 필요합니다.

여러 방안들이 있겠지만, 함께 모색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지 어느 한 쪽에 의해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것은 한국 조선업의 발전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